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밥/ 조이섭
아버지는 열아홉에 장가들어 살림을 났다. 몇 년 후, 난생처음 제 이름으로 된 밭을 가지게 된 농부는 부푼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정월 지나고 이월이 넘어오기 무섭게 소의 목에 멍에를 걸고, 쟁기를 챙겨 삽짝 밖으로 나섰다. 잘 벼린 쟁기의 보습과 볏을 시험해 보고 겨울 동안 몸집을 키운 소와 미리 호흡을 맞춰보려는 게다.
“이러!”
“워디여!”
땅이 덜 풀려 쟁기날이 통통 튀었다. 농부는 쟁기를 부여잡고 연둣빛으로 움트는 먼 산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마음은 벌써 가을걷이 마친 들판과 곳간에 가 있는지도 몰랐다. 해가 머리 위에 두 발이나 넘게 남았는데도 느릿느릿 집에 돌아와서 여물을 끓이는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아직 잠이 덜 깼다. 땅이.”
소를 외양간에 부리면서도 눈길은 자꾸 갈다 만 밭머리께로 향했다.
갖은 고생 끝에 마련한 아버지의 첫 땅이었지만, 수확 한번 못해 보고 큰집의 묵은 빚을 갚느라 넘겨주고 말았다. 졸지에 남의 소유가 된 땅을 매일 쳐다보아야 하는 일은 차마 못 할 짓이었다. 고향을 떠나야 했다.
아내와 아들딸을 데리고 수십 년 떠돌던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예순이 넘은 연세에 귀농하여 당신의 땅에다 평생소원이던 과수원을 일구었다.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사과 묘목을 꽂아두고, 그 사이에 땅콩을 심었다. 재작년에 들여놓았던 송아지가 부룩소 티를 뽐낼 만큼 자라자, 주위의 온 산을 헤매다니며 맞춤한 나무를 구해다 멍에와 쟁기를 손수 만들고 다듬었다. 쟁기의 보습과 볏은 읍내장터 대장간에 가서 녀석의 듬직한 몸피에 맞추었다.
아버지의 밭갈이는 단순히 땅을 갈아엎는 노동이 아니었다. 고향 땅에 귀의(歸依)한 노인의 경건한 기구요 의식이었다. 부룩소를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가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이 땅에 고스란히 전해 지기를 바랐다. 지난여름 땀 흘려 뜯어 모은 풀에 인분을 섞어 만든 퇴비를 제수로 하여 하늘(天)과 땅(地)에 아버지(人)의 기원을 담아 가호를 빌었다.
밭갈이는 겨우내 단단해진 땅의 아래위에 숨구멍을 틔우고, 속살을 드러내어 햇볕으로 버무리는 행위이다. 쟁기 끝에 달린 보습이 지나간 자리는 골이 지고, 볏에 밀린 흙덩이가 대팻밥처럼 가지런히 뒤집히는데, 이 뒤집힌 흙덩이를 볏밥이라고 한다. 다듬잇돌만큼 커다란 흙덩이가 가지런히 넘어가 있는 우리 밭은 물론이려니와, 이웃의 논밭을 놉으로 갈 때도 아버지의 쟁기가 지나간 골의 볏밥도 석봉 어머니가 썬 가래떡처럼 가지런해서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들었다.
땅을 깊게 가는 것을 심경(深耕)이라고 한다. 심토(心土)를 드러내어 표토(表土)와 골고루 섞는다. 공기와 흙이 봄 맞은 처녀·총각처럼 마음껏 포옹하도록 한다. 마음의 밭을 가는 과정도 밭갈이와 흡사하다. 딱딱한 외면을 부드럽게 하고, 깊이 감추어져 있던 내면을 드러내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작업이야말로 심경(心耕)이 아닐는지. 그러고 보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와 ‘농자천하지대본’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출발이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라면, 수확을 바라고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가다듬고 땅심을 돋우는 밭갈이와 무엇이 다르랴.
나랏일, 농사일도 근본이 이렇듯 중요한데 글쓰기인들 예외겠는가. 글 쓰는 사람은 농부의 마음처럼 진실해야 한다. 글이 곧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올곧은 마음이 글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것이 세상을 밝게 비추게 된다. 글 따로 사람 따로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것이 어찌 오래 가기를 바라랴. 사람의 일상을 보면 그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으로, 글로 아무리 포장해도 잠시 잠깐 눈속임은 가능할지 모르나 길게 가지 않는 게 세상 이치다.
글 밭에 든 지 올해로 십 년이다. 내가 쓴 글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소리가 아님을 잘 안다. 앞장서서 세상을 이끄는 사자후는 더더욱 아니다. 사사로운 일상, 남들도 다 겪어 익히 알고 있는 편린에 불과한 평범한 내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고백하건대, 어쩌다 어설픈 문장을 하나둘 얼기설기 꿰어 놓았다 싶으면 그 안에 채울 게 변변찮아 무릎 꿇기 일쑤였다. 공연히 귀중한 지면을 낭비하고, 독자의 눈을 어지럽히고, 시간을 빼앗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 두근거린 적도 많았다. 그럴수록 스스로 지난날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내면의 거울(心鏡)을 닦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가다듬는 마음으로 고치고 삼갔으나, 지금 와서 펼쳐 보니 편편이 부족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살아온 자취는 또 어떻고. 가난의 걸림돌에 치어 어린 시절을 우왕좌왕하며 보냈고, 자라서는 넓고 멀리 보는 안목을 갖추려고 힘쓰는 대신 청춘을 낭비하며 비틀거렸다. 피난민촌에서 절대 빈곤에 허덕이며 공단의 공장을 이리저리 전전했다. 어찌어찌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았으나 장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끝끝내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제 앞가림이나 하면서 살아온 것은 거머리처럼 징그럽게 달라붙는 가난을 떼어 놓기 위해 성실·근면했던 부모님의 그늘과 섣부른 가장을 믿고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 덕분이었다.
내가 이고 지며 살아온 삶과 글이 이리저리 엄벙덤벙 꺾어져 바르지 않다. 봄바람 난 총각이 뽕밭에서 기다리는 처녀 만나러 갈 생각에 설렁설렁 갈아 놓은 이랑처럼 천방지축 볼썽사납다. 갈팡질팡 헤맨 삶의 허물을 볏밥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을이 다 지나가고, 찬바람이 코앞에 닥치는데도 곳간에 쟁여 놓은 변변한 곡식 한 톨 찾아보기 어렵다. 아버지의 밭갈이처럼 절실하지도, 깊게 갈지도 못한 결과이다. 그러나 문우들과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앞에 놓고 문학 이야기하면서 절망과 기대의 냉·온탕을 오갔던 추억만큼은 살갑게 다가온다.
동트기가 무섭게 밭으로 나가시던 아버지의 올곧은 마음과 부지런을 닮고 싶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남은 생을 보습에 볏밥 넘어가듯 가지런히 살다가 떠나야 하지 않겠나. 새순이 지천으로 돋아날, 찢어진 색종이 조각만큼 짧은 봄날이 다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