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서 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 4
2. 연구 방법 / 6
Ⅱ.기복신앙의 일반적 고찰
1.기복신앙이란 무엇인가? / 7
2.기복신앙의 뿌리로서의 샤머니즘 / 8
A.샤머니즘이란 무엇인가? / 11
B.한국의 샤머니즘의 역사적 고찰 / 11
3. 한국 샤머니즘의 특성 / 12
A.일관성 / 12
B.지속성 / 14
C.기복신앙 / 14
4.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이 끼친 영향 / 14
A. 한국인의 심성에 끼친 영향 / 14
1)현세성 / 14
2)몰역사성 / 16
3)비윤리성 / 17
4)치병기복신앙 / 17
5. 기복신앙의 발전 / 17
A.전통적 논거 / 17
B.한국전쟁 / 18
C. 1960년 ~1980년대 초반 / 19
Ⅲ. 성경적 복의 개념
1.구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 20
A. 성경적인 축복의 어원적 의미 / 20
1) ךרב(바랔) / 20
2) ירשׁא (아수레) / 21
B. 율법서에서의 축복 / 21
C. 시편에서의 축복 / 24
D. 구약적 축복의 결론적 고찰 / 25
2. 신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 26
A. 성경적인 축복의 어원적 의미 / 26
1) μακαριος (마카리오스) / 27
2) ευλογεω (율로게오) / 28
B.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 / 28
1)복음서에 나타난 축복관 / 28
2)서신서에 나타난 축복관 / 31
3)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축복관 / 32
C.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의 결론적 고찰 / 34
3.무속신앙과 성경적 복의 비교 / 34
A. 유사점 / 34
B. 차이점 / 35
1) 구원의 유무 / 35
2) 이기적인 기복과 윤리적인 축복 / 35
3) 요행적 기복과 계약적 축복 / 36
4) 주술적 기복과 신앙적 축복 / 36
C. 성경적인 축복 신앙 / 37
Ⅳ. 한국 교회에 나타난 기복사상적 요소
1.한국 기독교 영성에 미친 영향 / 38
A.긍정적인 측면 / 38
B. 부정적인 측면 / 38
1)복음을 왜곡시키는 기복신앙 / 39
2)현실적 개인중심의 기복신앙 / 41
3)역사적 현실앞에 무능한 기복신앙 / 42
2.한국교회에 나타난 기복신앙의 요소 / 43
A. 긍정적인 측면(양적) / 43
1) 암흑기의 부흥운동 / 43
2) 현실 긍정성 / 46
3)열심있는 신앙태도 / 46
B. 기복신앙의 부정적 측면(질적) / 47
1) 기복신앙적 말씀과 선포 / 49
2) 기복신앙적 헌금 / 52
3) 기복신앙적 부흥회와 기도회 / 55
4) 기복신앙적 목회자 / 58
3. 한국교회 내의 기복신앙의 결론적 고찰 / 60
Ⅴ. 기복신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그 대책
1.영성회복 / 63
2.성경적 올바른 축복관 이해 / 63
3. 폭넓은 세계관 / 64
Ⅵ.결론... / 66
Ⅰ.서론
1. 연구 동기와 목적
한국 교회의 기복신앙에 대한 우려내지, 비판의 소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한국 교회의 기복신앙 이래도 좋은가?’라는 질문은 한국 교회의 본질 회복과 기독교인의 정체성 확인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염려하는 의식 있는 신앙인들의 주제였다.
지난 1999년 9월 8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회장 옥한흠 외 회원 목회자 일동>은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 이튿날 한겨레 신문을 비롯한 몇몇 신문에 이를 발표하였다.
그들이 자신들을 고발한 내용은 7가지였다.
▲개교회 중심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왜곡된 기복신앙을 강조한 죄 ▲돈과 권력 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한 죄 ▲IMF의 고통과 북한동포의 굶주림 속에서 청빈의 삶을 살지 못한 죄 ▲자신을 높이는 업적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죄 등 7가지 죄를 고백하며 "새 천년을 앞두고 바른 신앙과 목회를 이루 고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참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많은 문제점 중에 기복적인 신앙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신앙세계에서 창간 40년을 기념을 준해서 조사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교회가 극복해야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목회자의 경우 '기복신앙' 15.4%로 높게 나타났으며, 평신도의 13.54%가 '기복신앙'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교계인사들이 기복신앙을 경계하는데도 여전히 교인들 다수가 이러한 신앙적 오류에 빠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한국민 속에 전통적으로 자리 잡혀온 종교성 때문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기러한 기복적 신앙들을 복음안에 그대로 이해하려는 신자들의 잘못된 신앙동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이 전도할 때 예수 믿는 것을 [만사형통 보장증] 또는 [도깨비 방망이] 하나 얻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 말에 솔깃해 시작된 신앙생활은 계속적으로 기복적인 신앙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목회자가 성도들이 좋아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전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이유도 있다.
예를 들어 설교시간에 공의로운 하나님을 가르치며 신명기 28장 후반부를 설교하면 교인들이 모이지 않는다. 전반부의 [들어가나 나가나 복 받는 부분]을 떼어서 설교하면 성도들이 구름같이 몰려온다}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어진 진리처럼 통용된다.
한국교회는 이제까지 양적인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만사형통이라는 무지개를 쫓는 성도들을 묵인하였고 더 솔직히 말한다면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기복신앙을 심기까지 했다. 최근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 늘긴 했으나 아직도 많은 교역자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교회 안으로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기복적 신앙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성도들은 기복을 복음으로 오인하고 있으며 물질축복을 받지 못한 성도들은 소위 말하는 “영발있는 곳”을 찾아 교회로 기도원으로 철새처럼 떠돌고 있다.
이단과 사이비는 이러한 현실을 이용하여 독버섯처럼 피어올라 많은 성도들과 주변을 눈물짓게 하고 있다. 기복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속신앙으로 변질시켰고,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많은 크리스천들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평소에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던 성도들이 입시철만 되면 새벽, 철야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주제가 되지 못한다.
장로가 사업실패를 계기로 교회를 떠나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또 십자가가 기독신앙의 핵심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십자가나 성경을 지니고 있으면 모든 사고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근거 없는 발상으로 차량에 십자가를 달고 다니거나 성경책을 싣고 다닌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심지어 [예수 믿고 3년내에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의 신앙은 가짜]라는 전혀 성경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도 의외로 많은 성도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구속의 종교인 기독교에 샤머니즘적 이념이 깔린 기복신앙이란 옷을 입힘으로 통해 상업종교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기복적 신앙 행태들은 60년대와 7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복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한국 기독교가 현세적인 신앙형태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물질적인 풍요와 다양성을 가진 이 시대에 기복적인 성향의 신앙의 의식은 더 이상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 한계성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복'의 개념에 대해 큰 혼란을 겪고 있음은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무엇이 복이냐 하는 문제는 '구원'의 문제와 직결된다.
복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갖는 것은 제 2의 회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하루 빨리 성경적 복의 개념에 관심을 갖고 개혁의 의지를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본인은 이러한 과거의 기복신앙적 기독교 형태가 현대의 교회 성장에 절대적으로 유익을 주지 못함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본인은 본 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적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오염된 한국 교회의 기복적 요소를 조명하고 이것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한국 교회의 중흥과 부흥을 위해 기복신앙이 어떠한 시각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본 논문은 한국 교회에 나타난 기복신앙적 요소를 고찰함에 있어 먼저 기복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고찰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복신앙이 한국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기술할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복신앙이 한국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하여 보다 실제적인 부분들을 고찰 할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현 교회가 교회 안에 침투되어진 기복신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한국교회가 정비해야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고찰할 것이다.
Ⅱ.기복신앙의 일반적 고찰
1.기복신앙이란 무엇인가?
복(福)에 대한 뜻을 생각해 보면 샤머니즘적 기복은 현실위주의 실리를 추구하는 종교이다. 철저하게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중점을 둔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샤머니즘의 종교를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종교를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근과 질병의 때에 번성하고 가난한 자들과 압박 받는 자들 중에서 자라나며 천하고 나약한 자들 중에서 확장된다. 그러나 번영할 때는 쇠퇴하고 부자들과 문화인들에게는 매력을 상실한다고 한다.” 이것은 샤만이 현세적 福을 구하는 종교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복(福)이란 글자의 풀이를 하는데 ‘옷(衣)’자 옆에 ‘입(口)’,그리고 ‘밭(田)’자, 맨 위에 ‘하나(一)’로서 한 인생의 행복이란 겨우 옷 한벌 입고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전답이나 있으며 ‘소박하며 현실적인 것’이라 하는 이도 있다. 샤만의 복은, 오복의 개념, 새해의 복조리, 복주머니 등에서 복에 대한 현실 기복적인 사상이 깔려 있다. 무가의 한 구절 중에 ‘십액대액 삼재팔난(十厄大厄 三災八難) 다 제쳐주시고 남녀자손 부귀창성 다 주소서’라는 구절에서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무속신앙의 기본신조를 찾아볼 수 있다.
기복신앙이란 말 그대로 복을 비는 신앙으로 신앙중심에 복을 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으며 신앙생활이 지향하는 목표가 복을 얻는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의 가치 체계 안에서 복이 우선권을 차지하게 되며, 복이 아닌 것은 부정적인 가치로 여기는 모든 가치관을 말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결국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지는데 즉, 성공은 복이고 실패는 화다. 건강은 복이고 질병은 화다 부는 복이고 가난은 화다. 잘되는 것은 무조건 복이고 고난은 재앙이다. 따라서 길흉화복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그어지고 제화초복, 즉 길한 것과 복은 전심으로 추구하고 흉한 일과 화는 가능한 한 피하려는 의식을 갖게 되어진다.
즉 이것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만이 표현되어지기 마련이다. 내세나 천국등 의 형이상학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기복신앙란 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으며 여러 해가 지나도 신앙과 영성에 성장이 없고 세상적 행복과 내세에서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배와 헌금을 받치고 사랑과 선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 순수한 믿음과 사랑을 받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2.기복신앙의 뿌리로서의 샤머니즘
A.샤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샤머니즘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널리 몽고, 만주, 한국, 일본 그리고 우랄알타이 제 종족들 사이의 공통적인 원시 종교 이다”. “샤먼(Shaman)”이라는 말은 17세기 후반의 서구 민속학자들이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족들 사이에 퍼져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종교 현상을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방의 종족들 사이에서도 발견했다. 그래서 이와 유사한 유형의 주술적 종교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병자를 고치고 저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사람들을 퉁구스(Tungus)족들의 토어(土語) “샤먼”이라는 말로 통칭하여 모두 샤먼이라고 불렀고, 그 종교적 체계를 샤머니즘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샤머니즘의 개념에 대한 통일적이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정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엘리아데(M.Eliade)는 샤머니즘을 좁은 의미로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종교현상으로 규정하지만 샤머니즘적인 현상은 몇몇 예외를 빼고 세계 도처에 퍼져 있다고 한다.
샤머니즘은 모든 물체에 Anima 즉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에 기초하고 있다. 아니미즘은 모든 동물과 식물을 포함하여 보이는 자연물체에는 보이지 않는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숭배하는데, 그 정령들은 신들, 귀신들, 각종 영들, 유령, 천사등 다양하다. 이 정령은 인간의 현재 생활에서 대면하는 사물, 현상, 상황, 등 모든 것에도 깃들어 있어, 그 정령이 꿈이나 환상, 그림자나 영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죽음을 계기로 혹은 잠들었을 때에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하기도 하고 물건에도 정령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유명한 성경 번역자이며 문화 인류학자인 니이다(Eugene Nida)는 애니미즘의 신앙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로, 애니미즘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둘째로, 애니미즘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 이상의 몸으로 구성되었다고 믿는다. 셋째로, 애니미즘은 만물에는 초자연적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넷째로, 초자연적 힘은 조종할 수 있으며 신이나 혼, 혹은 귀신을 조종하기 위하여는 메카니즘적 기술이 필요한데 이것을 마술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애니미즘은 윤리와 종교간에 어떠한 관계도 없다. 마술의 힘(마력)은 도덕적으로 중립이면서 다만 사람의 질병을 고치거나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이처럼 정영들은 자연 안에 있거나 혹은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인간의 생사 화복(生死 禍福)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인간의 모든 질병, 재난 그리고 죽음과 불행을 연출함은 물론 때로는 복을 가져다준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중계적 역할을 하는 샤먼(무당)이 생기게 되었다. “샤먼은 정령과 직접 교통하는 자로서 영계를 탐지하고 영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 제사 주술 등으로 재액을 없이하며 복을 가져오는 제사이다.”.
류동식 교수는 샤만에게 공통된 기능을 3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사제적 기능이다. 이는 샤만이 사람과 신령 사이에서 행사하는 중개적 역할이다. 샤만은 신령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어주는 능력을 지닌 일종의 중재자이다. 둘째는 예언적 기능이다. 이는 샤만이 점복(占卜)이나 공수라 고하는 신탁으로 신령(神靈)의 뜻이나 앞으로 되어질 길흉을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이다. 셋째는 치료의 기능이다. 이는 질병의 숨은 원인을 알아내고 병마를 쫓아내어 질병을 고쳐주는 치병의 역할이다. 그 외에 예능의 기능이 있다. 이는 샤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신령(神靈)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오락적인 기능이다. 이처럼 샤만은 사제(祭司) 예언(豫言)치료 예능 등의 갖가지 기능을 발휘하는 무사(巫事)의 전문가이다.
반자로프(Banzaroff)에 의하면 퉁그스족은 사제를 “샤먼”이라고 부르는데 그 어원에는 `흥분하는 자‘ `자극하는 자’ `도발하는 자‘ `요동하는 자’ 등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샤머니즘(Shamanism)‘이란 말은 신령에 지펴서 흥분되어 날뛰는 사람 곧 샤먼의 종교라는 뜻이다. 따라서 샤마니즘은 신령과의 접촉을 통하여 재앙을 물리침으로서 인간의 온갖 소망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샤만(Shaman, 巫堂) 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고 있는 원시적인 주술 종교적 현상 이다.그러므로 엘리아데 (M.Eliade)에 의하면 샤머니즘이란 “고대적인 엑스터시 기술의 전문가인 샤먼을 중심으로 한 종교현상이다.” 고 간단하게 정의한다.그러나 좀더 샤마니즘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카사놉비츠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샤머니즘이란 일반적으로 원시적으로 원시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종교 마술적 신앙과 윤리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사회에서는 제사장 역할을 하는 샤먼이 있다, 이것은 특수한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니미즘적 자연관에 기초한 종교적 태도를 말하는데 애니미즘이란, 세상에는 영적 힘을 가진 신들과 귀신들이 있어서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 신들의 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이들을 조정하며, 나아가서 인간과 신들의 세계 사아에 중재자가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영들의 세계와 교통하여 그들을 선한 목적이나 악한 목적으로 조종한다는 것이 일반적 신앙으로, 이것은 마술과 종교의 공통된 전제이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샤머니즘을 논하면 이것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 있는 환상적 마술들의 반종교적이고 반무술적인 과정에 적용된 명칭이다”.
B.한국의 샤머니즘의 역사적 고찰
한국의 샤마니즘은 중국으로부터 육교 불교, 도교가 전래되기 전 한국에 있었던 재래 종교이다. 그러나 샤마니즘은 한국의 고유 종교가 아니다. 사마니즘은 시베리아와 중앙 아시아에서 두드러졌던 종교현상이다.
한국에 있어서는 샤마니즘이 한국의 종교적 바탕을 이루어서 외래 종교를 받아들였으며 그 외래 종교와 혼합을 통해 변형하면서 역사속으로 들어왔다.
한국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 자체가 샤마니즘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볼 때 샤마니즘의 영향은 한국에 있어서 실로 큰 것이며, 타종교와의 혼합 속에서 한국의 운명을 좌우해 왔던 것이다.
샤마니즘은 교리도 윤리도 없으나 분명한 것은 샤머니즘은 민중의 삶의 지탱하는 큰 힘이요 기반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샤마니즘이 민간층에 뿌리 깊이 파고들어 종교사상, 역사, 문학, 음악 등 폭넓은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 어떤 조직화된 사상적 요소나 사회적 요인이 뒷받침해 줄 때는 하나의 문화적 꽃을 피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라의 화랑도, 고려시대의 팔관회가 있다. 이것은 샤마니즘이 유교, 불교, 도교의 외래의 고등 종교의 소개로 화랑도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선사시대에서 붙어 삼국 신라, 고려시대를 거처 이조를 통해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일관해 왔다.
그리고 대중 속에 뿌리 박혀 각 외래종교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 한국 샤머니즘의 특성
한국의 샤머니즘은 불교, 유교, 도교보다 먼저 전래되어 오래된 종교이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져지지 않으나, 5세기경부터 이들 외래 종교들과의 교섭 관계 속에서 전개 되어왔다. 자연히 오랜 세월에 걸친 다른 종교와의 접촉과 교섭은 종교 혼합현상을 빚어내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샤마니즘은 유교, 불교, 도교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데 딘(0.Dean)은 한국 샤머니즘의 특징에 대해 진술한다.
첫째로, 한국의 샤머니즘은 혼합적이라고 지적한다. 둘째로, 한국 사회는 남성 우위의 사회이면서도 여자 무당이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셋째는, 한국의 샤머니즘은 북방과 남방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기후와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북방은 환상적 경험을 강조하는 무당이 발달하고, 반면 남방은 가족의 질병 등 위기를 해결해 주는 ‘당골’이 발전한다. 넷째로, 한국의 샤머니즘은 또한 인간의 불행을 악령이나 악인에게 돌리면서 주술을 통하여 악령을 추방하는 의식이 중요시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샤머니즘은 토착적인 이단 운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 이단들은 전통 문화를 복원하며, 사회에 활력을 주는 것으로 자부한다.]
이와 같은 샤마니즘은 몇 가지의 톡특한 특성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A.일관성
한국의 샤머니즘은 불교나 유교같은 외래종교나 문화가 들어오지 전부터 긴 세월동안 이 땅에 뿌리를 박고 민중들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쳐온 종교 현상이다. 그래서 길고 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민족성, 사고방식, 그리고 신앙관에 영향을 끼쳐왔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샤머니즘은 한국정신사 내지 문화사 속을 일관해서 흘러온 현상이다.
그러므로 샤머니즘에 대한 이해는 한국인들이 정신구조와 문화세계의 심층을 이해함에 있어 기초작업이 될 수 있다.
한국 샤머니즘은 끈질긴 생명력과 탁월한 수용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종래의 어떤 종교도 샤머니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샤머니즘에 흡수되어 변형되었다. 과거에 불교가 그랬고 유교 역시 마차가지였다. 이점은 기독교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지난날의 불교나 유교의 경우보다 더 신속하고 더 깊이 샤머니즘의 영향에 빠져드는 감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기독교는 변형 및 변질되어 복음의 진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무속신앙이 무서운 것은 외래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저항 없이 받아들이다는 점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후에는 상대방을 표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내면으로 숨어드는 특성을 지니다. 말하자면 얼굴 없는 실력자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태조 이성계가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나라를 세웠던 조선 초기에는 불교와 무속신앙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조 오백년 역사에 크게 유행했던 우기제, 상천제 성황제, 등이 모두가 무속신앙에서 나온 행사들이었다. 육교에서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제사제도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해마다. 조상이 죽은 기일에 자손들이 모두 모여 조상의 영에 음식을 제공하고 자손들의 안녕과 복지를 빈다는 것 자체가 샤머니즘의 반영이라 여긴다. 그리고 부모가 주었을 때에 장례식을 성황리에 치르지 않으면 자손들이 해를 받는다는 생각도 샤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죽음이후에도 사자의 영이 계속 생존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은 샤머니즘에서 온 믿음이다. 그래서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워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조상님들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B.지속성
한국 샤머니즘의 두 번 째 특징은 과학문명이 첨단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에도 그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고 여전히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와 신앙 형태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샤머니즘은 백성들의 의식 골수에 스며들어 있다. 때문에 교회가 개혁하고자하는 의자만 있으면 언제든 샤머니즘 정도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샤머니즘은 그렇게 약한 종교 현상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대처해야할 난적이다.
C.기복신앙
본 논문의 중심 주제 중 핵심이 바로 기복신앙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변질되고 왜곡된 신앙으로 등장하고 있는 내용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 기복신앙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릇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복신앙의 흐름이 바로 샤머니즘에서 비롯되었다.
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은 한국교회를 여타 다른 종교들과 유사한 형이하학적인 복을 강조하는 동일한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내세보다는 현세를 하늘의 영광보다는 물질을 보다 강조하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퇴색시키는 암적인 영향을 끼쳤다.
4.샤머니즘적 기복신앙이 끼친 영향
A. 한국인의 심성에 끼친 영향
1)현세성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은 현세의 삶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고 있다. 무당과 굿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신앙은 가난을 물리치고 풍요를 얻기를 바라며 질병을 고치고 재난을 예방하는 등 인간의 여러 가지 현세적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구원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은 '현세성'을 특색으로 한다. 한국교회에 나타나진 문제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모두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며 형이하학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개인 중심의 현세적 축복관에 시달려 왔다. 현세적 축복관이란 삶의 모든 해악적 요소 즉 허약, 병, 가난, 사고, 재난, 실패, 단명 등은 복이 아닌 상태, 저주나 하나님의 벌을 받은 상태, 혹은 극복하거나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고, 반대로 능력, 건강, 부 성공, 명예, 장수 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말한다.
현세적 축복관은 한 편으로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국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 힘없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크고 작은 사고로 고통을 당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실패와 좌절을 겪는 사람들이 ‘찌들린 삶에서의 해방’이라는 희망을 품고 교회를 찾았다. 교회는 예수님만 믿으면 삶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 설교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복음의 능력과 병행하여 현실적, 물질적 축복관으로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현세적 축복관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첫째, 사람들이 현실적, 물질적 복을 염원하고 교회가 이에 발맞추어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려 애쓰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기독교의 지복은 점점 그 위력이 약화되고 등한시되고 무시되었다. 따라서 성도들의 삶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상실하였다. 둘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려 하는 교회의 모습은 한국의 전래 종교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현세적, 물질적 축복관에 도취되어 교회를 찾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목표는 절을 찾고 굿을 하는 사람들의 종교적 목표와 구별하는 것이 점점 어렵게 되었다.
이미 교회안에는 그 누구도 쉽게 제거할 수 없는 기복적 요소가 복음처럼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거의 대부분 기복화 되어져서 성경의 올바른 말씀들이 편협적으로 외곡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비단 전통 사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산업사회인 현대 한국인 역시 이 심성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997년도 종교문제 통계조사 자료의 다음 내용은 주목해 볼만하다. 우선 "극락,천국은 이 세상에 있다"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중 55.4%가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를 믿는 이유는 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66.8%), ② 복을 받기 위해서(12.0%), ③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2.3%)이며, ④ 죽은 다음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12.0%)라고 답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88% 정도가 현세의 심리적, 물질적 문제 해결을 신앙의 동기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구원관은 매우 '현세적'임을 알 수 있다.
2)몰역사성
몰역사성이란 역사의식이 결여되었기에 민족의 장래에 대한 비전이나 정의로운 사화 건설을 위한 사명감 등이 결핍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렇지 않아도 성경적인 역사 의식 아닌 바람직한 윤리관이 부족한 한국교회였는데 60년대를 넘어서서 무속신앙이 한국교회 안으로 깊이 스며들게 되면서 지금의 한국교회는 역사의식과 윤리관이 두드러지게 부족해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는 독직사건이나 부정, 부패 사건에는 예외 없이 장로, 권사들이 끼어들게 되고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저지른 비리나 의혹에 대한 고발과 소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를 밝게 하고 썩지 않게 하는 일이 쓰임 받아야 할 교회가 오히려 어둡게 하고 썩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실로 개탄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교회에 기복신앙의 유입은 한국 기독교를 저질로 만들어버렸다. 그리하여 급기야 교회성장에 치명적인 저해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로부터 조경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성직자들을 백성들이 기피라는 기독교가 되고 있다. 교회가 정신적으로 차원이 높은 복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복을 가르치고 배우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이 자기의 이익을 지켜주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3)비윤리성
비윤리성이란 한국 샤머니즘에는 윤리관이 빈약하다는 점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샤머니즘의 사제격인 무당이나 박수가 굿거리를 할 때 정직을 말하거나 성실한 삶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당들이 이야기는 한결같이 병 낫고, 복 받아 아들 딸 낳고, 물질 축복 받아서 소원 성취하는 일을 말할 따름이다. 그래서 샤머니즘에 고등종교가 지니는 특성이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샤머니즘은 하등종교이거나 원시 종교에 해당한다.
4)치병기복신앙
기복신앙은 샤머니즘의 대표적인 “간판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치병기복신앙은 무당의 대표적 기능으로 치병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아주 높기 때문에 치병의 효험이 없는 무당은 선무당 취급을 당하며 인기가 없다. 치병의 기술이 있어야 신접한 강신무로 쳐준다. 치병을 목적으로 하는 굿에는 병굿, 환자굿, 푸닥거리, 영장 치기, 산 거리, 중천굿, 명두조, 손 풀이, 살풀이굿 등은 다 치병 굿들이다. 이러한 치병 굿들이 교회안에서 유난히 강조되어짐은 성경적인 토대위에서 나타난 것이라 말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샤만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3. 기복신앙의 발전
A..전통적 논거
한국민속에 기복적인 성향이 들어있음을 전통적 논거로 샤머니즘의 영향을 들 수 있다. 한국기독교 기복신앙에 대한 샤머니즘 영향론은 한국인의 원초적 민중 종교심성이 고대로부터 샤머니즘의 영향하에 놓여 있고 이는 한국기독교 신앙의 기복적 성향을 결정짓고 강화시키는 중심적 원인이 되었다.
유동식 교수는 민족사상 저변에 있는 한국인의 심성을 결성하는 것이 샤머니즘이라고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샤머니즘은 한국민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으며 모든 한국의 외래종교는 이 샤머니즘의 영향하에 변질되고 토착화되었다. “샤머니즘은 한국인의 생활과 이에서 형성되는 성격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샤머니즘적 기복신앙 형태는 한반도에서 우리 조상들이 처음 정착할 당시부터 신봉했던 자연종교의 한 형태로서 복과 안녕을 구하는 인간본연의 심리와 연결함으로 유난히도 내우외환이 많았던 한 민족의 심성에 자리잡고서 수많은 고등종교와 사회, 정치적 격변 속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녀온 종교라 하겠다.
B. 한국전쟁
전쟁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생존동기를 그들의 행동과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로 삼도록 했으며 신앙생활에서는 그러한 생존동기를 충족시켜 주는 기독교 신앙의 현세 복락적인 요소들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영향이 연장되는 시대로서의 60년대 이후, 특별히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이때부터 한국기독교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즉 신론, 성령론, 기독론 등에 모두 기복적 의미가 첨부되었다, 더불어 종교의 초월적인 또는 이타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과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 매우 좁아지게 되었다. 이는 다른 측면으로 보면, 참회, 속죄, 심판, 십자가의 고난과 같은 신학적 주제들이 강조되지 못하고 현세적인 것들로 교회가 흘러가게 되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전쟁 중, 그리고 그 이후에 팽만된 한국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한국기독교인들의 기복신앙 확산의 바탕으로 자리잡았으며, 이것이 기독교인의 '아가페적 동기'보다 인간의 욕구와 동경에 호응하는 '에로스적 동기', 곧 기복적 신앙체계를 선호하는 방면으로 촉구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적 체계가 전후(戰後) 확산기에 들어 70년대 절정에 이르고 80년대에는 기복신앙체계로 굳어졌다.
이러한 기복신앙의 정착은 한국교회 부흥의 한 견인차 역할을 하였지만, 기독교 신앙양태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다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C. 1960년 ~1980년대 초반
70년대는 한국 교회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전쟁이후에 토착화되어진 기복적인 성향이 활짝 꽃을 피운 시기라 할 수 있다. 전쟁이후 숱한 기근과 가난으로 인해 천국의 영광보다는 복음 안에서 누리는 기복신앙을 유독히 강조했던 시기였다. 모든 설교의 초점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복을 얻는 수단과 방법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 땅에 숱한 교회가 생겨나지고 복음이 놀랍게 전파되었다. 1884년 알렌과 1885년 언더우드, 아펜셀라 등 외국이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이래 100여년이 지난 현제 한국 교회는 복음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로 기록되어지고 있다. 또한 백황준과 서상륜에 의하여 1884년 의주교회라는 명치으로 한국에 최초로 세워졌던 교회의 공식적 집계만해도 1970년 후반에 20,000개이 상으로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전인구이 25%가 기독교 신자이며 1983년에는 그 한해에만 60만 명이나 되는 시자를 내는 경이적인 전도폭발은 일본 일본교회의 50년 얻은 신자보다 많고 중국 교회의 80년 동안 얻은 신자 수의 2배가되는 참으로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1970, 80년대의 기복신앙화 된 한국 기독교의 일그러진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예수 믿고 복 받으라는 것이다. 5.16 후 '조국근대화'와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한국 사회를 그 쪽으로 몰아가는 동안 한국 기독교계는 거기에 덩달아 외형적 성장과 복 받는 것을 강조하는 쪽으로 한국 교회를 몰아갔다. 이제는 예수 믿는 것을 물질적인 복과 건강의 축복으로 연관시키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기독교인의 기복적인 성향은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 만연되었다.
Ⅲ. 성경적 복의 개념
1.구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A. 성경적인 축복의 어원적 의미
1) ךרב(바랔)
히브리어로 복을 표현할 때 ךרב 이라는 어근을 사용한다 . 이 어근과 그 파생어들은 총 415회 나타난다 . 그리고 대다수는 “축복하다”로 번역되는 Piel(피엘) 어간이며(214회), “축복받은”이라는 뜻의 Qal(칼) 과거 분사는 61회가 나타나고 “무릎을 꿇는다”는 단 3회 나타난다 . 2회는 Qal 형으로, 1회는 Hiphil(힢힐)형으로 나온다 . 이러한 근거에서 어떤 학자들은 ךרב(무릎꿇다)가 הכרב(무릎)으로부터 온 정형동사이며, ךרב(축복하다)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릎을 꿇는 것과 축복을 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
ךרב는 또한 유력한 발언으로 선물을 베푸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한다고 할 때, 그것은 찬양과 감사를 뜻하며 그러한 축복(찬양과 감사)에는 언제나 그것을 야기 시킨 하나님의 어떤 축복의 실현이 선행한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심에 있어서 그는 그것을 그 순간이나 그 후에 베푸신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형태는 다양하며, 그 축복의 방향은 종종 동의어에 의해 지적되기도 한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현세적이며 영적인 복지를 내포한다. 이 말의 의미가 소원을 나타내는 것이든 예언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든 어떤 절들에서는 사람이 자기 동료들을 축복하는 것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ךורב 는 ךרב의 수동태 단수 분사로서 보통 하나님께 적용된다 . 이것은 종종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경우에 사용된다 .“הכרב(무릎)” 이 용어는 복종과 순종, 두려움과 약함, 기도, 어머니의 돌봄 등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 이 용어는 종종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확보된 복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
2) ירשׁא (아수레)
ירשׁא (아수레)는 רשׁא(아사르)라는 동사 “좋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다고 선언하다”는 뜻을 가진 용어에서 왔다 . 이 용어는 세속적인 축복(왕상10:18), 복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사56:2),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호의의 결과인 상태를 가리킨다 .
B. 율법서에서의 축복
모세오경 중에서 특별히 창세기와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신 복의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구약성경 어느 책보다도 "축복하다", "축복"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복에 대한 내용이 두루 퍼져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창세기와 신명기의 신학적인 중심 개념은 축복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아담의 축복, 아브라함과 야곱의 축복, 제사장의 축복, 신명기의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아담의 축복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모든 생물계를 창조하시고 복을 내리셨다(창1:22). 특별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1:28). 그리고 하나님은 제 일곱째 되는 날에 창조행위를 마치시고 안식하신다(창2:3). 이상에서의 복은 생육, 번성, 다스림, 안식의 개념을 담고 있다. 그런데 첫 창조의 복 개념은 신약에까지 소급하여 성경 전체의 사상적 흐름에서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영적인 재창조 사역의 화살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2:1-3절에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복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곧 만민이 메시야로 말미암아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택하심을 받고 그의 후손들도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으며 장차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을 통한 복은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받은 백성들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되는 복을 보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야곱의 축복은 야곱의 축복시(창49:2-27)에는 축복뿐만 아니라 저주도 포함되어 있는게 특징이다. 야곱은 그의 후손을 통해서 복들이 표현되고 있는데, 유다를 통해서(창49:8-12) 땅의 소산의 풍성함과 우양의 번성을 말해주고 있다. 요셉족의 축복(창49:22-26)에서는 소산의 풍성함과 사람과 우양의 번성함과 친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은 현세적, 육적이면서도 영적인 복으로서 하나님으로 선택받은 자가 받는 복으로서 신약의 신령한 복을 암시한다. 야곱과 관계된 복은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복이 강하게 나타난다.
제사장의 축복은 모세 오경에서 볼 때, 제사의식을 행한 후에 회중에게 선포하는 제사장의 축복이 나오는데 그 대표적인 축복이 아론이 제사장의 직분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축복한 선언이다.
그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여기에 나타난 내용 즉, 보호, 은혜, 평강을 명성훈은 삼중적 축복으로 말한다.
위 구절을 살펴볼 때, 중요한 용어인 " 복을 주신다 ", " 지키신다 ", " 은혜를 베푸신다 ", " 평강 주신다 "라는 표현들을 종합해 보면 제사적 축복은 영. 육간의 축복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신명기에 나타난 축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축복이 가족 혹은 집단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신명기에는 국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신명기 7:13, 28:2-6절은 의식주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것이고, 신명기 7:14, 28:12-1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과 윤택한 경제적 생활의 축복을 말한다. 또 신명기 4:40에는 장수의 축복을 말하면서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킬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또 신명기에서 중요한 복중의 하나가 안식의 복인데(신12:1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해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신명기의 축복의 특징은 조건적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관련해서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축복을 순종의 대가로 제시한 까닭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저 주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와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복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순종을 격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가나안에서의 새 생활을 염두에 둔 언약 백성으로서의 당연한 처신에 대한 교훈이며, 강조점은 복 자체보다도 복의 수여자이신 하나님 자신이다. 즉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과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신명기에서의 축복은 물질적인 축복이 겉으로 선명하게 현세적으로 드러남으로 단순히 세속적인 축복만으로 보아서는 않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될 때에 주어지는 축복의 측면을 보아야 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