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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용퇴를 촉구한다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26.03.24|조회수460 목록 댓글 0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용퇴를 촉구한다
ㅡ검찰과 함께 떠내려 보내야할 흑역사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1. 창간 정신이라는 기준점

1988년 5월 15일, 한겨레 창간호에 실린 송건호 초대 대표의 창간사는 간결하다. "이 신문은 오로지 국민 대중의 이익과 주장을 대변하는 그런 뜻에서 참된 국민신문임을 자임한다." 2만7천여 명 시민 주주가 50억 원을 모아 만든 신문, 군부독재 시절 해직된 기자들이 주도한 '광장의 신문'의 출발점이었다.
이 창간사는 한겨레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준거다. 오늘 이 기준으로 한겨레 정치면의 핵심 필자인 성한용 선임기자의 글쓰기 패턴을 묻고자 한다. 공인인 기자의 공적 발언은 공적 비평의 대상이다. 성한용 기자의 30여 년 칼럼이 쌓아온 방향성은, 그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겨레의 방향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 '현실론'의 구조 — 조국 사태 칼럼

언론 비평의 핵심은 한두 편의 오판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성한용 기자의 칼럼에는 개혁의 동력이 고조되는 국면마다 그것을 '현실론'과 '타협론'으로 맞받아치는 일관된 패턴이 존재한다. 가장 전형적 사례가 2019년 9월 16일 「조국 사태,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 문제다」다.
검찰이 법무부 장관 후보 가족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강도의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바로 그 시점에, 그는 검찰 권력의 과잉 행사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진보 진영 내부의 '계급적 위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칼럼의 일부 진단은 유효하다. 그러나 타이밍과 비중이 문제다. 검찰 개혁의 당위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점에 내부 성찰론을 전면화한 이 프레임은, 이후 보수 진영의 '진보 위선론'을 정당화하는 데 반복적으로 재활용됐다.

3. 검찰 저항을 '엘리트의 고뇌'로 —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면충돌은, 검찰 개혁이 단순한 제도 논쟁이 아닌 권력 투쟁임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시민들은 선택적 수사, 기소 독점,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분노했다.
그러나 성한용 기자는 이 국면에서 검사들의 조직적 저항을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엘리트의 고뇌'로 묘사했다. 그는 "검사들이 사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의감과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문제일 수 있다"고 썼다. 이와 함께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는 검찰 내부 격언을 인용하며 검찰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는 논조를 폈다.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개개인의 심리적 과잉으로 치환하는 이 방식은, 검찰 개혁의 시급성을 희석시키는 데 기여했다.
더 나아가 그는 윤석열 총장이 추미애 장관과 대립하며 사실상 정치 행보를 시작했을 때, 이를 '검찰의 중립성을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으로 묘사하며 비판의 화살을 정부로 돌렸다. "윤석열은 검찰주의자지 정치인이 아니다. 그를 정당의 대선 후보로 만드는 것은 정부의 무리한 압박이다"라는 논지를 반복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목격했다. 그 '검찰주의자'는 2022년 대통령이 됐고, 2024년 계엄을 선포했다. 칼럼 한 편이 역사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기점마다 검찰의 정치화를 '충정'으로 읽어낸 통찰의 부재는, 그것이 누적됐을 때 어디를 가리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4. '합리적 검사론'과 한명숙 사건의 냉소

검찰 내부의 성비위, 고발 사주 의혹 등 조직적 범죄 정황이 드러나던 시기에도 성 기자의 논조는 일관됐다. 그는 "검찰 내부에도 양심적인 검사들이 많다. 이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이른바 '합리적 검사론'을 반복했다. 거대 권력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선량한 개인들의 존재'로 희석시키는 이 논법은, 개혁의 제도적 근거를 감정론으로 치환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재조사를 둘러싼 그의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의 조작 수사 의혹이 짙었던 이 사건에 대해 시민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할 때, 그는 "이미 확정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들추는 것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식의 논리로 냉소적 거리를 뒀다. '사법 질서의 안정성'이라는 명분은 권력의 과오를 덮는 데 가장 자주 동원되는 언어다. 검찰의 과거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 민주 언론의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결과적 동조였다.

5. 검수완박 국면 — 조중동의 언어를 한겨레 지면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른바 '검수완박' 논의가 고조된 국면에서 성 기자는 전형적인 역풍론을 유포했다. "수사권이 없어지면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 현저히 저하될 것",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검찰의 주장을 여과 없이 한겨레 지면에 옮겼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이를 '치안 공백'과 '국민 피해'의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것은, 조중동이 즐겨 쓰던 '체제 수호'의 언어와 구분이 어렵다. 한겨레 독자들이 창간 이후 38년간 이 신문에 기대해온 '권력 해체'의 논리가 아니었다.

6. 독립성의 경계 — 검찰총장 추천위 참여

칼럼 논조를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성한용 선임기자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비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직 기자가 검찰총장 인사를 논의하는 추천위에 참여하는 것은, 언론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이라는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취재 대상과의 거리 유지는 저널리즘의 조건이지 선택이 아니다.

7. 2024년 총선 — 취재원 포획의 민낯

취재원 포획이 만들어내는 오판의 구조는 2024년 22대 총선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성 기자는 "국민의힘이 최소 1당은 확실하지 않나 싶다"고 단언하며, 국민의힘 내부 자체 ARS 조사와 여의도 내부 전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 결과는 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이었다. 1987년 이후 역대 집권여당의 총선 최악의 성적이었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이전 칼럼이다. 2023년 11월, 그는 "총선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이라는 인식을 "거짓 선지자들의 요설"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 '요설'을 믿고 투표장에 나선 시민들이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막아냈다.

8. 2026년 3월 — 치명적인 헛다리

이 모든 패턴은 2026년 3월 15일 칼럼 「공소취소 거래설이 건드린 '트라우마'…이 대통령 검찰개혁을 믿어야 한다」에서 다시 반복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SNS 글 두 건과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 전언을 근거로, 그는 "이제 검찰 개혁 강경론을 외치는 의원은 김용민 의원 혼자인 것 같습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결론은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초선 의원의 체감'으로 민심을 단언하고, 권력의 의지를 독자에게 신뢰하라고 권고하는 이 구조는 새롭지 않다. 그것은 2019년 조국 사태에도, 2020년 추미애·윤석열 갈등에도, 검수완박 국면에도 반복된 동일한 문법이다.

하지만 현재 검찰청이라는 이름은 역사속에 떠내려갔다. 그의 안간힘을 다한 헛다리는 불과 열흘만에 들통났다. 결정적인 과오다.

9. 용퇴를 촉구한다 — 시민의 이름으로

용퇴라는 표현은 한겨레 국민 주주로서, 그리고 이 신문의 창간 정신을 신뢰해온 독자로서, 공인에게 스스로의 행보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는 시민적 표현이다.
언론인이 특정 사안을 오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직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판은 모든 기자가 한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가 겹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첫째, 패턴이 반복될 때. 한 번의 오판이 아니라 개혁 국면마다 동일한 구조로 동력을 약화시켜왔다면, 이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다.

둘째, 매체의 정체성과 충돌할 때. 한겨레는 '합리적 중재자'가 아니라 '기득권 카르텔에 균열을 내는 신문'을 창간 정신으로 선언한 매체다. 집권 세력의 의지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결론은 그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셋째, 독자·주주와의 신뢰가 소진될 때. 국민 주주들이 한겨레에 기대하는 것은 여의도 내부 논리의 유려한 정리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서슬 퍼런 감시다.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용퇴는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매체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요청이 된다. 우리는 내란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 서있다.

공인의 공적 행위는 공적 책임을 수반한다. 성한용 기자는 수십 년간 한겨레 지면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수백만 독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 영향력에는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정치인에게 사퇴를 촉구하는 칼럼이 정당한 시민적 표현이듯, 공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언론인에게 용퇴를 촉구하는 것도 같은 범주 안에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감정이 아니라 근거로 말했다. 조국 사태 칼럼의 타이밍과 프레임,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에서의 검찰 미화, 합리적 검사론으로 포장된 개혁 희석, 한명숙 사건 재조사에 대한 냉소, 검수완박 국면의 역풍론 유포, 검찰총장 추천위 참여, 2024년 총선 판세의 구조적 오판, 그리고 2026년 3월 현재까지 반복되는 '믿고 따라가기' 논조. 이것은 단편적 실수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패턴이다.

성한용 기자가 한겨레를 사랑한다면, 바로 그 사랑으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30년의 경력은 존중한다. 그러나 그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용퇴를 촉구한다.

그것이 국민 주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당신이 평생 몸담아온 한겨레를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한겨레는 다시 광장의 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의도 내부 논리를 유려하게 정리하는 신문이 아니라, 권력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신문으로. 그 시작은 지금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한겨레의 주인은 의원회관 소파가 아니라, 오늘도 신문을 펼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국민 주주들이다.

▲ 2025년 1월 촛불+빛의 혁명을 완수한 시민들의 행진. 우리는 내란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 서있다.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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