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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귀신)치유==

빙의(憑依)와 제령(除靈)

작성자순례자|작성시간09.04.30|조회수343 목록 댓글 0

 

 

 

 

빙의란 영적 존재(이하 영이라 한다)가 이 세상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현대의학은 빙의를 뇌의 장애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빙의 때문에 건강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어도 불안이나 좀 완화되고 몸이나 나른해질 뿐, ‘영의 소리가 들려온다’, ‘영이 보인다’, ‘안에서 들볶는다’는 등의 현상이 없어지지를 않아 애를 먹고 있다고 호소한다.

영이 자기의 몸에 들어와 간섭을 하니 환자는 자기의 뜻대로 생활을 하지도 못한다. 내가 하고 있는 레이키(Reiki) 교육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경험한다. 한번은 지방에서 레이키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이 2일간의 교육과정에서 하루만 교육을 받고는 그 다음날 올 시간에 오지를 않았다. 핸드폰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이라 교육생이 핸드폰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다. 오기로 약속된 시간보다 4시간이나 지났을 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안 오느냐고 했더니 지방 공항이라고 했다. 자기의 몸안에 있는 영이 밤새껏 그냥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시달리다가 아침에 김포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것이다.

영이 레이키 에너지에 의해 그 사람의 몸에서 쫓겨나게 될 것을 미리 감지하고 가자고 졸라댔던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어떤 젊은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내 책의 독자라고 했다. 나이는 스물네살인데 2~3년전부터 까닭없이 시름시름 몸을 앓았다고 했다. 어떤 아는 사람이 신병이 들어서 그런 것 같으니 ‘내림굿’을 받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신어머니를 정하고 내림굿을 받은 다음에 그 무속인의 집으로 수양딸 삼아서 들어가 그 집의 일을 보아주면서 생활을 했다. 그런데 내림굿을 받은지 3개월이 지나도 몸은 낫지를 않고 몸안에 들어와 있는 할아버지 영에게 계속 시달리기만 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 내가 쓴 ‘우주는 경이로운 일로 가득 차 있다’ 등의 책을 보니 초능력자들을 많이 알고 있는 듯하여 나에게 부탁하면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을 소개해줄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우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지금은 내가 옛날처럼 책만 쓰는 것이 아니고 그런 문제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도 하고 있으니 지체없이 바로 오라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듯 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할아버지가 ‘박희준이한테 가지 마라. 박희준이한테 가지 마라’고 다그쳐요.”라고. 그러더니 전화를 끊고는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빙의는 당사자의 심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준다. 빙의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문제이다.

쉽게 말하면 ‘빙의(憑依)’란 저세상의 영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거나 옮겨 실리는 현상이다. 이런 빙의와 샤머니즘(무속)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류사회의 수많은 종족들 가운데서 샤머니즘이 있는 종족 사회에서는 빙의의 문제는 생활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샤먼(무속인)은 빙의로 시달리는 환자의 몸에서 귀신(영적 존재)을 떼어주는 제령의식을 집행하기도 하고, 스스로 접신이 되어 영의 의사를 환자나 손님에게 전하는 탈혼 의식을 집행하기도 했다. ‘탈혼(脫魂)’이란 채널링을 하는 동안 샤먼이 잠시 영에게 자기의 몸을 빌려주는 상태를 말한다. 샤먼의 인격은 그동안 뒤로 물러가 있고, 영의 인격이 대신 들어서서 환자나 손님을 상대하게 된다. 샤먼은 채널링이 끝날 때까지 망아의 상태에 있게 된다. 이같은 채널링의 의식이 끝났을때 샤먼은 그동안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채널링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와 일상의식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빙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인식이 뿌리깊게 민중을 지배했다.

“빙의는 영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이다. 그 영은 악령인 경우가 많다. 사탄(악마)이어서 뻔뻔스럽기도 하고 간악하기도 하다.”

예수의 치료의 대다수는 제령 즉 퇴마에 바쳐진 것이었다. 퇴마라는 말은 마귀를 내쫓는다는 말인데, 이것은 빙의령을 악마라고 보는데서 유래하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리스도교에서는 퇴마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유습과 선악 이원론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심령주의 연구가인 나의 입장에서는 빙의령을 악마로 보는데는 저항감을 느낀다. 빙의령들은 어떤 무지함이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죽은 다음에 높은 ‘영계’로 가지 못하고, 낮은 ‘유계’에서 헤매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기 위해 사람의 몸에 들어오기도 하고, 지상의 생활에 미련이 있어서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나쁜 짓을 하는 악령도 있기는 있다. 퇴마사나 제령가가 할 일은 그들을 잘 설득하고 교육해, 높은 영계로 가도록 인도해주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퇴마라는 말이나 제령이라는 말이 모두 적합한 말이 아니다. 제령은 영을 내쫓는다, 제거한다는 말이니까 퇴마라는 말과 사실상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말이다.

 

불교에서 쓰이는 ‘영가천도’라는 말이 용어로서는 비교적 사리에 맞는 말이지만, 더욱 합당한 일반적인 용어를 찾는다면 ‘구령(救靈)’이라는 용어를 통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불교계 일부에서도 퇴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교 내의 빙의와 관련된 역사를 보면 빙의령을 악마로 인식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었다.

A. K. 에스텔라이히가 저서 ‘빙의(1921년 간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빙의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악마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어투 외에 악마의 역할도 나타낸다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악령이 여럿이 있는 듯이도 보인다는 것이다, 성격도 각기 다른 악령들이.

빙의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유명한 예로 1630년대에 프랑스의 ‘르 당’에서 일어난 ‘수녀집단빙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서 수녀 장느도, 수도사 슈랑도(수년동안 퇴마의식에 파견됐는데 자신도 빙의가 되었다) 번갈아 이렇게 말했다.

“외설된 말과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것을 곁눈질로 지켜보고 있는 또 한사람의 내가 있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나오는 말을 멈출수가 없었다. 기괴한 체험이었다.”

이 사건 이후 빙의를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의 표현으로 여기는 견해가 일반화되었다. 이런 내용이다.

“‘나’는 단일한 실재가 아니다, 복수의 나의 집합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기능하고 있다. 혹은 하루 하루의 관리를 우두머리격인 인격에 맡겨두고 있다.”

그러나 빙의의 전형적인 예가 이 이론과 잘 맞지를 않는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다. 영매의 채널링 현상이다. 영매는 채널링을 할 때에 자기의 단일한 인격을 견지하면서도 환자나 손님에게 유익한 정보를 중개해주는 것이다.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행위는 악마의 소행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빙의는 악마의 소행’이라는 설이 실천적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영국 국교회에서는 지금도 퇴마를 전문으로 하는 목사만을 거느리고 있다.

현대의학은 환자들의 발병사례를 통해 빙의라는 현상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째서 빙의가 일어나는가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한다. 현대의학은 철저히 유물론적이다.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만이 인간의 전부라고 본다. 인간이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적인 영으로 이우러진 복합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은 ‘뇌의 작용에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

‘영이 보인다’, ‘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의 영이다’라고 하는 빙의환자가 나타나면 뇌의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대응하려 하지 외부에서 침입한 영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정신신경과에 입원을 해도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약을 먹여 얌전해지게 만든다’, ‘격리를 시켜 일반사회와 마찰을 피하게 만든다’ 같은 일이다.

최근에는 정신의학계에도 ‘전생퇴행요법’을 하여 제령을 겸해서 하는 의사들도 나타나 있고, 제령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도 나타나고 있다. 윌리암 볼드윈이라는 미국의 의사는 ‘제령요법(Spirit Releasement Therapy)’이라는 제령기법 매뉴얼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런 의사들이 아직은 소수파이지만 동조자가 많이 늘어날 때에는 정신의학계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저세상의 영들은 이세상에 있는 사람이 빙의하기에 적합한 상태에 있을 때 들어온다. 적합한 상태란 영과 이세상 사람의 마음의 주파수가 맍을 때를 뜻한다.

확실히 말하면 마음은 라디오의 주파수와 같은 것이다. 마음이 방출하는 파장은 영계의 여러 존재들과 교류를 하고 서로 영향을 주게 된다. 마음의 파장이 맞는 것끼리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강한 파장을 내는 것과 약한 파장을 내는 것이 있다. 약한 파장을 내는 것이 영계의 약한 파장을 가진 영과 공명을 일으키게 된다. 빙의는 마음의 공명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영계에 있는 영들도 집착심, 원한심, 증오심, 이세상에 대한 미련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이세상의 같은 마음의 파장을 가진 사람과 공명을 일으켜 그 사람에게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빙의이다.

빙의로 고생하던 환자가 제령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빙의가 되어 애를 먹는 것은 빙의를 초래했던 마음이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제령을 한 다음에도 꾸준히 마음공부를 해야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빙의의 세계에서는 공간도 인연(공명의 조건)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영계와 이어지는 장소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 갔다가 빙의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묘지, 장례식장, 병원, 절, 교회, 사고다발지역, 흉가 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는 곳은 말하자면 영계와 이어지는 장소이다. 전화교환소, 주파수 절환소와 같은 곳이어서 거기는 영계와 쉽게 통하는 곳이다.

따라서 빙의현상은 종교의식이나 축제를 할 때에 일어나기 쉽다. 그런 곳은 영계에서 많은 영들이 와 있다. 그런데서는 먼저 들어와 있던 영을 내쫓고 다른 영이 대신 들어서기도 한다. 그러면 병이 낫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질이 나쁜 빙의령에게 빙의되어 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 다른 양호한 영이 대신 들어오면 병이 낫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종교집회 장소에서 간혹 기적적 치유가 일어나는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살한 영이 찾아온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살하는 일이 2~3년 사이에 여러 건 일어났다.

자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너무도 쉽게 자살을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살을 하는 사람이 비록 나쁜 사람은 아닐지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사건의 피의자가 되어있는지라, 고뇌가 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그것이 내내 계속되면서도 해결책이 없는 상태가 되니까, 집착, 집념의 파동이 형성된다.

그 집착의 파동은 비슷한 이유로 먼저 자살한 영의 파동과 공명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그런 영들이 모여들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영계로 데려가려 하게 된다.

자살을 하려는 정치인에게는 이미 자살한 정치인의 영이, 자살을 하려는 경영자에게는 이미 자살한 경영자의 영이 찾아온다. 이런 영들은 생전의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 있으면 주파수가 맞아 그 사람에게로 오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을 구해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데려가려고 오는 것이다. 동료를 늘리려하는 것이다 .

영이 찾아오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어두운 마음과 고뇌가 증폭되어 마음을 고쳐먹을 여유가 없어지게 되고 만다. 그래서 더욱 쉽게 자살을 단행하게 되고 만다.

최선의 해결책은 얼른 마음을 돌려먹는 일이다. 그러면 왔던 영도 다시 떠나간다. 명예욕, 사업욕에 대한 집착을 모두 버리고, 자살자는 저세상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살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인 것이다.

우주의 섭리 앞에서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나 국회의원, 장관, 대학총장, 대기업 회장을 지낸 사람이나 길거리의 거지나 모두 하나의 모래알에 불과하다. 명예욕처럼 허황된 것도 없다. 이 세상 만물이 고정불변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을 철저히 음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이다.

 

1.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영들

병원의 임종실이나 암 병실에는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 공간에 떠돌고 있는 영이 있는 것 같다는 영시능력자들(보통사람이 못보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자)의 주장이 있다.

영들은 그 병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면

“또 새로운 손님이 오셨군.”하면서 그 환자와 함께 아파하면서 경과를 같이 겪다가 환자가 죽으면 또 다음 환자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들어왔다, 죽었다, 들어왔다, 죽었다”를 끊임없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

그 영은 스스로 그런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해 불행을 확대재생산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

저세상 ‘영계’에는 질서정연한 빛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두운 ‘유계’에서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를 되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어서 육체가 없는데도 의식은 있으니까 나는 살아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입원중인 것으로 여기고, “간호사도 의사도 서비스가 나쁘다. 시건방지다.”라든가, “내 침대에 새로운 놈이 들어왔구나. 괘씸한 놈.”이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는 것이다 .

 

2. 지박령

자기가 죽은 곳에 공간적으로 묶여있는 영을 지박령이라고 한다. 죽음에 이르르는 과정이 서서히 진행된 사람보다는 불시에 죽은 사람이 지박령이 되기 쉽다.

갑자기 죽었다고 다 지박령이 되는 것은 아니며, 갑자기 죽었을지라도 평소에 사후 생존에 관한 믿음과 높은 영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본인의 영성의 수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교통사고나 익사사고로 갑자기 죽은 사람이면서 앞길이 창창했던 사람, 이세상에 할 일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 보살펴야할 아내나 아이들이 있는 사람이 문제이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니 어쩌나”

“가업을 이을 사람을 정하지 못했으니 어쩌나”하는 걱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해 그 문제가 있던 곳에 마음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영은 집안에서 아내의 곁에 있거나 아이들 곁에 있거나 하게 된다. 어떻게든 내가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외는 다른 인식은 아무 것도 없다. 자기가 있으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자각이 없는 것이다. 본인은 아이들이나 아내의 생활을 걱정하여 돌아와있는 셈이지만 저세상 어디로 가야하는 지도 모르고, 달리 갈 곳도 모르기 때문에 살아있는 가족에게 붙어서 지내는 것이다 .

이런 영에 빙의가 되는 사람은 몸이 무겁거나 깨나른하고 건강이 개운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괜한 걱정거리도 늘어난다. 늘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해 기분도 늘 어둡다.

영 자신은 나쁜 의도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셈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영장(靈障)’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유형의 지박령이 있다. 교통사고로 죽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교통사고가 자꾸 일어나게 유도하고 있는 영, 물에 빠져 죽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도록 유도하고 있는 영등이 있다.

팥을 던져 제령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성안 스님은 그 저서 ‘말썽꾼 귀신도 내 말은 듣지요’에서 이런 경험담을 말한다.

“안산에 있는 어느 카페를 운영하던 ○○○라는 여자분이 있었다.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중 어떤 분의 권유로 카페를 인수받게 됐다. 목은 괜찮은데 장사가 잘 안되니 하루에 2만원씩만 내고 장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 ○○○씨는 거의 공짜라고 할 만큼 좋은 조건에 술집을 인수받아서 무척 자신만만하게 재기를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날 ○○○씨가 법당으로 찾아와서는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맨날 가게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것도 맥주 한 병 먹다 괜히 시비가 붙어 싸움판이 되질 않나,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서 싸움을 걸어 난리를 치지를 않나, 도대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다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간단히 준비를 해놓으라고 보내고는 그날밤 가게 영업이 끝난 새벽 3시에 기도를 시작했다. 한참 고사를 지내다보니까 영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천도재로 돌려버렸다.

○○○씨를 불러 천도재를 시작했는데 조상은 아니었다. 이 터에 남아있는 영가인가 생각하면서 재를 올리는데 누가 언뜻 비치더니 몇 번 자리를 맴돌다가 휙 사라졌다. 사람의 몸에 실린 상태가 아니어서 누구인지 잘 알 수는 없었다.

대화를 안하고 그냥 사라져버려서 어떤 영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가가 나타났다 사라지자, 구경왔던 옆집 룸살롱 주인이 놀라서 전에 있었던 사건을 말해주었다.

몇 년전에 룸살롱에서 폭력배끼리 싸움이 났는데 패거리 중 한 명이 불리하니까 옆집인 이 카페로 도망을 왔다가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이후부터 새로 영업만 시작하면 싸움이 나서 벌써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씨도 넘겨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어찌됐든 고사 겸 천도재를 지낸 다음부터는 장사가 잘 되었고, 며칠 뒤 ○○○씨의 꿈에 왠 젊은 남자가 나타나 고맙다고 하면서 “난 이제 갑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이 경우는 ○○○씨 몸에 직접 들어간 것이 아니고, 지박령이라고 해서, 자신이 죽은 터에 영이 머물다가 손님들 몸에 순간 실렸던 것이다. 술먹은 사람에게 휙 실려서 평소때 일삼던 욕설을 해대고 부수고 던지는 행패를 부린 것인데, 말하자면 “내가 이 터에 있으니 너희는 다 나가라”는 식의 유령의 집이 된 것이다.

 

3. 빙의령들이 더덕더덕 포개지기도 한다

유계, 영계, 또 그 이상 차원의 저세상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세계이다. 시간도 있고 공간의 구별도 있는 이 3차원의 이세상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이세상에서는 같은 장소라든가 같은 공간에는 다른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다른 것이 같은 곳에 있으려면 반드시 충돌하게 된다. 그런데 저세상의 구조는 그렇지 않다. 같은 공간에 다른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세상의 영적 존재들은 서로 스쳐지날 때 몸이 부딪쳐도 그대로 상대의 몸을 통과해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저세상의 영적 존재들은 몸이 없는 무형의 에너지체, 의식체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를 서로 인식하고 있으면 스쳐지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의식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곳에 존재하는 영적 존재들끼리도 상대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빙의의 원리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빙의령들은 저세상의 영적 존재이니까 한 곳에 2중, 3중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서로 포개져 들어가 있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50~60개의 빙의령이 한 사람의 몸안에 들어가 있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제령 전문가는 수백, 수천의 영이 한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을 다룬 일도 있다고도 하니, 이 분야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듯 하다.

 

4. 빙의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영들은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 약한 마음을 타고 들어온다. 강한 자아, 높은 영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빙의령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마음에 여린 구석이 남아있는 사람, 한 가지 욕심에 골똘히 매달리는 사람, 마약이나 알콜중독자는 빙의령들의 에너지의 파장과 맞아 빙의령들이 접근하기 쉽다.

심한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컴퓨터 게임 중독 등으로 자폐적 경향을 나타내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연유로 세상을 떠나 유계를 헤매고 있는 빙의령들이 접근하기 쉽다. 항상 마음을 명랑하게 유지하고 마음의 발달과 영성의 향상에 힘쓰는 것이 빙의를 막는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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