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톳 길에서 만난 길 손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어느 날 어느 노 년의 신사와 계 족 산(대전광역시 대 덕 구와 동 구에 걸쳐 있는 산높이는 429m) 황 톳 길을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75 세가 된 말기 암 환자였다. 부인과는 작년에 사 별을 했고, 혼자 사는데 자식들은 1 남 1 녀 로 서울에 산다고 했다.
여기 황톳 길 오기 전에 자식들과 상의 없이 APT 등 모든 재산을 정리했고, 여행 용 가방에 옷과 생활 용품만 가지고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APT에 있던 가재도구는 모두 중고업체에 넘겼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근에 있는 보리 밥 집에 맡겨 놓은 여행 용 가방과 통장, 체크카드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내려가면 미리 예약한 요양 원에 입실하면 된다고 했다.
계족 산 부근이 고향이고 해서 인근 요양 원을 택했다고 한다. 함께 내려오면서 길 손 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 젊은 시절에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 고시 합격 후 서울시에 첫 공직 생활을 한 뒤 총무 처, 청와대 등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앞뒤 안 보고 열심히 일해서 차관보 까지 승진해 잘 지내다가 퇴직무렵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부인이 병간 호 몇 년 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부인이 죽고 나서 혼자 병원 통원 치료와 입원을 몇 년간 반복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자식만 왔다 가고, 며느리는 잘 오지 않았다고 했다. 딸은 가끔 병원에 오면 시어머니가 아파서 병 간호에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병원서 퇴원 후 잠시 딸 집에 들렸더니 손주들이 할아버지한테서 냄새 난다고 잘 오질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이다 보니 조금 앉아 있다가 약속 있어 간다고 하고 황급히 나왔다고 한다. 인근에 살고 있는 아들 집에도 들려서 초인종을 누르니 며느리가 '아이고, 아버님! 연락도 안 하시고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면 어떡 하냐' 며 문전 박대를 받 았단다. 아들에게는 집에 잠시 들렸다 고만 했다.
아들은 퇴근길에 아버지 아파트로 들릴 테니 아파트에가 계시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뒤돌아서며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고 한다.
병들고 늙어서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뒤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여행 경비는 매달 나오는 연금과 아파트 팔고, 재산 정리하면 몇 십억 되니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여 대학 시절 연애 했던 경 포 대, 속초 등을 다니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여행 중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다시 찾아가니 대장암 말기라고 했다.
황 톳 길을 걸으면 좋다고 하여 여기를 왔는데 오랜만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길 손을 만나서 즐겁다고 했다. 꼭,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몇 번을 사정 하기에 신 탄진 부근 부추 칼국수 식당에 갔다. 대장암이지만 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 칼국수를 많이 먹어 그립다고 했다.
식사를 하고, 요양 원에 입실 한다고 하여, 보리 밥 집에 맡겨 놓은 짐을 찾아 내 캠핑 카 로 이동했다. 한참을 캠핑카에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같은 공직 생활 동지라 생각하고 자주 황 톳 길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운동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이후, 계족 산 황 톳 길을 오게 되면 미리 연락해서 요양 원에 들려 허락을 받고, 캠핑 카로 오셔서 함께 황 톳 길을 걷게 되었다.
어느 날 함께 황 톳 길을 내려오는데 저 멀리 서 아버지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서로 한참을 얘기하더니 아들 차로 요양 원에 들어갈 테니 고맙다고 인사하고, 서로 헤어졌다.
며칠 있다가 요양 원에 전화를 했다. 잘 계시는데 아들과 딸, 가족을 만나고 나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고 했다.
그다음 날 요양 원에 직접 방문했더니 면회 사절이라고 한다. 여자 원장 님한테 부탁하여 황톳 길 김 과장이 왔다고 한 번만 말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내려오시는데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고 하면서 자식들이 찾아와서 몰래 재산 처분한 것에 대한 것만 다투고 상경 했다고 한다. 잘 모르는 길 손이지만, 나도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죽거든 자식들에게 알리지 말고, 요양 원에서 화장하여 계족 산 깊은 곳에 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죽은 뒤 통장에 남은 돈은 요양 원에 전액 기부하고, 시설도 보완해서 어려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도와주라고 했다고 한다.
가슴이 멍하고, 뭉클해 지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하 염 없이 흘러내렸다.
다음에 건강이 회복되면 함께 황 톳 길을 걷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나도 시골에 돌아와 들깨를 베어 털고 난 뒤 이 주일 후 쯤 비가 부슬거리는 아침에 요양원에 들렸다. 그런데 그는 지난 금요일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토요일에 자식을 불러 유언장을 보여주고, 인근 화장터에서 요양 원 원장과 함께 화장을 하여 산 꼭대기에 뿌려 주었다고 했다.
공직에서 차관 보까지 승진했으니 일단은 성공한 사람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길 손 이었지만, 같은 공직 동지 애로서 서로 재미있게 대화를 했었는데. 세상사 벼슬에 관계없이 '인생 무 상'을 생각하며 빗속에서 눈물을 한참 흘렸다.
왜 하필!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김 계 전 칼럼]
나는 이 카톡의 글을 눈물을 흘리며 두 번 세 번을 읽었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국민소득이 4만 불의 선진국이
되었다고 그렇 게들 좋아했는데, 원래 선진국은 그런 것인가요?
물질 앞엔 천 륜 도 오 륜 도 인의예지도 없고, 금수(禽獸)같이 살아도 자기 자신만의 잘 먹고 잘 살면 선진국의 국민인가요?
비록 헐벗고 배고팠지만 냉수도 선 후가 있고 시래기 죽 한 그릇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겸양지덕 (謙讓之德)으로 살아 온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모든 희생 감내하면서 자식을 키울 적엔 물론 보험(保險) 성격으로 기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의 기본 가치관마저 저버리는 오늘날 세태가 너무나 서글퍼 백 세 장수 시대를 살아 가자니 한없이 원망스러워 옮깁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늘 건강 관리에 유념 하셔어
행복한 나날 보내시길 기원합니다...받은 글/청 목
2026,04.09 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