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황무선
1. 나는 맞벌이 하는 딸을 돕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딸의 집에는 일손이 필요한 청소와 설거지, 세탁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2. 내가 직장에 다닐 때,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닌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정신없이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미력이나마 딸을 도와주는 것이 엄마의 내리사랑이다.
3. 연년생인 외손주들의 웃음소리가 쟁반의 옥구슬처럼 경쾌하게 고막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떤 음악이 이보다 아름답다고 할 것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을 보니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4. 방학이면 연년생인 손주들을 위해서 두 개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초등학교 방학에 급식이 중단되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도시락 당번이 되었다. 반찬을 만들라치면 얼굴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적잖은 긴장감과 미소가 피어난다. 손주들이 먹는 도시락에 할머니의 사랑을 살포시 얹는다. 정성이라는 손맛을 입혀 도시락을 준비하면 안도감이 넘실댄다.
5. 어느 날이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배달하러 갔다. 도시락을 현관문에 걸어두면 빈 도시락 두 개가 맞이한다. 검은 비닐에 담긴 빈 도시락을 후미진 곳에 두고 운동을 갔다. 운동이 끝난 후 도시락을 찾으니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아 종량제 쓰레기통을 뒤지니 검정 비닐에 담긴 도시락이 얼굴을 내민다. 아파트 관리인이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버린 것이다. 손주들의 도시락을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6. 손주들이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오래 먹으면 질리게 된다. 손주에게 먹일 도시락에 사랑을 쏟는 것이 할머니의 마음일 터이다. 매일 반찬 메뉴를 무지개 색깔로 바꾸는 것이 숙제로 다가왔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한다.
7. 동선이 짧은 집에서 놀아줄 때는 주로 술래갑기 놀이를 한다. 나는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천천히 반복하며 뜸을 들인다. 아이들은 구석진 곳이나 침대 밑에 몸을 숨긴다. 간혹 알면서도 못 본 척 눈을 감아주며 재미와 스릴을 맛보게 했다.
8. 외손녀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그림을 그려서 표현했다. 등산 사진을 보며 빨간 모자를 쓴 얼굴과 상체를 달덩이처럼 크게 그렸고 하체는 날씬하게 표현했다. 손녀가 그린 그림은 순수함과 솔직함이 녹아있었다.
9. 손주들은 방학에 앞산 공원 스포츠센터에 발레를 배우러 다녔는데, 매일 시간을 내어 자동차로 태워다 주었다. 집에 와서 다리 찢기의 묘기를 연기하여 한바탕 웃었고 집안 분위기를 살려 주는 손주들이 대견했다.
10. 내 생일이 되면 손주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 손편지를 써서 직접 읽어주었다. 나도 몰래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할머니를 위해 편지를 써 준 손주들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는 걸 좋아했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배려해서 일 것이다. 잠이 올 때는 등을 긁어주면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11.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준 만큼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딸이 미처 챙겨 주지 못한 정서적인 향기를 묵은지를 닮은 고향의 맛으로 보탠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받아 먹는다. 고운 심성과 힘찬 생명력이 덤이 되어 꿈틀거린다.
“항상 할머니가 해 준 음식이 최고예요”.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에 비해 젊어 보여요”.
내 자식보다 손주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 손주들의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 일이 달콤한 유혹이었고 즐거운 비명이었다.
12. 요즘은 손주들이 자라서 용돈이 부족할 때만 찾는다.
“학용품이 필요할 때나 배가 고플 때 사용하렴”.
“용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할머니 집에 와도 돼”.
아이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신이나서 깔깔거린다.
13. 나는 자식보다 손주들이 훨씬 예쁘다. 평생 직장을 다니면서 자식에게 소원했던 내리사랑을 손주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퍼 준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진일 작성시간 26.06.17 드디어 10편 통과 되었네요.
사랑은 내리사랑 이지요.
손자들이 예쁜 말도 잘 하네요.
"항상 할머니가 해 준 음식이 최고예요”.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에 비해 너무 젊어 보여요”.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아왔기에 오늘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활동력은 50대 같이 젊습니다.
부담없이 술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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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진일 스님
항상 긍정적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이 일찍 결혼해서 외손주들이
많이 컸습니다. 어릴 때, 많이 도와주었는데
요즘도 자주 찾아와서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