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권자의 사법(司法)을 선언하다: 2026년, 왜 다시 사법개혁인가
법조인으로서 25년의 세월을 보낸 필자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을 말하지만, 정작 사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진정한 사법개혁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사법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는 '사법 주권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1. 사법권은 국민의 주권이며, 모든 개혁의 근본입니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합니다. 사법권 역시 주권의 핵심적 일부입니다. 국가의 모든 개혁 중 사법개혁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법이 사회의 갈등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고 정의의 기준을 세우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사법이 썩으면 입법과 행정의 부패를 단죄할 수 없으며, 국민의 기본권은 종잇조각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법개혁은 모든 개혁의 토대가 되는 근본적 개혁입니다.
2. 민주국가의 사법 vs 전제국가의 사법
사법의 목적은 국가 체제에 따라 극명하게 갈립니다. 민주법치국가에서 사법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호'에 있습니다. 반면, 전제군주국가나 독재국가에서 사법은 '군주의 통치권을 법적으로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사법 현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판사들이 헌법적 가치와 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기보다, 법령의 기계적 해석을 통해 통치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통치를 위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3. 일제 식민지 잔재의 고착화와 판사들의 마인드
대한민국의 현행 사법제도는 1907년 일제가 조선을 무단 통치하기 위해 도입한 '재판소구성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료법관제와 상명하복식 사법 행정은 식민지 통치 구조의 유산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입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 판사들의 내면에는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일제 판사들이 가졌던 '엘리트주의적 선민의식'과 '국가 우선주의'가 흐르고 있습니다. 국민을 주권자가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마인드는 민주공화국의 판사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입니다.
4. 제도화된 부정부패: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범죄
공직자가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으로 치환하는 행위를 우리는 '부정부패'라고 부릅니다. 판사가 퇴임 후 현직 시절의 인맥과 경력을 팔아 변호사로서 막대한 수임료를 챙기는 행위는 전형적인 부정부패입니다.
정상적인 선진국에서 이러한 행위는 사법의 공정성을 파괴하는 중범죄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를 '전관예우'라는 완곡한 용어로 포장하며 관행으로 치부합니다. 이는 규범의식이 마비된 병든 사회의 단면입니다. 판·검사들이 퇴직 후의 '잠재적 고객'인 권력자와 재력가들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 필연입니다.
5. 2026년 사법개혁의 핵심: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
진정한 사법의 정상화는 "주권자인 국민의 사법 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배심원들이 참관하는 수준을 넘어, 재판의 결과에 국민의 상식과 정의감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가까운 일본은 '재판원 제도'를, 대만은 '국민법관 제도'를 도입하여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법관의 독점적 권한을 분산시키고, 국민이 사법의 주체로 우뚝 설 때 비로소 식민지 사법의 잔재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6. 국민의 사법참여는 진정한 국민주권의 실현
사법개혁은 판사나 검사에게 맡겨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법정의 주인으로 참여하고,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부패 고리를 끊어낼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법치국가로 거듭날 것입니다. 사법권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 사회의 정의는 비로소 바로 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