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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친구방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반용복

작성자꿈에본사슴|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오늘도 幸福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는 즐거운 하루되기를 所望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수도선부(水到船浮)" 물이 가득차야 배가 뜬다.
즉 자기 수양(修養)이 잘 준비돼야 사회에 나가 성공(成功)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50년 9월15일 맥아더 장군(將軍)의 인천 상륙작전(上陸作戰)은 성공률이 5000분의 1 이었습니다.
모든 연합군 참모(參謀)들이 반대(反對)를 했고 북한군도 설마 했던 작전 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의 믿음은 반드시 밀물 때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인천 상륙작전(上陸作戰)의 적기(適期)는 9월 15일 이었습니다.

당시의 전세는 북한군이 낙동강(洛東江)까지 밀고 내려와 이승만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나 하와이로 망명정부를 세우려 할 때 대한민국을 위기(危機)에서 구해준 미국의 두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 한 주인공이 워커장군입니다.
워커장군은 절망 중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각하(閣下) 내가 이땅 대한민국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이땅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지켜 내겠습니다.

그리고는 낙동강전투에서 46일간을 '소방수 전법' 즉 기동방어전을 쓰면서 낙동강(洛東江)을 지켜냈습니다.

마지막 인천상륙작전 15일전 맥아더 장군이 워커대장에게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워커장군이여! 마지막 15일만 더 버텨 주세요!

이 부탁은 인천 앞바다에 반드시 9월15일 밀물이 있을 것이란 확신(確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워커는 낙동강을 지켜내었고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시행하여 대한민국을 위기(危機)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자 맥아더 장군은 기억(記憶)하지만 낙동강 전투(戰鬪)에서 46일간을 지켜내고 방어(防禦)를 해준 워커장군이 없었다면 인천 상륙작전도 대한민국의 국토 탈환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現實) 입니다.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장군은 '워커' 장군 입니다.
6ㆍ25때 워커 장군은 그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와 함께 한국전에 참전 했습니다.

이 사실은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워커장군의 아들 샘워커 또한 한국전에 전방에서 큰 공훈(功勳)을 세워 미 국방성(國防省)에서 훈장(勳章)을 수여해 주라하여 아버지 워커대장이 아들 샘워커 대위 부대에 공적(功績)을 치하(致賀)해 주려 직접 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1950년 12월23일 도봉역 앞에서 한국군 이등병이 운전(運轉)하는 군용 트럭이 워커대장의 차량을 추돌(追突)하여 6시간 만에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순직(殉職)을 했습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은공(恩功)을 잊지 말자 하여 서울 광장동에 미군들의 휴양소를 지어주고 이름을 '워커힐' 이라 한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커힐 호텔을 이용하면서 그 유래(由來)를 모르고 있습니다.
워커힐 호텔 앞산에 워커장군 동상(銅像)이 세워져 있고 그의 전사지 도봉역 앞에 가면 전사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워커장군은 1950년 7월에 대한민국에 한국 땅을 밢았고 낙동강을 지켜 주었고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케 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이 한국땅에 온지 5개월 만에 순직하신 은인중의 은인 입니다.

이글은 맥아더장군과 워커장군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位記)의 대한민국 전쟁(戰爭)에 1950년 인천 앞바다에 밀물이 있었기에 인천상륙 작전(作戰)이 성공(成功)했듯이 누구에게나 간절히 소망(所望)하는 자에게 밀물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밀물 때를 놓치는 것이 문제(問題)입니다.

옛말에 기회는 상고머리를 잡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상고머리는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짧게 깍아서 잡히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앞머리가 손에 닿을 때 잡지 않으면 잡을 수 없듯이 밀물 때를 놓치면 썰물 때에는 배를 띄울 수 없습니다.

내게 다가온 밀물 때를 놓치지 말고 배를 띄어 목적지(目的地)에 상륙(上陸)하는 영광(榮光)이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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