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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라는 이름의 훈장

작성자윤슬 조남현|작성시간26.06.09|조회수140 목록 댓글 0

흉터라는 이름의 훈장 ㅡ113

젊은 날의 서책은
너무 무거워 내려놓았으나
세상이 펼쳐놓은 노동의 경전(經典)은
차마 덮지 못했다

사방 십일*(四方十日)의 볕과 바람을
살 속에 매장하며
길 없는 대지위에 육신으로 시를 쓰던
마흔아홉 해
도면과 먹통을 잡아 쥐던 굳은살은
내 영혼이 지상에 남긴 가장 정직한 어휘였다

얼굴에 두 번의 지진이 지나가고
칼날이 쓸고 간 자리에
골짜기가 생기고 무너진 지층처럼
콧등이 이지러진 날

거울 속에 낯선 사내를 바라보는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일그러진 지형도가 바로 내가 건너온
삶의 요새(要塞)였음을,

세상은 이를 일컬어 흉터라 부르고
어떤 이는 실패의 흔적이라 고개를
돌릴지 모르나
내게 이것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당당한 훈장이며
죽음의 문턱을 두 번이나 밀치고 돌아온
사나이의 승전보(勝戰譜)다

눈가에 깊이패인 주름사이로
지나온 세월의 모래바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비록 책보따리 앞의 영광은 내 것이
되지 못했어도
온몸을 부딪쳐 증명해 낸 늙은
사내의 눈빛은
저무는 석양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나의 얼굴은 일그러진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삶이,
그 위대한 집념이,
살가죽 위에 깊이 새겨놓은
가장고결한 자화상(自畵像)이다

*사 방 십일:동서남북으로 열흘을
갈 수 있는 거리. 넓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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