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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토드] 유럽의 도착된 망상

작성자상생21|작성시간26.06.22|조회수21 목록 댓글 0

[유럽의 도착된 망상, 루소포비아에 대해]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

(이해영 교수의 전달내용)

"우리의 러시아 혐오는 러시아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환상이며, 서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며, 러시아 괴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내부적 욕구입니다. 그들이 러시아에 대해 말할 때,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의 지도자들은 우선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혐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병리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는 인상적인 투사적 테스트가 되었습니다.
그 이미지는 심리학적 로르샤흐 테스트와 같습니다. 피실험자는 정신과 의사에게 무작위적이거나 대칭적인 형태에서 무엇을 보는지 말합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성격의 깊고 숨겨진 특징을 투사합니다. 러시아는 우리의 로르샤흐 테스트입니다."

#.로르샤흐 테스트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애매한 자극(여기서는 잉크의 얼룩)에 대해 투영된 인간의 여러 가지 경향, 해석이나 감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숙련된 관찰자는 피험자의 심층에 있는 인격적인 성격의 특징이나 충동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나 내면에 문제가 있는 피험자는 "낙태된 태아가 보입니다", "나무에 목 매달려 죽은 고양이가 보입니다"와 같은 기괴하고 극단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는 이설도 있지만, 흔한 통념과 달리 "얼룩 자체가" 무엇으로 보이냐 같은 단순한 진술로 진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참조)

[러시아인의 외적 침략에 대한 기억]

러시아인들이 자주 나열하는 외적 침략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몽골 침입(13세기)
폴란드의 모스크바 점령(17세기)
스웨덴의 침공(18세기, Charles XII of Sweden)
나폴레옹의 침공(1812)
독일 제국의 침공(1914)
히틀러의 침공(1941)

<Gemini>

러시아는 거대한 영토를 가졌지만, 역사적으로 서쪽의 거대한 평원(동유럽 평원)이 열려 있어 끊임없는 외부의 침공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 러시아의 대외 정책과 "안보 강박"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 러시아를 뒤흔들었던 대표적인 4대 침공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바이킹의 진출과 루스 카간국의 형성 (9세기)
​바이킹의 침략은 러시아를 '파괴'했다기보다는, 역설적으로 러시아라는 국가의 기틀을 세운 사건에 가깝습니다.
​9세기경,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바이킹(그중에서도 동쪽으로 진출한 '바랴그족')은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흑해와 카스피해로 내려왔습니다. 당시 슬라브족이 살던 동유럽 평원은 부족 간의 극심한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진행과 결과: 러시아의 정사(正史)인 노브고로드 연대기에 따르면, 슬라브 부족들은 내분을 종식하기 위해 바이킹의 수장인 류리크(Rurik)를 지도자로 초빙했습니다. 류리크는 862년 노브고로드에 정착해 통치를 시작했고, 그의 후계자들은 남쪽의 키이우를 점령하여 키이우 루스(Kyivan Rus')를 건국했습니다.
이 '루스(Rus)'라는 말에서 오늘날 '러시아(Russia)'라는 국명이 유래했습니다.

​2.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모스크바 점령 (1605~1618년)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시기인 동란 시대(Time of Troubles)에 일어난 서구 세력의 침공입니다.
​역사적 배경: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차르(황제)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러시아는 극심한 왕위 찬탈전과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서쪽의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자신이 죽은 황태자(드미트리)라고 주장하는 가짜 인물들을 앞세워 러시아 왕위를 노렸습니다.
​진행과 결과: 1610년, 폴란드 군대는 혼란에 빠진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크렘린궁에 주둔했습니다. 폴란드의 국왕은 자신의 아들을 러시아의 차르로 앉히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분노한 러시아 민중들이 미닌과 포자르스키 공작을 필두로 의병을 조직해 저항했고, 1612년 폴란드군을 모스크바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듬해인 1613년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서며 근대 러시아 제국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3.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침공 (1812년)
​러시아에서 제1차 조국전쟁'으로 불리는, 나폴레옹 세력과의 전면전입니다.
​역사적 배경: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영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았던 러시아(알렉산드르 1세)가 이를 어기고 밀무역을 계속하자,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60만 대군(대육군)을 이끌고 침공했습니다.
​진행과 결과: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은 정면대결을 피하고, 후퇴하면서 모든 물자를 불태우는 청야 전술을 펼쳤습니다. 보로디노 전투 등의 혈전 끝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입성했지만, 도시는 이미 불타버린 빈 껍데기였습니다. 보급이 끊기고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동장군)이 찾아오자 나폴레옹은 철수를 결정했고, 후퇴 과정에서 파르티잔(의병)과 러시아군의 추격으로 60만 대군 중 단 수만 명만이 살아 돌아갔습니다. 이 패배는 나폴레옹 제국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4. 히틀러의 나치 독일 침공: 대조국전쟁 (1941~1945년)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참혹함과 인명 피해(약 2,700만 명 사망)를 남긴 '제2차 조국전쟁(대조국전쟁)'입니다.
​역사적 배경: 아돌프 히틀러는 슬라브족을 절멸시키고 독일 민족의 생존권(레벤스라움)을 동유럽에 건설하겠다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적 야욕을 가졌습니다.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조약을 깨고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며 소련을 기습 침공했습니다.
​진행과 결과: 독일군은 압도적인 전격전으로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했고,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900일 동안 봉쇄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굶겨 죽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1943)에서 도시를 사수하며 전세를 뒤집었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탱크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결국 1945년 5월,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국회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꽂으며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요약: 유럽인이 지닌 루소포비아의 배경으로 13세기 십자가 전쟁 중 일어난 동로마 제국의 성당 파괴와 약탈이라는 역사적 범죄 행위에서 형성된 자기혐오의 잠재의식이 이후 오히려 러시아인에 대한 증오로 표출된 도착적인 망상이 도사리고 있지만,

실제 ​러시아인들은 주기적인 서구 세력의 침공이라는 역사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약하면 서구는 언제든 우리를 멸망시키러 온다"는 강한 피해의식과 생존 본능 그리고 강한 안보 전략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오늘날 러시아가 주변국(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을 완충지대로 삼아 서방(NATO)과의 거리를 두려는 지정학적 전략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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