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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극치ㆍ울릉도 선교

작성자김병화|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제목 : 사랑의 극치ㆍ울릉도 선교

을릉도는 동해 한복판에 홀로 솟은 화산섬이다. 육지에서 직선거리로 130킬로미터. 수심 2,000m 심해가 둘러싸고 있다. 사방으로 하늘길과 바닷길이 열린 제주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에도 서너 시간을 견뎌야 입항을 허락받는다.

하물며 100년 전에는 어떠했겠는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이틀에서 사흘을 풍랑과 싸워야 했다. 울릉도는 말 그대로 절해의 고도였다. 그 험한 바닷길을 기꺼이 건넌 여인이 있었다. 호주 출신의 메리 켈리 맥켄지(Mary Kelly McKenzie)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딸 헬렌 맥켄지는 훗날 아버지의 기록을 정리하며 이렇게 증언한다. “아버지 맥켄지는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울릉도 지역을 감독하게 된 것을 특별히 좋아하셨다. 그곳은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된 섬으로 동해 외딴곳에 위치했다.
부산에서 233Km 떨어져 있었다. 작은 배를 타고 이틀에서 사흘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보수도 받지 않고 1년 동안 전도사로 봉사하는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여섯 개 마을에 150명의 신자가 있었으며 그중 20명은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몇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는 여덟 개의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중 네 곳은 자체 예배처를 갖고 있었다. 한 교회에서는 50명의 신자가 9일 동안 모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맥켄지 부부를 기다리고 있던 더 큰 과제가 있었다. 복음을 갈망하는 울릉도 여성들이었다.
조선 사회는 남녀유별의 관습이 엄격했다. 남성 선교사가 여성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가르치기에 큰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울릉도 여성들이 메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헬렌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엄마는 복음을 갈망하던 울릉도 여성들과 소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겨우 18개월 된 나를 벨 멘지스에게 맡기고 울릉도로 떠났어요. 더구나 엄마는 동생 캐서린을 임신한 몸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독하고도 숭고한 사랑의 무게 때문이었다. 한참을 울어도 울렁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비로소 나는 알았다. 복음은 바닷길을 따라온 것이 아니다. 목숨 건 사랑을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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