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가 음5월 3일로 내 생일이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생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한 해를 더 살게 된 것에 대한 감사만은 해마다 더욱 깊어진다.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 지금까지 맺어 온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부처님의 가피 속에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몇해 전 부터 생일때는 '감사 회향'의 방생을 하고 있다.
어제는 감사의 뜻을 담아 미꾸라지 방생을 했다. 작은 생명들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발원하며 기도를 했다.
또한 지금까지 나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아니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신비한 꿈을 꾸었다.
2. 꿈에 도일사형이 어디 갔다 온다고 하면서, 내게
배낭을 맡겼는데, 배낭속에 돈이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내가 보관하는 중, 盜心(도심)이 발동해서 돈을 일부만 슬쩍 빼 내어 주머니에 넣었다.
사형이 돌아와서 배낭을 돌려 받으면서 돈이 부족하다고 얘기하였다. 그래서 내게 추궁을 하였지만, 처음에는 모른 척하다가, 내 소지품을 확인하려고 해서 실토하고 잘못을 용서를 빌었다. 그 잘못을 벌
받아야 한다면서, 어느 보살을 시켜서 내게 향불로 어깨와 팔을 지지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깨어났다. 날이 새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시각과 거의 같았다.
3. 위 꿈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지만, 다른 허물을 간접적으로 꾸짖기 위해서 내게 나타난 사형의 엄한 훈계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출가한 2004년 봄의 행자시절때, 도일사형 절에서 주최한 백마강 방생 기도를 따라 갔었다.
선상에서 방생 후, 방생 기도집(수십 쪽 되는 프린트 물) 수십권 중, 1권을 슬쩍 내 가방에 넣었다. 방생후 기도집을 거두면서 1권이 모자란다고 얘기하셨다.
사형은 "신도들 중에 누가 그냥 가져갔겠지."하면서 넘어 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의 양심이 부끄러웠으나, 이때라도 "기도집 내용이 좋아서 1권 갖고 싶어서, 허락을 받지 않고 가져가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라고 사과를 못 드린 이 죄업을 나는 까마득이 잊어버리고, 매일 "하늘아래 부끄럼 없이 살기를 발원하고, 알게 모르게 지은 업장을 참회한다."고 하였던 자신이 정말 부끄럽고 잘못 했다는 참회심이 뼈저리게 올라왔다.
그제야 이 꿈이 오래전 잊고 지냈던 나의 허물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임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깊은 참회진언을 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4. 아침 일찍 죽을 쑤었다.
정성껏 마련한 죽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영가단에도 함께 공양을 올렸다. "인연 영가분은 모두 함께 오셔서 공양 드십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청했다.
잔을 올리고 삼귀의례와 참회의 삼배도 같이 드렸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사형스님,
당시에 제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투도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참회를 고했다.
그리고 인연영가들께도 말했다.
"제가 알게 모르게 지은 허물이 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서운하게 해 드린 일이 있다면 너그럽게 받아 주십시오."
"이 모든 인연 영가들이 아미타부처님의 원력 속에 편안히 머물게 하시고, 극락왕생토록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했다.
5. 이 꿈은 어제 방생 기도를 함으로써 고요한 내 본성 속에 잠들어 있던 무의식이 보여 준 장면일 수도 있다.
아직도 내게 남아있던 어두운 인연 하나를 밝게 회향시켜 주고자 사형스님이 꿈속에 나타나신 것만 같았다.
당시에 백마강 선상 방생후, 그 방생 기도집 1권을 내가 갖고 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묵인해 준 배려심에 고개숙여 진다.
이 사형스님은 2년 전에 병고로 갑자기 입적하셔서, 우리 절에서 49재를 매주 정성껏 봉행하여 천도를 발원해 드린 영가님이다.
6. 생일날의 감사 방생과 다음 날의 참회 기도.
돌이켜 보면,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다. 감사와 참회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고, 참회는 갚지 못한 은혜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알게 모르게 악업을 짓는다. 매일 불단에 십악참회을 하면서 부족함을 인정하고 잘못을 돌이켜 참회하고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다.
7. 인연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향되는 것이고, 참회는 과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마음을 맑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서원한다.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혹시 제가 지은 허물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 공덕이 모든 중생에게 회향되어 함께 평안하기를 발원합니다."
8.생일날의 방생은 감사의 기도였고, 그 다음 날의 참회는 마음을 씻어주는 기도였다. 덕분에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한 채, 품고 살아온 묵은 업장의 짐 하나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보광사 진일 합장.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황무선 작성시간 26.06.19 진일 스님
'참회는 과거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마음을 맑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진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예. 감사합니다.
벌써 16주 중에 15주가 지났고, 다음 주가 수료일 입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기원합니다.
반갑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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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영숙 작성시간 26.06.19 감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일, 참회는 갚지 못한 은혜를 돌아보는 일,
참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솔직하게 글을 써셔서 감동입니다~ -
작성자진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예. 눈치나 체면치례도 없이 그냥 本心가는 대로 솔직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디 걸림없이 사는 자유가 좋지요.
좋게 감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