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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중(僧)이 제 머리 못 깎는 시대, '정치개혁 시범 파일럿 시민의회' 가동을!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26.04.03|조회수116 목록 댓글 0

[칼럼초고] 중(僧)이 제 머리 못 깎는 시대, '정치개혁 시범 파일럿 시민의회' 가동을!

이원영(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광장은 뜨거웠지만, 제도는 차갑다

한국 현대사는 두 차례의 거대한 촛불과 빛의 혁명을 거치며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유례없는 이정표를 남겼다. 4.19 혁명부터 6월 항쟁, 그리고 광장의 촛불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뿜어낸 민주화의 에너지는 세계가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바꿨고 정권을 바꿨다. 그러나 삶을 바꾸는 정치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우리는 십년간 두번이나 광장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직 민주주의는 미완성이다. @이원영

그 이유는 수치로 확인된다. 21대 국회에서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성립된 청원 194건의 처리율이 고작 17%에 불과했고, 22대 국회 역시 개원 이후 성립된 60여 건의 청원 중 단 한 건도 제대로 심의되지 않았다. 광장의 에너지가 아무리 뜨거워도, 투표함이 닫히는 순간 주권자는 다시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진짜 주인인가, 아니면 대리 권력자들의 '셀프 입법'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객인가.

이것은 이해충돌이 아니라 권력투쟁이다

핵심 문제는 선거제도와 의원 특권을 둘러싼 정치권의 집단적 이해충돌이다. 선거제도는 민의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고 유능한 인재를 공평하게 발굴하는 통로여야 한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선거구 획정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정치 세력의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격언은 지금의 국회를 향한 가장 정확한 비유다. 심판이 경기 규칙을 직접 정하고, 선수 선발 기준을 자기 입맛대로 고치는 격이다. 대리 권력자들이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입법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것을 '제도의 미비'나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로만 볼게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이다. 기득권 엘리트들이 독점하던 의사결정권을 시민의 손으로 되찾아오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선의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추첨이 선거보다 더 민주적일 수 있다

그 구조의 이름이 바로 '시민의회'다. 민주주의의 고향 아테네에서 '선거'는 오히려 귀족적 제도로 간주되었다. 돈과 조직과 유명세가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는 '추첨(Sortition)'이었다. 평범한 농부와 수선공이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구조, 곧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고 동시에 피치자가 될 수 있다"는 이 평등의 원형이다.

2024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시민의회국제심포지움에서 시민들이 선언하고 있다. @시민의회입법추진100인위원회

스위스는 이 원리를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로 제도화하여 150년 넘게 유지해왔다. 캐나다와 아일랜드는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의회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과 낙태권 헌법화 같은 정치적 난제를 풀어냈다. 우리도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에너지 정책을 숙의하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했다.

"전문성 없는 시민이 복잡한 정치 사안을 다룰 수 있겠느냐"는 의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은 다음 선거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직 공동체의 이익과 상식에 기반해 판단한다. 문제는 시민의 역량이 아니라 시민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는 구조다.

제도는 이상이 아니라 설계다

다만 과거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권고에 그치는 시민의회는 결국 기득권 행정부에 의해 희석된다. 따라서 시민의회는 반드시 법적 구속력을 갖춘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 설계의 그림은 대략 다음과 같다.
5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이 국회에서 방치될 경우, 추첨으로 선발된 150~200명의 시민의원이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집중 숙의한다. 특히 선거법이나 세비 결정처럼 의원이 직접 이해당사자인 셀프 입법 사안은 처음부터 시민의회가 전담한다. 시민의회가 가결한 안건은 국회 본회의에 의무 상정되고, 국회가 이를 재차 거부할 경우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드는 비용은 갈등으로 인해 낭비되는 수조 원의 사회적 비용을 막는 가장 값싼 보험료다.

헌법적 근거도 분명하다. 헌법 제1조 2항의 주권 원리와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도입을 허용해온 헌법재판소 판례(2007헌마843)가 이미 길을 열어놓고 있다.

파일럿이 공명을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설계도도, 대중이 체감하지 못하면 제도는 뿌리내리지 못한다. 민치제(民治制)의 도입은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이다. 기득권 정치가 독점한 의사결정권을 되찾는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시민 스스로가 '효능감'을 경험하는 일이 관건이다. "우리가 직접 판단할 수 있다"는 확신, "이 구조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신뢰가 대중 속에서 먼저 형성될 때 추동력이 나온다.

필자는 그 첫걸음이 바로 '정치개혁 시범 파일럿 시민의회'라고 본다. '시범'으로서 이 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지 대중에게 증명하고, '파일럿'으로서 낡은 정치 문법을 깨뜨리는 혁신적 실험임을 선포한다.

주제는 명확하다. 의원 특권 방지와 선거제도 개혁이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이 주제를 놓고 숙의하여 개혁안을 도출하는 과정이 사회 전체에 공개되는 순간, 두 가지가 동시에 증명된다. 시민이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사안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를.

그 '사건'이 일으키는 거대한 공명(Resonance) —시민의 합리적 상식이 정치권의 탐욕스러운 계산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이 순간이야말로, 민치제 입법 운동을 폭발적으로 확산시킬 기폭제가 된다.

5년전 촛불시민들이 유튜브와 줌(ZOOM)을 활용하여 온라인상에서 집회행사를 하는 모습. 시민의회는 이런 식의 온라인회의도 가능하다. ⓒ촛불행동


주권자가 직접 가위를 들 때

사람을 바꾸는 정치는 일시적이지만, 시스템을 바꾸는 정치는 영구적이다. 4.19 이후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은 정치인들의 선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든 '제도적 주권'으로 보상받아야 한다. 100만 명을 동원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방식보다, 5만 명의 절박함을 150명의 시민의회가 지혜로 숙의하는 정교한 민치제가 훨씬 강력하고 민주적이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머리를 깎지 못한다면, 주권자인 시민이 직접 가위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이다. 이제 광장의 에너지를 숙의의 테이블로 옮겨와 진짜 주인의 권력을 행사할 때다. 국민주권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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