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시민의 사법 민주화 선언]
박황희 (고전번역학자)
3월 18일 ‘전태일 기념관’에서 열린 ‘주권자 국민에 의한 사법 개혁 연속세미나 종합 토론회’는, 한국 사법 체계의 근본적 전환 즉 ‘사법 민주화’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수개월간 고대 아테네부터 현대 주요 국가들의 사법제도를 비교 연구한 결과, 참가자들은 한국 사법이 여전히 ‘엘리트 중심의 폐쇄적 구조’에 머물러 있으며, 이를 ‘시민 주권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사법권은 ‘법관’이나 ‘법원’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원칙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제왕적 사법 구조’와 법조 엘리트 중심의 인적 폐쇄성이 주요 병폐로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발표된 ‘한국형 사법 주권 개혁안’은 네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국민 참여 재판 확대와 배심제·참심제 도입을 통한 ‘사법 주체의 민주화’.
둘째, 증거 개시 제도 도입과 판결문 공개 확대 등 ‘사법 과정의 투명화’.
셋째, 법 왜곡에 대한 처벌과 전관예우 근절을 포함한 ‘사법 책임 강화’.
넷째, 법관 증원과 재판 지연 해소를 통한 ‘사법 접근성 제고’이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사법 체계를 ‘카르텔화된 권력 구조’로 진단하며, 시민 참여 없이는 어떠한 개혁도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률가 양성 시스템의 문제’, ‘법조인의 특권 의식’, 그리고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 부족’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세미나는 사법 개혁이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으며, 이를 위해 장기적 개헌 논의와 시민 주도의 지속적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토론이 막바지에 이르자, 회의장은 더 이상 ‘세미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 전야의 다락방 같기도 했고, 오래 묵은 분노가 김이 올라오듯 은근히 끓어오르는 찻주전자 같기도 했다.
누군가 말했다. “떠들어야 바뀝니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떠든다’라는 단어가 가진 천박함을 벗고, 어느새 민주주의의 고상한 기술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 웃음은 가벼운 웃음이 아니었다. 오래 참아온 사람들이 비로소 허리를 펴며 내는, 약간은 쑥스러운 기지개 같은 웃음이었다.
“우리가 너무 적게 떠들었대요.”
이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치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공부를 덜 했지 뭐”하고 서로 위로하는 장면과도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 ‘공부’가 바로 10년, 20년짜리 인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국민참여재판’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을 떠올렸다. 과거에는 ‘미친 소리’라던 것들이 어느새 법전 속 문장이 되어버린 세월. 그 시간을 떠올리니, ‘떠드는 일’이야말로 가장 느리지만 확실한 제도 개혁의 도구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약간은 과격하고, 그래서 더 솔직했던 주장들이었다. “대법관이나 검사장 월급을 최저임금으로!” 순간 장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웃음과 탄식이 절묘하게 섞인 소리였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옆 사람을 쳐다보며 ‘이거 진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의 핵심은 분명했다.
“돈을 추구하면 권력을 포기하고, 권력을 잡으면 가난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은 판사 하다가 옷 벗으면 전관예우로 돈 벌고, 다시 국회로 가는 ‘패륜적 법조인’이 너무나 많다”라고 일갈했다. 명예를 얻었으면, 권력은 내려놓고, 권력을 잡았으면, 부에 대한 욕망은 절제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법조인에게 ‘가치의 3권분립’을 자신들부터 먼저 적용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법복이 아니라 수도승의 회색 옷이 더 어울리는 직업이 ‘판사’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세비나 선출직 공무원의 임금 역시 ‘시간당 최저임금’만을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국민에게 봉사할 사람들만이 출마해야 하고, 취업을 원하는 생계형 정치인은 퇴출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소리는 더 근본적이었다. “우리 사법은 식민지의 유산이다. 민주 시민의 뜻을 받드는 ‘선진적 사법’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절에 식민지 백성을 통제하기 위한 막강한 권력의 ‘관료적 사법’이다. ‘일제의 사법 청산’이 진해 되어야 한다. ‘국민 참여 재판’이 제도화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웃음 없이 떨어졌다. 조금 전의 유쾌한 공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그러나 곧 이어진 말이 다시 공기를 흔들었다. “그래서 더 떠들어야죠.” ‘아무리 떠들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야말로 권력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라며, “우리가 너무 적게 떠들었기에 세상이 늦게 변하는 것일 뿐, 떠들면 반드시 바뀐다”라고 일갈하였다. “지금의 사법 개혁 논의가 비록 ‘씨를 뿌리는 단계’일지라도, 시민들이 물을 주고 가꾼다면 반드시 ‘민주적 사법’이라는 열매를 맺고 말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날의 결론은 하나였다. ‘떠드는 사람들은 시끄럽지만, 침묵하는 사회는 더 위험하다’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 일정 때문에 늦게 도착해 앞부분을 놓쳤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에 있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뜨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떠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내린 봄비는 추억처럼 잔잔했지만, 그 안에서 떠들던 사람들의 말은 빗방울보다 조금 더 끈질기게, 그리고 훨씬 오래 땅을 적시고 있었다.
霞田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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