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하’의 복숭아와 스포츠 경기
《한비자》에 실린 ‘미자하(彌子瑕)’의 고사는 인간 감정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단숨에 꿰뚫는 이야기다. 이 고사는 단순한 옛 권력자의 변심담이 아니라, 사랑과 미움이 어떻게 판단을 뒤집는지를 보여주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비슷한 말로 우리가 누구를 너무 추켜세우면 그 사람은 ‘너무 추켜세우지 말라, 높은 데서 떨어지면 더 아프다’라는 말을 한다.
미자하는 위나라 군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미소년이었다. 어느 날 군주와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 복숭아 하나를 따 먹었는데, 그 맛이 너무 달고 향기로워 무심코 한입 베어 문 뒤 임금에게 건넸다. 군주는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자기 입맛도 잊고 나를 먼저 생각하다니, 참으로 사랑이 깊구나.” 먹다 남은 복숭아는 그날 ‘충정의 상징’이 되었다.
또 한 번은 미자하가 병든 어머니를 뵙기 위해 임금 몰래 어가를 타고 성문을 나갔다. 법에 따르면 이는 중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그러나 군주는 노하지 않고 오히려 감탄했다.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잃을 각오를 하다니, 효심이 지극하구나.” 법은 사랑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꾼다. 미자하의 젊음이 시들자 군주의 마음도 함께 식었다. 어느 날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자 군주는 돌연 그를 꾸짖었다. “감히 내 수레를 멋대로 타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바친 자가 바로 너 아니더냐!” 한때 미덕이던 행동은 하루아침에 죄가 되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으나, 임금의 마음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한비자는 이 장면에서 인간 감정의 본질을 꿰뚫는다. 사랑과 미움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상대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사랑받을 때는 허물조차 미담이 되고, 미움받을 때는 공로마저 죄가 된다. 판단은 이성에서 나오지 않고, 늘 감정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이 모습은 오늘날 스포츠 경기에서도 너무나 선명하게 반복된다. 월드컵이나 국제대회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 선수와 감독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다. 감독의 전술은 “천재적 용병술”로 불리고, 선수의 과감한 플레이는 “투혼과 결단력”으로 미화된다. 언론은 앞다투어 찬사를 쏟아내고, 국민은 그들을 시대의 자랑처럼 떠받든다.
그러나 단 한 경기 패배하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힌다. 조금 전까지 “명장”이라 불리던 감독은 무능한 지도자로 몰리고, 영웅이던 선수는 짐을 싸라는 등 책임론의 중심에 선다. 승리했을 때는 과감함이라 칭송받던 선택이 패배 후에는 무모함이 되고, 강단 있다고 하던 리더십은 독선으로 바뀐다. 같은 행동인데도 결과와 감정이 달라지자 해석 또한 정반대로 변하는 것이다.
사실 선수들도 감독도 매 경기 최선을 다한다. 승리를 위해 밤낮없이 훈련하고, 온 정신을 집중해 경기에 임한다. 그럼에도 스포츠의 세계는 결과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이기면 모든 장면이 미화되고, 지면 모든 실수가 확대된다. 인간은 냉정하게 분석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투사해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희생양으로 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한때 개혁이라 불리던 선택이 시대의 감정이 바뀌면 독선이 되고, 과거의 실패는 시간이 흐르면 선견지명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이동했을 뿐이다. 한비자는 그래서 감정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마음은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제도보다도 내면의 태도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힘, 즉 감정을 객관화하는 균형 감각이다.
사랑할 때 상대를 신격화하지 말고, 미워할 때 그 사람의 전부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진실을 비추기보다 왜곡한다. 미자하의 복숭아는 달았고, 그 맛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임금의 입맛이었다. 수천 년이 지나도 미자하의 고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감정의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철학적인 삶의 덕목이기 때문이다.(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