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대제사장 아론의 옷
출애굽기28장 전장은 제사장의 옷과 복식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죄 지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은 거룩함이 전제 조건으로 그 거룩함을 위해 제사장만이 특별하게 입어야하는 옷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자녀 되는 인간에게도 거룩함을 원하시고 그 거룩함을 전제 조건으로 옷을 정해 놓으시고 입게 하셨던 것이다.
거룩함은 인간이 신께 나아가는 전제 조건부이다.
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인간도 그 자격 면에서 거룩하여야만 만나주시는 것이다(레11:44-45). 이러한 거룩함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옷(형상)을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이 충족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입어지는 대 제사장의 복식 속에 함축하고 있는 깊고 오묘한 진리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회복 되어져야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본래의 형상이 주의 깊게 계시되어 있는 것이다. 모세에게 준 계시에 의해 디자인 된 이 옷은 어떤 세속의 예술적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진리를 담고 나타내시는 image(형상) 디자인이었다.
옷은 만드는 재료만 보더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이 비싼 옷이며 모양 면에서도 최고로 화려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옷이었다(출28장 전장 참조)
이 땅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기준도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최고의 아름다움 진선미, 아름다움의 극치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것이 곧 거룩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이상적으로 인간다워진 이상형의 모델은 지혜의 형상인 거룩함이다. 거룩함과 지혜 이 둘은 같은 것이지만 성경이 이것을 말씀할 때 달리 표현하고 있고 그 해석마저도 다른 것은 사실이나 성경을 깨닫는 수준이 낮아서 명확한 구분조차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혜를 알면 거룩함을 알고 거룩함을 알면 지혜를 안다.
사람이 스스로(단독적) 거룩하여 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계시로 보이신 거룩함의 형상화된 옷을 입는 수준이 충족됐을 때 그의 거룩함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 수준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명시하신 옷의 모양과 식양에 담겨 있는 image 디자인 설계 그림인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림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하나님의 거룩함의 척도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 거룩 없는 자를 결코 사람이라 하신 적이 없고 하나님 형상의 인간됨의 모습은 곧 거룩함이기 때문에 거룩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심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었지 짐승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지만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할 때 짐승 수준으로 전락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본질적 타락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복음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복음으로만 인간을 거룩하게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복음의 핵심적 진리가 제사장이 입는 옷 속 에 형상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허 종 성 목사의 성경보기이다.
제사장의 옷을 그림으로 보이고 있는 형상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이 표현하는 핵심의 진리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느냐 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닮는 수준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최선의 방법론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옷을 입는 것에 중심을 두고 복음을 제시 하는 것이다.
복음이 그 본질 상 개인사 변화에 중심을 말 할 때 예수그리스도 그 본체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질의 형상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은 고후4:4절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복식이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형상화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대 제사장 아론이 입었던 대 제사장의 옷은 에덴동산의 타락한 인간회복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으로 하나님 형상의 상징적인 그림으로 그려 주신 모양이기에 거룩한 것으로 인정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복식은 곧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상징인 것이다.
아론의 대 제사장 직분 도 곧 그리스도를 예표 한 것뿐이다.
진정한 대제사장은 그리스도라고 히5:5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실제적인 대 제사장의 복식을 그림으로나마 그려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출애굽기 28장 전장에 대 제사장의 복식의 설계 도면을 말씀하실 때 정교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하나, 하나의 모든 부분들이 전부 그리스도의 대 제사장 되심을 상징한 것으로 나타내 주신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수많은 제사법의 격식과 절차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대속 하시는 속죄의 제사에 대한 예표의 그림자 이였던 것이다. 그러면 세부적인 옷 모양을 살펴보므로 그리스도의 옷에 대해 알아보자.
대제사장의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옷을 예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입음은 형상의 본질 회복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 제사장의 옷(그림이 안 올라오네요)
모세에게 주신 앞의 그림과 같은 대제사장의 옷을 지어 입히라고 하실 때 첫째 조건은 거룩한 옷을 지어서 둘째는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는 것이었다.
거룩함과 영화와 아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형상인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온전한 구원, 존재 변화의 핵심이 거룩함과 영화와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 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같은 대제사장의 의상을 만드는 사람도 특별히 마음에 지혜 있는 자에게 옷 만드는 일을 맡겼는데 곧 하나님이 친히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이일을 맡겨서 옷을 짓게 하였다. 지혜로운 영으로 채움 받은 자 곧 마음이 지혜 있는 자로 하여금 일을 맡겼다는데 우리는 주목을 하여야 된다.
성도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때에도 반듯이 이렇게 지혜를 주셔서 일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일하는 자는 반듯이 지혜의 영으로 채움 받은 사람이 일할 자격이 있다.
그럼 이 지혜의 영은 무엇인가? (사11:2참고) 여호와의 신 이 되는 성령 받은 사람이 자격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지혜를 얻어야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다.
에봇과, 겉옷, 반포 속옷, 관과, 띠, 판결흉패
이 여섯 가지 복식에 하나를 추가하여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성결 패를 합하여 일곱 가지가 대제사장이 입는 옷(복장)이다(출28:4-5). 복장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다.
가늘게 꼰 베실은 한산 세모시 같은 세마로 된 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들로 옷감을 짜되 공교히 짜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하자 없이 촘촘히 최고급품의 옷감을 짜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최고급 양복감으로 말한다면 순 양모를 사용해서 옷감을 만들되 실 올 수를 최소한의 가늘게 꼰 양모 실로 최대한 촘촘히 짜서 만든 옷감 한 벌에 몇 천 만 원짜리 양복감 보다 고급의 옷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무리 값비싼 옷감을 만들어도 금실로 만들지는 아니하니 말이다.
이처럼 최고급의 옷감을 만들어서 대제사장에게 입히는 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는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그토록 존귀함으로 입히신 것이다.
1,에 봇(출28:6)
에봇을 만들 때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라고 하셨다. 색상 면에서 보면 찬란한 황금색과 청색 자색 홍색이니 백색의 가늘게 꼰 베실 바탕에 4가지 색(금,청,자,홍)의 배합으로 이루어진 옷이었다.
가늘게 꼰 세마 실로 짠 세마포 의 바탕에 4색의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옷이었으니 얼마나 보기에 아름다운 옷이었느냐 말이다.
여기서 실제로 금, 청, 자, 홍, 순백의 세마포로 된 대제사장의 의상 색을 재현해 본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백색의 바탕에 금 청 자 홍 은 오색이 창연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이 옷이 그리스도를 상징한 대제사장의 에봇 이었다.
색의 상징)
색의 상징 해석 이러하다. 금색은 왕권의 상징이고 청색은 천국의 생명을 의미하며 자색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하며 홍색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백색의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성결하심을 의미함인데 이것은 모두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십자가의 고난과 생명의 부활과 영광을 말한다.
⑴ 에봇 위에 매는 띠
에봇 짜는 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짜서 띠를 만들었는데 (출28:8) 아름답게 수놓아 만들라고 하였(출28:39)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붙여서 매라고 했으니 이 띠는 "진리의 허리 띠"(눅12:35과엡6:14) 이다.
눅12장35,37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라고 하였는데 엡6:14절에는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했으며 벧전1:13절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했다.
허리띠라는 것은 원래가 수고와 봉사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되 마음의 허리를 띠라 고 했으며, 벧전5:5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주님 제자들은 언제나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여서 자기의 의지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 지식 근신의 힘의 강함과 절제 있는 근신함으로 깨어 있는 주님 일하는 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옷이라는 것은 띠를 두르지 않으면 아무 볼품이 없으며 옷을 다 입었어도 띠를 두르지 않은 옷 모양은 허술하여 입으나 마나 한 옷이 되고 만다. 우리가 마지막 능력으로 옷을 입어도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근신의 곧 절제의 띠를 두르지 않으면 모든 것은 결국 입은 옷도 벗겨지고 마는 것이다.
왜 능력 받은 일꾼들이 주의일 하다가 넘어지는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근신의 띠를 두르지 않아서 넘어지고 실패자로 끝나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 부흥했다고 다 되는 것인가?
신자들의 숫자가 많이 모였다고 그것이 곧 목회 성공인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은 넘어져서(고전9:27) 피투성이가 된 한국 교회 세계 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옷을 다 입고도 마지막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근신의 띠를 두르지 않은 까닭인 것이다.
근신할 수 있는 목회자만이 항상 깨어 있게 되는 것이다(벧전5:8) 이러한 근신은 곧 겸손이 있어야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겸손의 허리띠는 진리로 사는 자의 모습이다.
⑵ 에봇 어깨에 단 두 개의 큰 보석 호마노
출28:9-14절 에 보면 호마노라는 큰 보석 두 개를 에봇 어깨에, 대제사장의 두 어깨에 매어 달게 하였다. 이 호마노라는 보석은 욥28:16절에 수마노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지혜에 비교하여 말하고 있다. 이 보석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간에 아론의 양어깨에 매달은 이 보석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한쪽에 6명씩의 이름을 새겨서 금테에 물려서 다는데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아 그들의 이름을 아론의 양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을 놓고 김희보 박사는 그의 책 (구약신학 논고 1975년초판 예수교 문서 선교회 간)에서 첫째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 한다, 라고 했으며 둘째로 는 구원의 확실성을 말한다고 하였다. 대제사장 아론은 오실 멧시야의 모형이므로 모든 답을 예수 그리스도 에게 서 찾아야 하는데 어깨에 메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어깨가 말하는 상징성에서 진리의 참뜻을 찾아야 될 것이다.
사람의 어깨가 말하는 것의 의미는 확실한 책임을 말하는 것이므로 곧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사명을 말할 때 너의 어깨가 무겁구나! 그렇게 말한다.
이는 오시는 메시아 그가 구약에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돼 나타난 이스라엘의 구속사의 결말을 확실하게 양어깨에 메고 이스라엘 12 지파의 구원을 확실하게 책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의 사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확실하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양어깨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사야9: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 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라는 말씀에서 그 어깨에 “정사” 을 메었다고 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구속사의 “정사” 을 다 이루실 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성경 한 구절을 살펴보자 이사야 22:22절이다. “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 가없으리라 라고 하였다.(계1:18,3:7 참고)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다윗 집의 열쇠" 가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분의 사명이 그의 양어깨에 있는데 다윗 집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론의 양어깨에 있는 이스라엘의 12지 파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 보석은 그냥 기념 보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의 확실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 다윗의 열쇠는 비밀에 속한 것인 동시에 죽이고 살리시는 것이 다윗(왕권)의 열쇠에 있다는 것인데 왕권, 즉 통치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메시아의 왕권 곧 통치권은 세상 권력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전우주적인 말씀(우주 원리)의 통치하시는 전우주적 정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어깨에 메었다는 상징인데 이러한 주님의 정사(政事)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비밀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엡3:10절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라고 하였는데 여기 말하는 “정사”가 그의 “어깨에 메어 있는 정사”(사6:9) 이다.
이 정사는 하늘의 신령한 통치 수단의 하나님의 신령한 시스템의 체계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 정사와 권세들에게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통치가 교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늘에 속한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이스라엘의 죽고 사는 정사의 통치 권세는 그리스도의 어깨에 있는 비밀의 열쇠로 풀어진다는 말씀인 것이다. 열쇠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비밀한 것을 여는 key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16:16절에 “ 주는 그리스도 시다”, 라는 바른 신앙고백 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했던 것이다. (마16:18절)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멘 정사의 열쇠를 주신 것이다. (천주교회와 개신교의 갈림길)
그러니까 아론의 두 어깨에 있는 이스라엘의 12지 파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 보석 호마노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것이다.
어떻게 그런가? 대제사장 아론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 천국 문을 열고 닫는 비밀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고 계시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분,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생마다 수고의 무거운 죄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모질고 고된 수고의 삶을 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된 소리를 듣고 그분 앞에 가기만 하면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하시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멍에가 곧 다윗 집의 열쇠요 하나님 나라 천국 문을 여는 온유와 겸손의 그리스도의 비밀의 열쇠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 겸손인데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이 내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로만(골1:27)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비밀을 추적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이 성경의 모든 핵심을 푸는 첩경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초등 학문을 버리는 길이다.
2, 겉 옷
겉옷에 대해서는 출28:31절에 에봇의 받침이 되는 긴 옷을 겉옷이라고 했다. 겉옷은 전부 청색으로 만들었는데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을 대표하여 상징하는 옷이다.
엘리야의 승천 당시(왕하2:13-14) 엘리사 에게 자기의 겉옷을 내려 줌으로 자기의 뒤를 이은 후계 선지자 직을 이어가게 하였는데 이 겉옷은 제사장 직분을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어야 하는 의의 겉옷이며 이 겉옷을 입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변화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바이다.
이사야61: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 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이 하셨음이라, 라고 하였다.
구원 곧 변화될 자의 의(義)를 위해 입는 의의 겉옷이 곧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인되는 것은 빌3:9절 말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다, 라고 하였으므로 이 겉옷은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갈3:27절)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우리가 제사장 의 옷을 입는 것이다.
제사장은 곧 그리스도가 대제사장 되시니(히5:5절), 이러한 의의 겉옷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만인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엡3:12,벧전2:9).
⒜ 겉옷의 색깔
겉옷의 색이 청색인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과 함께 푸른색이 주는 생명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본질 되심을 말하는 것이다.
⒝ 겉옷에 달린 석류와 금방울
출28:33-34 그 옷 가장 자리로 돌아가면서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절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 하리라, 라고 하신 이 말씀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고 나올 때 금방울 소리가 나야 죽지 않는다했으니 이 금방울 소리는 살아 있다는 생명의 소리인 동시에 제사장이 성소에 드나들며 하나님에게 수종 드는 모든 움직임 그 자체는 생명을 위한 드나듦 그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제사장의 금방울 소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오는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석류는 목마른 영혼에게 소망을 주는 입안에 생수 침이 솟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광야의 한 떨기 석류 열매는 목마른 영혼의 목구멍에 상큼한 침샘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 할 때 이는 땅에 진리를 찾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에게 진정한 진리에 대한소망을 주는 생명의 침샘이 속구 치게 하는 것은 석류 열매와 금방울소리(불변의 소리)로 상징되는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겉옷 자락(거룩한 행실)에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인류에게 소망을 주는 영원불변하는 생명의 소식은 오직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자락(거룩한 행위)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목마르고 주린 영혼에게 군침이 돌게 하며 갈급한 영혼의 참된 양식의 생명의(복음) 소리가 제사장의 옷자락에 있는 것이다. 겉옷은 속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겉으로 나타남의 행위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섬기러 성소에 들어오고 나갈 때 이 금방울 소리가 들리므로 성소밖에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제사장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명의 교감을 알리는 금방울 소리는 인류의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오직 모든 인간의 최대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부활생명이 유지된다는 절대적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두 번 째 제사장의 에봇 겉옷자락에서 나는 금방울 소리는 모든 제사행위의 최종 마무리를 위해 언제나 성소 밖에서 목마르고 애타게 고대하고 서 있는 백성들의 귓전에 명랑한 소리로 들려옴으로 자신들의 제사가 성공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그 모든 속죄를 받아 주셨다는 용서와 사랑의 기쁜 교통을 알리는 생명 은총의 소리였던 것이다.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의 중보 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영원한 복음의 상징을 이 같은 제사장의 생명의 금방울 소리로 상징된다.
오늘날도 소명을 다하는 목회자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으로 금같이 영원히 불변하는 소중한 생명의 소리를 은은히 들려주므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호4:6 말2:7) 지식을 버리는 자는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으며 제사장의 입에는 항상 학자의 입같이 제자의 입같이 되어서 사50:4절과 잠18:4절처럼 영원히 불변하는 하나님 나라 지식을 말하는 자이어야 된다.
목자의 자격은 렘3:15절처럼 지식과 명철 있는 자라야 한다.
이것만이 금방울 소리 같은 생명의 소리를 증거 할 수 있는 증인이 되게 할 것이다.
잠16:16절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가!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리라.
하였으니 문제는 그리스도의 겉옷을 상징하는 제사장의 에봇 자락에 석류와 금방울을 달게 한 것이 우리의 현세적 삶에 어떤 적용을 함으로 유익을 얻겠냐는 것이다.
이 옷으로 말씀하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의 옷을 입음으로만 겉으로 나타나는 한인간의 인격까지도 그리스의 인격을 나타낸다는 것이니 존재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시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 사람의 행동까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삶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참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옷 입는 만인 제사장의 모든 일상의 행동은 금방울 소리로 비유된 영원불변의 생명의 소리와 석류로 비유된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이다.
바꿔 말해 만인 제사장의 삶은 생명의 복음과 성령의 생수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씀이시다.
3, 반포 속 옷(출28:39-41,레16:4)
계시록19:8절의 세마포다.
이 세마포 가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했으니 벧전1:15절의 거룩함이다. 거룩함은 벧전1:2절 성령 받아야 거룩함이 되는 것이다. 속옷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비밀에 속한 것으로 이 반포 속옷을 입음으로 아론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는 결정적인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출28:40-41참고하기 바람)
그리스도로 겉옷을 입는 단계는 속옷을 입는 과정을 거치므로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해 지는 겉옷을 입게 된다는 것이니 속사람의 변화로 인격화됨이다. 이 속옷이 주는 의미는 믿음의 비밀에 속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분들에게는 어려운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안 뒤에 믿음의 비밀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골1:27,골2:2,딤전3:9) 이 속옷은 거룩함을 의미하는바 속사람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인친 상태에서 성령 충만한 삶에 겉으로 나타나지는 행실을 할 때에 사람은 누구나 가증한 측면이 있어서 사람 앞에서는 위선을 하게 돼지만 속옷을 입은 사람은 절대로 위선을 할 수가 없는 정직함으로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빛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 없는 속사람 내면의 진실한 인격의 정직은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으나 예수로 성령의 속옷을 입은 사람은 성령님이 늘 떠나지 않으시고 양심 속에서 감찰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거짓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의 명예나 돈보다도 성신이 동행하시는 것을 사모함이 더 크기 때문에 성령님의 소멸을 제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엡4:30,살전5:19)
누가 보지 않는다고 양심은 밖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양심을 속이고 잠시 동안은 위선을 부릴 수 있을지 모르나 성령님은 속일수가 없는 것이다.
위선자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계실 수가 없어 떠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겉옷이면 예수님의 속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속옷인 것이다. 요19:24절 속옷을 찢지 않고 한사람이 가지고 간 것은 성령으로 상징된 속옷은 찢지 못하는 까닭은 성령은 절대로 훼방 받으실 수 없는 성부 하나님의 본체인 본성의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 죄는 영원히 저주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마12:31-32)
다시 말해 손상할 수가 없는 훼방 받지 않는 인격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겉옷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찢었어도 속옷 부분인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절대로 손상할 수가 없으니 속옷은 찢지 못한 것이다.
마10:28절에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레16:4절에 정확하게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는다고 했으며, [세마포 고의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여기서 물로 씻는 것이 세례의 단계이다.
세례는 흔히 교회 한 일년 정도 다니면 소위 학습 세례 문답하고 주는 그런 물세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요한의 세례(행18:25,19:4) 회개케 하기 위한(마3:11)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례는 롬6:3절4절과 막16:16절의 옛사람이 다 죽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피조물 (고후5:17)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세례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례를 다 받은 자에게 믿음의 비밀 단계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단계에서는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그냥 이대로 계속 읽으시다 보면 믿음의 비밀까지 체험은 몰라도 깨닫는 단계는 본서만 다 읽으신 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밀과 믿음의 비밀 사이에 경건의 비밀이 있다(딤전3:16). 그러므로 경건의 비밀을 깨달아 체험이 함께 이루어져 가는 단계에서 믿음의 비밀은 깨달아지고 체험을 하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부분을 세세하고 정밀하게 성경에 있는 그대로 풀어 주는 그 어떤 인물이 없었던 것이 그 동안 평생의 안타까움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엄청난 소원이 있었는데 이것이 보잘것없는 자에게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며 나는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아버지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성경에 는 다섯 가지 비밀이 있는데 이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잡을 때 시내에서 물매 돌 다섯을 집어 들고 그 중 하나를 던져서 골리앗을 잡은 것과 같은 상징을 갖는 구약의 그림 하나를 그려준 사건에서 말해준 비밀인 것이다(삼상17:40-49)
이것이 결국은 다 하나 이지만 깨닫는 것은 한 단계씩 깨닫고 체험이 일어나야 되고 삶 속에 실제화 되어야 하는 생명의 양식된 말씀의 비밀인 것이다.
예수님의 겉옷은 찢어서 나눠도 속옷은 절대로 나누지 못하며 (요19:23과 시22:18절참고) 손상되지 않고 훼방 받지 않는 마10:28절 마12:31-32 의 말씀과 같이 성령 받은 속사람의 영과 성령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속옷은 물로 세례를 다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갈3:27) 경건의 길과 명철의 길을 계속 가면서 성령으로 세례 받아서 능력을 덧입은 뒤에 세미 한 하나님의 음성을 다 들으며 (왕상19:12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되어 입는 세마포 옷과 같은 구원의 완성 단계에 입는 성화의 옷 입음이다.(계19:8절)
4, 판결 胸 牌(흉패)
흉패는 출28:15-30절까지 길게 설명되어 있는 아론의 가슴에다는 것으로 아론이 겉옷과 에봇을 입고 그 위에 큰 패를 달아 붙이고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이 흉패에 담긴 진리를 찾아 알아보자.
⑴ 흉(가슴)패의 모양
이것 역시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드는데 장과 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 모 반듯하게 직사각형으로 만들되 그 안에는 이스라엘의 12지 파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석 한 개마다 새겨 넣어서 금테에 물려서 붙이는데 가로로 한 줄에 3개씩 세로로 네 줄로 3 곱하기 4 = 12 보석 이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의 비밀에 속한 것으로 (삼) 곱하기 (사)는 십이 지파를 말하는 상징적 천국의 구원의 숫자이다.
3 더하기 4는 제7 안식이고 하늘과 땅의 통일이고 그래서 제7은 완전수이다.
3곱하기 4는 12 천국의 무한 지수이지만 필자는 수학자는 아니지만 땅에서 4 라는 수는 가장 안정성이 확보되는 기하학적 수의 체계인 것이 분명하고, 3이 하늘의 완전한 수라면 4는 땅을 하늘에 접합시키는 평안의 안전 수이다.
그러므로 4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안정성을 주는 기하학적 체계로서 인간은 4지(팔다리)이고 동물 세계의 고등 성은 네발 달린 놈이다.
건축의 기초 단위가 4개의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다.
자동차가 네 바퀴인 것도 가장 안전한 구도이기 때문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물론 그 이상의 큰 화물차도 있다.
4 라는 수는 땅의 인간에게 안정성을 주는 수의 체계인 동시에 땅에 속한 인간이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죽음의 수치이다.
죽고자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하는 자는 죽어야 사는 죽음과 평안의 안식을 접목시키는 가장 미묘한 이 땅에서의 비밀의 수치가 4(four)라는 수이다.
이처럼 하늘의 성삼위 하나님의 3의수와 땅의 수 4가 합쳐지면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루어져 하늘과 땅 (천국과 인간 세계 즉 영계와 육계)이 통일하는 것이 되고 곱하면 믿음의 비밀인 무한 수 천국의 보좌가 열린다(계4:4,계21:12)
이와 같은 수의 체계 속에 그리스도의 비밀이 숨어 있다.
한국 사람들만 정서적으로 죽을 사 라고 싫어 하지만 4의 비밀은 죽음 뒤에 오는 생명의 비밀이 있다.
지금까지 판결 흉패가 직사각의 구도로 된 것의 비밀 일부를 말했거니와 12지 파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 아론의 가슴에 있게 한 것은 이것도 히10:1절의 말씀처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주님의 가슴 안에 있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엡1:4-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12지 파의 이름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을 모든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진리의 말씀(엡1:4-5절)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슴에 붙인 흉패의 의미는 엡6:14절에 있는 대로 “의의 흉배를 붙이고” 라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이 세계 모든 거민 곧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의 아들들을 삼는 비밀이 이루어지는 “의인” 됨의 비밀의 상징을 그려 주신 것이 [사각]의 모양이다.
흉패의 모양이 정사각형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삶은 거짓이 없는 “정직” 함으로 살아야 된다는 뜻이다(잠16:17)
어깨가 능력과 책임을 상징한다면, 가슴은 뜨거우면서 냉철한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사랑을 상징한다(계3:15)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원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마침이요 롬10:4절, 이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가슴 안에 있는 십자가의 사랑의 구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말씀하는 것이다.
엡1:7절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죄 사함 받는 자 되고 이렇게 구원받는 모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의 [보배들]고후4:7,이라는 점에서 보석 위에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⑵ 흉패 안에 넣는 우림과 둠밈(출28:30)
아론의 가슴에 있는 흉패를 판결 흉패라고 한 것은 스바냐3:5절 말씀에서 참뜻을 깨달아야 될 것이다 “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 한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아침마다 이른 새벽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자신의 수치를 알지 못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의 성결을 지키지 못하고 의와 공평의 길을 떠나 살아간다는 것이다.
롬2:6절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살후1:5-9절)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잠28:5와 단12:10절).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되 의와 공평을 기준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도 의와 공평을 기뻐하신다고 했다.(잠21:3절)
의와 공평이 곧 성도의 영원한 진리의 길(잠2:8절)이므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공평을 모르는 자는 성도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어 살아간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정직한 자를 위해 완전한 지혜의 길을 여시고(미6:8절잠2:7절)) 의와 공평이 있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장애물이 없는 시119:165절 갈6:2절 악에서 떠난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는 정직자의 대로를 주시는 것이다(잠16:17절).
악에서 떠나는 것이(명철,욥28:28) 의와 공평의 길이며 명철의 길이라 그러므로 명철의 길을 떠난 자는 악을 버리지 못하므로 사망의 회중에 거한다고 했다 (잠21:16절).
우림은 “빛”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보석이었는데 어원은 히브리말로 [빛을 발한다] [빛을 밝힌다]give light 의뜻이다.
잠13:9절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라고 했고 또한 잠15:1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런데 잠20:27절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5: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으므로 신자가 세상에 빛으로 존재하려면 자기 영혼부터 살려서 등불이 켜져야 한다. 산자의 영혼의 등불 켜진 자가 곧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며 주님 부탁하신 대로 눅12:35절 허리에는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고 하신 말씀처럼 지혜 자가 되어 그 얼굴에 광채가 나는 가운데 얼굴에 사나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관상이 바뀐 전8:1절 같은 인물이 될 것이다.
둠밈은 그 어원이 [완전하다] {바르다} {강건하다} [평안하다]의 뜻이다. <김희보박사저 구약신학 논고 p.159>
신33:8절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이 언제나 둠밈과 우림으로 상징되는 모든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지키는 자의 삶이 완전한데 거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진리인 것이다.
시4편3절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고 했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입고” 택함을 “입는” 것을 상징한 우림과 둠밈의 비밀이다. 실제로 이 우림과 둠밈은 빛을 상징하고 완전을 상징한 성도의 삶의 판결 기준이 우림에 있고 둠밈에 있었던 것은 이 역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우리의 구원이 완전해 지는 것이 벧후1:10-11절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전한 구원은 부르심과 택함을 입는 것으로 완성된다.
민27:21절 제사장 엘르아살은 아론의 셋째 아들로 아론의 뒤를 이은 대제사장 직을 감당함에 있어서 백성들을 판결 할 때에 우림의 판결 법으로 여호와 앞에 묻는다고 되어 있다.
제사장이 백성을 재판 할 때에 우림으로 상징된 완전함으로 의와 공평의 법으로 판결을 해야 된다고 하신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판결 법이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는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이 왕이 되고 왕상3:4절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왕상3:9절에 구한 것이 지혜였다.
이 지혜는 완전한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공의대로 백성들을 재판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의 바른 해석은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지혜와 그리스도가 영광의 광채요 고후4:4절 요8:12절.요12:46절 세상의 완전한 빛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판결 흉패는 제일 먼저 장차 오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의 12지 파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뜻이며(엡1:4-5절) 두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빛 (거룩한 삶의 열매)로 완전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케 하러(마5:17절) 오셨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완성인 마침이 되신 것이다(롬10:4).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한 빛이 되라는 것이다.
완전한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완전한 빛이시다.
고후4:4절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하셨는데 곧 영광의 빛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되셔서 인간 세상에 어둠을 밝히시는 빛으로 오신 것이다. “요1:4절 사람들의 빛” “요1: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1: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들 가운데 거하시는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 이라고 했다. 이 말씀의 뜻은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비취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광채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후2:14절은 우리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 드리는 것으로 빛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 삶속에 오시게 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서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먼저는 영광을 얻는 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그리고 고전10:31은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광을 먼저 얻은 자가 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영광을 얻지 못하고는 영광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든 아담의 후손은 결코 의인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성경은 마5:48절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그랬고 잠20:7절은 완전히 행하는 것이 의인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후손은 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히 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법을 주신 것이다(갈6: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운 교회 안에서 먼저 행하신다. (벧전4:17).
판결의 기준은 우림과 둠밈의 법칙이다.
(마16:27절). 우리의 삶의 기준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것이 어두움이었느냐 빛이었느냐 곧 빛은 행실이로되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면서 베푼 배려이다.
우리의 행실이 벧전1:15절대로 거룩한 행실로 의와 공평이 있는 완전한 것이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의 대상인가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판결 흉패로 이루어진다.
히5:5절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다 그는 우리의 선악 간에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심판 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언제나 성결한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서 또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그것이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 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완전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론의 가슴 안에 있는 곧 판결 흉패 속에 있는 우림과 둠밈(빛과 완전)의 판결 법의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완전함과 빛 된 삶의 능력은 경건의 능력으로(딤후3:5) 사는 것을 말함이다(신33:8). 고로 경건의 비밀(딤전3:16)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우림과 둠밈의 판결을 면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하는 합격품으로 사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로 살아야 항상 의롭다함을 얻어서 완전한 빛으로 살 것이다.
의인의 빛은 항상 환하게 빛나는 것이며 의인이 등불을 켜는 것이다. 의인의 등불은 켜지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는 것이다(잠13:9)
5, 여호와께 성결(출28:36-38)
인간은 인격의 불결함 밖에 없다.
불결한 죄인 된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결 법으로 죄를 깨끗이 씻어야만 깨끗해지고 거룩해진 여호와의 성결로 하나님 나라 천국의 존재로 변화를 입는 것이다.
출28:39절에 가늘게 꼰 베실로 짜는 대제사장의 복식 용품 중에 속옷과 함께 관(모자)이 있고 띠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아론의 거룩함을 이루는 대표적인 복장 용품들이다.
머리에 쓰는 관 모 이것은 첫째,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 성도의 승리의 면류관을 상징하여 구원의 투구를 말하는 것과 같다.
엡6:17절. 둘째로는 이 관모를 쓰므로 고후10:5-6절과 같이 인간의 어떤 이론도 다 배격 하고 생각까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신의 의지로 사는 사람이 아닌 범사를 주께만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 받으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명령만으로 삶의 법칙을 삼아서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불순종한 때문인데 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되느냐하면 인간의 분리의식으로 말미암은 독립된 존재의식 때문이다.
타락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 그것은 사탄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 불신은 분리의식 사상 곧 이론 때문이다.
삼장 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어 놓은 굴레처럼 인간은 사탄이 존재 한다면 사탄의 이론으로 간주 할 수밖에 없는 헛된 사상에 사로잡혀서 생지옥 같은 자기창조의 인생을 지금까지 속아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망의 이론이 나오는 기관이 바로 인간의 두뇌 머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쓰신 가시 면류관이 주는 상징적 진리는 곧 인간이 자기의 미련한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까닭으로 인간의 모든 이론이 나오는 기관인 머리에 가시면류관 을 쓰시므로 모든 인간들에게 너희 인생들이 망하는 원인이 생각의 결과로 망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렘6:19절).
인간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모든 이론은 자신을 찌르는 고통과 괴로움의 수고의 무거운 죄 짐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상징, 이것이 예수님의 쓰셨던 가시 면류관 인 것이다.
이제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날마다 자기 자신의 이론과 생각이 나오는 마음을 주관하는 머리통을 씻어 내므로 주님의 가시면류관을 벗겨 드리듯이 가시 면류관 같은 생각과 이론을 벗는 회개를 계속해야 되는 것이다(고후10:5-6).
우리는 이론 때문에 망하고 생각의 결과로 재앙을 받는 것이다(렘6:19). 인간의 타락한 모든 이론이 인간 스스로를 가시 면류관처럼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줄을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의 투구는 왜 쓰는가?
우리의 구원을 훼방하는 어떠한 세상 이론이나 사탄 사상의 총알이나 불화살로부터 머리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으로만 생각을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는 어떠한 세상적 이론도 없는 바른 가치관으로 변화를 입고 사는 구원의 투구를 쓰게 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기 이론 생각이 곧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면류관 인 것처럼 이것을 벗어 던져야 거룩한 관모를 쓰는 자가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옷을 입는데 겉옷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는 의의 겉옷을 상징하고(사61:10) 속옷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를 얻은 의인이 더욱 성화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성결한 세마포 옷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점은 레16:4절과 계19:8절이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회개하면 먼저 일차적으로 의인의 단계에 이르지만 이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점진적 성화를 향해 날마다의 삶에 성결을 위한 회개를 계속함으로 인간 속에 있는 모든 죄를 더욱 말끔히 씻는 정결함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공로 없이 얻는 의를 얻음도 구원의 시작점인 출발선이고 골인 지점은 세마포 속옷을 입음으로 거룩함의 단계까지 가야 되는 변화의 길인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경건의 비밀로” 되는 것이다.
옛 사람의 습관 곧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으로 나타나는 죄 된 행동 즉 롬6장7장에 나오는 나는 원치 않는데 계속 튀어나오는 육적인데 얽매이게 하는 육신의 소욕(성령을 거스르는 행동 하나님과 원수 된 것 롬8:5절 이하 갈5:16-17) 까지 다 없애는 것을 말함이다.
속옷을 입는 과정 뒤에 겉옷을 입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제사장이 관모을 쓰는 것이 속옷을 입는 것과 함께 이루는 거룩함의 단계의 구원의 완성을 말함이며 [경건의 비밀]딤전3:16을 이루는 단계이다. 신약 성경 엡6:17절에는 구원의 투구를 쓴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관모 전면 이마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붙이는데 여기에는 반듯이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새겨 넣게 했다. (출28:36절)
하나님은 왜 이것이 대제사장 아론의 관을 쓴 이마 한복판 정면에 있게 하였는가? 출28:38절의 말씀은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성물에 죄 건을 담당하는 것은 제사장의 이마에 있는 성결 패로 된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사람의 이마는 그의 인격의 총 사령탑의 표상이라 이마는 힘의 상징이며 모든 인간 생명의 감각 기관을 대표하는 表頭(표두) 이고 그의 전인격의 품격을 말하는 곳이다.
약3:17절에 위로 부터난 지혜의 첫 번째 모습은 성결이다.
머리의 전면 표상이 앞이마인데 그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생각 곧 지혜가 나온다. 마음이 성결하고 지혜로운 자의 머리에서 지혜가 반짝이며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지혜” 라는 것이며 사람의 인격과 생명은 지혜에서 난 성결함이다. 이러한 성결함이 제사장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러한 제사장이라야 모든 백성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성물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일반 백성들의 성물은 이러한 제사장의 성결함으로 죄건 을 담당하였을 때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물이라도 하나님께는 성결함이 첫째 조건이다. 그래서 성물을 드림에도 죄를 없애는 성결함을 위해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성물을 받으신다는 조건부로 대제사장의 이마 전면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달았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을 그렇게 받으신다면 그 예물을 드리는 사람은 정작 어떠해야 될 것인가! 두말할 것 없이 거룩한 사람의 손에 예물만을 받으신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빌3:3절은 우리의 봉사도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령님이 거룩이시니 거룩(성령) 없는 봉사 거룩(성령) 없는 예물 하나님이 받으신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무리 교인들이 물질을 받쳐서 많은 일을 하여도 거룩 없는 성물은 받으신 적이 없으니 피땀 흘려서 교회에 봉사하고 거액의 헌금을 하고도 자칫 하면 자기 이름 내는 것으로 그치고 주님은 한 푼도 받으심이 없고 그렇게 부르짖는 축복은 내려오지 않고 낙심한 신자들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가 교회의 부흥이 쇠퇴하는데 하나의 원인이다.
의인의 자리 겉옷을 입고 더욱 점진적으로 구원을 완성하는 성화를 위한 속옷 세마포를 입어서 거룩한 승리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관모를 쓰듯이 확실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전신 갑주를 입고 악의 권세를 향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나님 나라 천국의 현재 진행형을 이룬다.
6, 더러워진 대제사장의 옷(슥3:3-5)
앞에서 이야기한 대제사장의 옷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식양을 따라 만들어 입은 거룩한 옷이었어도 이것을 입는 것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성결함이 부족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인간의 문제다.
목사가 예배 시간에 입은 성의 하나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실체를 입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옷으로 덮는다고 인간의 죄 성이 다 가려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마치 아담이 죄를 짓고 자기 딴에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어보고 혹은 수풀 속에 숨어도 보았지만 그것은 허사였던 것처럼 인간이 아무리 성결하여 지기 위하여 입으라고 하신 대제사장의 옷이었으나 그것으로 속사람이 성결하여 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아무리 성결하여 지기 위해서 행동을 삼가고 노력을 기울여서 옷을 입고 겉 폼을 잡듯이 애써 봐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럽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죄 사함 받는 전적인 은혜를 평생토록 떠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어 경건의 비밀을 통과하여 거룩한 자녀의 자리에 거해야 인정하시는 성결인 것이다
슥3:3절의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스가랴서는 종말론적인 선지서이다. 스가랴3:1절서부터 보면 스가랴가 본 이상 중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이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고, 입고 있던 제사장의 옷이 더러우니 사단이 대제사장을 대적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사자들을 명하여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옷을 벗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그것을 보고 있던 스가랴가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먼저 언급돼야 할 것은 출28장에 명하신대로 제사장이 옷을 입었다고 제사장이 그러한 율법의 옷을 입은 것으로 완전해 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 일 것이다.
즉 다시 말해 구약의 율법이 명한대로 제사장이 거룩한 성의를 아무리 입었어도 하나님 앞에는 더러운 죄인일 뿐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3:20)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구원의 완성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성결함을 위해 노력했어도 하늘에서 죄를 사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아니 된다는 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율법으로 입어지는 제사장의 옷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거룩한 새 피조물로 창조된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 슥3장의 그리스도의 옷을 예표한 약속인 것이다.
둘째로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 곁에는 항상 송사를 일삼는 사단도 있고 그를 돕는 천사도 있는데 (참고성구 욥1:6, 히1:14절) 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해 서 있지만 사단은 항상 우리를 송사 하는 고소자로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자가 있을 시는 언제나 사단은 하나님을 향하여 송사 하는 말로 서슴치 않고 하나님께 고소장을 올린다.
이때에 하나님의 공의는 죄지은 자를 그대로 방치 하실 수가 없는 것이 영계의 명확한 원리인 것이다.
각설하고 왜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입은 옷까지도 더럽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손수 만든 天衣 無縫(천의무봉)의 옷을 입히시느냐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인 여호수아가 일차적으로 입었던 옷도 사실은 하나님이 명하여 지어 입으라고 한 식양대로 디자인해서 입은 옷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는 여호수아의 옷은 벗겨지고 뒤에 죄를 제하여 버리신 다음에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는 것에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주목을 해야 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옛 사람의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님 나라 천국의 존재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벗어야 할 옛 사람의 옷은 죄로 물든 옷이기 때문에 갈아입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다는 것은 죄를 제하여 벗는 것을 말함이다.
이렇게 될 때에 사단은 우리에게서 물러가고 더 이상 대적하는 송사의 말을 하나님 앞에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단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 닦아서 않 되는 절대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만 인류의 사악함을 고치는 것이다 심지어 조상이 죄짓고 죽어 없어진 죄 짐까지 자손이 짊어졌어도(렘애5:7) 그리스도 피로 회개만 하면용서하시고 고친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인것이다(벧전1:18-19).
출애굽기28장 전장은 제사장의 옷과 복식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죄 지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은 거룩함이 전제 조건으로 그 거룩함을 위해 제사장만이 특별하게 입어야하는 옷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자녀 되는 인간에게도 거룩함을 원하시고 그 거룩함을 전제 조건으로 옷을 정해 놓으시고 입게 하셨던 것이다.
거룩함은 인간이 신께 나아가는 전제 조건부이다.
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인간도 그 자격 면에서 거룩하여야만 만나주시는 것이다(레11:44-45). 이러한 거룩함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옷(형상)을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이 충족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입어지는 대 제사장의 복식 속에 함축하고 있는 깊고 오묘한 진리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회복 되어져야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본래의 형상이 주의 깊게 계시되어 있는 것이다. 모세에게 준 계시에 의해 디자인 된 이 옷은 어떤 세속의 예술적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진리를 담고 나타내시는 image(형상) 디자인이었다.
옷은 만드는 재료만 보더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이 비싼 옷이며 모양 면에서도 최고로 화려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옷이었다(출28장 전장 참조)
이 땅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기준도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최고의 아름다움 진선미, 아름다움의 극치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것이 곧 거룩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이상적으로 인간다워진 이상형의 모델은 지혜의 형상인 거룩함이다. 거룩함과 지혜 이 둘은 같은 것이지만 성경이 이것을 말씀할 때 달리 표현하고 있고 그 해석마저도 다른 것은 사실이나 성경을 깨닫는 수준이 낮아서 명확한 구분조차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혜를 알면 거룩함을 알고 거룩함을 알면 지혜를 안다.
사람이 스스로(단독적) 거룩하여 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계시로 보이신 거룩함의 형상화된 옷을 입는 수준이 충족됐을 때 그의 거룩함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 수준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명시하신 옷의 모양과 식양에 담겨 있는 image 디자인 설계 그림인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림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하나님의 거룩함의 척도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 거룩 없는 자를 결코 사람이라 하신 적이 없고 하나님 형상의 인간됨의 모습은 곧 거룩함이기 때문에 거룩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심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었지 짐승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지만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할 때 짐승 수준으로 전락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본질적 타락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복음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복음으로만 인간을 거룩하게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복음의 핵심적 진리가 제사장이 입는 옷 속 에 형상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허 종 성 목사의 성경보기이다.
제사장의 옷을 그림으로 보이고 있는 형상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 복음이 표현하는 핵심의 진리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느냐 하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닮는 수준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최선의 방법론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옷을 입는 것에 중심을 두고 복음을 제시 하는 것이다.
복음이 그 본질 상 개인사 변화에 중심을 말 할 때 예수그리스도 그 본체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질의 형상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은 고후4:4절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복식이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화롭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형상화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대 제사장 아론이 입었던 대 제사장의 옷은 에덴동산의 타락한 인간회복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으로 하나님 형상의 상징적인 그림으로 그려 주신 모양이기에 거룩한 것으로 인정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복식은 곧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상징인 것이다.
아론의 대 제사장 직분 도 곧 그리스도를 예표 한 것뿐이다.
진정한 대제사장은 그리스도라고 히5:5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실제적인 대 제사장의 복식을 그림으로나마 그려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출애굽기 28장 전장에 대 제사장의 복식의 설계 도면을 말씀하실 때 정교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하나, 하나의 모든 부분들이 전부 그리스도의 대 제사장 되심을 상징한 것으로 나타내 주신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수많은 제사법의 격식과 절차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대속 하시는 속죄의 제사에 대한 예표의 그림자 이였던 것이다. 그러면 세부적인 옷 모양을 살펴보므로 그리스도의 옷에 대해 알아보자.
대제사장의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옷을 예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입음은 형상의 본질 회복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 제사장의 옷(그림이 안 올라오네요)
모세에게 주신 앞의 그림과 같은 대제사장의 옷을 지어 입히라고 하실 때 첫째 조건은 거룩한 옷을 지어서 둘째는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는 것이었다.
거룩함과 영화와 아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형상인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온전한 구원, 존재 변화의 핵심이 거룩함과 영화와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 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같은 대제사장의 의상을 만드는 사람도 특별히 마음에 지혜 있는 자에게 옷 만드는 일을 맡겼는데 곧 하나님이 친히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이일을 맡겨서 옷을 짓게 하였다. 지혜로운 영으로 채움 받은 자 곧 마음이 지혜 있는 자로 하여금 일을 맡겼다는데 우리는 주목을 하여야 된다.
성도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때에도 반듯이 이렇게 지혜를 주셔서 일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일하는 자는 반듯이 지혜의 영으로 채움 받은 사람이 일할 자격이 있다.
그럼 이 지혜의 영은 무엇인가? (사11:2참고) 여호와의 신 이 되는 성령 받은 사람이 자격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지혜를 얻어야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다.
에봇과, 겉옷, 반포 속옷, 관과, 띠, 판결흉패
이 여섯 가지 복식에 하나를 추가하여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성결 패를 합하여 일곱 가지가 대제사장이 입는 옷(복장)이다(출28:4-5). 복장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다.
가늘게 꼰 베실은 한산 세모시 같은 세마로 된 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들로 옷감을 짜되 공교히 짜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하자 없이 촘촘히 최고급품의 옷감을 짜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최고급 양복감으로 말한다면 순 양모를 사용해서 옷감을 만들되 실 올 수를 최소한의 가늘게 꼰 양모 실로 최대한 촘촘히 짜서 만든 옷감 한 벌에 몇 천 만 원짜리 양복감 보다 고급의 옷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무리 값비싼 옷감을 만들어도 금실로 만들지는 아니하니 말이다.
이처럼 최고급의 옷감을 만들어서 대제사장에게 입히는 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는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그토록 존귀함으로 입히신 것이다.
1,에 봇(출28:6)
에봇을 만들 때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라고 하셨다. 색상 면에서 보면 찬란한 황금색과 청색 자색 홍색이니 백색의 가늘게 꼰 베실 바탕에 4가지 색(금,청,자,홍)의 배합으로 이루어진 옷이었다.
가늘게 꼰 세마 실로 짠 세마포 의 바탕에 4색의 찬란한 빛을 발하는 옷이었으니 얼마나 보기에 아름다운 옷이었느냐 말이다.
여기서 실제로 금, 청, 자, 홍, 순백의 세마포로 된 대제사장의 의상 색을 재현해 본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백색의 바탕에 금 청 자 홍 은 오색이 창연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이 옷이 그리스도를 상징한 대제사장의 에봇 이었다.
색의 상징)
색의 상징 해석 이러하다. 금색은 왕권의 상징이고 청색은 천국의 생명을 의미하며 자색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하며 홍색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백색의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성결하심을 의미함인데 이것은 모두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십자가의 고난과 생명의 부활과 영광을 말한다.
⑴ 에봇 위에 매는 띠
에봇 짜는 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짜서 띠를 만들었는데 (출28:8) 아름답게 수놓아 만들라고 하였(출28:39)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붙여서 매라고 했으니 이 띠는 "진리의 허리 띠"(눅12:35과엡6:14) 이다.
눅12장35,37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라고 하였는데 엡6:14절에는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했으며 벧전1:13절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했다.
허리띠라는 것은 원래가 수고와 봉사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되 마음의 허리를 띠라 고 했으며, 벧전5:5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주님 제자들은 언제나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여서 자기의 의지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 지식 근신의 힘의 강함과 절제 있는 근신함으로 깨어 있는 주님 일하는 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옷이라는 것은 띠를 두르지 않으면 아무 볼품이 없으며 옷을 다 입었어도 띠를 두르지 않은 옷 모양은 허술하여 입으나 마나 한 옷이 되고 만다. 우리가 마지막 능력으로 옷을 입어도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근신의 곧 절제의 띠를 두르지 않으면 모든 것은 결국 입은 옷도 벗겨지고 마는 것이다.
왜 능력 받은 일꾼들이 주의일 하다가 넘어지는가?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근신의 띠를 두르지 않아서 넘어지고 실패자로 끝나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 부흥했다고 다 되는 것인가?
신자들의 숫자가 많이 모였다고 그것이 곧 목회 성공인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은 넘어져서(고전9:27) 피투성이가 된 한국 교회 세계 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옷을 다 입고도 마지막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근신의 띠를 두르지 않은 까닭인 것이다.
근신할 수 있는 목회자만이 항상 깨어 있게 되는 것이다(벧전5:8) 이러한 근신은 곧 겸손이 있어야 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겸손의 허리띠는 진리로 사는 자의 모습이다.
⑵ 에봇 어깨에 단 두 개의 큰 보석 호마노
출28:9-14절 에 보면 호마노라는 큰 보석 두 개를 에봇 어깨에, 대제사장의 두 어깨에 매어 달게 하였다. 이 호마노라는 보석은 욥28:16절에 수마노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지혜에 비교하여 말하고 있다. 이 보석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간에 아론의 양어깨에 매달은 이 보석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한쪽에 6명씩의 이름을 새겨서 금테에 물려서 다는데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아 그들의 이름을 아론의 양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을 놓고 김희보 박사는 그의 책 (구약신학 논고 1975년초판 예수교 문서 선교회 간)에서 첫째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 한다, 라고 했으며 둘째로 는 구원의 확실성을 말한다고 하였다. 대제사장 아론은 오실 멧시야의 모형이므로 모든 답을 예수 그리스도 에게 서 찾아야 하는데 어깨에 메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어깨가 말하는 상징성에서 진리의 참뜻을 찾아야 될 것이다.
사람의 어깨가 말하는 것의 의미는 확실한 책임을 말하는 것이므로 곧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사명을 말할 때 너의 어깨가 무겁구나! 그렇게 말한다.
이는 오시는 메시아 그가 구약에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돼 나타난 이스라엘의 구속사의 결말을 확실하게 양어깨에 메고 이스라엘 12 지파의 구원을 확실하게 책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의 사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확실하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양어깨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사야9: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 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라는 말씀에서 그 어깨에 “정사” 을 메었다고 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구속사의 “정사” 을 다 이루실 분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성경 한 구절을 살펴보자 이사야 22:22절이다. “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 가없으리라 라고 하였다.(계1:18,3:7 참고)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다윗 집의 열쇠" 가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분의 사명이 그의 양어깨에 있는데 다윗 집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론의 양어깨에 있는 이스라엘의 12지 파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 보석은 그냥 기념 보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의 확실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 다윗의 열쇠는 비밀에 속한 것인 동시에 죽이고 살리시는 것이 다윗(왕권)의 열쇠에 있다는 것인데 왕권, 즉 통치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메시아의 왕권 곧 통치권은 세상 권력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전우주적인 말씀(우주 원리)의 통치하시는 전우주적 정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어깨에 메었다는 상징인데 이러한 주님의 정사(政事)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비밀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엡3:10절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라고 하였는데 여기 말하는 “정사”가 그의 “어깨에 메어 있는 정사”(사6:9) 이다.
이 정사는 하늘의 신령한 통치 수단의 하나님의 신령한 시스템의 체계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 정사와 권세들에게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통치가 교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하늘에 속한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이스라엘의 죽고 사는 정사의 통치 권세는 그리스도의 어깨에 있는 비밀의 열쇠로 풀어진다는 말씀인 것이다. 열쇠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비밀한 것을 여는 key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16:16절에 “ 주는 그리스도 시다”, 라는 바른 신앙고백 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했던 것이다. (마16:18절)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멘 정사의 열쇠를 주신 것이다. (천주교회와 개신교의 갈림길)
그러니까 아론의 두 어깨에 있는 이스라엘의 12지 파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 보석 호마노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것이다.
어떻게 그런가? 대제사장 아론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 천국 문을 열고 닫는 비밀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고 계시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분,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생마다 수고의 무거운 죄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모질고 고된 수고의 삶을 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된 소리를 듣고 그분 앞에 가기만 하면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하시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멍에가 곧 다윗 집의 열쇠요 하나님 나라 천국 문을 여는 온유와 겸손의 그리스도의 비밀의 열쇠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 겸손인데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이 내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로만(골1:27)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비밀을 추적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이 성경의 모든 핵심을 푸는 첩경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초등 학문을 버리는 길이다.
2, 겉 옷
겉옷에 대해서는 출28:31절에 에봇의 받침이 되는 긴 옷을 겉옷이라고 했다. 겉옷은 전부 청색으로 만들었는데 그리스도의 메시아 직을 대표하여 상징하는 옷이다.
엘리야의 승천 당시(왕하2:13-14) 엘리사 에게 자기의 겉옷을 내려 줌으로 자기의 뒤를 이은 후계 선지자 직을 이어가게 하였는데 이 겉옷은 제사장 직분을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어야 하는 의의 겉옷이며 이 겉옷을 입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변화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바이다.
이사야61:10절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 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이 하셨음이라, 라고 하였다.
구원 곧 변화될 자의 의(義)를 위해 입는 의의 겉옷이 곧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인되는 것은 빌3:9절 말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다, 라고 하였으므로 이 겉옷은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갈3:27절)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우리가 제사장 의 옷을 입는 것이다.
제사장은 곧 그리스도가 대제사장 되시니(히5:5절), 이러한 의의 겉옷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만인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엡3:12,벧전2:9).
⒜ 겉옷의 색깔
겉옷의 색이 청색인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과 함께 푸른색이 주는 생명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본질 되심을 말하는 것이다.
⒝ 겉옷에 달린 석류와 금방울
출28:33-34 그 옷 가장 자리로 돌아가면서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절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 하리라, 라고 하신 이 말씀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고 나올 때 금방울 소리가 나야 죽지 않는다했으니 이 금방울 소리는 살아 있다는 생명의 소리인 동시에 제사장이 성소에 드나들며 하나님에게 수종 드는 모든 움직임 그 자체는 생명을 위한 드나듦 그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제사장의 금방울 소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오는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석류는 목마른 영혼에게 소망을 주는 입안에 생수 침이 솟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광야의 한 떨기 석류 열매는 목마른 영혼의 목구멍에 상큼한 침샘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 할 때 이는 땅에 진리를 찾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에게 진정한 진리에 대한소망을 주는 생명의 침샘이 속구 치게 하는 것은 석류 열매와 금방울소리(불변의 소리)로 상징되는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겉옷 자락(거룩한 행실)에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인류에게 소망을 주는 영원불변하는 생명의 소식은 오직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겉옷자락(거룩한 행위)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목마르고 주린 영혼에게 군침이 돌게 하며 갈급한 영혼의 참된 양식의 생명의(복음) 소리가 제사장의 옷자락에 있는 것이다. 겉옷은 속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겉으로 나타남의 행위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섬기러 성소에 들어오고 나갈 때 이 금방울 소리가 들리므로 성소밖에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제사장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명의 교감을 알리는 금방울 소리는 인류의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오직 모든 인간의 최대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부활생명이 유지된다는 절대적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두 번 째 제사장의 에봇 겉옷자락에서 나는 금방울 소리는 모든 제사행위의 최종 마무리를 위해 언제나 성소 밖에서 목마르고 애타게 고대하고 서 있는 백성들의 귓전에 명랑한 소리로 들려옴으로 자신들의 제사가 성공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그 모든 속죄를 받아 주셨다는 용서와 사랑의 기쁜 교통을 알리는 생명 은총의 소리였던 것이다.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의 중보 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영원한 복음의 상징을 이 같은 제사장의 생명의 금방울 소리로 상징된다.
오늘날도 소명을 다하는 목회자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으로 금같이 영원히 불변하는 소중한 생명의 소리를 은은히 들려주므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호4:6 말2:7) 지식을 버리는 자는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으며 제사장의 입에는 항상 학자의 입같이 제자의 입같이 되어서 사50:4절과 잠18:4절처럼 영원히 불변하는 하나님 나라 지식을 말하는 자이어야 된다.
목자의 자격은 렘3:15절처럼 지식과 명철 있는 자라야 한다.
이것만이 금방울 소리 같은 생명의 소리를 증거 할 수 있는 증인이 되게 할 것이다.
잠16:16절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가!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리라.
하였으니 문제는 그리스도의 겉옷을 상징하는 제사장의 에봇 자락에 석류와 금방울을 달게 한 것이 우리의 현세적 삶에 어떤 적용을 함으로 유익을 얻겠냐는 것이다.
이 옷으로 말씀하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의 옷을 입음으로만 겉으로 나타나는 한인간의 인격까지도 그리스의 인격을 나타낸다는 것이니 존재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시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 사람의 행동까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삶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참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옷 입는 만인 제사장의 모든 일상의 행동은 금방울 소리로 비유된 영원불변의 생명의 소리와 석류로 비유된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이다.
바꿔 말해 만인 제사장의 삶은 생명의 복음과 성령의 생수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씀이시다.
3, 반포 속 옷(출28:39-41,레16:4)
계시록19:8절의 세마포다.
이 세마포 가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했으니 벧전1:15절의 거룩함이다. 거룩함은 벧전1:2절 성령 받아야 거룩함이 되는 것이다. 속옷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비밀에 속한 것으로 이 반포 속옷을 입음으로 아론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는 결정적인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출28:40-41참고하기 바람)
그리스도로 겉옷을 입는 단계는 속옷을 입는 과정을 거치므로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해 지는 겉옷을 입게 된다는 것이니 속사람의 변화로 인격화됨이다. 이 속옷이 주는 의미는 믿음의 비밀에 속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분들에게는 어려운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안 뒤에 믿음의 비밀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골1:27,골2:2,딤전3:9) 이 속옷은 거룩함을 의미하는바 속사람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인친 상태에서 성령 충만한 삶에 겉으로 나타나지는 행실을 할 때에 사람은 누구나 가증한 측면이 있어서 사람 앞에서는 위선을 하게 돼지만 속옷을 입은 사람은 절대로 위선을 할 수가 없는 정직함으로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빛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 없는 속사람 내면의 진실한 인격의 정직은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으나 예수로 성령의 속옷을 입은 사람은 성령님이 늘 떠나지 않으시고 양심 속에서 감찰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거짓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의 명예나 돈보다도 성신이 동행하시는 것을 사모함이 더 크기 때문에 성령님의 소멸을 제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엡4:30,살전5:19)
누가 보지 않는다고 양심은 밖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양심을 속이고 잠시 동안은 위선을 부릴 수 있을지 모르나 성령님은 속일수가 없는 것이다.
위선자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계실 수가 없어 떠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겉옷이면 예수님의 속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속옷인 것이다. 요19:24절 속옷을 찢지 않고 한사람이 가지고 간 것은 성령으로 상징된 속옷은 찢지 못하는 까닭은 성령은 절대로 훼방 받으실 수 없는 성부 하나님의 본체인 본성의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 죄는 영원히 저주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마12:31-32)
다시 말해 손상할 수가 없는 훼방 받지 않는 인격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겉옷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찢었어도 속옷 부분인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절대로 손상할 수가 없으니 속옷은 찢지 못한 것이다.
마10:28절에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레16:4절에 정확하게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는다고 했으며, [세마포 고의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여기서 물로 씻는 것이 세례의 단계이다.
세례는 흔히 교회 한 일년 정도 다니면 소위 학습 세례 문답하고 주는 그런 물세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요한의 세례(행18:25,19:4) 회개케 하기 위한(마3:11)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례는 롬6:3절4절과 막16:16절의 옛사람이 다 죽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피조물 (고후5:17)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세례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례를 다 받은 자에게 믿음의 비밀 단계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단계에서는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니 읽으시는 분들은 그냥 이대로 계속 읽으시다 보면 믿음의 비밀까지 체험은 몰라도 깨닫는 단계는 본서만 다 읽으신 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밀과 믿음의 비밀 사이에 경건의 비밀이 있다(딤전3:16). 그러므로 경건의 비밀을 깨달아 체험이 함께 이루어져 가는 단계에서 믿음의 비밀은 깨달아지고 체험을 하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부분을 세세하고 정밀하게 성경에 있는 그대로 풀어 주는 그 어떤 인물이 없었던 것이 그 동안 평생의 안타까움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엄청난 소원이 있었는데 이것이 보잘것없는 자에게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며 나는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아버지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성경에 는 다섯 가지 비밀이 있는데 이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잡을 때 시내에서 물매 돌 다섯을 집어 들고 그 중 하나를 던져서 골리앗을 잡은 것과 같은 상징을 갖는 구약의 그림 하나를 그려준 사건에서 말해준 비밀인 것이다(삼상17:40-49)
이것이 결국은 다 하나 이지만 깨닫는 것은 한 단계씩 깨닫고 체험이 일어나야 되고 삶 속에 실제화 되어야 하는 생명의 양식된 말씀의 비밀인 것이다.
예수님의 겉옷은 찢어서 나눠도 속옷은 절대로 나누지 못하며 (요19:23과 시22:18절참고) 손상되지 않고 훼방 받지 않는 마10:28절 마12:31-32 의 말씀과 같이 성령 받은 속사람의 영과 성령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속옷은 물로 세례를 다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갈3:27) 경건의 길과 명철의 길을 계속 가면서 성령으로 세례 받아서 능력을 덧입은 뒤에 세미 한 하나님의 음성을 다 들으며 (왕상19:12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되어 입는 세마포 옷과 같은 구원의 완성 단계에 입는 성화의 옷 입음이다.(계19:8절)
4, 판결 胸 牌(흉패)
흉패는 출28:15-30절까지 길게 설명되어 있는 아론의 가슴에다는 것으로 아론이 겉옷과 에봇을 입고 그 위에 큰 패를 달아 붙이고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이 흉패에 담긴 진리를 찾아 알아보자.
⑴ 흉(가슴)패의 모양
이것 역시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드는데 장과 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 모 반듯하게 직사각형으로 만들되 그 안에는 이스라엘의 12지 파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석 한 개마다 새겨 넣어서 금테에 물려서 붙이는데 가로로 한 줄에 3개씩 세로로 네 줄로 3 곱하기 4 = 12 보석 이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의 비밀에 속한 것으로 (삼) 곱하기 (사)는 십이 지파를 말하는 상징적 천국의 구원의 숫자이다.
3 더하기 4는 제7 안식이고 하늘과 땅의 통일이고 그래서 제7은 완전수이다.
3곱하기 4는 12 천국의 무한 지수이지만 필자는 수학자는 아니지만 땅에서 4 라는 수는 가장 안정성이 확보되는 기하학적 수의 체계인 것이 분명하고, 3이 하늘의 완전한 수라면 4는 땅을 하늘에 접합시키는 평안의 안전 수이다.
그러므로 4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안정성을 주는 기하학적 체계로서 인간은 4지(팔다리)이고 동물 세계의 고등 성은 네발 달린 놈이다.
건축의 기초 단위가 4개의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다.
자동차가 네 바퀴인 것도 가장 안전한 구도이기 때문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물론 그 이상의 큰 화물차도 있다.
4 라는 수는 땅의 인간에게 안정성을 주는 수의 체계인 동시에 땅에 속한 인간이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죽음의 수치이다.
죽고자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하는 자는 죽어야 사는 죽음과 평안의 안식을 접목시키는 가장 미묘한 이 땅에서의 비밀의 수치가 4(four)라는 수이다.
이처럼 하늘의 성삼위 하나님의 3의수와 땅의 수 4가 합쳐지면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루어져 하늘과 땅 (천국과 인간 세계 즉 영계와 육계)이 통일하는 것이 되고 곱하면 믿음의 비밀인 무한 수 천국의 보좌가 열린다(계4:4,계21:12)
이와 같은 수의 체계 속에 그리스도의 비밀이 숨어 있다.
한국 사람들만 정서적으로 죽을 사 라고 싫어 하지만 4의 비밀은 죽음 뒤에 오는 생명의 비밀이 있다.
지금까지 판결 흉패가 직사각의 구도로 된 것의 비밀 일부를 말했거니와 12지 파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 아론의 가슴에 있게 한 것은 이것도 히10:1절의 말씀처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주님의 가슴 안에 있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엡1:4-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12지 파의 이름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을 모든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진리의 말씀(엡1:4-5절)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슴에 붙인 흉패의 의미는 엡6:14절에 있는 대로 “의의 흉배를 붙이고” 라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이 세계 모든 거민 곧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의 아들들을 삼는 비밀이 이루어지는 “의인” 됨의 비밀의 상징을 그려 주신 것이 [사각]의 모양이다.
흉패의 모양이 정사각형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삶은 거짓이 없는 “정직” 함으로 살아야 된다는 뜻이다(잠16:17)
어깨가 능력과 책임을 상징한다면, 가슴은 뜨거우면서 냉철한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사랑을 상징한다(계3:15)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구원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마침이요 롬10:4절, 이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가슴 안에 있는 십자가의 사랑의 구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말씀하는 것이다.
엡1:7절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죄 사함 받는 자 되고 이렇게 구원받는 모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의 [보배들]고후4:7,이라는 점에서 보석 위에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⑵ 흉패 안에 넣는 우림과 둠밈(출28:30)
아론의 가슴에 있는 흉패를 판결 흉패라고 한 것은 스바냐3:5절 말씀에서 참뜻을 깨달아야 될 것이다 “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 한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아침마다 이른 새벽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자신의 수치를 알지 못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의 성결을 지키지 못하고 의와 공평의 길을 떠나 살아간다는 것이다.
롬2:6절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살후1:5-9절)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잠28:5와 단12:10절).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되 의와 공평을 기준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도 의와 공평을 기뻐하신다고 했다.(잠21:3절)
의와 공평이 곧 성도의 영원한 진리의 길(잠2:8절)이므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공평을 모르는 자는 성도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어 살아간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정직한 자를 위해 완전한 지혜의 길을 여시고(미6:8절잠2:7절)) 의와 공평이 있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장애물이 없는 시119:165절 갈6:2절 악에서 떠난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는 정직자의 대로를 주시는 것이다(잠16:17절).
악에서 떠나는 것이(명철,욥28:28) 의와 공평의 길이며 명철의 길이라 그러므로 명철의 길을 떠난 자는 악을 버리지 못하므로 사망의 회중에 거한다고 했다 (잠21:16절).
우림은 “빛”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보석이었는데 어원은 히브리말로 [빛을 발한다] [빛을 밝힌다]give light 의뜻이다.
잠13:9절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라고 했고 또한 잠15:1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런데 잠20:27절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5: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으므로 신자가 세상에 빛으로 존재하려면 자기 영혼부터 살려서 등불이 켜져야 한다. 산자의 영혼의 등불 켜진 자가 곧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며 주님 부탁하신 대로 눅12:35절 허리에는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고 하신 말씀처럼 지혜 자가 되어 그 얼굴에 광채가 나는 가운데 얼굴에 사나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관상이 바뀐 전8:1절 같은 인물이 될 것이다.
둠밈은 그 어원이 [완전하다] {바르다} {강건하다} [평안하다]의 뜻이다. <김희보박사저 구약신학 논고 p.159>
신33:8절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이 언제나 둠밈과 우림으로 상징되는 모든 하나님의 법과 진리를 지키는 자의 삶이 완전한데 거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진리인 것이다.
시4편3절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고 했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입고” 택함을 “입는” 것을 상징한 우림과 둠밈의 비밀이다. 실제로 이 우림과 둠밈은 빛을 상징하고 완전을 상징한 성도의 삶의 판결 기준이 우림에 있고 둠밈에 있었던 것은 이 역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우리의 구원이 완전해 지는 것이 벧후1:10-11절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전한 구원은 부르심과 택함을 입는 것으로 완성된다.
민27:21절 제사장 엘르아살은 아론의 셋째 아들로 아론의 뒤를 이은 대제사장 직을 감당함에 있어서 백성들을 판결 할 때에 우림의 판결 법으로 여호와 앞에 묻는다고 되어 있다.
제사장이 백성을 재판 할 때에 우림으로 상징된 완전함으로 의와 공평의 법으로 판결을 해야 된다고 하신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판결 법이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는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이 왕이 되고 왕상3:4절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왕상3:9절에 구한 것이 지혜였다.
이 지혜는 완전한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공의대로 백성들을 재판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의 바른 해석은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지혜와 그리스도가 영광의 광채요 고후4:4절 요8:12절.요12:46절 세상의 완전한 빛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판결 흉패는 제일 먼저 장차 오시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의 12지 파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뜻이며(엡1:4-5절) 두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빛 (거룩한 삶의 열매)로 완전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케 하러(마5:17절) 오셨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완성인 마침이 되신 것이다(롬10:4).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한 빛이 되라는 것이다.
완전한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완전한 빛이시다.
고후4:4절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하셨는데 곧 영광의 빛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되셔서 인간 세상에 어둠을 밝히시는 빛으로 오신 것이다. “요1:4절 사람들의 빛” “요1: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1: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들 가운데 거하시는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 이라고 했다. 이 말씀의 뜻은 곧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비취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광채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후2:14절은 우리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 드리는 것으로 빛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 삶속에 오시게 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서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먼저는 영광을 얻는 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그리고 고전10:31은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광을 먼저 얻은 자가 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영광을 얻지 못하고는 영광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든 아담의 후손은 결코 의인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성경은 마5:48절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그랬고 잠20:7절은 완전히 행하는 것이 의인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후손은 복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히 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법을 주신 것이다(갈6: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운 교회 안에서 먼저 행하신다. (벧전4:17).
판결의 기준은 우림과 둠밈의 법칙이다.
(마16:27절). 우리의 삶의 기준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것이 어두움이었느냐 빛이었느냐 곧 빛은 행실이로되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면서 베푼 배려이다.
우리의 행실이 벧전1:15절대로 거룩한 행실로 의와 공평이 있는 완전한 것이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의 대상인가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판결 흉패로 이루어진다.
히5:5절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다 그는 우리의 선악 간에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심판 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언제나 성결한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어서 또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그것이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빛 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완전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론의 가슴 안에 있는 곧 판결 흉패 속에 있는 우림과 둠밈(빛과 완전)의 판결 법의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완전함과 빛 된 삶의 능력은 경건의 능력으로(딤후3:5) 사는 것을 말함이다(신33:8). 고로 경건의 비밀(딤전3:16)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우림과 둠밈의 판결을 면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하는 합격품으로 사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로 살아야 항상 의롭다함을 얻어서 완전한 빛으로 살 것이다.
의인의 빛은 항상 환하게 빛나는 것이며 의인이 등불을 켜는 것이다. 의인의 등불은 켜지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는 것이다(잠13:9)
5, 여호와께 성결(출28:36-38)
인간은 인격의 불결함 밖에 없다.
불결한 죄인 된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결 법으로 죄를 깨끗이 씻어야만 깨끗해지고 거룩해진 여호와의 성결로 하나님 나라 천국의 존재로 변화를 입는 것이다.
출28:39절에 가늘게 꼰 베실로 짜는 대제사장의 복식 용품 중에 속옷과 함께 관(모자)이 있고 띠가 있었는데 이것들은 아론의 거룩함을 이루는 대표적인 복장 용품들이다.
머리에 쓰는 관 모 이것은 첫째,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 성도의 승리의 면류관을 상징하여 구원의 투구를 말하는 것과 같다.
엡6:17절. 둘째로는 이 관모를 쓰므로 고후10:5-6절과 같이 인간의 어떤 이론도 다 배격 하고 생각까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신의 의지로 사는 사람이 아닌 범사를 주께만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 받으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명령만으로 삶의 법칙을 삼아서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불순종한 때문인데 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되느냐하면 인간의 분리의식으로 말미암은 독립된 존재의식 때문이다.
타락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 그것은 사탄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 불신은 분리의식 사상 곧 이론 때문이다.
삼장 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어 놓은 굴레처럼 인간은 사탄이 존재 한다면 사탄의 이론으로 간주 할 수밖에 없는 헛된 사상에 사로잡혀서 생지옥 같은 자기창조의 인생을 지금까지 속아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망의 이론이 나오는 기관이 바로 인간의 두뇌 머리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쓰신 가시 면류관이 주는 상징적 진리는 곧 인간이 자기의 미련한 생각과 이론으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까닭으로 인간의 모든 이론이 나오는 기관인 머리에 가시면류관 을 쓰시므로 모든 인간들에게 너희 인생들이 망하는 원인이 생각의 결과로 망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다(렘6:19절).
인간의 머리속에서 나오는 모든 이론은 자신을 찌르는 고통과 괴로움의 수고의 무거운 죄 짐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상징, 이것이 예수님의 쓰셨던 가시 면류관 인 것이다.
이제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날마다 자기 자신의 이론과 생각이 나오는 마음을 주관하는 머리통을 씻어 내므로 주님의 가시면류관을 벗겨 드리듯이 가시 면류관 같은 생각과 이론을 벗는 회개를 계속해야 되는 것이다(고후10:5-6).
우리는 이론 때문에 망하고 생각의 결과로 재앙을 받는 것이다(렘6:19). 인간의 타락한 모든 이론이 인간 스스로를 가시 면류관처럼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줄을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의 투구는 왜 쓰는가?
우리의 구원을 훼방하는 어떠한 세상 이론이나 사탄 사상의 총알이나 불화살로부터 머리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으로만 생각을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격하는 어떠한 세상적 이론도 없는 바른 가치관으로 변화를 입고 사는 구원의 투구를 쓰게 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기 이론 생각이 곧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면류관 인 것처럼 이것을 벗어 던져야 거룩한 관모를 쓰는 자가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옷을 입는데 겉옷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는 의의 겉옷을 상징하고(사61:10) 속옷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를 얻은 의인이 더욱 성화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성결한 세마포 옷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점은 레16:4절과 계19:8절이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회개하면 먼저 일차적으로 의인의 단계에 이르지만 이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점진적 성화를 향해 날마다의 삶에 성결을 위한 회개를 계속함으로 인간 속에 있는 모든 죄를 더욱 말끔히 씻는 정결함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공로 없이 얻는 의를 얻음도 구원의 시작점인 출발선이고 골인 지점은 세마포 속옷을 입음으로 거룩함의 단계까지 가야 되는 변화의 길인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경건의 비밀로” 되는 것이다.
옛 사람의 습관 곧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으로 나타나는 죄 된 행동 즉 롬6장7장에 나오는 나는 원치 않는데 계속 튀어나오는 육적인데 얽매이게 하는 육신의 소욕(성령을 거스르는 행동 하나님과 원수 된 것 롬8:5절 이하 갈5:16-17) 까지 다 없애는 것을 말함이다.
속옷을 입는 과정 뒤에 겉옷을 입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제사장이 관모을 쓰는 것이 속옷을 입는 것과 함께 이루는 거룩함의 단계의 구원의 완성을 말함이며 [경건의 비밀]딤전3:16을 이루는 단계이다. 신약 성경 엡6:17절에는 구원의 투구를 쓴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관모 전면 이마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붙이는데 여기에는 반듯이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새겨 넣게 했다. (출28:36절)
하나님은 왜 이것이 대제사장 아론의 관을 쓴 이마 한복판 정면에 있게 하였는가? 출28:38절의 말씀은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성물에 죄 건을 담당하는 것은 제사장의 이마에 있는 성결 패로 된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사람의 이마는 그의 인격의 총 사령탑의 표상이라 이마는 힘의 상징이며 모든 인간 생명의 감각 기관을 대표하는 表頭(표두) 이고 그의 전인격의 품격을 말하는 곳이다.
약3:17절에 위로 부터난 지혜의 첫 번째 모습은 성결이다.
머리의 전면 표상이 앞이마인데 그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의 생각 곧 지혜가 나온다. 마음이 성결하고 지혜로운 자의 머리에서 지혜가 반짝이며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지혜” 라는 것이며 사람의 인격과 생명은 지혜에서 난 성결함이다. 이러한 성결함이 제사장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러한 제사장이라야 모든 백성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성물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일반 백성들의 성물은 이러한 제사장의 성결함으로 죄건 을 담당하였을 때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물이라도 하나님께는 성결함이 첫째 조건이다. 그래서 성물을 드림에도 죄를 없애는 성결함을 위해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성물을 받으신다는 조건부로 대제사장의 이마 전면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달았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을 그렇게 받으신다면 그 예물을 드리는 사람은 정작 어떠해야 될 것인가! 두말할 것 없이 거룩한 사람의 손에 예물만을 받으신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빌3:3절은 우리의 봉사도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령님이 거룩이시니 거룩(성령) 없는 봉사 거룩(성령) 없는 예물 하나님이 받으신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무리 교인들이 물질을 받쳐서 많은 일을 하여도 거룩 없는 성물은 받으신 적이 없으니 피땀 흘려서 교회에 봉사하고 거액의 헌금을 하고도 자칫 하면 자기 이름 내는 것으로 그치고 주님은 한 푼도 받으심이 없고 그렇게 부르짖는 축복은 내려오지 않고 낙심한 신자들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가 교회의 부흥이 쇠퇴하는데 하나의 원인이다.
의인의 자리 겉옷을 입고 더욱 점진적으로 구원을 완성하는 성화를 위한 속옷 세마포를 입어서 거룩한 승리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관모를 쓰듯이 확실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전신 갑주를 입고 악의 권세를 향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나님 나라 천국의 현재 진행형을 이룬다.
6, 더러워진 대제사장의 옷(슥3:3-5)
앞에서 이야기한 대제사장의 옷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식양을 따라 만들어 입은 거룩한 옷이었어도 이것을 입는 것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성결함이 부족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인간의 문제다.
목사가 예배 시간에 입은 성의 하나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실체를 입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옷으로 덮는다고 인간의 죄 성이 다 가려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마치 아담이 죄를 짓고 자기 딴에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어보고 혹은 수풀 속에 숨어도 보았지만 그것은 허사였던 것처럼 인간이 아무리 성결하여 지기 위하여 입으라고 하신 대제사장의 옷이었으나 그것으로 속사람이 성결하여 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아무리 성결하여 지기 위해서 행동을 삼가고 노력을 기울여서 옷을 입고 겉 폼을 잡듯이 애써 봐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럽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죄 사함 받는 전적인 은혜를 평생토록 떠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어 경건의 비밀을 통과하여 거룩한 자녀의 자리에 거해야 인정하시는 성결인 것이다
슥3:3절의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스가랴서는 종말론적인 선지서이다. 스가랴3:1절서부터 보면 스가랴가 본 이상 중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이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고, 입고 있던 제사장의 옷이 더러우니 사단이 대제사장을 대적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사자들을 명하여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옷을 벗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그것을 보고 있던 스가랴가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먼저 언급돼야 할 것은 출28장에 명하신대로 제사장이 옷을 입었다고 제사장이 그러한 율법의 옷을 입은 것으로 완전해 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 일 것이다.
즉 다시 말해 구약의 율법이 명한대로 제사장이 거룩한 성의를 아무리 입었어도 하나님 앞에는 더러운 죄인일 뿐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3:20)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구원의 완성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성결함을 위해 노력했어도 하늘에서 죄를 사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아니 된다는 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율법으로 입어지는 제사장의 옷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거룩한 새 피조물로 창조된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 슥3장의 그리스도의 옷을 예표한 약속인 것이다.
둘째로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 곁에는 항상 송사를 일삼는 사단도 있고 그를 돕는 천사도 있는데 (참고성구 욥1:6, 히1:14절) 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해 서 있지만 사단은 항상 우리를 송사 하는 고소자로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자가 있을 시는 언제나 사단은 하나님을 향하여 송사 하는 말로 서슴치 않고 하나님께 고소장을 올린다.
이때에 하나님의 공의는 죄지은 자를 그대로 방치 하실 수가 없는 것이 영계의 명확한 원리인 것이다.
각설하고 왜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입은 옷까지도 더럽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손수 만든 天衣 無縫(천의무봉)의 옷을 입히시느냐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인 여호수아가 일차적으로 입었던 옷도 사실은 하나님이 명하여 지어 입으라고 한 식양대로 디자인해서 입은 옷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는 여호수아의 옷은 벗겨지고 뒤에 죄를 제하여 버리신 다음에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는 것에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주목을 해야 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옛 사람의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님 나라 천국의 존재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벗어야 할 옛 사람의 옷은 죄로 물든 옷이기 때문에 갈아입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다는 것은 죄를 제하여 벗는 것을 말함이다.
이렇게 될 때에 사단은 우리에게서 물러가고 더 이상 대적하는 송사의 말을 하나님 앞에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단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 닦아서 않 되는 절대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만 인류의 사악함을 고치는 것이다 심지어 조상이 죄짓고 죽어 없어진 죄 짐까지 자손이 짊어졌어도(렘애5:7) 그리스도 피로 회개만 하면용서하시고 고친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인것이다(벧전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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