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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꿀벌에서 보는 언론개혁의 본질 ㅡ사유화된 권력을 공유재로 되돌리는 길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26.03.25|조회수123 목록 댓글 0

 

꿀벌에서 보는 언론개혁의 본질
ㅡ사유화된 권력을 공유재로 되돌리는 길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꿀벌의 춤에서 배우는 언론의 원형

꿀벌이 새로운 집터를 결정할 때는 경이로운 과정이 펼쳐진다. 수백 마리의 정찰병 벌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후보지를 조사하고 돌아와 '춤'을 춘다. 그 춤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이자 치열한 설득이다. 동료 벌들은 그 정보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고 직접 현장에 가서 검증한다. 가장 좋은 장소에 대한 공감대가 일정 수준(임계치)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수만 마리의 벌 떼는 이동한다.
여기엔 군림하는 여왕벌도, 정보를 독점하는 사주도 없다. 오직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투명한 정보의 공유'와 분산된 리더십'이 있을 뿐이다. 인간 사회에서 이 꿀벌의 정찰병 역할을 수행하며 공동체의 나침반이 되어야 할 존재, 그것이 바로 '언론'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언론은 공동체의 생존보다 '사주와 자본의 생존'을 위해 춤추고 있지는 않은가.

언론은 왜 '개혁'의 대상인가

최근 SBS사태를 보면서 문득 근원적인 의문이 든다. 언론은 엄연히 사기업이 운영하는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쓰는가? 삼성이나 현대 같은 일반 사기업에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이상한 일이다. 사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본질이며, 그 과정에서 위법이 없다면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그러나 언론은 태생부터 다르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뉴스와 정보라는 '공유재'를 다루는 권력이므로, 이윤이 아닌 공익에 복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공유부(共有富)' 위에 세워진 권력기관

권력은 집단이 의사결정권을 누군가에게 위임함으로써 성립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은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그 핵심에 뉴스가 있다. 뉴스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공유재다. 그런데 공동체가 제도를 통해 허가해 준 '언론사'라는 기관이 이 뉴스와 정보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언론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사실상 권력기관인 셈이다. 심지어 때로는 치외법권적 지위까지 누리는 과도한 권력이 되기도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론사가 누리는 권력과 이윤 창출의 수단인 '전파 기술'과 '정보 네트워크'가 동시다발적인 기술 발달, 즉 공동체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명백한 '공유부(共有富)'이다.

타인의 노고와 공동체의 자산 위에 세워진 권력이 오직 사주의 이익이나 특정 정파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사용된다면, 이는 사회적 약탈과 다름없다. 헌법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명시한 이유는 바로 이 영향력의 막중함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누가 언론을 설립하고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엄밀한 규정 없이,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 공유재를 운영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언론이 마주한 거대한 모순의 구멍이다.

소유 구조의 기형성과 자본권력의 잠식

조선일보와 같이 사기업의 권력이 3대를 넘어 세습되고 있는 것은 언어도단의 기형적인 사건이다.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권력이 세습된다는 것은 중세 봉건제로의 회귀나 다름없다. 한편으로, 국민주주기업으로 출발한 한겨레신문조차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결국은 상업 광고를 무제한 허용하는 '이윤 추구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검찰이라는 현실권력에도 영합하고 있다.

구조가 그러하기에 자본 권력에 쉽게 굴복한다. 아무리 창간 정신이 고결해도, 재원의 줄기를 자본에 대고 있는 한 언론은 거대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홍보 대행사'로 전락할 위험을 늘 안고 산다. 최근 SBS 사태에서 목격했듯, 언론이 대주주의 사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저널리즘은 죽고 경영 논리만 남는다.

그러므로 언론은 적어도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투명하게 관리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단순한 감시를 넘어, 사적 소유가 아닌 시민(국민)이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영리 추구를 배제한 비영리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언론 정상화의 올바른 길이다.

내부 권력의 고착화를 막는 '순환과 임기제'

본질적으로 '권력기관'이라는 언론의 속성을 피할 수 없다면, 이 정체성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내부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특정 인물이 언론사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논조를 사유화하는 것을 목격해 왔다. 한겨레 같은 국민주주 언론 내에서도 특정 필진이나 간부가 장기간 권력을 독점하며 시민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다.

그 핵심 해결책은 내부 구성원, 특히 결정 권한을 가진 이들에 대한 '엄격한 임기제 적용'에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권력은 순환해야 건강하다. 편집권과 논설 권력을 특정 개인이 수십 년간 독점하는 것은 민주적 운영 원칙에 위배된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스콧 트러스트'라는 비영리 신탁을 통해 사주를 없애고, 독일 공영방송이 '방송평의회'라는 시민 거버넌스를 통해 정치를 견제하듯, 우리도 인사와 편집의 권력을 시민과 구성원에게 분산해야 한다.

미디어바우처, 중요한 수단이지만

최근 논의되는 미디어바우처법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시민이 직접 바우처를 통해 언론사에 공적 자금을 배분하게 함으로써, 광고주로부터 언론을 해방시킬 연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우처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만약 언론사가 여전히 사적 소유물로 남아 있거나, 내부 권력이 독점된 상태라면 바우처 수익은 또 다른 방식의 '팬덤 저널리즘'이나 '내부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다. 바우처라는 연료는 비영리 거버넌스'라는 엔진 속에서만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수익이 나면 주주에게 배당하는 대신 저널리즘 현장에 재투자하고, 기자는 자본의 눈치가 아닌 주권자의 바우처를 두려워하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언론의 모습이다.

언론의 '주인'을 찾아주는 길

2년 전 국회에서의 언론개혁법안 실패와 최근의 SBS 사태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곁가지 규제로는 언론을 바꿀 수 없다. 언론은 권력이며, 권력은 사유화될 수 없다는 명제 아래 소유 구조 자체를 수술해야 한다.
꿀벌 사회에서 정보의 사유화는 곧 집단의 몰살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언론사는 비영리법인이 되어야 하고, 그 운영은 임기제와 시민 참여 거버넌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뉴스를 만드는 것은 기자이지만, 뉴스의 주인은 국민이다. 공유재인 정보를 독점해 사익을 취하는 시대를 끝내고, 언론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언론개혁의 종착지다.

5년전 촛불의 시작은 검찰과 언론의 개혁이었다. 우리는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촛불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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