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미녀 수
한달간의 남면 화정면 일대 교회를 시찰하고 돌아온 열에게는 순천 수로부터 편지가 와있엇다.
겉 봉투에는 수이지만 내용을 보니 순천성경학교 선배로서 모두가 흠모하며 사모하던 숙이였다.
숙은 은주와 비교해도 누가 이쁜지 구분하기가 어려울만큼 어여뻣다.
열이가 은주의 결혼 결심을 들은후 실연속에 잠겨있을때에 숙을 만나 사랑을 고백한후 은주를 쉽게 포기하게 만들어준 숙이였다.
화김에 서방질한다더라고 열은 은주로부터 시집가기로 결정되엇다고 하는 말을 듣고 두번다시 매달리지않고 혹 자신때문에 은주의 혼사가 틀어지거나 소문이라도 나서 은주가 남편으로부터 구박이라도 받을까보아 자물쇠 입으로 되었다.
열은 누구보다도 의처증의 심각함을 알기때문이다.
열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의심하여 평생 괴롭히는것을 보았기때문에 맘속으로만 사랑한 내 자신때문에 은주가 남편으로부터 의처를 당하는것은 막아야한다고 굳게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것만이 열이가 은주에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믿었다.
그대신 은주를 잊게할만한 다른 이성을 물색하게 되었던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애를 쓰지도 않앗는데 열의 1년 선배 숙이 졸업후 서울로 가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겨울 방학 직전에 잠시 순천으로 다니러왔는데 모교를 방문하였다.
숙은 피부가 하얀 크림처럼 맑고 투명하며 깨끗하고 눈이 크고 둥글며 자연 쌍꺼플이며 키도 컸고 몸매의 볼륨도 있엇으며 약간 살이 붙었지만 늘신한 느낌을 주는 순천 최고의 미녀였다.
숙은 자신의 동기생중에도 멋있고 공부잘하는 명주와 로맨스 소문도 약간 있었지만 열은 그 사실을 몰랐다.
전에도 숙이 학교 재학시 수업시간 전후에 복도에서 마주치며 미인이구나라고 생각은 하엿지만 한번도 말을 부쳐본적은 없엇다.
열은 미녀들만 보면 입이 얼어붙어버리는 보통의 총각들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날은 명숙이 빠알간 쉐타를 입고 몸매가 확실히 드러나는 바지를 입고 유유히 운동장을 긴머리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숙과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치며 빛을 뿜엇다.
분명 서로간에 호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표징이였다.
기회는 이때였다.
열은 숙에게로 용감하게 걸어가서 말하였다.
"숙 선배님 오늘밤 저와 순천 장미 다방에서 커피한잔 어때요?"
남녀 학생들도 열과 숙의 테이트 신청 장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숙은 서울물을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화끈하고 애교있게 "좋아요. 장미 다방에서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해요."
그날은 수요일이여서 수요 예배를 드리러 열이는 학생들과 함께 중앙교회를 향하여 매산뜰을 내려가는중에 숙이와 동기생이던 기동이 말하였다.
"나는 그렇게 테이트를 부탁하여도 들은척도 안하더니 열이 전도사가 데이트를 신청하니 곧바로 오케이하는구마 잉- "하며 열이를 진담반 농담반으로 놀렷다.
열이와 숙은 장미다방에서 뜨거운 커피를 시켜두고 마주 앉았다.
열의 눈엔 숙이 바로 장미꽃과 같다고 생각되었다.
은주는 백합화라면 숙은 장미 그것고 빨간 장미꽃과도 같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하였다.
열은 평생 처음으로 마시는 커피가 입에 썼다.
생전 처음 다방에 들어온것이지만 커피도 생전 처음 마셔보는 중이엿다.
숙은 먼저 입을 열엇다.
" 공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가실거에요?"
열이는 는 " 아직은 잘 모르겟습니다. 건축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서 장로가 되고싶기도 합니다."
숙은 "공 전도사님은 돈을 많이 벌고 싶으신가 봐요?"하며 미소를 지었다.
숙이 듣고싶은 말은 열이 "예,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아갈것입니다."였다.
열이는 숙에게 "숙 선배님 넘 아름답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앞으로 결혼합시다. 네?"
이렇게 말해버렸다.
숙은 미소를 지으면서 순진하고 솔직한 열이를 맘에 들어하는 표정이였다.
서로는 같은 학교를 3년간 다니면서 숙은 주욱 지켜보았던것이다.
숙은 1년 선배이니까 2년간 지켜본것이 된다.
나이는 서로 같은 토끼띠였다.
학교 다닐때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열이의 성급한 사랑고백도 이해하였던것이다.
숙은 "저는 이번에 잠간 다니러왓어요. 오늘밤 서울에 기차로 올라가야만 해요.
열이는 "안됩니다. 가지마십시요. 저랑 함께 있습시다."하며 어린이처럼 매달렸다.
열이는 참으로 숙과 이별하고 싶지않았다.
숙은 " 오늘밤 올라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꼭 가야만 합니다."
열이는 섭섭하여서 말문이 막혔다.
숙은 " 제가 서울 올라가서 정리하고 공 전도사님께 내려올게요."
그러나 열이는 숙의 말을 잘 믿을수가 없었다.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약속대로 숙은 열이가 졸업후 초도에 있는것을 확인하고 편지를 보내어 열에게로 내려와 함께 초도에서 목회를 돕겠다는 내용이였다.
그것은 열이와의 결혼을 뜻하는것이였다.
숙은 열이를 찾느라 열이를 알만한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던것이다.
그리하여 숙과 열이가 사귄다고 소문이 동문들과 후배들 사이에 소문이 나게되었다.
그런데 열에게 은주를 잊을만한 숙과의 사랑도 운명이 장난을 쳤다.
숙은 순천 다방에서 열이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각오하고 열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렵사리 파악하고 편지를 보낸 것이였다.
남자와는 달리 이러한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순천 미남자들이 모두가 흠모하며 숙과 쉬귀고 싶어서 만남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숙이가 결국 열이를 선택 한 것이다.
열이 아버지는 수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아들을 보고 걱정이 되었든지 " 아들아 무슨 편지냐?'
열은 " 아무것도 아닙니다."한다.
수는 남자 이름이다.
수는 아는 사람이 열에게는 없다.
그래서 "숙"이라고 짐작 하였다.
답장도 쓰기도 전에 다음날에 31사단으로 입대하여 21일간의 입영 훈련을 받으라는 소집 명령서를 우체부가 가지고 왔다.
광주 31사단
악명 높은 곳이다.
논산 훈련소가 더 편하다. 한다.
"아이구 느구들 인자 죽어삣다."
31사단에서 좃삥이 치고 온 선배들이 하는 말이다.
열은 입대날에 아버지 엄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 아부지 엄니 저 군대가서 좃삥이 치고 올랍니다."
부모님에게 큰 절하면서 농담을 하는 놈은 천하에 열이밖에 없을 것이다.
귀여운 큰 아들이 군대를 간다해서 심란하던 열이 어머니가 큰 소리로 '호 호호 '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열이 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일본 B29 폭격기를 몰던 자살 특공대 출신이다.
해방후에는 6.25 전쟁시 치열한 백마고지 탈환전에서 살아 돌아온 충무무공 훈장등 3개나 목에 걸고 돌아온 역전의 사나이다.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아들아 니가 가는 31사단은 좃삥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살 먹은 아가들 걸음마도 못 시켜줄거다. 걱정 푹 달아매놓고
3주간 놀다가 오니라." 하신다.
용돈을 두둑이 ?어 주신다.
"아따 먼 용돈을 이렇코롬 많이 줘뿌요 잉 "
기분이 좋아서 재빨리 어머니가 주시는 돈을 주머니에 집어?으면서 말만 그렇게 한다.
광주 31사단은 살벌 하였다.
1973년 9월이다.
열이들을 지휘하는 내무반장은 악발이 감종수 하사다.
김종수 하사는 조교이면서 열이를 포함하여 50명 내무반장이다.
21일간 열이등은 김종수 하사 통제 아래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벌써 정보통들이 소근거린다.
'야- 저 김종수 하사가 제일 악발이란다. 인자 죽어쁘럿다. 우리는 "
여수 소라면 동무들중에서 몇 명이 열이와 같이 같은 김종수 하사 내무반에 떨어졌다.
열이는 등치가 제일 컸다.
열이 눈빛이 날카롭다.
전도사 출신이지만 주먹패들안테 절대로 지지 않는다.
날카로운 눈
호랑이처럼 섬광이 번쩍이는 장군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열이는 태권도와 실전 싸움 실력으로 여수중 통학 시절 통학 열차의 제왕이였다.
만일 열이가 여수중 3학년을 모두 다 다녔다면 아마 사고를 쳤을 것이다.
달리는 기차 출구 앞에서 3명의 동중 선배들을 상대로 치고 받으면서 "저 쌔끼를 칵 밀어서 기차 출구 밖으로 떨쳐 버릴거다."
중얼거리고는 행동으로 시작 전에 차장에게 발견되어 사고를 예방하였던 것이다.
달리는 열차 바퀴에 깔아서 큰 대못을 칼을 만들어 호주머니에 숨기도 다녔다.
쌍봉에서 덕양으로 지나가는 열차에 대못을 또 철로위에 두고 열차가 지난후에 그 대못 칼을 주으러 가다가 또 역원에게
잡혀서 학생증을 빼앗겨서 통학하던 학생주임 선생에게 주어버렸다.
중퇴하기 잘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잘 한 것이다.
전도사로 되기 잘 한것이다.
그래도 아직도 눈에서 살기가 번쩍인다.
김하사다 이것을 간파한 것이다.
대원들을 4열로 주욱 세워두고 빨간 모자를 쓰고 지휘봉을 들고서 번쩍거리는 워카를 신고 연단에 서서 외친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딩굴어 취침, "
열은 따라하지만 약이 오른다.
김종수 하사는 " 선착순 10명 저 서편 화장실 돌고 오라 " 하고 소리친다.
10명 안에 들려고 동료애도 없이 좃나게 뛴다.
열은 아예 천천히 걸어서 돌고 돈다.
김종수 하사가 쏘아보며 소리친다.
"어이 장점 달려 달려 "
못들은척 천천히 조금은 빨리 간다.
연단에서 훌쩍 뒤어내려 열에게로 ?아간다.
열은 뒤를 돌아서서 지휘봉으로 후려치는 것을 오른 팔로 막고 오른발로 김종수 하사의 명치를 차버린다.
"윽-" 저쪽에서 다른 내무반 조교들이 몰려 온다.
5명의 조교들과 열이가 붙어서 싸운다.
결국 첫 날의 훈련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장교가 열을 불러놓고 "장정은 여기가 어딘줄이나 아는가?" 소리친다.
열은 "네, 압니다. "라고 대답한다.
장교는 열의 날카로운 살기 띤 눈과 등치와 큰 발과주먹에 겁을 먹었다.
자기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좀 톤을 낮추어서 타이른다.
" 앞으로 한번 더 그런 일이 있으면 영창으로 보낸다. 앞으로는 말 잘듣고 3주만 견디면 고향으로 갈 것이다."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김종수하사는 열을 보고서 인상을 펴지 않는다.
전도사 출신이지만 열은 호랑이 기질이다.
호랑이가 전도사라는 직업을 잠시 가졌고 가정에서 양육을 받았어도 여전히 그는 호랑일뿐이다.
더욱 열은 은주를 떠나보낸후 죽음을 두려워 하지를 않는다.
감옥도 두려워 하지를 않는다.
열등감과 패배감으로 가득하여 있다.
모든 자기보다 잘 난 사람은 적으로 본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터진 것이다.
신병 훈련소 31사단 상무대는 9월 가을 하늘이 푸르고 산록이 우거진 숲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국화 꽃 향기가 훈련병들을 고향 생각으로 이끌며 고향의 어머니 목소리를 생각나게 하여주었지만, 군대정신 악발이 정신으로 무장된 조교들은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면서 훈련병들을 단련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영창 문턱까지 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열이는 처음에는 김종수 하사 내무 반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종수 하사는 틈만 나면 작은 몸 단단한 어깨를 흔들며 열이와 장정들에게 겁을 주었다.
" 너희들은 3주만 훈련 받으면 따스한 고향 부모님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는 장기 하사관이다.
7년간이나 군대에서 못을 박아야 한다.
너희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만일 너희중에 누구든지 나의 말에 불복하고 반항하면 영창에 회부 된다.
그러면 그 영창에 들어가면 전과가 생기게 된다.
전과자가 되면 평생 사회에서 문제 인물로 살아가게 된다."
틈만 나? 전과자 타령 영창 타령으로 순박한 장정들을 말을 잘 듣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열이도 그 날 이후로는 고분 고분 말을 잘 들어주었다.
오히려 김종수 하사와 친하게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3주 훈련은 끝나는 날이다.
야외로 가서 장기 자랑을 하였다.
열이 내무반만이 아니라 전 방위병들이 모여서 야외에서 훈련 받던중 잠간 모여서 휴식 시간에 장기 자랑을 하는 것이다.
즉, 조교들과 훈련병들 사이에 쌓인 앙금을 털어내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각기 장기 자랑을 하는데, 방위병이지만 재주꾼들이 많았다.
목포 신안 섬에서 왔다는 피부가 새꺼먼 뱃놈 출신은 지독한 신안 사투리를 써서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 하였다.
"아- 지가 말이요.
새우배를 타고 새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는디
우리 새우배 보다 배가 더 큰 상어가 식칼 같은 이빨을 벌리고 우리를 잡아묵어쁠라고 팍 덤벼들지 않겠소
우리 일행중에 나가 젤로 어린데
나이 많은 성님들은 다 겁에 질려 부들 부들 떨고만 잇능거요
그때에 내가 그냥 이 주먹 보시요 잉
이 커다란 주먹으로 휙 2미터 정도 날아오르면서 상어 눈깔 사이 인중 급소를 창보다 더 강하게 쳐버린거 아니것소 "
이 말에 장정들은 소리 친다.
"그만 후라이 떨고 내려 오니라 "
어떤 장정은 노래를 기막히게 부른다.
전라도는 예향의 도 다웁게 재주가 많은 사나이들이 많았다.
남진보다도 더 노래를 잘 부르고 나훈아 보다도 노래를 더 잘불렀다.
김종수 하사가 사회를 보는 중이다.
이제는 눈을 열에게로 돌려서 지목한다.
"열 장정 나와서 장기 하나 보여바라 ."
이제는 열과 김종수 하사는 이미 친구처럼 친해졌다.
열은 못이긴척 하고 나온다.
이미 열은 전 훈련병중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덩치가 크고 눈빛이 살기로 번뜩이면서 무시 무시한 태권도 발차기 실력을 확인한 전 장정들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자기네들과는 달리 31사단 무시 무시한 조교들중에서 김종수 하사와 조교들 5명을 혼자서 상대하여 어울려서 치고 받고 싸움을 함으로 기선을 제압하고서 편하게 훈련을 마치면서도 김하사등과 친구처럼 된 열이기 때문이다.
열이 덕분에 자기네들도 덕을 본 것이다.
다른 기수는 그러지 못하였다.
다른 기수에는 열이 같은 뱃장을 가진 장정이 없었다.
열은 당당한 걸음 걸이로 나와서 1천명 가까운 장정들을 앞에 두고 열어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1973년 당시에 영어 노래를 멎지게 부르기란 쉽지가 않다.
번역하면 이렇다.
( 깊은 산골 고요한 오두막 집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네 집 나간 자식위해 기도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 홀로 물레를 돌리는데,
이 밤도 깊어만 가네. )
큰 덩치와는 달리 감수성이 풍부한 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장정들도 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따라서 고향 생각을 하면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20세에서 23세 사이의 장정들은 등치만 어른이지 정신은 아이였다.
다음날 훈련병들을 사단 운동장에 집합시킨후에 사단장의 특별 훈화가 있은후 각자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슬픈 갈매기
열은 날마다 달천 무기고로 방위 근무를 오고 갔다.
어느 날 방위 근무를 마치고서 섬 달천 바닷가로 갔다.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은주를 잊지 못해 하였다.
은주보다 더 예쁜 순천의 일등 미녀 숙 이로부터 자신에게 시집온다는 편지를 받았으면서도
숙을 잊고서 오로지 은주만을 일편단심 그리워하며 잊지 못해 하였다.
막상 떠난 후에야 그럴 것이 무얼까?
어디 사람 맘이 맘대로 되던가?
섬 달천 잠수교 다리가 드러나 보이고 바닷가에는 자갈들이 깔려 있다.
그 자갈 위를 걸으면서 은주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은주라 생각하니 더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토록 이별이 고통스러울 줄 예전에는 미리 몰랐다.
은주보다 더 모자랄 것이 없는 숙이면 깨끗이 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닌 것이다.
사실 은주와 명숙 이를 제 삼자더러 누가 더 나으냐고 물으면
절반 이상이 명숙 이를 더 우수하다 할 것이다.
숙 이는 피부가 백옥이고 은주는 약간 검은 빛이 있었다.
명숙이 눈은 쌍꺼풀에 크고 빛나며 은주 눈은 쌍꺼풀은 아니다.
키도 명숙이가 더 크다.
나이도 숙 이는 열이 와 동갑이고 은주는 한살 연상이다.
동갑은 궁합이 소 용 없다.
은주는 호랑이 띠이고 열은 토끼띠다.
궁합은 호랑이가 토끼를 잡 아 먹는다.
그래도 열은 호랑이 에게 잡혀 먹어도 좋으니 은주만을 잊지 못해 하는 것이다.
지금 명숙 이는 열을 찾아서 순천 자기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
열로부터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에 순천 성경 고등학교 3학년을 성실하게 공부하여 졸업한 아가씨이다.
미래에 2008년도에 신학대학 다니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70년대 순천 성경고등학교는 대한민국 최대 장자 교단 장로교 통합 선교
본거지 순천에 미국 남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일류 학교였다.
전국 3대 성경고등학교 명문 학교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중학교만 졸업하고 시집 가버린 은주만을 잊지 못해한다.
이때 하나님은 열에게 나타나셨다.
"아들아 너는 은주 하나를 사랑하고 그 은주가 너를 버리고 떠나가니 네 맘이 아프냐?"
이상한 일이였다.
하나님의 음성은 열 이의 가슴 속에서 울려나왔다.
생전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아주 분명한 음성이다.
사무엘에게 들려주었던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았을 것이다.
이어서 또 들려왔다.
"너는 은주 하나이지만, 나는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도 그들이 모두 날 배신하고
가버렸단다."
슬픈 음성이다.
열은 "몰라 요 몰라요. 제가 사랑한 은주를 돌려주세요. 돌려주세요."
"흑흑흑"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다.
열 이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더라도 이토록 마음이 아파하였을까? 싶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음성은 열에게로 들려왔다.
"사랑하는 내 종아 사랑하는 아들아 너 가 이 실연의 아픔을 겪어 보아야만이
나를 위한 전도자
가 될 수 있단다. 너는 지금 진주조개의 고통을 겪고 있단다. "
참으로 신기한 일이였다.
열이 가 18세이던가?
부흥 성회 시에 사랑의 원자탄 손 양원 목사 순교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으면서 " 저도 순교의 제물이 되렵니다."라고 서원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은 열이 가 순교하기로 서원한 헌금 봉투를 들고 가시면서
평생 이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약속 해주셨다.
열은 이것을 깨끗이 잊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서원을 그때에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열을 이러한 방법으로 순교자의 길을 가게 하신 것이다.
사랑하고도 이별당하는 일평생토록 지속되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리움이라는 사랑의 순교자의 길을
단 순간에 죽는 총살도 아니고
일평생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보는 순교자의 길을
먼 훗날 열을 인터넷 시대에 맹렬한 문서 선교사로서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수필가로서
사상가로서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초라한 방위병인 23세의 지금 어찌 알까?
1973년도 10월 바닷가에는 (섬 달천 잠수교) 열 이는 비통한 심정으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은주만을 그리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열에게 다녀가셨지만, 열은 은주만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운다.
그날 열은
섬 달천 잠수교가 보이는 바닷가
출렁이는 바다물결위로 저녁노을 비출 때
은주가 사는 수평선 멀리 겹쳐진 산 넘어
바다로 이어진 이름 모를 어느 섬에서
열이 를 그리며 살고 있을 은주를 생각하며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만 없었다면 을
목 놓아 부르고 부른 다.
이때 갈매기 가족들이 실연에 고통스러워하는
열 이의 머리 위를 맴돌며
위로를 해준다.
해가 저물어 어두운데도 돌아갈 생각도 없이
열을 위로해준다.
열이 는 갈매기와 파도에게 부탁드렸다
열이 가 지금 은주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더라고
은주를 만나거든 꼭 전해달라고,
그날 밤 참으로 신기한 일이 많았다.
갈매기들도 그렇지만 파도도 열 이를 위로해주었다
처 얼 썩 처 얼 썩
세상엔 슬픈 사람들도 많데요
열님 너무 슬퍼마세요
처 얼 썩 처 얼 썩
아- 지독한 사랑이다.
하늘이 주신 사랑이기에
애절한 사랑이 된 것이다.
열이 는 밤늦도록 그 바닷가에서 울며 슬픈 이별가를 부르고 2십리가
가까운 비포장도로를 걸어오면서도 계속 그리운 연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언제나 은주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이 지독한 사랑은 열이 만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기에
더욱 지독한 사랑인줄은 열이 도 몰랐던 것이다.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열이 가 자신이 개도 섬에 경찰관 아내로 사는 줄도 모른 채
개도교회로 다녀간 후로도 언제나 마을앞 바다를 바라보며 열이 생각을 하고 가슴속으로 울었다.
물론 자신도 설마 그토록 그리운 열이 가 자신이 살고 있는 섬을 다녀간 줄을 모른다.
은주가 열을 향한 사랑함도 하늘이 주신 것이기에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을 능가 하였으면 능가 하였지 부족하지는 않았다.
은주는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교회도 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교회 공식 예배에
빠진 적이 없는 주일학교 선생 출신인 은주다.
"왜? 열이 와 맺어지도록 허락하시지 않은 걸까?"
은주도 열 이를 죽도록 사랑하였던 것이다.
“하늘은 사랑을 일생에 단 한번 준단다.
그 사랑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 남는단다.
멈추고 싶다고 멈추고 잊고 싶다고 잊어지지 않는 사랑이란다.
이러한 사랑을 동시에 남녀가 함께 하기란 매우 어렵단다.
또 그 사랑을 이루기란 더욱 어렵단다.” 은주가 다니던 여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2학년 봄 아침에 동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는
자신을 3-4미터 거리를 두고 초등학교 갓 입학한 열은
우뚝 서서 자신의 뒷모습만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무줄을 뛰는데 열이 의 눈빛을 등 뒤로 느끼고 뒤로 돌아 서서 보니
저만큼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그 꼬마와의 눈을 맞추며 하얀 피부를 가지고
빛난 눈을 가진 통통한 열이 는 서로가 오래토록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에 서로가 반하였다.
첫눈에 반한 것이다.
사랑은 일찍 온다.
유년시절에부터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열이 와 은주도 마찬가지다.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의 만남은 시작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초등학교 옆 관기 교회를 찾아온
열이 를 어린 은주는 노오 란 나비처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정겹게 맞아주었다.
열을 발견한 은주는 몸을 펄쩍 펄쩍 뛰면서 반겨주었다.
은주는 아주 어려서부터 사촌 오라버니의 등에 업혀서 관기 교회로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은주 사촌 오라버니는 은주와 한 집에서 친오빠처럼 함께 산다.
은주 어머니가 은주 사촌 오라버니를 아들처럼 키워서 순천 매산 고등학교를 보내주었다.
순천 매산 중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여서 자연스럽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은주 동네 근방에는 아직 교회가 없어서 10리가 넘는
하늘 재를 넘어서 관기 교회까지 다녀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관기 교회로 은주가 관기 초등학교에서 동무들하고 고무 줄 놀이를 하며
고무줄 뛰는 뒷모습을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면서 바라보아주던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 그 꼬마가 바로 그
열이 가 사는 마을이 은주와 마찬가지로 10리가 넘는 산길을 넘어서 찾아 온 것이 너무나 반가 왔다.
은주는 열이 와 함께 온 형들보다도 열이 에게 유달리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수시로 열이 곁으로 와서 정답게 웃어주었다.
은주는 노오 란 색 바탕에 색 동 저고리를 입고 분 홍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은주 엄마가 북한 평양 제일가는 미녀이고 양반집 딸이고 은주 집이
중농 이상의 머슴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집이여서 무남독녀 은주를 애지중지 예쁘게 가꾸어주었던 것이다.
세 번째 만남은 마을 옆 교회가 세워지던 날 선교사들이 와서
보리마당에서 활동사진을 상영 해 줄때 사람들이 많아
어린 여자 어린이의 몸으로 어른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지루해하는데, 사내아이인 열은 용감하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활동사진을 구경하던 열이 가 회충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려고
중간에 빠져나와 화장실을 찾다가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픈 배를 쥐고
사 작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은주는 너무 반가와 자신도 모르게 환한 웃음으로
열에게로 뛰어오며 은주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열의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 줄도 모르지만 마을 앞산 언덕을 넘어
새벽 일찍부터 은주네 마을로 와서 은주네 집 뒤에 사는 오촌당숙 이장에게 큰소리로
"예-예-"하며 반장 아버지의 심부름을 확실히 하고 돌아가던
똑똑한 꼬마 열이 에 대하여 호기심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열이 와 은주의 인연은 열이 가 은주 집 뒤에 사는
오촌 당숙 이장 집에 열이 아버지 반장 심부름 다니면서 더욱 깊어졌었던 것이다.
은주가 사는 마을은 안심산 아래 마을이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붉게 피는 안심 산이다.
안심 산 종달새는 더 구슬피 운다.
안심산은 알고 있다.
여순 사건 그날의 비극을,
남남북녀라고
남한에서 제 1의 미남자 은주 아버지와 은주 집안 성인 남자들을
철사 줄에 꽁꽁 묶어서 총살 시키던 안심산 중턱
비가 내리는 저녁이면 혼 불이 출렁거리는
안심산 중턱 아래 마을 열이 사랑 은주가 산다.
총살 현장에서 은주 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은주 아버지가 북으로 넘어간 것인지 어디서 죽은 것이지 모른다.
그냥 그날 마을 사람들이 죽은 그날로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그래서 은주 마을에는 은주 외에 은주 집안 외에는 남자라곤 아무도 없었다.
은주 성씨 단일 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은주는 열에게로 관심이 컸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은주와 열이 의 끈질긴 인연은 저수지가 예쁘게 보이는
언덕위의 작은 죽림교회라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지속적으로 정이 들었던 것이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열이 는 은주에게 몇 차례 사랑을 고백하였고
은주도 열이 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그만 열이 가 군대 간다면서 주고 간 성경책을,
정표로 주고 간 성경책, 그 헌 성경책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열이 가 군대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군대간지 1주일도 안되어 신체검사에 불합격 당하고 떨어져왔다며
교회도 안 나오고 몇 달을 열은 자신의 집 안에만 틀어박혀 부끄러워하던
열이 군 입대 전에 열이 가 주던 헌 성경책
“제가 은주 씨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쓰던 이 헌 성경책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군대 다녀오는 동안에 은주 씨는 시집을 가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헌 성경책이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열이 가 건네주던 헌성 경책을 은주는 받아들면서
“저는 이 성경책을 읽으면서 열이 씨가 무사히
제대하고 돌아오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릴래요.”
그 날 밤은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비추어주었다.
아랫마을 병수 큰 집에서는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김 상사를 환영하는 노래 소리가 울려왔다.
그 밤에 열은 은주의 손목이라도 잡아주고 포옹이라도 해주고
입이라도 맞추어 주어야만 되었다.
그런데 간음하지 마라는 십계명대로 지키려고 포옹도 안하고 손도 안 잡고 헤어졌다.
다음날 열은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월남 파병 군인들의 귀환으로 남아도는 군인들 수를 줄이려고
논산 훈련소에서는 정밀 신체검사를 통하여서 귀향 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군대를 안 가려는 청년들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군대를 가야만 되는 열에게는 귀향 병이 되는 것
은 치욕 이였다.
건장한 열이다.
1미터 76의 키와 체중 75키로의 사나이 중에 사나이다.
그런데 정밀 검사에서 만성 중이염에 걸리고 말았다.
귀향하여 3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라. 는 것이다.
열은 군대를 보내달라고 애걸복걸 하였으나
결국 귀향 병 열차에 몸을 실어야만 되었다.
열은 귀향 병으로 은주 앞에 나타나느니
차라리 3년간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3년 후에 제대한 것처럼 은주에게로 나타나려고도
생각 하였으나 결국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는 군대 가서 금방 돌아온 사람이 없다가 건강하게 보이는
열이 가 돌아오고 보니 별별 말이 많이 돌았다.
어떤 사람들은 “열이 가 결핵이라네.”
어떤 사람들은 열에게로 직접 와서 물어 보았다.
열은 “네 제가 만성 중이염이랍니다. 그래서 군대를
가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해주지 못하였다.
그 말을 해주면 은주에게로 들어가고
은주 가족들에게로 들어갈 것이 두려웠다.
그 후로 한번 두 번 세 번을 논산 훈련소로 가서 귀향 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존심 따위는 무시하였다.
중이염 치료를 하려면 수술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완치를 장담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의료보험도 없는 시대여서 소농 농촌 출신으로서 병원 수술을 엄두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열은 자신을 병신으로 여기고 괴로워하지만 막상 은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열이 가 중이염이면 어떡하고 결핵이면 어 떡 한가?
어느 날 은주에게 열은 자신의 진로를 의논하였다.
“은주 씨 성경고등학교로 복학할까요? 아니면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천천히 할까요?”
은주는 항상 말이 없고 군대에서 귀향 병 신세를 수치로 알던
열이 자신에게 의논하자 기뻐하면서 “ 열씨 검정고시는 천천히 해도 되어요.
먼저 순천성경고등학교부터 졸업하는 것이 좋을 거 에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은주는 열이 가 성경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이 와 함께 시골교회 전도사를 하면서
뒷바라지를 하여 위대한 목사로 만들려고 마음먹었다.
은주의 말을 듣고서 곧 열은 복학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열이 복학하고부터였다.
순천 매산들 선교사 뜰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가을바람에 흔들거렸다.
남자 기숙사 흙돌담 을 넘어서 자란 감나무들도 빨간색을 자랑하며 학생들의 군침을 넘어가게 하였다.
고추잠자리들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학교로 복학하고 부터 열은 더욱 더 은주와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임을 고민하였다.
은주는 열과는 달리 열이 성경고등학교만을 졸업하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의 중매도 모두 물리치며 기도하고 있는 중인데도 열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유행가 “우수”를 부르고 도 불렀다.
주일이면 고향 죽림교회로 가서 전도사를 한다.
그러나 은주와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올라온다.
사랑은 대화인데 대화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주는 열이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기도만을 드리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열은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들로 괴로워하면서
경상남도 진주 고등학교 출신으로서 공부도 잘하고 글씨를 잘 쓰는 친구 희 상군을 통하여서
은주에게 열이 의 고민을 편지로 보내게 하였다.
겉 주소에 열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희 상 군 이름으로 보내어서 은주
육촌 남동생이 중간에서 우체 부로 부터 가로채어 다 없애 버렸다.
이 편지만 은주에게로 잘 전달되어도 열과 은주의 이별은 막아졌을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고 봄이 가고 여름이 간 후 가을이 왔을 때에 그런데,
갑자기 열이 로부터 단념 편지를 받고서 충격을 받은 은주는
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보내었다.
열이 친구 희 상군을 통한 대필 편지는 다 받지 못하고,
하필이면 열이 가 단념편지를 쓴 이 옥 재 전도사를 통한 대필 편지는 받아 온 것 이였다.
은주는 열이 가 보낸 단념 편지를 받고서 밤새워 통곡 하였다.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자신은 집안에서 권하는 총각과 결혼을 결심하였다"고
은주가 이렇게 결심한 것은 열이 의 단념편지는 분명 순천성경고등학교에서
어여쁜 처녀를 만났기 때문일 거라는 오해가 있었기 때문 이였다.
이것은 서로의 오해였다.
다음 주 열이 가 교회로 왔을 때에 열이 는 은주를 불러놓고 교회 옆 보리마당
사작 나무에 기대어 서서 은주를 보고 말하였다.
보리마당 사작 나무에서 처음 만나고 보리마당 사작 나무에서 마지막 이별하였다.
신기하게도 그 보리마당에 홀로 서 있는 사작 나무는 처음 은주와 열이 만날 때는 가지가 무성하였는데,
이별할 때는 9월 잎이 풍성할 때인데도 누군가가 가지를 모두 잘라내어
기둥만 남아 있어서 은주와 열의 이별을 예견해주었다.
"그 편지는 그냥 은주 씨 맘을 좀 알아보려고 보낸 편지 일 뿐인 데요."
은주는 군대에서 떨어져 고향으로 내려와 부끄러움 속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던
열이 를 학교로 복학하도록 조언을 해주고 어서 열이 학교를 졸업하기만을
조용히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일마다 교회에서 만나지만 서로가 인사만 할뿐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은주는 혼기가 차서 집안에서 결혼하라고 서두르고 있고, 열은 은주를 사랑하나
은주가 자신을 사랑함을 확신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단정하고 괴로워하면서 말이 없다.
일 년이 다 되도록 열과 은주는 말없이 지냈다.
은주는 예배당 마루판위에 무릎 꿇어서 찬송가만을 불렀다.
성자의 귀한 몸 356장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이까?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주님의 참사랑 고맙고 놀라와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리라”
찬송가의 가사처럼 은주는 열이 전도사와 결혼하고 일평생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살아갈 각오를 하였던 것이다.
은주는 내심으로만 일편단심 열을 기다리고 있던 중인데 열에게서 편지가 온 것이다.
대뜸 단념한다는 내용이다.
열은 이때에 중이염이 너무 심하게 터졌다.
“이러한 병신을 그토록 아름다운 은주가 사랑을 해줄까?
차라리 부자 청년 건강한 청년에게로 시집가서 잘 먹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자.
은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 홀로만의 짝사랑이나 보다.
그토록 선녀보다도 더 아름답
고 고상한 은주가 나 같은 병신이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할 리가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열에게
는 주류를 이루고 지배하였다.
심각한 열등감이다.
그래서 편지를 쓴 것이다.
단념하지도 못하고 단념한다는 편지를 썼다.
은주로부터 반응을 보려는 심사도 있었다.
그 내용인 즉,
" 은주 선생님
저는 은주 선생님을 사랑할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답니다.
부디 훌륭한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1972년 10월 00일 열 올림
대필 이였다.
글씨 잘 쓰는 옥 재 전도사에게 열이 불러준 것이다.
그냥 나를 사랑하느냐? 결혼 해 주려느냐? 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나을 것을 ,
단념한다는 그 편지를 받고서 은주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심정도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것이다.
아직 열이 는 나이도 어리고 군대도 떨어져 온 병이 있고,
같은 교회에서 결혼은 덕이 안 된다면서 다른 총각의 청혼도 거절한 자기인데,
또 열에게 새 애인이라도 학교에서 생긴 것이겠지, 하며 답장을 썼던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오래토록 열씨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마음을 정리 하였습니다.
부디 열심히 공부 하셔서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주세요.
안녕
은주 올림. "
은주의 편지를 학교 기숙사에서 옥 재 전도사가 가지고 왔다.
먼저 열이 읽고 옥 재 학우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다.
옥 재 학우는 열보다 후배이지만 나이는 많았다.
대뜸 하는 말이 "아이구 이 처녀가 열 전도사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열 전도사님이 너무 성급 하셨습니다." 하며 안타까와 한다.
열은 " 아닐 것입니다. 그 처녀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저 같은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열도 무언가 자신이 성급한 것 같다며 허전하고 가슴이 쓰라림을 느꼈다.
서로가 대화 한 번도 없이,
이것이 70년대 초 남녀의 농어촌 교회 청년 남녀의 연애 방식이다.
하나 은주는 속마음과는 달리 말하였던 것이다.
"전 이미 결심하였습니다. 집안에서 권하는 순천 사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말하
여 활달한척 하였다.
은주의 말을 들으면서 열은 결심 하였다.
“그래, 그래 나는 널 보내주마, 조금도 소리 소문 없이 보내주마, 우리가 서로 사랑하였다는 소
문을 절대로 내지 않을테야 . 우리 마을에 너의 친구 금숙이와 내 선배 수 철수가 연애한 것이 소문
이 나서 안 좋았던 것처럼 난 하지 않을 거다. 이후로 입 꽉 다물고 내가 너를 좋아했단 말을 절
대로 소문 내지 않을께 만일 너의 남편이 이러한 일을 알면 널 의심하고 괴롭 힐 테니까,
의처증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니까 입 꽉 다물게.”
활달한척하는 은주는 입은 웃었으나 마음은 웃는 것이 아니다.
이때 다 시 한번만 더 열이 가 "은주씨 전 은 주씨를 사랑한답니다. 은주씨는 저와 결혼해야만 합
니다."라고 매달려주었으면 열이를 향한 의심이 풀리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후부터 열이 는 헌 성경 사랑의 정표를 거의 강제로 빼앗아가고 자신이
결혼 준 비 한 달 두 달 기간 중에 아무런 구애도 없이 태연함으로
진정 열에게는 순천 학교 다니면서 새로운 연인이 생겼나보다 하며 결혼을 준비하였다.
열은 은주를 잊으려고 얼마 후부터 은주 대신 은주만큼
어여쁜 학교 제일의 미녀 명숙과 진짜로 사귀기 시작 하였다.
은주를 잊어보려는 몸부림 속에서 은주 대타로 명숙을 선택 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의 마음이란 복잡하다.
순천 총각과의 혼사가 추진 중에도 열에 대한 마음에 미련이 남아서
열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니 열이 는 명숙과의 사귀는 사실이 은주의
여자중학교 동기생 광주 친구의 언니가 열이 와 같은 동기생이여서 그녀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과의 결혼을 은주의 오촌당숙 이장을 통하여 조금 알아보다가 멈추고
순천 총각과의 결혼 추진 쪽으로 방향을 확실하게 틀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은주가 열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를 보낸 주일날 열이 가 사작 나무에서
" 그 편지는 그냥 보내 본 것일 뿐 진심이 아닙니다.
" 할 때에 "이미 결정 되었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면서도 사실이 아닌 것이다.
마음과는 달리 입이 가면을 쓴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말대로 되어간다.
그런데, 복잡한 오해가 결혼 전날에서야 풀린 것이다.
열이 가 은주에게 헌성경책을 빼앗아 간 것도 몹시 섭섭하였는데
그 헌성경책을 빼앗아간 것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열은 "가죽 성경책을 결혼하는 은주에게 선물로 사주자"고
교회 제직회에서 주장하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열이 가 헌성경책을 은주로부터
빼앗은 이유를 비로서 깨달은 후 열이 는 은주 자신을 아직도 사랑하는지도 모를 거라면서
내일이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그 결혼을 파기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가족들에게 거부하였으나 강력하게 시집가기를 강요하는
집안의 올 캐 언니와 대판 싸우며 슬피 통곡하고 어쩔 수 없이 치루는
결혼에 열이 와의 영영 이별을 하고 말았던 은주의 기막힌 사연이다.
은주와 열은 서로가 사랑하고도 한 발자국 차이로 이별하고 말았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두 사람의 사랑을 쪼개셔야만 하셨을까?
열이 가 18세 때에 사랑의 원자탄 손 양원 목사의 순교를 듣고 순교자가 되겠다는
그 서원을 받으신 방법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아픔을 통하여 그리움 고통을 경험케 해서
하나님과 인류의 이별 아픔을 경험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인생들에게 전해주는 전도자로서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였다.
열은 은주와의 이별 후에도 60세가 되도록 하루 한시도 은주를 향한 그리움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새로운 가족에 충실하면서 살아왔다.
다만 서로의 남편과 아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서 열이 한 사람만의 순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순교가 되었던 셈이다.
하나님의 인간사랑은 부모님이 잃어버린 자식 사랑과도 같고
열이 가 첫사랑 은주를 향한 사랑과도 같다.
그보다 천만배가 더하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려고 수많은 전도자들을 불러서 쓰시고 계신다.
56세가 넘은 열은 어려서 기초학력을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어려서부터 독서가 취미이기에 많은 독서와 독학으로 기초를 단단히 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목포 제일 정보고등학교 성인 반에 입학하여 성실되게 출석하며 졸업한 후에 호남신학대학교 학부생으로 1학년부터 입학하여 주야로 도서실에서 살며
공부한 끝에 신학 학사와 중등 교사 자격도 따고 호남신학대학교 총학생 회장으로 졸업생 대표로 당당하게 총장님으로부터 연단에 올라가 상장과 상패를 수많은 내외귀빈 앞에서 받는다.
두 명의 딸과 아들 그리고 두 명의 손녀로부터 꽃다발 세례를 받고서 교수님들의 축하 인사를 받는 만학도 열의 표정은 함박웃음 이였다.
그보다 앞서서 오래전에 성령 체험을 한 후 순 복음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유명한 문 오장 배우와 함께 나란히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결국 정규 코스를 밟고서야 배움에 대한 열등감을 지울 수가 있었다.
열은 전주 한일 장로회 신학대학원도 수료한다.
이미 받은 목사 안수를 교단이 바뀌면서 두 번 받지 않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전도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주 외딴 섬에서 신도 두세 명을 놓고 등대지기처럼 목회하면서 글을 쓴다.
이제는 천국 가는 그날까지 은주와의 사랑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변자가 되어
인터넷 다음 아고라와 블로그를 통하여 대한민국 양심운동본부라는
예명으로 맹렬하게 전도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시집과 수필집 그리고 소설 등을 쓴다.
인터넷에서는 가장 많은 글을 무료로 보게 하는 작가가 열 일 것이다.
그리고 몇 년후에는 한울문학과 국제 문예를 통해서 수필가와 소설가로 등단하고 다음에서 뉴스 누리꾼으로서 파워 트윗터리언으로서 글 한번 올리면 3-300만명이 보게되는 입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에 평균 238회를 글을 트윗하는데 정치도 관심이 많다.
정치 글을 쓰면서 나라 국회의원들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과도 트윗을 통해서 교류한다.
열의 글을 많은 누리꾼들과 트윗터리언들이 리스트를 해간다.
리스트를 해가면 그 트윗터의 팔로워들에게도 배달되어 볼 수가 있다.
팔로워 한명당 보통 5천명만 잡아도 5백명이 리스트 해가면 2백 5십만이나 되는 트윗터리언들이 그 글을 보게 된다. 꼭 다 보는 것은 아닐지라도 볼 가능성이 많다.
단 일회 글 올리는데도 그러한데 하루 2백회 이상이나 글을 올리는 열에게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사회와 국가를 향하여 행사하는 셈이다.
트윗터들은 열처럼 양심인들이 쥬류를 이룬다.
웬만한 조중동 신문 기자들 보다도 더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이 트윗터리언들이다.
500만 트윗터들의 타임라인에 공도식이라는 이름이 넘치게 되었다.
달콤한 소설, 수필을 쓰고 시를 쓰며 정치 글을 쓰다가도 달천 바닷가에서 나타나셔서 들려주시던 하나님의 음성대로 하나님이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계심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열 이가 전해주는 복음을 아무도 반박하지를 않는다.
열이 목사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기들도 믿고 싶다고 안티 기독도 누리꾼들도 말할 정도이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의 양심 속에 내주하시고 계심을 강조한다.
양심대로 살아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의 양과 염소의 심판처럼 나눔을 강조한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라고 여기고 대접해야함을 강조한다.
교단과 종파와 민족을 초월하여서 하나님은 그들을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찾고 사랑하심을 외친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열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이별을 막으시려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전도자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고도의 작전 때문이였음을
열과 은주는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전도 사명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이미 열은 모든 재산을 하나님 선교를 위해서 사용하고 또 바쳤다.
은주와는 손목 한 번도 잡지 않는 순결한 사랑으로 남았다.
은주가 열을 떠나간지 20년 후에 열이 목사가 은주를 찾아가서 만났다.
은주는 어느 중소도시 중심 상가에서 의류점 여사장이 되어서 있었다.
열은 “ 저는 은주 집사님을 찾으려고 20년이나 애를 썼습니다.”
은주는 “ 저를 머하려고 찾아요. 이대로 살다가 콱 죽게 내버려두시지요?”
열은 마음 속으로 (자기가 날 버리고 갔으면서 마치 내가 자기를 버리고 간 것처럼 말하네?)
그날 의류 가게 안에는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노래가 은은하게 틀어져 있었다.
그 가사 내용은 이러한 것이다.
“ 소녀 시절 어느 날
미소년이 나에게 수줍어하면서 다가와
사랑한다고 하였네.
그러나 난 속 마음과는 달리 아니라고 햇다네.
그 후 소년은 내게서 떠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를 않는다네.”
노래는 구슬펐다.
그 노래만을 반복하여 틀어두었다.
이미 열 이가 찾아온다는 연락을 받고서 그 음악을 틀어둔 것처럼 보였다.
열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은주는 손님을 맞다가 열에게로 와서 조용히 “울지 말아요.”라며 아이를 달래듯이 말해주었다.
한 달후에 은주와 열은 시내 중심가 오렌지 향기 날리고,라는 카페에서 만났다.
은주는 젊은 그 시절처럼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나주었다.
큰맘을 먹고 나온 듯하였다.
눈도 쌍커 플 수술을 하고 화장도 어여쁘게 하였고 옷도 아주 세련된 옷으로 단장하고 나왔다.
열은 눈이 부셔서 황홀할 지경이였다. 그러나 야하지는 않았다.
은주는 “ 왜? 우리가 맺어지지 않았을까요?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열은 “ 머 ? 제가 그 당시에 어려서 그냥 은주씨가 좋기만 하였지 결혼까지는 미쳐 생각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은주는 “ 열씨가 어리기는 머가 어려요? 그때 다 장성하지 않으셨나요?”
열은 “ 몸만 컸을뿐 저는 미처 결혼은 생각 못하였습니다.”
은주는 “ 왜? 우리가 맺어지지를 못하였을까요? 하나님 뜻이 아니였을가요? ” 두 번째 반복이다. 한이 서렸다.
열은 당황하면서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 하나님 뜻이 아니라기 보다는 머 ? 우리가 좀 서툴렀던 것일 거 에요. ”
오렌지 쥬스 값을 은주가 계산하고 “같이 나가시죠?”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열에게는 그 원수 칠 천지 원수 중이염이 갑자기 터졌다.
이놈의 칠 천지 원수 중이염! 중이염 ! 최고로 치욕스러운 병 !
난 “ 먼저 가십시오, 전 나중에 가겠습니다.”
은주는 실망하였다.
큰 맘 먹고서 나와 데이트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은주에게는 자가용도 있고 열과 함께 드라이브도 하면서 야외로 나가서 열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열은 아직도 어렸던 것이다.
그것은 은주만의 오해였다.
열이가 중이염이 터져서 함께 못간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사실 이 중이염 때문에 군대에서 귀향 왔고 중이염 때문에 은주에게 단념 편지를 썼다.
은주와 열이의 삼팔선은 중이염이고 저 바다도 중이 염이였던 것이다.
이 날보다 전에 은주는 사업하는 언니와 함께 열을 만나러 의류점 옆 카페로 나왔다.
그
언니가 “ 이 분이 너의 첫사랑이니 ?”라고 물었다.
은주는 소녀시절처럼 파란 쉐타를 입고 있었다.
“응, 아빠도 없고 오빠도 동생도 없기에 난 더 했어,”
난 은주의 그 말에 놀라워했다.
나만의 짝사랑이 아니단 말이던가?
은주가 열을 사랑한 줄을 이제야 처음으로 열은 알았다.
그 날도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은주가 계산 하였다.
그날 은주와 헤어진 후 몇 달 만에 은주 가게를 찾아갔다.
그때는 열도 은주도 아이들이 한참 자라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45세 무렵 이였다.
이 나이 때가 가장 이루지 못한 사랑의 그리움에 몸부림 칠 때이다.
은주는 열을 어린애 취급을 하였다.
저번 오렌지 향기 날리고,에서 자신의 드라이브 계획을 무산시켜버린 보응인 것 같았다.
집으로 와서 은주를 그리워하면서 쓴 사랑시집 남은 것도 석유를 끼얹고 불태운 후에 열은 기분이 나빠져서 전화를 했다.
은주는 “저도 사랑을 모르는 것이 아니랍니다. 열씨를 생각하면 남편과 아이들이 불쌍해지고 남편과 이이들을 생각하면 열씨가 불쌍해진답니다.”
열은 “ 물론 남편과 아이들이 중요하지요.”
은주는 “ 저도 열씨와 사랑을 하고 싶으나 저는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을 어기고 싶지 않습니다.”
열은 “저는 윤리와 도덕보다는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제가 은주씨와 무엇을 꼭 하려는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만 싶을 뿐입니다.”
은주는 “ 저는 열씨와 남편과 아이들 중에 선택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이들을 선택하기로 하였습니다.”
열 “당연하지요. 그래야 맞습니다. 그래야 훌륭한 것입니다.”
열은 전화를 끊고서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 내가 남편보다 먼저 사랑한 사이인데... 결혼하지 못한 사랑은 허망하구나)
경찰관이던 은주 남편은 그 당시 열은 몰랐으나 암 병으로 죽음의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은주가 자기 남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언뜻 비친 적은 있으나 이토로 심각한 줄은 미쳐 몰랐다.
은주는 열녀의 딸이여서 자신도 열녀의 길을 가려고 한다고 믿었다.
그후부터 은주는 은주대로 살아가고 열은 열대로 살아간다.
“세상과는 거꾸로 윤리와 도덕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철학을 지닌 은주다.
은주 남편은 암병으로 죽은지가 10년이 넘고 그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고 찾아갔는데 “열심히 살아갑시다. 우리”라는 마지막 말을 울먹이면서 해주던 그 말만이 열의 뇌리에 간혹 남는다.
오히려 은주는 자기 남편이 죽고난후로부터 열과의 담을 쌓아버렸다.
열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전도만을 위해서 사나 죽으나 살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전도로는 사람들을 항상 대할 수가 없다.
문학이라는 산토닌 과자 전도 법을 사용하여서 전도하려는 기발한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추억 속사랑이 아니라 현재의 결혼해서 자식들 ?고 사는 아내이며 가족이다. 고 열은 생각한다.
열의 아들은 열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목사의 길을 가고 있고, 딸들도 출가하여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특히 열의 막내 딸 은혜는 공주 대학교 영상 에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성경을 만화로 그려내려는 목표 아래 준비하고 있다.
젊어서 그토록 괴롭히던 열이 의 중이염도 하나님의 치유능력으로 자연 치유가 되었다.
달천 갈매기
공도식
그날 젊은 시절
남면 섬으로 떠난 님 그리워
섬달천 넘어 붉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으면을 부르며
밤이 깊도록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함께 울어주던 갈매기
갈매기도 실연 아픔을 알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