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숨결을 따라 / 이미란
고향의 금산재에 오른다. 이 산은 빈번한 교통사고를 일으키던 공포의 험산險山이었다.
눈 아래 펼쳐 보이는 고령은 대가야 땅이었다. 북쪽에는 가야산. 서쪽으로는 미숭산 동쪽은 여기 금산, 아래는 개포 마루를 연결하는 회천이 휘몰아치고 있다. 개포나루를 통하여 팔만대장경을 회천으로 이동하여 고령을 거쳐 해인사에 안착시켰다. 그만큼 회천은 수량이 많았다. 여기에 자리를 틀은 대가야 땅은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였다.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하고도 대가야는 험난한 천연 지형 덕분에 가야의 맹주국으로 30여 년을 더 유지하였다. 신라 진흥왕 때 월광 태자가 결국 신라의 이사부 장군에게 항복하게 되어 대가야의 무대가 역사에서 막을 내렸다. (562)
마주 보이는 완만한 능선의 주산에는 울뚝불뚝 고분들이 줄지어있다. 지산동 고분군이다. 한국사의 모든 고분군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순장 고분군이다.
고분이 있는 주산으로 발길을 옮겨 천천히 고분 사이를 걷는다.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이 잠든 무덤들이다. 잔디를 이불 삼아 포근히 덮인 무덤들은 웅장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위압적이기보다 온화하다. 신라나 백제처럼 산 중턱이나 평지가 아닌 산 정상 부근을 따라 무덤이 축조되어 있다. 이는 높은 곳이 하늘과 맞닿은 신성한 장소라는 가야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한다.
지산동 44호분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 전시관에는 순장의 흔적과 형태가 그대로 재현되어있다. 왕은 사후 세계에서도 생전에 누리던 생활을 이어 간다고 여겨 왕을 섬길 사람들과 물품들을 함께 묻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풍습에서 당시의 신분 질서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순장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강화된 절대 왕권을 나타내고 있다. 왕의 영원한 삶을 돕기 위해 많은 위치의 사람들을 함께 묻었다. 심지어 아이까지 꼭 부등켜안고 왕의 묘에 산채로 묻혀 죽을 때 아버지의 그 찢어지는 마음을 가히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김훈의 《현의 노래》에 지목된 왕의 시녀 ‘아라’가 순장으로 묻히기 싫어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끝내 잡혀가는 궁녀 설화가 당시의 기막힌 순장의 폐해를 말하고 있다.
긴 세월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작은 토기, 녹슨 칼자루, 웅크린 시체들 하나하나는 단순한 껴묻거리가 아니라 왕을 위해 자신의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침묵이었고, 한 시대가 믿었던 저승의 풍경이었다.
겨울 끝자락의 바람은 아직 찬 기운을 품고 있다. 천오백 년 전 이곳에도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전쟁과 번영, 슬픔과 환희를 지나 결국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언덕 아래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라는 것이 참 덧없고도 장엄하게 느껴진다.
산 밑으로 우륵이 태어나 살았다는 정정골丁丁谷이 보인다. 이곳을 가얏고 마을이라는 이름을 달아 우륵박물관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여기서 울리는 가야금 소리가 주산의 청금정聽琴亭까지 들리는 것 같다. 마을 입구 산 위에는 우륵 기념비가 우뚝 세워져 오가는 길손을 내려다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정정골이라는 이름은 가실왕의 명을 받은 우륵이 가야금을 제작하여 연주하니 소리가 정정하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오래전에 우륵이 연주한 가야금 소리를 왕궁에서 들었다고 했다.
대가야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많은 토기와 철기, 장신구와 무기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조용히 그때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말, 갑옷과 무기들은 당시 대가야가 얼마나 뛰어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위세를 떨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은 나라였지만 강인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해가 서서히 기울며 고분의 능선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순간, 이 언덕들이 마치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노인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세대가 오고 가는 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켜온 존재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늘 새로운 것을 좇지만, 때로는 이렇게 오래된 시간을 만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것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낸 삶의 속도와 마음의 여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천오백 년 전의 숨결을 간직한 대가야의 땅, 고분군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 주어 고맙습니다.”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