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스님의 육조단경풀이
응무소주이생기심
⊙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응무소주이생기심은 한마디로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소주無所住’는 ‘무주無住’와 같습니다. ‘머무는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무념無念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인 망념이 없는 것입니다.
시비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별하는 내가 없는 것이므로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아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그 마음자리에서 맑고 깨끗한 생각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하게 되므로
무념은 곧 청정심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상이 없는 맑고 깨끗한 자리에 들어가면 시비분별 하는 경계도 나도 사라져
고요하고 맑은 마음만 남아 있습니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보고
집착할 대상 경계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상無相입니다.
또 이 자리는 일체 어떤 모습도 없기에 보고 집착하여 머물 경계가 없으므로 무주無住입니다.
결국 무념, 무상, 무주는 같은 말입니다.
같은 말인데 다양한 각도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 개념을 외워 내 것으로 하려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듣고 근본 바탕을 여러분들이 이해하게 되면
근본 자리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근본을 알면 무념, 무상, 무주를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마음을 알면 팔만사천 법문이 하나로 꿰어집니다.
그 마음을 모르면 팔만사천 법문이 다 다른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지요.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라고
원문 그대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백련암 큰스님께서는 이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하면 그 마음을 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집착이 없는 마음은 아상이 없기에 그 마음을 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말 집착이 없는 마음은 부처님 마음이지요.
우리 스님은 집착없는 그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그 마음을 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원각경에도 보면 ‘원각에서 부처님 공덕이 유출된다’라고 했습니다.
공덕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집착이 없으면 너, 나라고 하는 시비 대상이 사라지는 마음자리만 남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에서 자동적으로 부처님의 공덕이 흘러나오고 부처님 지혜가 흘러나옵니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 팔만사천 법문도 부처님 마음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부처님 마음자리를 가져봐야 합니다.
말로만 듣는 것과 참선을 통해 마음을 열어가며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불자들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와 참선을 공부한다고 이야기하지요. 공부, 기도, 참선 수행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잘못 사는 세상을 벗어나 행복한 세상으로 가게 해줍니다.
그래서 수행, 기도,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듣고 그 근본 자리를 배우면 ‘중생의 시비분별을 끊어야지’ 이 생각을
가지고 평상시 생활하면서 내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잠재우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수행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좋은 버릇을 들여가는 겁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자신을 긍정해가면서 부처님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수행입니다.
밤잠 안자는 하는 용맹정진만이 수행이 아닙니다.
- 스님 법분 가운데서
⊙ 스님께서 '부처님 되는 것은 쉽다. 내 마음만 내려놓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마음에 새겨놓으면 우리 마음밭에 종자로 뿌려져 어떤 상황이 오면 그래도 마음 내려 놓으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우리 수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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