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주인되는 사법으로
ㅡ미국의 배심제와 사법인사제도를 토론하며ㅡ
김종구 조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이번 ‘미국의 배심제와 사법인사제도’ 세미나에서 토론을 맡게 되었다. 발제자 김원근 변호사님의 발표를 들으며, 우리의 사법개혁 논의가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세미나를 기획하신 주최측에 감사드리며, 이 글을 통해 우리가 함께 고민할 몇 가지 지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혼합법 체계
오늘날 한국 법체계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떤 역사를 통해 현재의 제도적 기반에 이르렀는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독일 색채가 짙은 대륙법 체계를 일본을 경유하여 받아들였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영미법과 대륙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영국식 판례법의 방대한 분량을 단시간에 소화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로 성문화된 유럽 대륙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일본이 수입한 나폴레옹 법전의 영향은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우리의 법체계 역시 대륙법계로 기울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일본과 한국의 법은 다시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았다. 미 군정청은 일본 정부에 전문법칙(hearsay rule) 같은 영미법 제도를 도입하도록 요구했고, 그 결과 일본의 신형사소송법은 1948년 개정 때부터 영미식 증거법의 요소를 포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54년 제정된 우리 형사소송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군정법령과 일본 신법을 동시에 참고했던 입법자들은 여러 영미법 원리를 일부 수용하였고, 결국 우리의 형사절차는 대륙법과 영미법이 절충된 혼합형 체제로 자리 잡았다.
필자는 종종 “우리 법은 대륙법이니까 영미법을 들여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접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실질적 법체계와 세계적인 흐름을 오해한 것이다. 현대 법학의 조류는 어느 한 전통의 ‘순수성’보다는 ‘보편적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다. 더 편리하고 인권 친화적이며, 사회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법리를 채택하는 것이 각국의 방향이다. 우리 역시 이미 혼합법체계를 밟아오고 있으므로, 이제는 그 융합을 일관된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에서 나는 이번 세미나의 주제—미국의 배심제와 사법인사제도—가 가진 의미를 매우 깊게 느낀다. 법은 시민의 삶과 분리된 추상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상식과 정의감이 투영된 산물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사법통제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배심제다.
한국의 배심제 논의는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다. 1920년 일본이 배심제를 도입했을 때 우리 사회에도 도입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었으나, 끝내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해방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들어서야 비로소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를 위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고, 2008년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시행으로 현실화되었다. 나는 이 제도를 ‘한국형 배심제’, 즉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를 절충한 형태라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사법제도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 배심제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살리려면
그렇다면 우리 사법의 배심제는 무엇이 다른가? 미국에서는 헌법이 직접 배심재판권을 보장하고, 배심원의 평결이 법원을 기속한다. 반면 한국의 배심재판은 단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할 뿐이며, 헌법이 명시적으로 이를 규정하지 않는다.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배심제가 오히려 위헌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 적도 있다. 게다가 배심원의 평결이 법원을 기속하지 않고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는 점도 큰 차이다. 법관은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하되, 최종적으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장기적으로 배심원의 평결이 실질적 구속력을 가지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는 시민의 사법 참여를 단순한 절차의 ‘형식’에서 ‘내용’으로 전환해 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모든 형사사건에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법적으로 보장되지만, 실제로는 2~3%의 사건만이 배심재판으로 이어진다. 증거법의 발달과 변호제도의 전문화로 인해 배심재판이 장기화되면서, 대부분의 사건은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민이 형사사법 절차에 상징적이면서 실질적으로 관여할 기회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시민적 참여가 사법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배심제의 이상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적 한계 또한 직시해야 한다. 모든 사건을 배심재판으로 돌릴 경우,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재판이 마비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 한정’과 ‘신뢰의 강화’다. 어떤 사건을 배심제의 대상으로 삼을지, 그리고 배심원의 평결을 어떻게 법원이 반영할지를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 나는 그 방향에서, 배심원의 평결에 일정한 기속력을 부여하되, 법관에게는 제한된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미국 기소배심제(대배심)의 의미
이처럼 배심제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기소제도의 민주화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 형사사법체계는 검사에게 기소권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전문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권력적 왜곡을 낳을 위험도 내포한다. 나는 이 지점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형벌권은 국가가 독점하되, 그 행사의 출발점인 기소는 시민의 감시 아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대배심제(grand jury)’가 던지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대배심은 시민이 검사의 소추 시도를 심사하고, 필요한 경우 자료 제출을 강제할 권한까지 갖는다. 다만, 이러한 제도를 그대로 한국에 이식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따른다. 시민기구의 전문성 부족, 피의자 방어권의 미비, 그리고 검찰이 절차를 활용해 오히려 권력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나는 그래서 미국식 대배심의 ‘복제’보다는 ‘변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법원 산하에 시민기소위원회를 두어 검찰의 기소 판단을 일정 부분 통제하는 방안이다. 특정 중대사건이나 권력형 범죄에 대해서는 시민기구가 검찰의 자료를 심사하고, 그 결과에 일정한 기속력이 부여되는 것이다. 일본의 검찰심사회처럼 불기소 결정을 통제하는 모델도 참고할 만하다. 기소권의 통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제도적 과제이며, 민주주의의 심장부에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법인사제도 또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사인소추제 대신 일찍이 검사제도를 확립했다. 중앙정부와는 별개로 각 주와 카운티에 주민이 직접 선출한 법무부장관(State Attorney General)과 지방검사장(District Attorney)이 존재한다. 이들은 선출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도 시민에 의해 평가받는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 역시 검찰총장이나 지방검사장의 선거제 도입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출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정파적 경쟁이 사법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국민이 검찰 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사법 독립의 현실적 기반이 될 것이다.
시민이 주인되는 사법으로
법관 선출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1960년 헌법 개정으로 잠시 시행되었던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법’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시도였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법관 자격이 있는 선거인단이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비록 단기간에 끝났지만, 시민이 사법인사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은 지금도 의미 있는 선례로 남는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법관 선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사법부를 국민의 감시 아래 두는 민주적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의 세부 설계는 쉽지 않겠지만, 법관 선출제는 ‘시민의 사법 참여 확대’라는 큰 원칙 안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법제도의 개혁 방향은 분명하다. 권력은 통제되어야 하며, 그 통제의 핵심 수단은 시민의 참여다. 영미법에서 비롯된 시민참여의 정신은 이미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대륙법 전통의 국가들조차 법관중심주의를 완화하고 배심제를 도입하는 흐름에 있다. 우리도 이제 사법의 폐쇄성을 넘어, 시민이 함께 판단하고 책임지는 민주적 사법을 구축해야 한다. 배심제의 성숙, 대배심제의 도입, 법관과 검사 인사제도의 개혁은 그 구체적 실현 경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사법개혁이라는 거대한 화두가 기술적 제도 개편이 아니라 시민의 주권 회복이라는 근본 정신에서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법,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