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김쌍남
1. 내 이름은 김쌍남이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말하면 꼭 한마디 한다. 동생이 남자냐고?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름 때문에 예민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요즘은 내 소개를 할 때면 아예 딸 많은 집 다섯째라고 선수를 친다.
2. 나는 태어나서 환영받지 못했다. 아들을 학수고대하던 아버지의 희망을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할머니의 심통으로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더고달파졌다. 그 분위기를 알기나 한 듯 태어날 때부터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단다.
3.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태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내 존재는 달라졌다. 고추밭에 터를 팔았다고 대접받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입지 못한 꽃무늬 원피스와 내 등에 짊어진 공주가 그려진 빨간 가방이 그 대가였다. 역시 나의 기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내 밑으로 남동생이 세 명이나 태어났다.
4. 하찮은 딸이라고 생각했는지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아버지는 내 출생 신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꿈에도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나자 부랴부랴 작명소에 가서 남동생 이름을 지었다. 딸의 이름으로 내 머리 정수리에 가마 두 개를 생각해내어. 짝 쌍雙을 쓰고 면서기가 반 토막 거들어 남녘 남南자를 넣어 김쌍남이 되었다.
5. 사실 호적에 이름이 올리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 있다. ‘가메’다. 1초도 딸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머리 정수리 가마 두 개를 보고 가메라고 불렀다는 말은 어린 가슴에 커다란 옹이가 되었다. 한번은 약탕기에 푹 고아진 중닭을 통째로 남동생한테만 주었다. 야들야들한 닭고기가 남동생 입에 다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돈을 벌면 아버지께는 용돈 한 푼 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6.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무렵에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라 하셨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두 해나 늦게 한 탓에 나이가 차도록 기다려야 했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후회했다. 그렇지만 동생이 넷이나 있는 형편이라 서둘러 취업했다. 내가 벌어오는 돈은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억울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7. 스물다섯 살 때쯤,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직장 동료를 대동하고 작명소를 갔다. 작명소에 가면 공주처럼 우아한 이름을 갖게 될 줄 알았다. 당장 바꾸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장님은 내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리 적고, 저리 적으면서 풀어보더니 보기 드문 복된 이름이란다. 소위 오행이 뺑 돌았단다. 나는 속으로 자기 이름 아니라고 함부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8. 그 무렵 남편을 만났다. 결혼과 동시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이직과 큰애 출산 때 제왕절개 수술비로 전세금을 다 날렸다. 그래도 내겐 희망이 있었다. 당신 이름에는 남편 복, 자식 복, 돈복이 있다는 작명소 소장님의 말을 기억하고 견뎠다. 시아버지께서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핀잔을 했을 때, “아버님 제 이름에는 모든 복이 들어있으니 곧 잘 살 겁니다.”면서 큰소리까지 쳤다.
9. 십여 년 전에 친구 남편이 명예퇴직하고 철학관을 차렸다. 친구들이 가보자고 했을 때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부부 모임이 있던
날 철학관을 차린 친구 남편이 이름 풀이를 했다. 한 사람씩 이름을 풀이 해주고, 마지막에 내 이름도 봐 줬다. 모인 이들 중 가장 복 있는 이름이라고 했다.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복 있는 이름’이라는 말을 들었다.
10. 돌아보니 결혼 후 10년간 말고는 돈 걱정하지 않았고, 자식들도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아들 말을 빌리자면 남자는 바람 안 피우고, 월급 꼬박꼬박 갖다 주면 70~80점은 된다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남편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다.
11. 이제 육십 중반을 넘겼다. 다섯 남매의 맏며느리, 공인중개사 5년, 보험 영업 28년 세월을 지내왔다. 태어나면서부터 기댈 대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다독이면서 힘든 삶을 기분 좋게 ‘복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맞추며 살았다.
12. 오복을 품고 있는 내 이름 그늘아래 살아가는 가족 앞에서 나는 당당하다. 김쌍남 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손주에게도 안온한 숲이 되어 죽고 싶다. 지친 남편이 나를 부를 때는 나무의 그루터기가 되어 편안히 쉬게 하리라. 나는 내 이름값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