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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곧 존재의 깊이다. 노근수

작성자꿈에본사슴|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시간은 곧 존재의 깊이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이루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 말은 단순한 근면의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통찰에 가깝다. 인간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무엇에 시간을 바쳤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사람들은 돈의 손실에는 민감하다. 몇 만 원의 손해에도 마음을 쓰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러나 정작 하루의 몇 시간씩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시간에는 무감각하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단 한순간도 되돌릴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은 기억 속 흔적으로만 남을 뿐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냉혹한 운명의 법칙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누구도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은 단순한 시계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곧 생명이며 의식이다. 젊음도 사랑도 건강도 모두 시간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 인간은 깨닫게 된다. 인생의 본질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있다는 것을.

현대인은 늘 바쁘다. 그러나 바쁨은 삶의 충만함과 다르다. 쉼 없이 움직이며 살아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의미 없는 경쟁과 비교, 불필요한 관계 속에서 시간을 소모하다 보면 삶은 어느새 공허해진다. 시간 관리란 단순히 일정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가를 선택하는 철학적 행위다.

인간은 흔히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한다. 더 좋은 날이 오면 행복할 것이라 믿으며 오늘의 기쁨을 뒤로 미룬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현재라는 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일은 약속된 시간이 아니다. 언젠가 만나야지 했던 사람, 언젠가 가봐야지 했던 길, 언젠가 해야지 미루어 둔 사랑과 감사의 표현들은 때로 영원히 기회를 잃는다. 그래서 삶은 기다림보다 실천 속에서 완성된다.

시간은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쇠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이는 독서와 사색 속에서 내면을 확장하고, 어떤 이는 무료함과 불평 속에서 하루를 허비한다. 하루의 작은 차이는 결국 인생 전체의 차이가 된다. 위대한 삶은 특별한 사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부지런히 살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함부로 소모하지 말라는 의미다.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며,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시간은 곧 생명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낀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계절의 변화마저 무감각해질 때 시간은 압축되어 사라진다. 철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의 밀도 차이로 설명한다. 시계 속의 시간인 크로노스가 수평적으로 흘러간다면, 삶의 깊이를 만드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수직적으로 내려앉는다. 새로운 경험과 낯선 감동, 몰입과 열정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시간을 깊게 체험한다.

그래서 삶에는 의도적인 새로움이 필요하다. 익숙함만 반복되면 영혼은 늙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며, 새로운 배움에 자신을 던질 때 시간은 다시 살아난다. 여행과 독서, 음악과 글쓰기, 운동과 예술, 사색과 명상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들은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삶의 시간을 다시 확장시키는 행위다.

인생은 결국 시간의 총합이지만, 더 깊게 말하면 경험의 밀도와 의식의 깊이가 축적된 결과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이 되고 운명이 된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후회보다 충만함이 남아 있다면, 그날의 시간은 헛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늙어가면서도 끝내 정신의 젊음을 잃지 않는다.(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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