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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상보성 원리(입자와 파동의 협주)

작성자순례자|작성시간09.11.15|조회수294 목록 댓글 0

상보성 원리

코펜하겐 대학에서 1911년 박사 학위를 받은 보어는 영국으로 건너가 처음에는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J. J. 톰슨(J.J. Thomson, 1856~1940)과 함께 연구하다가 맨체스터 대학으로 옮겨 러더퍼드(Sir. Ernest Rutherford, 1871~1937)와 함께 원자의 구조에 대해 연구를 했다. 1916년에는 다시 덴마크로 돌아와 코펜하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21년에는 코펜하겐 대학에 이론 물리 연구소(후에 닐스 보어 이론물리 연구소)가 설립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이론 물리 연구소는 양자 물리학 발전에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양자 물리학의 산실이 된 코펜하겐 이론 물리 연구소

보어가 소장으로 있던 코펜하겐의 이론물리 연구소는 곧 원자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물리학 연구에서 과학자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보어는 유럽은 물론 세계의 젊은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이론 물리 연구소로 초청했다. 보어는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하며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함께 등산이나 카누 타기와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기기도 했다.

 

물리학자로 이 연구소에서 연구했던 빅토어 바이스코프(Victor We isskopf, 1908~2002)는 이 당시 보어가 동료들 가운데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활동하고 토론했으며, 항상 생기가 넘치고 난관적이며 익살스럽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연구를 할 때면 적극적인 자세로 자연의 가장 깊숙한 수수께끼를 파고들며,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난 정신의 소유자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보어의 적극적인 태도는 그대로 코펜하겐 정신이 되었다.


 

이론 물리 연구소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공동연구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연구소에 머물면서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연구에 열중할 수 있었다. 후에 빅뱅이론을 제안한 러시아의 조지 가모프(George Gamow, 1904~1968)의 설명을 통해 이론 물리 연구소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1928년부터 1929년까지 이론 물리 연구소에서 연구했던 가모프는  독일에서의 연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틀 동안 머물 예정으로 코펜하겐에 들렸다. 가모프는 보어를 찾아갔다. 언제나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보어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어는 가모프에게 물리학에서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가모프의 설명을 듣고 난 그는 즉석에서 “정말 흥미 있는 이야기로군요. 당신 이곳에 1년 머물러 주십시오.” 라고 제안했다. 가모프는 연구소의 생활에 대해 “연구소에서의 연구는 매우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매일 무엇이나 원하는 것을 하면 되었다. 원할 때 연구소에 오고 원할 때 집에 갈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보어는 자신이 연구소에 초대한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보어와 마찬가지로 물리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는 영역을 탐험하는 선구자들이었다.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이론 물리 연구소의 연구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때는 영웅들의 시대였다. 양자 물리학은 어떤 한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었다. 양자 물리학은 많은 나라에서 온 다수의 과학자들의 협동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닐스 보어의 매우 창조적이고 섬세하고 비판적인 정신이 그 사업을 안내하고, 제한하고, 심화하고, 마침내 변화시켰다." 새로운 양자 물리학은 수학적 계산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수학적 계산에 의해 도출된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해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한 해석을 위해서는 보어와 그의 연구소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여야 했다. 이 토론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수학적 기술을 실험 및 실험 결과들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보어의 첫 번째 제안 : 양자 세계의 이중성을 설명하는 상보성의 원리


양자 물리학의 중심이 되는 코펜하겐 해석은 코펜하겐의 이론 물리연구소에서 골격이 잡혔다. 코펜하겐 해석은 보어 개인의 과학적 업적이 아니라 이론 물리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많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보어 개인은 두 가지 원리를 제안함으로써 양자 물리학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그 중의 하나가 1927년 '양자 이론의 철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최초로 제안한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였다. 상보성 원리란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나 전자와 같은 입자는 파동과 입자와 같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성질을 가지지만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과 관계된 현상을 완전히 기술해 내는 데에는 두 가지 성질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빛은 간섭이나 회절과 같은 실험에서는 파동의 성질을 보여주고, 광전효과 실험에서는 입자의 성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한 가지 실험에서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전자나 양성자와 같은 입자들도 같은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보어는 빛이나 입자들이 가지는 이러한 이중성을 상보성 원리로 정리한 것이다. 

 

 

보어의 두 번째 제안 : 물리량은 측정 과정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과 관계된 물리량은 그러한 물리량을 측정하는 측정 과정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실험을 통해 측정된 물리량들은 하나의 구도 안에서 이해될 수 없지만 대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이 상보성 원리이다. 이러한 해석은 어떤 대상의 물리량은 측정과는 관계없이 객관적인 양으로 존재한다는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이었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측정 과정과 분리된 물리량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측정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측정과 물리량에 대한 변화된 견해를 나타내는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은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를 비롯한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초기 업적을 사고영역에서 이루어낸 최고의 업적이라고 크게 칭찬했었다. 그러나 그는 양자 물리학이 원자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새로운 물리학이라는 보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대상의 물리적인 상태는 측정과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서로 다른 측정을 통해 다른 성질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실험이 대상의 모든 성질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의 그런 생각은 슈뢰딩거가 아인슈타인과 함께 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제안한 사고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벌였던 토론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도전적 반대가 보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물리학자 아브라함 파이스(Abraham Pais, 1918~2000)는 후에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영원한 정신적인 논쟁 상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에도 보어는 마치 아인슈타인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그와 논쟁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상보성의 원리를 물리학 밖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상보성 원리의 철학적 의미에 흥미를 느낀 보어는 이 원리를 좀 더 일반적인 경우에도 적용시켰고, 이런 일반화는 많은 논란을 불러 오기도 했다. 보어는 생명체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생명체와 분자의 집합체로서의 생명체로 볼 수 있지만, 개체로서의 생명체와 분자의 집합체로서의 생명체는 같은 실험으로 동시에 다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생명체 안에 있는 모든 세포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려고 한다면 생명체는 죽어버려서 개체로서의 생명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윤리학의 정의와 자비 사이, 심리학의 사고와 감정 사이, 문학의 형식과 내용 사이 그리고 과학 이론의 틀과 내용 사이에도 상보성을 적용했다.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John Dyson, 1923~현재)은 보어가 주장한 넓은 의미의 상보성을 과학과 신학 사이에도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신학과 과학이 인간의 경험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좁다고 주장했다. 신학은 미분 방정식을 포함하지 못하며, 과학은 신성함을 포함하지 못한다. 우주를 종교적인 경험을 통해 파악하면 정량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고, 우주를 과학적 경험을 이용하여 파악하면 신성한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신학과 과학에 상보성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종교적인 면과 과학적인 면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과 과학의 상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 물리학에서의 상보성 원리와 일반화 시킨 상보성 이론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양자 물리학에서의 상보성 원리는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나 양성자 같은 입자가 가지는 물리적 성질을 설명하는 실험 결과와 부합하는 가장 합리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적용된 상보성은 대립되는 면을 가지는 여러 가지 사실을 상보성 원리에 억지로 꿰어 맞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억지스러워 보이는 상보성의 일반화는 양자 물리학에서의 상보성 원리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곽영직 /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으로 있다. 쓴 책으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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