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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만명이 스페인을 막고, 28억은 예선에서 짐 쌌다. 노근수

작성자꿈에본사슴|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52만명이 스페인을 막고, 28억은 예선에서 짐 쌌다

• 인구수는 축구와 상관없다. 진짜 변수는 '재능이 흐르는 통로'다

지금 2026 북중미 월드컵이 한창인데, 대회 시작 5일 만에 누가 봐도 '올해의 장면'이 나왔다.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떠 있는 섬나라 카보베르데. 인구 52만. 제주도보다 좀 작다. 이 나라가 애틀랜타에서 유로 2024 챔피언이자 FIFA 랭킹 2위 스페인을 만났다. 슈팅 27대 6. 점유율도 처참하게 밀렸다. 그런데 결과는 0-0. 40세 골키퍼 보지냐가 말 그대로 몸을 던지고, 또 던지고, 슈팅 하나하나를 주먹으로 걷어내고 발끝으로 튕겨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 40대 골키퍼가 잔디 위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인구 15만의 카리브해 섬 퀴라소도 본선에 올라왔다. 2018년 아이슬란드가 세운 '최소 인구 본선국' 기록(34만)을 반 토막 냈다. 15만이면 한국으로 치면 웬만한 구(區) 하나 인구다. 거기서 월드컵 대표팀이 나왔다.

자, 그럼 이 숫자를 한번 비교해 보자. 중국 14억, 인도 14억. 합산 28억. FIFA 랭킹? 중국 91위, 인도 136위. 둘 다 또 예선 탈락이다. 48개국으로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 월드컵인데도 못 갔다. 본선 티켓이 거의 두 배로 늘었는데도.

"14억 중에 공 잘 차는 11명도 없냐?" - 이 질문, 이제 20년째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 작은 나라들이 증명한 것

• 카보베르데(52만) - 2026 월드컵 첫 출전. 스페인 상대로 무실점 무승부. 대회 5일 차 최대 이변의 주인공

• 퀴라소(15만) - 역대 최소 인구 월드컵 본선국. 네덜란드계 귀화 선수들을 영리하게 끌어모아 자메이카를 제치고 본선행

• 아이슬란드(34만) - 2018 월드컵 본선 진출. 당시 전 국민의 약 10%가 러시아까지 응원 갔다는 전설적 스토리

• 크로아티아(390만) - 2018 월드컵 준우승. 인구 390만으로 프랑스(6,700만)와 결승을 했다

• 우루과이(350만) - 1930년, 1950년 월드컵 두 번 우승. 당시 인구 150~200만이었다.

인구와 월드컵 성적을 그래프로 찍어보면? 점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상관계수가 거의 0에 가깝다. 머릿수는 결정 변수가 아니다. 그럼 뭐가 변수인가.

1. 돈을 쏟아 부어도 지고, 안 써도 진다 - 중국과 인도의 기묘한 동행

이 두 나라가 흥미로운 건,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과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돈으로 밀어붙였다. 2016년 시진핑의 '축구굴기' 선언 이후 축구학교 2만 개 목표를 세웠고,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중국 슈퍼리그에 뿌린 돈은 어마어마했다. 외국인 선수 연봉이 한국 K리그의 12배까지 올라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돈이 흘러간 방향이 문제였다. 뛰어난 중국 선수들은 국내 고연봉에 안주해서 해외 리그 도전을 안 했고, 유소년 선발 과정엔 관시(關係)와 뇌물이 끼어들었다. 돈은 넘쳤는데, 재능이 아니라 인맥이 통로를 차지했다.

인도는 아예 반대다. 축구를 외면했다. 알고 보면 1950~60년대 인도는 아시아 축구 강국이었다. 1948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고, 1962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까지 땄다. 그런데 정치가 축구를 방치했다. 결정타는 1983년 크리켓 월드컵 우승이었다. 그 이후 크리켓이 인기, 방송 중계권, 스폰서십, 유소년 재능을 전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축구로 갈 수 있었을 운동신경 좋은 애들이 전부 크리켓 배트를 잡았다. 2022년엔 FIFA가 인도 축구협회(AIFF)를 자격정지까지 시킨 적 있다. 정치 개입이 너무 심해서.

돈을 쏟은 중국도, 외면한 인도도, 결국 같은 자리다. 공통 분모는 딱 두 가지.

• 축구를 아는 사람이 아닌, 정치인과 관료가 의사결정권을 쥐었다
• 입시 중심 사회에서 부모가 애들 운동을 막았다

(한국이 축구를 그나마 하는 건 박지성, 손흥민 같은 '성공 사례'가 부모들 심리적 허들을 좀 낮춰줬기 때문이지, 시스템이 잘 돼서가 아니다.)

1. 진짜 변수는 '재능의 통로'다 - 그리고 이건 축구 밖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아스널 유소년 아카데미 연구에 따르면, 메시급 재능은 약 20만 명당 1명꼴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 비율을 28억에 대입하면? 잠재 인재가 1만 4천 명이다. 그런데 그 재능이 올라갈 계단이 없으면 (유소년에서 프로 리그로, 프로 리그에서 해외 무대로 이어지는 통로가 막혀 있으면) 1만 4천 명 전원이 그냥 사라진다. 반대로 통로가 열려 있으면, 52만짜리 섬나라에서도 스페인 슈팅 27개를 막아내는 40세 골키퍼가 나온다.

규모가 아니라 통로다. 이건 축구만의 법칙이 아니다.

• 국가 경제 - 인구가 많다고 자동으로 부국이 되진 않는다. 싱가포르 600만, 이스라엘 900만, 스위스 870만. 인구는 작지만 1인당 GDP와 혁신 지수로 보면 인구 10배짜리 나라들을 가볍게 앞선다. 규모가 곧 성과라면 이 나라들은 존재할 수 없다.

• 조직 인재 관리 - 회사에 인재가 많다고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평가-보상-이동 경로가 한 줄짜리면, 그 줄에 안 맞는 재능은 죄다 사장된다. 대기업 공채로 한 줄 세워놓고 "우리는 인재풀이 넓다"고 말하는 건, 14억 놓고 "잘하는 11명 없냐"고 묻는 것과 구조적으로 똑같다.

• R&D와 혁신 - '얼마를 쓰느냐'보다 '그 돈이 어떤 경로로 흐르느냐'가 성과를 결정한다. 예산만 키우고 통로 설계를 안 하면, 축구굴기에 수억 달러 태운 중국이랑 다를 게 없다. 큰 시장이 자동으로 큰 혁신을 만들지 않는다.

• 스타트업 생태계 - 인재 수가 아니라 그 인재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경로가 있느냐, 현장을 아는 사람이 판을 짜느냐, 도전 자체를 허용하는 문화가 있느냐.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이기는 건, 머릿수 싸움이 아니라 시스템 싸움이다.

규모(인구든, 예산이든, 시장 크기든)는 성과의 입력값일 뿐이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많은 사람이 믿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 결과를 가르는 변수는 세 가지 - 재능이 다양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통로, 현장 전문가에게 맡기는 거버넌스, 실패해도 다시 뛸 수 있는 문화.

이건 작은 나라, 작은 조직, 후발 스타트업에겐 희망이다. 머릿수 열세는 시스템 설계로 뒤집을 수 있다. 반대로, 규모만 믿고 앉아있는 대국이나 대기업에겐 경고다. 돈을 쏟든 방치하든, 통로가 막히면 14억도 11명을 못 만든다.

26년 0619.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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