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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아카데미 26기

16차시 종강 자료(2026년 6월 22일 월)

작성자홍억선|작성시간26.06.21|조회수62 목록 댓글 0

 

 

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16차시 종강 자료(2026 6 22일 월)

 

 

수필창작 실기(종강)

 

1. 엄마와 나의 맞선 이야기류남옥4

 

 

그날의 기다림은 지루하다기보다 고문이었다시곗바늘은 약속 시간을 훨씬 넘어 지나고 있었다곤혹스러운 그 자리를 힘들어하는 내가 행여 일어날까 염려하는 엄마의 손은 나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다맞은편에는 시어머니 될 분과 친구 엄마이기도 한 중매하는 분이 앉아 있었다약속 시간에 오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마흔여덟 시어머니와괜찮다고 말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는 예순을 한참 넘긴 나의 엄마오월의 화창한 봄날에 있었던 그 일은 그날의 우리에게 너무나 난감한 시간이었다.

저벅저벅 큰 신발이 내 앞에 성큼 멈추었다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신발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를 한참이나 올려 보아야 했다신랑감은 앉지도 않고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같이 나가도 되냐고 엄마에게 허락을 구했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달성공원으로 가자고 했다지금 생각에도 그 시절의 데이트코스는 달성공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결혼 후 하필 왜 달성공원이었냐고 물어보았다너무나 오랜만에 병원 밖을 나왔고 햇빛을 맘껏 쬐고 싶었다고 말했다더 멋진 장소를 알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수련의 생활이었음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오월의 볕은 따가웠다손으로 볕을 가렸다.

힐끗 보더니 처음으로 그가 한 말이다얼굴이 흰데 왜 가리느냐고어이가 없었지만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한참을 걸었다휴게소가 보여 쉬어가자고 했더니할머니가 선볼 때 무얼 먹으면 성사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냥 가자 했다두 번째 한 말이다이게 무슨 상황인가화도 나고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그늘도 없는 벤치에 앉아버렸다조금 미안한지 따라 앉아 있다가 파란 혈관이 햇빛에 두드러진 내 손등을 내려다보며 그가 세 번째 한 말은 혈관이 선명해서 링거 꼽기가 쉽겠다고 했다나는 일어서고 말았다.

우짜든동 나이 찬 막내딸 시집 보내려고 나의 허벅지를 누르며 놓아 주지 않던 엄마가 생각났다참아야 하나공원을 나와 시내 다방으로 갔다우리는 그 흔한 좋아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도 물론 없이 그저 차만 마셨다그리고 지금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내일은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으니 열 시열한 시열두 시만날 시간을 선택하라고 했다나의 인내는 바닥이 났다화를 내고 말았다그 제사 그는 본인의 무례를 사과했다사과한다고는 했지만 늦게 온 것 외에 무엇이 잘못된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그리고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이것이 나와 아들만 셋 있는 집의 맏이이자 종손인 남편과의 처음 만남이었다.

그 시절 대구에는 의과대학이 하나 있었다졸업생이 많지 않은 탓에 의사는 중매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고객이었다그 신랑감들은 병원 부근에서 막무가내 기다리는 소위 말하는 중매쟁이에게 집요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병원 생활이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수련의들은그들의 어머니와 중매하는 분들을 피하느라 거의 전쟁이었다고 했다아마 남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아버지가 안 계셨고 의사와 결혼할 수 있는 세속적인 잣대인 열쇠 하나도 가져가기 어려운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다새삼 생각하니 그런 내가 어떻게 그 맞선자리에 나가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엄마에게 등 떠밀려 만나던 어느 날나를 집에 데려다주다가골목길의 담장에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미꽃을키가 큰 그가 꺾어서 어색한 모습으로 내게 주었다어정쩡하게 받는 내 모습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으리라프로포즈 였을까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가시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예쁜 포장도 없었던 그날의 그 꽃 덕분에 나도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이 되었다.

그해 십일월늦게 낳은 딸이 아버지 없이 또 당신까지 나이가 많이 들었기에고아로 남을까 봐 그렇게도 노심초사하던 엄마에게 그는 막내 사위가 되었다.

결혼 후 서른여섯 나이였다오월에 생일이 있는 나는 며칠 전부터 누구 엄마는 생일 때 장미꽃을 나이 수만큼 받았다느니 하며 유난히 꽃 타령을 했던 것 같다물론 남편을 알기에 기대가 아닌 그냥 한 말이었다생일날 아침에 남편이 출근도 못 하고 어색하게 방을 왔다 갔다 하였다장미꽃 한 송이가 얼마냐고 묻고는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장미꽃 서른여섯 송이가 들어 있음’ 이라고 겉면에 쓰여진 봉투였다그 봉투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어찌 버릴 수 있으랴.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엄마는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된 즈음 일흔아홉에 남편과 내가 만났던 계절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오월 내 생일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 엄마의 손을나는 정작 잡아주지 못했다나의 가족이 낯선 땅에서 일 년을 보내는 사이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엄마의 숨결을 전화로만 들을 수 밖에 없었다남편이 위로했다엄마는 오매불망 막내 딸의 가슴에 늘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고자 하는지도 모른다고.

자식들 바라지하느라 윗돌 빼어 아래 공구고 아랫돌 빼어 위에 공구며 살아왔다고 말하던 엄마집안이 되고 안되는 것은 그 집 안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던 엄마시집살이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남편이 그저 등 한번 쓸어내려 주면여자는 다 풀어진다고 말 없고 무던하기만 한 사위에게 늘 당부하던 엄마였다잔소리로 들렸던 엄마의 말들이었지만 덕분에 층층시하 우여곡절 시집살이를 해낼 수 있었다맏아들이지만 막내 사위가 된 남편은 사위 셋 중 엄마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10 나에게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리움이다내 맞선의 기억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시작된다그날 나의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던 엄마의 두툼한 손길이 아직도 내 마음에 있으니.

 

 

 

2. 아버지의 돋보기 / 임성림 5

 

 

1. 다용도실을 청소하는데 못 보던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먼지를 뒤집어쓴 종이상자 속에 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돋보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한 때는 유품이라고 소중하게 간직했을 텐데 오랫동안 구석에 방치한 게, 마치 아버지를 아무렇게나 버려둔 듯 죄스럽기만 하다. 검은색 뿔테 돋보기를 꺼내 들자, 코 끝까지 내려쓰신 예전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2. 돋보기를 쓰기 전까지의 아버지는 언제나 활기차셨다. 늘 당당하고 여유 있고 자신만만했다. 백팔십 센티미터의 큰 키에 흰 피부와 돋보이는 이목구비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었다. 즐겨하시는 농담 속에는 일상의 유쾌함이 늘 묻어있었고, 가부장적인 세대였지만 일말의 낭만을 아시는 신식 분이셨다.
3. 가끔씩 대문소리를 크게 내며 잠든 우리들을 깨웠다. 못 하시는 약주를 한잔 드신 걸, 어린 내가 알아챌 정도였다. 아버지는 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이리저리 날게 하다 허리 쪽으로 다시 내려 빙글빙글 돌렸다. 헹가래를 받거나 목말을 탄 기분이 이처럼 아찔하고 즐거울까. 나를 숨 넘어가게 해 주는 대신 난 아버지의 질문에 냉큼 대답해야 했다.
"우리 똥강아지 누구 딸?" 하면, "아부지 딸."이라고 몇 번의 문답을 해야만 비행기 놀이가 끝이 났다.
4. 아침이면 엄마는 우리가 받은 지폐를 어김없이 회수해 가셨다. 울상이 된 우리에게 아버지는 만면의 미소를 띠시고 다시 동전을 일일이 나눠주셨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실 때, 자동적으로 영어 한 구절을 외치신다. 유창하게 발음을 굴리기도 하고, 처음과 마지막 단어에 센 악센트를 넣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문장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였다. 로마의 번영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졌다는 의미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노력과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교훈으로 삼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버지의 좌우명이라 한 번씩 의무적으로 소환했는지 알 수 없었다.
5. 보훈처의 안동지청 과장이셨던 아버지는 직장에서도 유능했던 것 같다. 우리가 받은 상장 속에 아버지의 공로를 치하하는 상장이 틈틈이 끼어 있었고 감사패도 본 기억이 난다. 아버지에겐 별명이 하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붙여줬는데 변호사였다. 아시는 것도 많고 언변도 좋으셨던 모양이다. 직원들에게 업무 외에 생기는 일을 잘 해결해 주셨던 모양이다.
6. 보훈처가 주관하는 행사는 주로 현충일 이뤄졌다. 언니들과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의성을 따라가 행사에 참여했다. 충혼탑 뒤편 숲에는, 유월의 신록에 흠뻑 빠진 소쩍새들이 짙은 울음을 흩뿌리고 있었다.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가 아직도 숲에 남아 있는 듯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바람이 휙휙 지나가면 잎사귀들이 서로의 잎을 비비며 푸르른 파도소리를 냈다.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 덧 식순 맨 마지막에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마이크 소리로 울려 퍼지는 아버지의 힘찬 연설에 사람들은 긴 박수를 쳤다. 나라를 위해 힘쓰신 어느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말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의 아버지의 연설은 정말 멋있었고 저분이 내 아버지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7. 대구로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할 즈음, 아버지는 경주로 전근을 가셔 혼자 자취를 하고 계셨다. 집을 떠나 드시는 것도 부실하던 차에, 감사자료를 준비한다고 며칠 무리하셨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시다 어지러워 마당에 쓰러지셨다. 하필이면 근처에 있는 날카로운 정원석에 머리와 목을 찔리셨다. 석 달 정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치료를 다했다며 여전히 불편한 아버지께 퇴원을 종용했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쉰셋이고 나는 여고 일 학년이었다.
8. 신경 쪽에 문제가 있었는지 말씀이 어눌하고 손을 떠셨다.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던 아버지는 먼 지방 발령이 나면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 몸도 힘들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혼자서 재활에 힘쓰는 것도 어려웠겠고 살아갈 걱정은 태산보다 더 컸을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여섯 자식 앞날을 생각하면, 밀려드는 육체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9. 아버지의 유일한 근심 잊기는 바로 신문 읽기였다. 책도 잡지도 아닌 신문이었다. 그 당시 배달되던 신문이 서너 종류는 되었다. 정치면은 물론이고 사회면과 논설등, 모든 면을 꼼꼼히 읽으셨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신문에 집착해 종일 읽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글자 속 반가운 소식에 안도하고,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당신의 아픔을 위로받으신 게 아닐까. 어쩌면 아버지는 몸을 추스른 후 다니실 새로운 일자리를, 신문 구직란에서 열심히 찾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10. 결혼 전 경찰이셨던 아버지는 대구 십일 폭동 사건으로 다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으셨다. 한 알의 총알이 심장을 살짝 비껴나간 탓에 목숨은 구했지만, 두 알의 총상은 한쪽 다리를 구부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폐인이 된 듯 등마저도 구부정한 채,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신문을 읽고 또 읽으셨다. 낡은 돋보기를 눌러쓴 절망의 눈으로, 당신의 풀리지 않는 운명을 한탄했으리라. 그의 하루하루는 돋보기 속에 고인 눈물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토록 당당하고 잘 나가던 분이, 단숨에 그렇게 절망 속을 헤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띠우며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던 그에게 찾아온 불행은, 한참 동안 우리 가족을 비탄 속에 빠지게 했다.
11. 다용도실 청소를 미루고 거울 앞에서 그분의 돋보기를 써 본다. 그때 아버지를 짓누르던 근심의 일부였던 얼굴이 거울 속에 비친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돋보기를 통해 슬픔을 통제하는 법을 알게 되셨을 거라고. 한낱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보았던 돋보기 너머 활자들이, 조금씩 마음을 평정시키고 고통을 이겨낼 용기를 줬을 거라고. 처절한 슬픔을 간직한 아버지의 돋보기를 바라본다. 그것은 단순히 작은 글씨를 크게 보게 하는 물건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한 아버지의 또 다른 눈이었음을 안다.

 

 

 

3.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자연(4)

 

 

1 오월의 푸른 기운이 세상에 뻗치는 봄날, 문경 산북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울창한 숲속에 안긴 김용사에서 대승사로 향하는 길, 열린 차창으로 산 내음이 버스 안으로 훅 밀려들었다. 떨떠름하고 들큼한 감꽃과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굳게 잠겨 있던 기억의 빗장이 열리듯 세월 속에 파묻혔던 오래된 마당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2 버스 창밖으로 어린 시절 보냈던 마을 앞 느티나무가 휙 지나갔다. 요즘은 폐교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초등학교로 들어가던 길가의 아름드리 고목이었다. 차창에 이마를 댄 채 지나간 세월의 아득한 뒤편을 돌아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지만 내 눈은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3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몇 년에 한 번씩은 꼭 이동해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철새처럼 따라다녔다. 거산이라는 낯선 이름의 이 마을도 우리 가족의 머물렀던 많은 간이역 중의 하나였다. 일곱 살, 철없던 시절 몇 해 보낸 곳이었다.

4 전날 비가 내린 마당에는 뽀얀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비린 듯하면서도 구수한 흙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마당을 마구 뛰어다니면, 발가락 사이로 말랑한 흙이 발가락을 간질렷다. 처마 끝에 뚝뚝 떨어지는 빗물은 내 심금을 울렸고, 물기 머금은 산바람이 마당을 건너와 옷자락을 스쳤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던 차가운 흙의 감촉이 육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내 마음에 영화처럼 남아 있었다.

5 친구 울련의 큰아버지인 홍식 아재가 우리 집 마당에서 서성인다. 그는 어머니의 먼 친척이다. 귀가 들리지 않아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대답하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열두 살의 나는 아재가 어버버거려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 남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주는 아저씨였다.

6 아재는 부지런했다. 잠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 무언가를 해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 큰 나무를 베어다 한적한 마을이 울리도록 도끼질을 했다. 겨울철 농한기 때는 뒷방에 앉아서 묵묵히 가마니를 짜고 있었다. 굳은살 박인 손에 쥔 볏짚이 오갈 때마다 가마니기계 틀 소리가 비 오는 날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마술 같은 아재 손놀림을 넋 잃고 바라보곤 했다. 아재 앞에 수북이 쌓인 노르스름한 볏짚 부스러기들을 만지기도 하고 지푸라기를 비벼 새끼줄 꼬는 아재 흉내도 내었다.

7 아재는 꼭 우리 집의 우렁각시 같았다.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장작이 떨어질 때쯤이면 나무 짐을 지어다 놓고, 초가지붕 손볼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갔다. 가을이 되면, 온몸에 알싸한 솔향을 묻히고 와서 산 정기를 가득 머금은 송이를 대바구니에 담아 마루 끝에 툭 얹어놓고 갔다.

8 초겨울 우리 집 마당에서는 메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일을 거들러 온 울련엄마가 바쁘게 오가고 홍련 아재가 무쇠 가마솥에 불이 지폈다. 콩 삶는 구수한 내음과 하얀 김이 쑥쑥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소매를 걷어붙인 울련이 엄마가 삶은 콩을 커다란 함지박에 들이붓고 치댔다.

아이고, 얼간아! 그것도 제대로 하나 못 맞추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손과 입은 쉬지 않았다. 입으로는 콩알 떨어뜨리는 아재에게 호통을 치면서 손으로는 으깬 콩을 동글고 두툼하게 빚었다. 건네받은 아재는 사각 메주 틀에 넣고 꾹꾹 밟았다. 두 사람의 실랑이를 흥겨운 노동가로 듣는 듯 어머니는 웃으며 아직 따뜻한 메주를 틀에서 빼냈다.

9 나와 울련이는 마루에 걸터앉아 어른들이 부르기를 기다렸다. 심부름시킬 때 삶은 콩을 한 바가지씩 건넸기 때문이었다. 솥에서 막 꺼낸 콩은 엄청 뜨거웠지만,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가며 호호 불어 식혀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 뜨거워하며 엄살을 부렸지만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차면 행복했다. 처마 밑에는 짚으로 엮은 노란 메주가 매달렸다. 겨울 햇빛이 서산으로 기울면 메주 그림자가 마당에 길게 늘어졌다. 마당은 마치 피아노 건반이 되었다.

10 아버지의 전출로 우리 가족은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 서 있는 홍식 아재가 보였다. 그는 빈 지게를 지고 멍하니 서 있던 모습은 그 자리에 뿌리내린 느티나무 같았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아재의 모습이 점처럼 작아졌지만, 아재 웃음은 구름 타고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11 소박했던 아재의 손길과 따스했던 풍경들이 그날 그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 아니 이제껏 잊어버리고 살았다. 육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 잠시 스쳐 가는 풍경에 옛 추억이 이렇게 가슴 저리도록 와 닿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다정하게 품어주던 어머니, 엄격했지만 든든했던 아버지도 이제는 이 세상에 떠나셨다. 우리 집 마당을 쓸어주던 버버리 홍식 아재도, 목소리는 컸지만, 일머리가 잘 돌아가던 울련 엄마도 흙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12 그 시절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난다. ? 라는 의문들이 내 안에서 꼬리를 문다. 귀가 먹고 말을 못 하던 홍식 아재는 어떻게 의사를 표현했을까. 글을 모르던 아재 눈에 선생님이신 아버지가 존경하는 큰 바위 얼굴로 비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궂은일을 묵묵히 도맡아 하는 건 아재가 하는 공부였으리라 여겨진다. 착하고 아재를 잘 따르는 귀여운 딸, 몸은 여리지만 강건하고 포근한 어머니, 우리 가족은 아재를 동네에서 대접해주는 사람들이었고 아재는 우리를 사랑했다는 내 짐작이 맞을까? 궁금하다. 이제는 물어볼 데도,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13 글감을 찾아 떠나온 문학기행에서 잃어버린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찾아 그 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기억 속의 산길은 좁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길은 넓고 여기저기 잘 지은 전원주택이 자리를 잡았다. 현대식 건물로 풍경은 달라졌지만 내 마음속 깊은 우물에 고인 추억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구수한 메주 냄새, 노을 속에 멀어지던 홍식 아재, 투박한 욕설 속에 숨겨진 바지런한 울련 엄마의 얼굴도 지워지지 않는 판화처럼 찍혔다.

14 육십 년이라는 시간은 정답던 사람들을 데려갔지만, 그들이 머물다 간 기억과 온기까지는 빼앗아 가지 않았다. 글쓰기라는 매체로 그 옛날의 사람들을 불러다 다시 한번 내 곁에 앉혀보았다.

15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든다. 까만 흙이 잔뜩 묻은 작은 발은 맨발로 디디던 차가운 흙의 감각을 온전히 기억하게 한다. 내 발걸음은 그곳에 머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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