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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 칼럼] 보편성 잃은 사법 판단과 증거중심주의의 위기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26.06.18|조회수52 목록 댓글 0

[조성민 칼럼] 보편성 잃은 사법 판단과 증거중심주의의 위기
- 정철승 변호사 판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법 정의의 과제 -

2026-06-18
조성민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인권학자)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어떤 도덕적 원칙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보편화 가능성(Universalizability)’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세운 행동 지침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도덕적 법칙이 된다. 이러한 도덕판단의 대원칙은 현대 사법 시스템의 법적 판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법적 판결 역시 법률 자체와 마찬가지로 보편화 가능해야 한다. 만약 어떤 판결이 특정 상황이나 특정 인물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되거나, 그 판결을 내린 주체조차 자신과 가족에게 차마 적용할 수 없는 기준이라면, 그것은 이미 법의 이름을 빌린 독단에 불과하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정변호사 사건’의 판결은 바로 이 보편화 가능성의 측면에서 사법 역사의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이 판결이 지닌 사법적 기준이 우리 사회 전체로 보편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황 증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주관적 진술만으로 유죄를 단정 짓는 기준이 보편적 판례로 확립된다면, 대한민국의 일상적인 사회생활은 심각한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억울한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타인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구성원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의 남편이, 당신의 아들이 이와 똑같은 기준에 의해 객관적 증거 없이 범죄자로 낙인찍힌다면, 당신은 그 사법적 잣대를 정의롭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자신과 가족에게 적용할 수 없는 판결은 결코 보편적 정의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사법부 스스로가 형사소송법의 근간인 ‘증거중심주의’를 배제했다는 점에 있다. 사건 현장에는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담은 CCTV 영상이 엄연히 존재했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한 영상 전문가가 성추행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전혀 없다는 취지의 객관적 증언을 제출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피고인의 무죄를 향하고 있음에도, 법원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 채 오직 소위 피해자라 주장하는 일방의 진술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유죄를 선고했다.

이것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사법부의 오독(誤讀)이자 남용이다. 본래 피해자 중심주의는 2차 가해를 방지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취지의 형사정책적 배려이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까지 덮어버리는 무소불위의 증거법적 원칙이 아니다. 증거가 부재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할 진술의 신빙성이, 엄연히 존재하는 객관적 증거의 가치를 압도하는 순간 사법적 정의는 붕괴한다.

이러한 판결의 배경에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정황을 세밀하게 살피기보다, 특정한 이념적 도그마에 매몰된 ‘극단적 페미니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사법부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극단주의적 판결은 장기적으로 여성의 인권 신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의는 한쪽 성(性)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수용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성별 갈등의 전선에 서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식의 판결을 지속한다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신과 극단적인 반목만을 심화시킬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권 신장과 정의로운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극단적 갈등이 아니라, 서로의 인권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상호 존중’과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사법적 기준이 무너져 내린 승리는 상대 성별의 격렬한 반발을 부르고, 결과적으로 인권 운동의 정당성마저 퇴색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단체들 역시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객관적 증거를 무시한 불합리한 유죄 판결이 여성 인권의 승리로 둔갑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대중은 여성 인권 운동 자체를 공정성을 상실한 이익집단의 압력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성별을 떠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엄격한 법치주의야말로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다.

사법부의 판단은 언제나 합당하게 조정되고 해결되어 나가는 '실천적 정의'의 과정이어야 한다. 주관적 진술이 객관적 증거를 압도하고, 이념이 보편적 법칙을 가로막는 판결은 법치주의의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사법부는 지금이라도 보편화 가능성의 원칙과 증거중심주의라는 사법의 대원칙으로 돌아와, 우리 사회가 상호 존중과 조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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