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베드로전서(벧전)

옥에 있는 영은 누구인가? (벧후 3:19)

작성자김병화|작성시간26.06.12|조회수1 목록 댓글 0

제목 : 옥에 있는 영은 누구인가?
성경 : 벧후 3:19

베드로전서 3장 19절 해석에 대해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전파=개역한글)하시니라”(개역개정)(벧전 3:19) 본문 구절은 성경 전체의 난해 구절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 구절로 알려진 구절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이 구절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해석이 어려운 이유를 다음의 몇 가지로 살펴 볼 수 있겠지요.

A. 궁금증들

1. 옥에 있는 영은 누구인가?
1) 죽은 불신자인가?
2) 구약 시대 죽은 신자들을 말하는가?
3) 타락한 천사들을 말하는가?(타락한 천사 구원 문제를 언급한 내용인가?)
4) 노아 홍수 때 죽은 자들을 말하는가?

2. 옥에 있는 영들에게 무엇을 선포(전파)하신 것일까?
1) 복음인가?
2) 다른 무엇인가?

3. 전파하신 시기는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1) 노아 시대 때인가?
2) 십자가와 부활 사이를 말하는가?
3) 예수님 부활 이후를 말하는가?

B. 다양한 해석들

1. 카톨릭 교회
로마 카톨릭은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3일 동안 지옥에 가셨다고 봅니다(물론 일부 소수 반대 견해도 있습니다).
외경들과 더불어 이것이 사후 구원에 대한 카톨릭 특유의 교리인 연옥(燃獄, purgatorium)설의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2. 루터파 교회
예수님의 지옥 전도 구절로 봅니다.

3. 칼빈
칼빈도 이 구절의 난해함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해석에 대해 소개한 다음 적절한 의미를 찾으려고 단지 한 구절에 불과한 이 구절에 대해 길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가셨다고 하였으니 예수께서 성령으로 옥에 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톨릭과는 해석을 달리합니다. 여기서 옥은 구약 성도들이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고난을 참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성을 기다리는 곳으로 봅니다.
칼빈은 오직 그리스도가 생명의 주요, 심판의 주요, 구원의 주님이심을 이 구절을 주석함에 있어서도 분명히 합니다.
죽은 경건한 자들은 약속된 구원을 바라보며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4. 성경적 견해는?
헤르만 바빙크는 예수님께서 옥 중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가신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요함과 능력과 승리를 선포하러 가셨다고 봅니다. 여기서 ‘전파’는 복음을 전했다(유앙겔리조)는 의미가 아니라 선포했다는 단어(케루소)로 봅니다. 즉 전파는 복음전도(벧전 1: 12, 25; 4:6)가 아니라 부활 승천의 능력 선포라는 겁니다.

우리 성경도
(개역한글)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같혀 있는 영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습니다"라고 "전파’에서
(개역개정)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우리말성경) "또한 주께서는 영으로 옥에 갇혀 있는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이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새번역)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KJV흠정역)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라고 '선포’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노아 시대 죽은 자들의 영에게 가셨는가(벧전 3:20) 하는 난제가 남습니다. 노아 홍수는 온 세계가 멸망 받은 아주 심각한 상징성을 가지는 실제 역사(벧전 3:7)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 역사도 온 세계에 미칠 실제적이면서도 상징적 사건으로 나타나야 했습니다. 즉 노아 홍수 사건은 예수님 십자가 구원 사건의 모형이었습니다(눅 17장 참조).

어거스틴과 전통적 해석은 이 구절에 대해 옛날 노아 시대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거스틴이 볼 때 노아 당시 그리스도는 노아가 선포할 때 노아 안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순종치 않다가 멸망당했다고 봅니다. 이제 베드로는 이들을 옥에 있는 영들로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런 견해도 난점이 있습니다. 18절의 문맥상 그가 가서 선포한 것은 부활 이후 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구절에서 베드로가 강조하려는 것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 무엇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심판 받는 사람은 많고 구원 받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오늘날 신자들은 물질과 세상 복은 크게 여기고 구원은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오늘을 사는 이 땅 우리들은 이 구절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 전서 3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명확한 사실은 인간의 시간으로 언제인지(노아 때인지, 십자가와 부활 사이인지, 예수님 부활 이후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그리스도는 분명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사람의 영들이나 타락한 천사들)에게 가셔서 자신의 승리를 엄숙하게 경고하며 선포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노아 시대이든 베드로 시대이든 오늘날 우리들이든 ‘세상적 선한 양심’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도를 믿어야 ‘참된 선한 양심’이 가능해 집니다.

따라서 본문을 그리스도께서 죽음 이후 두 번째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옥에 복음을 전하러 가셨다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
베드로전서 3장 19절 해석에 대해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전파=개역한글판)하시니라”(개역개정판)(벧전 3:19) 본문 구절은 성경 전체의 난해 구절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 구절로 알려진 구절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이 구절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당연히 마찬가지입니다. 사 전도사님 질문을 받고 제가 이전에 베드로전후서 강해(2005. 5.15-2005.12.11)를 했던 노트를 살펴보았습니다. 벧전 3:18-22절의 제 설교 제목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해석이 어려운 이유를 다음의 몇 가지로 살펴 볼 수 있겠지요.

A. 궁금증들

1. 옥에 있는 영은 누구인가?
1) 죽은 불신자인가?
2) 구약 시대 죽은 신자들을 말하는가? 3) 타락한 천사들을 말하는가?(타락한 천사 구원 문제를 언급한 내용인가?)
4) 노아 홍수 때 죽은 자들을 말하는가?

2. 옥에 있는 영들에게 무엇을 선포(전파)하신 것일까?
1) 복음인가?
2) 다른 무엇인가?

3. 전파하신 시기는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1) 노아 시대 때인가?
2) 십자가와 부활 사이를 말하는가?
3) 예수 부활 이후를 말하는가?

B. 다양한 해석들

1. 카톨릭 교회

로마 카톨릭은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3일 동안 지옥에 가셨다고 봅니다(물론 일부 소수 반대 견해도 있습니다). 외경들과 더불어 이것이 사후 구원에 대한 카톨릭 특유의 교리인 연옥(燃獄, purgatorium)설의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2. 루터파 교회 예수님 지옥 전도 구절로 봅니다.

3. 칼빈 칼빈도 이 구절의 난해함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해석에 대해 소개한 다음 적절한 의미를 찾으려고 단지 한 구절에 불과한 이 구절에 대해 길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가셨다고 하였으니 예수께서 성령으로 옥에 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톨릭과는 해석을 달리합니다. 여기서 옥은 구약 성도들이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고난을 참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성을 기다리는 곳으로 봅니다. 칼빈은 오직 그리스도가 생명의 주요, 심판의 주요, 구원의 주이심을 이 구절을 주석함에 있어서도 분명히 합니다. 죽은 경건한 자들은 약속된 구원을 바라보며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4. 성경적 견해는?

헤르만 바빙크는 예수님께서 옥 중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가신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요함과 능력과 승리를 선포하러 가셨다고 봅니다. 여기서 ‘전파’는 복음을 전했다(유앙겔리조)는 의미가 아니라 선포했다는 단어(케루소)로 봅니다. 즉 전파는 복음전도(벧전 1: 12, 25; 4:6)가 아니라 부활 승천의 능력 선포라는 겁니다.

우리 성경도 ‘전파’(개역한글판, 현대인의 성경)에서 ‘선포’(공동번역,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노아 시대 죽은 자들의 영에게 가셨는가(벧전 3:20) 하는 난제가 남습니다. 노아 홍수는 온 세계가 멸망 받은 아주 심각한 상징성을 가지는 실제 역사(벧전 3:7)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 역사도 온 세계에 미칠 실제적이면서도 상징적 사건으로 나타나야 했습니다.

즉 노아 홍수 사건은 예수 십자가 구원 사건의 모형이었습니다(눅 17장 참조). 어거스틴과 전통적 해석은 이 구절에 대해 옛날 노아 시대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거스틴이 볼 때 노아 당시 그리스도는 노아가 선포할 때 노아 안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순종치 않다가 멸망당했다고 봅니다. 이제 베드로는 이들을 옥에 있는 영들로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런 견해도 난점이 있습니다.

18절의 문맥상 그가 가서 선포한 것은 부활 이후 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구절에서 베드로가 강조하려는 것은 옥에 있는 영들에게 무엇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심판 받는 사람은 많고 구원 받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오늘날 신자들은 물질과 세상 복은 크게 여기고 구원은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오늘을 사는 이 땅 우리들은 이 구절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 전서 3장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명확한 사실은 인간의 시간으로 언제인지(노아 때인지, 십자가와 부활 사이인지, 예수 부활 이후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그리스도는 분명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사람의 영들이나 타락한 천사들)에게 가셔서 자신의 승리를 엄숙하게 경고하며 선포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노아 시대이든 베드로 시대이든 오늘날 우리들이든 ‘세상적 선한 양심’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도를 믿어야 ‘참된 선한 양심’이 가능해 집니다. 따라서 본문을 그리스도께서 죽음 이후 두 번째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옥에 복음을 전하러 가셨다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조덕영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