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순종이다. 로마서 1:5; 16:26의 순종과 믿음은 동격의 소유격으로서 믿음과 순종을 동일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로마서 10:16에서는 복음을 순종하는 것과 선포된 말씀을 믿는 것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순종은 율법을 자기 힘으로 지키려는 노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도록 전존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cf. 갈 2:20). 이 믿음의 순종은 선한 행위, 즉 사랑의 행위를 생산한다. 사실, 행위란 야고보가 비판하고 있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약 2:14-16) 의롭다 함을 받은 믿음의 가시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행위에 근거한다(예를 들면, 갈 5:21; 6:7-8; 고전6:9-10; 고후 11:15; 롬 2:6-9; 엡 5:5-6; 딤후 4:14). 믿는 자를 마지막 구원에 이르게 하는 행위라는 것은 결국 믿음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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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약의 저자들과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도 마지막 심판은 행위에 근거한다. 사실, 행위 심판의 교리는 바울 신학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13-24, 로마서 8:1-4; 13:8-14에서 율법의 완성을 최후 심판과 일관성 있게 연결시키고 있다. 율법의 완성이란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낱낱이 다 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 안에서 율법의 참된 목적과 정신이 만족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율법의 완성이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자에게는 율법의 종말론적인 정죄 선언이 있게 된다. 그런 자는 영생에 이를 수 없고,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율법의 완성이란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다스림에 순복한 삶의 결과이다. 이 성령의 삶은 사랑의 열매를 산출한다. 이것은 사랑 안에서의 율법의 완성이 믿음의 결과임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율법의 완성은 마지막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우리의 결론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와 상충되지 않는다.
(홍인규, [홍인규 교수의 바울 신학 사색], 이레서원, 130-31.)
* 홍인규 교수님은 현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