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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아카데미 26기

15차시 합평 자료(2026년 6월 15일 월)

작성자홍억선|작성시간26.06.14|조회수92 목록 댓글 0

 

 

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15차시 합평 자료(2026 6 15일 월)

 

 

1. 길아 아재와 도깨비 / 윤도월 3

 

 

1. 나의 외가는 경북 군위군 우보면 모산동 이다. 밀양 박씨 집성촌으로 오십 여 가구가 일가를 이루고 살았다. 부촌은 아니었지만 가가호호는 선대로 부터 물려받은 너댓마지기의 전답에 농사를 지었고 서로들 잔잔한 인정을 나누었다.
2. 길아 아재는 이 마을에서 오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귀여워했고, 성장기를 지켜보면서 될성부른 나무로 보고 싹수를 잘 키우고 싶었다. 길아의 아버지는 윗대로 부터 학문을 배운바가 없어, 난감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3. 마을의 당제나 시제가 있어도 축문을 쓸수가 없어 계란 꾸러미를 들고 건너마을의 훈장어른 에게 청하는 일도 남들보기에도 영 체면이 서질 않았다. 이생각 저궁리 끝에 "그래, 길아를 배우게 하자. 아는 것이 힘이 되고, 알아야 면서기도 되고 더 나아가 면장도 따놓은 당상 아닌가" 저도 좋고 마을을 위해서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상상만 해도 기쁘고 흐뭇했다. 자신처럼 농투성이가 되길 원치않아 농사 거드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경북에서 수재들만 모인다는 안동 농업학교에 진학 시켰다.
4.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졸업과 동시에 길아아재는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을의 민원이나 각종 서류 발급은 물론 그간의 지식으로 벼농사에만 의존하던 터에 또다른 작물을 지배하게 하여 농가소득을 증진시켰다.

5.오늘은 농업학교 동기들의 모임이다 오일장날에 맞추어 화본역 장터에서 만났다. 서로들 반가움에 막걸리 몇순배 돌아가자 지난날을 회상하며 웃고 떠드는 사이에 날을 저물고 사방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이미 유물이 되어버린 급수탑이 거인처럼 우뚝 서있어 그들을 내려 보는것 같았다. 아쉬운 작별에 다음을 기약하고 제갈길을 제촉했다.
6. 막차가 끊어진지도 오래되었고 마을로 돌아가자면 십여리를 걸어야 한다. 도로는 자갈로 울퉁불퉁하게 이어졌고 양쪽은 큼직한 미류나무가 근위병처럼 도열해 있었다. 하늘의 중간쯤에는 보름을 며칠앞둔 상현달이 걸쳐져 있었다.

7. 술에 취해 달빛에 취해 무심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형채도 알수없는 물체가 새파란 눈빛으로 노려 보면서 모래를 자신을 향해 세차게 퍼부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닭살이 돋았다. 이자리를 피하고 보는게 상책이었다.
8. 겨우 한숨을 돌리는가 했드니 이번에는 뒤에서 덩치큰 시커먼 물체가 아재의 양어깨를 누르며 씨름을 한판 하자고한다. 하는둥 마는둥 도망치듯 내리달려 마을초입인 공판장에 다달을 수 있었다.
9. "야무디 야문 길아 아재가 도깨비 에게 홀렸다카네"
"우짜다가?" "화본장 에서 오는길에 그랬다 카네"
어젯밤 일들이 마을의 공동화제가 되었다.
10. 마을의 어른인 당숙이 길아를 불러들였다.
"길아야, 네가 처음 본것은 '납닥바리() 라는 영악한 짐승이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하게 되자 납작엎드려 있다가, 나의 갈 짓자 걸음걸이를 알아채고 무작정 모래를 퍼부은 것이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너에게 미류나무가 씨름을 청한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일들이 많은 너에게 온갖 형태의 도깨비가 꼬득일 것이다.
이를 기끼이 물리친다면, 네가 바라는대로 이루어 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 아재와 마을의 바람대로 면서기가 되었다. 논뚝길을 가로질러 공무수행을 위해 연신 자전기 폐달을 밟아가며 나아갔다. 수십년이 지나 들리는 소문에는 아재는 오직 한길로 나아가 모두들 축하해 마지않는 면장이 되었고, 더 나아가 군수직 까지 이르게 되었다.
12. 어릴적 방학동안의 아슴아슴한 기억들을 풀어 보았다. 나의 삶의 여정에 많은 유혹이 있었다. 도깨비는 속삭인다.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줄께" 많은 돈을 벌게 해줄께"
오래살 수 있게 해줄께"
무작위적 이고 경계선도 없이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홀리고 있다.

13. 유혹은 달콤하며 댓가는 혹독하다. 여차하는순간 당하고보면, 인적 경제적 손실을 돌이키기가 힘이 든다. 이놈들은 인간의 주위를 맴돌며 정신적 육체적으로허술해 보일성 싶으면 어김없이 유혹의 문을 두드린다. 오죽하면 옛부터 종교에 의지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원 했을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2. 내 이름/ 김쌍남

 

 

1. 내 이름은 김쌍남이다사람들은 내 이름을 말하면 꼭 한마디 한다동생이 남자냐고아니면 몇째 딸인가 묻는다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이름 때문에 예민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요즘은 내 소개를 할 때면딸 많은 집 다섯째라고 선수를 친다.

2.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나의 출생은 아들을 학수고대하던 아버지의 희망이 사라지게 만들었다더구나 서슬 퍼런 할머니의 심통으로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고달팠다나는 분위기를 알기나 한 듯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단다.

3.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이 태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내 존재는 달라졌다고추밭에 터를 팔았다고 대접받기 시작했다언니들이 입지 못한 꽃무늬 원피스와 내 등에 짊어진 공주가 그려진 빨간 가방이 그 대가였다역시 나의 기운이 좋았던 모양이다고추밭에 터를 닦아서 그런지 모르지만내 밑으로 남동생이 세 명이나 태어났다,

4. 하잖은 딸이라고 생각했는지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아버지는 내 출생 신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꿈에도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나자 부랴부랴 작명소에 가서 남동생 이름을 지었다어처구니없는 일이다딸의 이름은 면서기가 반 토막 거들고 아버지가 기억을 더덤어 내 머리 정수리에 가마 두 개를 생각해냈다짝 쌍에다 남녘 남자를 써서 김쌍남이 되었다

5. 사실 내 이름이 하나 더 있다. ‘가메. 1초도 딸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머리 정수리 가마 두 개를 보고 가메라고 불렀다는 말은 어린 가슴에 커다란 옹이가 되었다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9남매 중 노래를 제일 못한다한번은 약탕기에 푹 고아진 중닭을 통째로 남동생한테만 주었다야들야들한 닭고기가 남동생 입에 다 들어가는 것을 보고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처음으로 돈 벌면 아버지께는 용돈 한 푼 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6.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무렵에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라 하셨다하지만출생신고를 두 해나 늦게 한 탓에 공무원 시험을 치려면 기다려야 했다그때서야 아버지는 후회했다그렇지만 동생이 넷이나 있는 형편이라 서둘러 취업했다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한몫을 했다그래도 억울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7. 스물다섯 살 때쯤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직장 동료를 대동하고 작명소를 갔다작명소에 가면 공주처럼 우아한 이름을 갖게 될 줄 알았다당장 바꾸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장님은 내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이리 적고저리 적으면서 풀어보더니 보기 드문 복된 이름이란다소위 오행이 뺑 돌았단다나는 속으로 자기 이름 아니라고 함부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8. 내 스물다섯 해가 끝날 무렵 남편을 만났다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고된 시집살이는 힘들었다남편의 이직과 큰애 출산 때 제왕절개 수술비로 전세금을 다 날리고 가난을 친구 삼아 살았다그래도 내겐 희망이 있었다당신 이름에는 남편 복자식 복돈복이 있다는 작명소 소장님의 말을 기억하고 견뎠다어느 날 시아버지께서 한심스러운 듯이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핀잔을 했다. “아버님 제 이름에는 모든 복이 들어있으니 곧 잘 살 겁니다.”면서 큰소리까지 쳤다.

9. 십여 년 전에 친구 남편이 명예퇴직하고 철학관을 차렸다평소 철학 서적을 3천만 원어치나 사서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탓에 그 소식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친구들은 언제 가 볼래서로 말만 꺼낼 뿐이었다더군다나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철학관 나들기가 쉽지 않았다그해 친구의 별장에서 부부 모임이 있었다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저녁을 먹고 나서철학관을 차린 친구 남편에게 이름을 풀이하라고 했다그가 한 사람씩 이름을 풀이 해주고마지막에 내 이름도 봐 줬다모인 이들 중 가장 복 있는 이름이라고 했다.

10.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복 있는 이름이라는 말을 들었다돌아보니 결혼 후 10년간 말고는 돈 걱정하지 않았고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작은아들 말을 빌리자면 남자는 바람 안 피우고월급 꼬박꼬박 갖다 주면 70~80점은 된다고 한다그런 논리라면 남편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다.

 11. 이제 육십 중반을 넘겼다다섯 남매의 맏며느리공인중개사 5보험 영업 28년 세월을 지내왔다언니들과 동생들 사이에서 양보하면서 배려하는 삶이 내 이름에 스며들었을까어쩌면태어나면서부터 기댈 대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는지 모르겠다스스로 다독이면서 힘든 삶을 기분 좋게 ‘복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맞추며 살았다.

12. 길을 걷다가 “김쌍남” 누가 부르면 “하고 웃으며 돌아본다내 이름 그늘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사랑스럽다손주가 김쌍남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아들들과 며느리가 김쌍남 엄마를 부를 때는 휴식을 주는 안온한 숲이 되어 주고 싶다지친 남편이 나를 부를 때는 천수를 다 한나무의 그루터기가 되어 편안히 쉬게 하리라나는 내 이름값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3. 잃어버린 건 틀니가 아니었다 / 박현옥3

 

 

1)전화기 너머 시어머니 목소리가 힘이 없다틀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식사 후 빼놓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졌단다음식물 쓰레기통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했다.

2)“내가 요즘 정신이 없다조금 전 일도 생각이 안 나고...” 그 말속에 자책과 미안함이 배어 있었다어머님은 이십년 전 부터 부분 틀니를 사용하셨다일 년 전 오래 사용한 틀니가 불편해서 새로 맞춰드린 것이었다혹시나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며칠 더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래도 다시 제작해야 할 것 같았다.

3)“예약만 좀 해주면 내가 택시 불러서 타고 갈란다너거는 바쁜데 신경 쓰지 마라.”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치과는 우리 가족이 삼십년 넘게 다니는 곳이다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을 잡았다동행을 만류하는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남은 치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었다사랑니가 좋지 않아 치료 후 틀니를 제작해야 한다고 했다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정도는 더 내원해야 마무리된다고 했다.

4)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못한 데다한 달 연금을 고스란히 틀니 비용으로 써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그러다 문득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올해 아흔이 넘은 치매 할머니를 가족들이 집에서 돌보고 있는데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아 가족들이 매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사는 건 사는 사는것도 아니지.” 어머님은 말 끝을 흐리셨다.

5)아버님 역시 루이소체 치매로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내시다 돌아가셨다병원에 입원해 수면제를 처방받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침대에서 앉았다 눕기를 반복했다자꾸만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 해 병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결국 매일 밤 병실 밖 복도에 침대를 꺼내놓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휠체어를 타고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일어서다 넘어지기도 했다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간병사들 조차 이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위험군 환자로 소문이 퍼지면서 간병사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6)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어머님이기에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팔십대 후반의 연세로 무릎 수술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은 다소 있지만 복용 중인 약 이름까지 다 외우실 만큼 정신은 또렷하다그럼에도 틀니를 잃어버린 사건은 어머님의 정신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듯 했다.

7) 젊은 사람들도 흔히 하는 실수라고치매와는 상관없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님은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한다틀니를 잊어버리고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외출을 할 때면 ‘멋쟁이 할머니라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단정하던 분이 요즘은 외출조차 꺼린다.

8)이제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환자 본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과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전체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지만아직 치매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9)나 역시 생의 반환점을 돌아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어머님의 불안과 두려움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안전장치가 될 순 없지만, 자식들의 미래에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소한의 대비책으로 치매보험과 간병보험을 가입해 두고 있다늙어간다는 것은 몸이 쇠약해짐과 동시에 어느 날 문득 손안의 모래처럼자신의 소중한 기억들이 서서히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함께 염려해야 하는 일 인 것 같다.

10)어머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틀니의 분실이 아니라노화의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삼 주 후면 새 틀니가 완성된다. 그 날어머님의 잃어버린 자신감과 자존감도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4. 우짜든동교/류남옥3

 

 

알록달록 한복 입은 아이들의 찬불가로 시작된 실상사의 초파일은 조촐한 시골학교 학예회 같았다진지하고 정겨웠다기억은 소박한 장면 하나로 마음에 남아 다시 이어지는가보다절 마당에 달아놓은 연등들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부처님 오신 날우연히 들렀던 실상사와는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처마 끝 풍경소리를 들으며 산사의 멋진 밤을 보내려고 다시 찾은 실상사에서 나의 호사스런 바램은 부끄럼이 되고 말았다열두 시간 진행된 참회 기도는 철없는 한 불자의 어설픈 신앙심을 일깨우며 고행의 경험을 하게 했으니밤새도록 지심귀명례 를 반복하며 절을 했다내 안에 묵은 마음들이 드러나고 나를 비워내는 시간이 되었다.

한밤중 연등을 들고 한 탑돌이와 야 참으로 준비된 곰삭은 무김치가 곁들어진 잣죽은분위기와 먹는 것에 진심인 나를 그 와중에 감동하게 했으니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저녁 일곱 시부터 시작된 기도는 다음 날 새벽 여섯 시에 끝이 났다.

피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감내해야 하는 삶의 무게출가를 앞둔 싯다르타의 고뇌와 사유가 엿보이는 반가사유상신이기 전 한 인간이었던 예수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손가락은 다섯 개지만 주먹을 쥐면 하나이다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선을 긋고 싶지 않으려는 나를 나무라도 어쩔 수 없다종교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리라나의 시선은 풀 한 포기에도돌 하나에도의미를 부여하는 어쩌면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이 세상의 다원적인 종교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나는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그저 한 자리에서 함께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중세 유럽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는 무반주 그레고리안 성가단선율의 울림과 공명은 언어를 능가하는 경이로운 힘으로 나의 마음을 깊게 흔든다.

이천오백 년 전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신 분 석가모니과학은 물질을 탐구하며 세상의 비밀에 다가가려 했으나의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 앞에 멈추었고붓다는 처음부터 의식을 바라보며생각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리를 보았으며 늘 우리 안에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깨어있는 마음을 일깨우고자 했다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하지 않다왕에게는 권력과 무상에 대해자만심 넘치는 철학자에게는 공에 대해거지에게는 탐욕과 만족에 대해살인자에게는 업에 대해붓다의 다르마는 명료한 하나의 법이지만 중생의 번뇌가 근기에 따라 다르며 이해를 위한 처방전도 달라야 했기에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 후 사십오 년을 중생을 위해 팔만 사천의 법을 설하셨다사찰에서의 목탁 소리와 처마 끝 풍경소리그 단순한 리듬을 들으며 나를 깨우고 비우려 노력한다이렇게 경계를 하나씩 내려놓으며 한 마음이고자 하는 것은 종교에 대한 나의 사치인가언어로 붙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설명하려 하면 오해가 되고 오히려 멀어지는 그 무엇이해가 아니라 그저 받아들임으로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우주의 섭리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쓸 뿐이다.

산사의 아침이 밝았다오월 보름 내 생일어릴 적 늘 머리맡에서 나직히 기도 하던 엄마의 기일이기도 하다스님께서 우려주시는 차를 마시며 나의 그리움인 엄마를 생각했다.

오래전 남편이 미국에서 연수를 하게 되어 아이들과 나는 그곳에서 일 년간 살게 되었다우리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는 엄마와의 전화는 ‘우짜든동’ 으로 시작된 안부를 묻고는 당신 말이 끝나면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통화료 오른다고 전화를 끊었다왜 그리 끊느냐고 말 할 틈도 없었다엄마와의 통화는 늘 다하지 못한 말로 끝났다다하지 못한 엄마의 ‘우짜든동’ 말속에는 얼마나 많은 당부와 염려가 담겨있었을까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엄마의 그 ‘우짜든동은 기도의 시작이었고 이미 기도의 전부이기도 했음을삶에서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과 결코 닿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아무리 애써도 어긋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엄마의 우짜든동은 어쩔 수 없음의 체념이 아니라 어떻게든 지켜달라는 간절한 맡김이었으리라방법도 조건도 없이 그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딸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기도였음을이제 사 알았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고 항상 원을 하였던 엄마는 그 얼마 뒤 그렇게 돌아가셨다여러 사정으로 나는 한국으로 나올 수 없었다불자였던 엄마를 위해 두 시간이 걸리는 한인 절에 가서 타국에서의 서러움이 겹쳐 마음껏 울었다우짜든동 딸과의 연을 끊지 않고 싶으셨을까엄마는 내 생일날 돌아가셨다.

그 뒤 ‘우짜든동은 나의 신앙이 되었다세상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가능한 간절한 기도의 언어 우짜든동.

우짜든동 고맙습니다.’는 나의 믿음이 되었다.

실상사에서 돌아오는 길초목들이 아침 햇살에 눈부셨다.

 

 

5. 우당탕탕 여학생/김성한3

 

 

1. 요즘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수리 중이다. "점검 중"이라는 안내문 앞에서 한숨을 쉬며 계단을 향해 몸을 돌린다. 5층 주민인 나는 며칠 투덜거렸지만 사흘쯤 지나자 불편이 묘하게 정겨워졌다. 한 칸 한 칸 부딪치는 발소리를 속으로 헤아리며 걷는다.

2.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 내 종아리는 꽤나 튼튼했다. 요행히 지금도 502호인데, 신혼 때 우리집은 주공아파트 502호였다. 연탄을 집 앞 계단에 빼곡히 채워 놓고 살던 시절이 그립다. 그렇게 나는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챙겨가며 계단을 오르내린다. 불편 속에 깃든 미덕이랄까 뭐 그런 사소한 발견을 혼자 자랑스러워하면서.

3. 어느 날 아침이었다. 현관문을 닫고 계단쪽으로 막 돌아서는데 위쪽에서 쿵쿵쿵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두 칸씩 급히 뛰어내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돌아보니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었다. 가방끈은 어깨에서 달랑거리고, 머리끝은 미처 다 마르지 않아 촉촉했다.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맞은 얼굴이 막 구운 빵처럼 발그레했다.

4. 내가 하필 좁은 계단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이는 급히 속도를 줄이며 내 뒤꽁무니에 바짝 붙었다. 추월할 틈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아이의 발은 안절부절 다음 발자국을 어디에 놓을지 가늠하고 있는 듯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어른답게 한마디 건네고 싶었다. 나는 살짝 돌아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천히 가거라. 요즘 안 하던 계단 운동도 하고, 이거 괜찮다 그쟈?"

말하는 순간 나는 내심 흐뭇했다. 동네 어른의 푸근한 한마디, 불평 대신 긍정을 권하는 작은 가르침. 며칠간 내가 길어 올린 지혜의 한 모금을 아이에게 살짝 나눠주는 셈이랄까.

5. 아이의 대답은 짧았다.

"우리 집은 12층이에요. 힘들어요. 먼저 갈게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는 내 옆구리 틈새를 비집고 휙 추월했다. 쿵쿵쿵 발소리가 두세 박자 만에 까마득해지더니 이윽고 1층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6. 나는 계단에 잠시 멈춰 서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동네에 중고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여기서 약 1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다. 젖은 머리 휘날리며 달려갈 아이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5층과 12. 같은 아파트, 같은 고장 난 엘리베이터, 같은 계단. 그러나 나는 "운동도 되니 좋다" 했고 아이는 "힘들다" 했다. 누가 맞을까?

7. 우리는 같은 사실을 두고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5층의 여유로움은 12층까지 가 닿지 않았다. 숫자로는 단지 일곱 층 차이지만 다리로 일곱 층은 산수가 아니다.

8. 생각해 보면 세상의 많은 오해가 바로 이렇게 생겨나는 듯하다. 같은 비를 맞으면서 누구는 "낭만"이라 하고 누구는 "지겨움"이라 하는 것, 같은 숙제에 누구는 "성장"을 보고 누구는 "괴롭힘"를 견디는 것. 차이는 비에 있지도, 숙제에 있지도 않다. 다만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층수가 서로 다를 뿐이다.

9. 나는 내 5층에 서서 12층을 가르치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5층 사람의 여유를 12층 사람의 숨가쁨 위에 살포시 얹으려 했다. 어른을 자처하는 꼰대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위로라는 이름의 무신경, 충고라는 이름의 무지. ‘아차하는 느낌이 퍼뜩 들었다.

10. 남의 사정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층수를 잠시 잊는 일이 아닐까? 익숙해진 높이에서 발을 내려 상대의 계단 수를 가만히 헤아려보는 일. 무릎이 어떻게 뻐근한 지, 가방 끈이 어떻게 어깨를 파고드는지를 그 아이의 다리로 잠시 상상해 보는 일이리라.

11. 계단을 다 내려와 현관문을 밀고 나섰다. 지금쯤 아이는 교문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햇빛 속에 서서 나는 오늘 받은 수업료를 셈해 보았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 한 대, 12층 여학생의 한마디, 그리고 5층 어른의 부끄러움 한 줌. 비싼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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