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台灣)의 홍차(紅茶)
1800년대 중국(中國)의 차묘목을 인도(India)에서 기후와 토질이 비교적 적합한 동북의 아사모(阿薩姆: 아쌈의 중국식 발음)지역과 북부의 다즐링(Darjeeling )지역에 심어 실패하였으나 1823년에 아사모 지역에서 성공을 하면서 현재 아사모 품종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영국인(英國人)들에 의해 농장을 이루어 본격적 홍차(紅茶)가 생산되고 다즐링 지역도 영국인들이 꾸준히 중국의차 묘목을 이식하여 새로운 개량종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맛(味道)과 향(香)이 우수한 우량품종으로 서양에서 각광 받는 최고의 등급차로써 거듭 났습니다.
특히, 16세기부터 차를 즐기는 영국에서 19세기에는 귀족들의 문화로 오후의 홍차가 유행되면서 서양에서 차 수요가 급등하자 동남아 일대 등지에서도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에 서양과 교류가 비교적 활발했던 일본(日本)이 2차 대전을 시작으로 대만(台灣)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때 까지 대만에서는 1899년에 삼정물산주식회사(三井物産株式會社)가 설립되어 대만 북부에 대규모 다원(茶園)을 조성하여 홍차 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은 대만을 점령한 후 차의 재배가 적합한것을 알고 남부에서 홍차의 품종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자국의 소비를 위해 1903년 대만 총독부에 제다시험장을 설치하고 1906년에 생산을 시작했으며 1908년에 러시아(Russia), 터어키(Türkiye)등으로 수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대만차주식회사(臺灣茶株式會社)를 설립하였으나 경영난을 겪으면서 1928년에 삼정합명회사三井合明會社)로 재통합하여 기계식으로 제다방법을 전환하여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만의 초기품종은 일본인들에 의해 인도의 아사모 소엽종(小葉種)을 가져와 심기 시작하여 만든 홍차를 영국 런던의 차경매장으로 보냈어 졌습니다.
당시의 평가를 보면 차의 향이 특이하여 일명 대만향(台灣香)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러나 농도(濃度)와 맛(味)이 인도와 스리랑카의 홍차와 비교해서 낮게 평가 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인이 1925년 12월에 인도의 대엽종인 아사모종의 묘목을 가져와 남투현(南投縣)의 화련(蓮華) 지역에서 묘목을 육성하였습니다.
포리(埔里), 수리(水里), 어지(魚池)등에 시험적으로 심었는데, 결과적으로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일월담(日月潭)에서 묘목을 심게 됩니다.
이 곳은 온도가 높고 습도가 많으며 년 강우량이 2900mm이상, 년평균온도가 19.7°C, 기압 88.7 mmHg, 일조시간 일년총계 1670시간 이상, 해발700 – 1000m, 동서남북의 경사각도등 재배환경이 인도의 아사모 차지역와 상당히 비슷하여 일월담에 다시 아사모 대엽종을 심기 시작해 대만에서 유일한 아사모 홍차 품종 지역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회사들이 투자를 하여 공장을 설립하고 미얀마(Myanmar)지역의 신품종을 심기도 하였으며 그 중에서 고급홍차는 일본 황제에게 진상하는 최고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0년에는 남투포리(南投埔里), 어지향(魚池鄉)등이 생산지역으로 확대 되면서 수출량이 1000여 톤에 이르러 최고의 수출 품목이었으나 점차적으로 맛과 향이 강한 스리랑카 다즐링의 홍차에 국제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암흑기를 보내고 점차 대만의 홍차가 기지개를 펴고 있으며, 맛과 향이 강한 홍차의 대세에서 은은하고 순수한 대만홍차가 서서히 인기를 얻어면서 점차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일월담홍차(日月潭紅茶)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