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하얀 밤(밤꽃)ㅡ114
비린 비가 내리지 않아도
가지는 이미
비대해진 기억을 앓는다
어둠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하얗게 탈색된 유령들의 타액
너는 그것을 향기라 부르고
나는 감추고 싶은 내부의
고백이라 적었다
이파리들이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가장진한 문장을 번역하는 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은
꽃가루가 아닌
지독하게 끈적이는 침묵의 파편들
눈을 감으면 코끝을 찌르는
지상(地上)의 서글픈 배란기(排卵期)
달빛은 우유처럼 웅덩이에 고이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가장 은밀한 허물을 벗어던진다
가지를 흔드는 바람의 손길마다
붉은 피 대신
하얀 비명이 툭, 툭, 떨어진다
보아라
숲이 통째로 젖고 있다
뿌리가 감추었던
가장 가쁘고 뜨거운 숨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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