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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목 단편소설 <달마는 왜 웃는가>

작성자손영목|작성시간10.10.07|조회수116 목록 댓글 2

            

                           달마는 왜 웃는가

                                               

  나 참, 이 칙칙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기묘한 사건이 나한테 정말 일어났는지, 아니 ‘그’란 작자가 내 언저리에 한때나마 실존했는지조차 어쩐지 ‘그렇다’고 단정하기가 뭣하다. 엄연한 사실이었으면서 이제 와서는 그 사실의 자기확신조차 주저하게 되는 이 곤혹스러움은 무슨 까닭일까.

  그가 내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장마 뒤끝의 어느 어둠침침하고 축축한 저녁때였다.

  그날 나는 날씨만큼이나 우울하고 가라앉은 기분으로―어떤 측면으로는 그것을 은근히 즐기기도 하면서―강가의 그 시민공원 둑길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바둑판꼴 시멘트 블록에 완전히 덮여 자연의 고결한 숨결이 질식당한 강둑과, 기계총 자국처럼 군데군데 벗겨진 잔디밭과, 듬성듬성한 나무숲 따위로 조성된 그 알량한 공원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인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 산책을 하거나, 앉아서 쉬거나, 가벼운 운동을 했다. 청명한 한낮이든, 건너편 야경이 까치놀처럼 강물 위에 요란하게 튀는 저녁이든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자연과 인간이 같이 잠드는 한밤중에도 은밀한 아베크족이나 낚시꾼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 중의 상당수가 마치 도시에 서식하는 설치류(齧齒類) 같은, 정신 또는 육체 어딘가에 분명히 크고 작은 어떤 병증이 있는 인간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 중의 한 명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어쨌든 유독 그날 내가 그곳에 간 직접동기 따위는 생략하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그날 그곳에 갔고, 거기서 그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니까. 그 만남에서 비롯된 경악과 당혹, 초조와 분노, 절망과 체념의 의미가 더불어 중요할 따름이니까.

  나는 고개를 틀어 강물과 그 건너편 시가지 풍경을 바라보며 둑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장마 뒤끝이라서 강물은 누르무레한 어두운 빛깔이었고, 그 너머에 떠오른 시가지는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채 찌푸린 하늘 아래 흐릿한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오던 웬 사내가 갑자기 내 오른쪽 어깨에 부딪쳤다.

  순간, 부딪쳤다는 감각보다 더 강하게 내 의식을 사로잡은 것은 그쪽 옆구리의 따끔한 아픔이었다. 바늘이 콕 찌른 것 같은 그 짧고 선명한 느낌은 아픔 자체보다 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뭐야?”

  나는 반사적으로 상대방을 탁 밀치고 한 발짝 비켜나며 소리쳤다.

  떠밀린 사내 역시 균형 잃은 몸짓으로 나한테서 떨어지며 오른손을 쳐들었는데, 뜻밖에도 그 손에는 작은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팔꿈치에서 꺾어져 ㄴ자처럼 쳐들린 손은 나한테 시위하고 있었다. 똑똑히 보라고. 이거 주사기야.

  순간, 뇌리에 첫 번째로 무섭게 떠오른 생각은 에이즈였다. 곧이어 미처 정확한 이름을 댈 수 없는 치명적인 몇 개의 병명이 머릿속을 번쩍 지나가며 나를 전율하게 했다. 

  “아니, 당신 도대체!”

  죽이고 싶은 분노가 울컥 치밀어 달려들자, 그는 손을 까딱 흔드는 간단한 동작 한 번으로 주사기를 강에 던졌다. 손에서 떠난 주사기는 작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주사기가 천천히 가라앉는 수면을 잠시 망연해서 내려다보다 말고 고개를 후딱 돌려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는 안경쟁이였는데, 유리알 속의 풀린 듯한 눈뿐 아니라 입가에까지 미소를 띠고 재미있다는 듯 나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삼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허약해 보였다.

  이런 개자식이 다 있어! 나는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며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가 튀어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추격에 덜미가 잡히고 말고는 다음 문제로서,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그럴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당신 방금 나한테 무슨 짓 했어?”

  “뭘 말이지요?”

  나의 추궁에, 그는 어릿어릿한 태도로 반문했다. 얄밉도록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방금 내 옆구리에 주사침을 찌르지 않았느냐고.”

  “내가 그랬나요?”

  “뭐 어째? 이 작자가 정말!”

  참다못해 마침내 멱살을 와락 움켜쥐고 흔들자, 그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전혀 반항이나 거부의 몸짓도 없이 내 완력에 자기 몸을 맡기고 있었다. 따귀를 올려붙여도 가만히 당하기만 할 것 같은 태도였다. 오히려 싱거워진 나는 멱살을 놓고 다그쳤다.

  “똑똑히 대답해. 방금 그 주사기 안에 뭐가 들어 있었지? 나한테 뭘 주사 놨느냐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어요.”

  “뭐?”

  “그냥 빈 주사기였다니까요.”

  그의 말투나 태도가 영 종잡을 수 없어,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빈 주사기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고?”

  “그래요.”

  “누굴 놀리려고 해. 내가 그 말 곧이들을 것 같아? 빨리 사실대로 대. 코뼈 부러지기 전에.”

  “나 참! 선생 스스로 믿지 않을 작정을 하구서 뭘 사실대로 말하라는 거죠?”

  나의 추궁에 대한 그의 대답은 여전히 그런 식이었다. 빈 주사기로 장난을 쳤다는 것이다. 아니, 그는 ‘장난’이란 말 대신 ‘그냥’이란 표현을 썼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어떤 의도가 내포된 행위였다는 점을 은연중 인지시키고 싶어하는 투였다.

  그때쯤은 주위에 인간들 몇 명이 모여들어 우리의 시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곧 벌어질 주먹다짐을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런 구경꾼들이 얄미워, 그를 끌고 그 장소를 떠났다.

  그는 고삐에 매인 소처럼 순순히 따라왔다. 처음에는 내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는데, 잠시 후 손을 푼 뒤에도 그는 여전히 내 한 발짝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 순종적인 태도가 어처구니없었고, 그래서 제풀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나한테 황당한 짓을 한 이 작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세게 다그쳐 당장 알아내고 싶었으나, 나 스스로 무너지는 꼴을 보이는 짓 같아서 꾹 참았다.


  내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가까운 파출소였다.

  상가인지 주택단지인지 애매한 곳의 이면도로 모퉁이에 있는 파출소 문을 밀고 들어서자, 저녁식사 직후의 짧은 휴식을 즐기고 있는 듯한 경찰관 서너 명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문 가까운 쪽 책상 너머에 앉아 있던 경찰관이 우리더러 무슨 일로 왔느냐고 친절하게 물었다.

  대답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잠시 머뭇거렸다.

  “뭘 도와드릴까요?”

  경찰관이 다시 물었다.

  “이 사람을 좀 조사해 주십시오.”

  “조사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자세히 말씀하세요.”

  나는 시민공원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는데, 듣고 있는 경찰관의 표정은 무슨 얼빠진 횡설수설이냐고 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느낌에는 그랬고, 다음 질문의 억양도 조금씩 뻣뻣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분이 선생님께 갑자기 주사침을 찔렀다, 그런 겁니까?”

  “예.”

  경찰관은 그를 약간 노려보며 내 주장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그는 순순히 시인했다.

  “왜 그랬어요?”

  “빈 주사기로 그냥 장난 좀 쳤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입으로 ‘장난’이란 표현을 썼다.

  “자앙난?”

  거듭 묻는 경찰관의 억양이 기묘하게 비틀어졌고, 사내는 이번에는 대꾸 대신 씩 웃기만 했다. 노골적인 경멸을 담아 그를 쳐다보던 경찰관의 시선이 나한테로 왔다.

  “그래서, 선생님은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거죠?”

  “주사기에 뭐가 들었던 건지 조사해 달라는 겁니다.”

  “주사기가 없는데 뭘 갖고 조사합니까? 이 분은 그냥 장난쳤다고 하잖아요.”

  “거짓말일 겁니다. 만약에 치명적인 뭘 넣어 가지고 그런 짓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관은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시선으로 나와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쯤은 다른 경찰관들도 우리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분위기 역시 자기네 동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주정뱅이나, 정신이상자나, 부랑자처럼 범죄와 상관없이 민생치안의 말단기관에 찾아와 괜히 성가시게 구는, 그런 피곤한 부류에 도매금으로 우리를 끼워 넣는 것 같았다.

  경찰관이 다시 나한테 물었다.

  “지금 컨디션이 어때요? 어디 이상한 데가 있습니까?”

  “별루요.”

  “주사바늘에 찔린 자리가 아픕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경찰관은 갑자기 담이라도 결리는 듯이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가 폈다. 그러고는 귀찮은 듯이, 마치 화를 삭이는 듯한 억양으로 말했다.

  “몸에 아무 이상 없으면 된 거 아닙니까?”

  “예?”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가벼운 장난친 걸 가지고 경찰더러 뭘 어쩌란 겁니까?”

  나는 대꾸할 말이 갑자기 막혀 경찰관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증거물인 주사기도 없고, 이건 경범죄로도 기소할 거리가 안 되는 겁니다. 정 뭣하면 병원의 정밀진단서를 받아 가지고 와서 말씀하세요.”

  경찰관은 그런 결론을 선언하면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내 문제하고는 상관도 없는  파일을 신경질적으로 탁 덮었다.

  결국 나는 기분만 아까보다 더 엉망이 되어 파출소를 나오고 말았다. 망할 자식들! 저 따위도 경찰이라고.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화를 낼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욱 참담하게 구겨졌다.

  어느덧 거리의 집들 안팎에 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도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있었다.

  나는 파출소 문 앞에 잠시 서서 어스름한 저녁어둠이 깔린 거리를 망연히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그 역시 곁에 서서 머뭇머뭇하고 있었다. 마치 내 처분이나 지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순종적이고 비굴한 태도를 보자, 불현듯 반사적인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걸음을 떼어 옮기며 그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따라오쇼.”

  거부하면 다시 멱살이라도 잡을 각오였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고삐에 꿰인 듯 순순히 따라왔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리는 한산한 지하다방 안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대뜸 추궁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대답하시오. 아까 그 주사기 안에 든 게 뭐였소?”

  “이미 말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고요.”

  “나더러 그걸 믿으란 말이오?”

  “믿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증명해 보일 주사기도 없는데.”

  “아니, 뭐요?”

  내가 울컥 내뱉는 바람에 다른 손님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억양을 도로 낮추었다.

  “정말 빈 주사기로 그랬다는 거요?”

  “예.”

  “왜?”

  “이런 말씀 드리면 고깝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젠 소모적 입씨름은 그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똑같은 질문, 똑같은 대답의 반복일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우선 통성명이나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고는 백 아무개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악수를 청할 듯하다가, 내 분위기가 여전히 굳어 있으니까 어색하게 손을 끌어들였다.

  나는 기가 꽉 막혔다. 화를 내자니 너무 옹졸한 것 같고, 순순히 이름을 대자니 그런 얼빠진 짓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싫고 거추장스럽더라도 우리 누구나 배격할 수 없는, 세상 살면서 은연중에 훈련되기 마련인 통상예법에 따라 결국 어물어물 이름을 대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 난 뒤의 기분은 착잡하기 그지없고, 자신의 덜떨어진 처신에 화가 치밀었다. 한편에서는 통성명 정도로 그에게 좀더 다가가서 불리할 것은 없다는 내면의 변명도 들렸다. 어쨌든 이 작자에 대해서 뭔가 알아두긴 알아두어야 하잖아. 그냥 놓쳐 보낼 수는 없잖아. 나 속의 또 다른 내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자, 그는 목구멍을 적시듯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내가 묻지도 않은 자기 신상 이야기를 대뜸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철학 전공으로 어렵게 유학까지 하고 돌아왔으나, 자기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해 몇 년째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막스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이나 스피노자의 ‘자아 유지의 노력’ 따위 허황한 이론은 물질만능으로 번질번질하게 도배된 이 땅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가 외국에 나가 있은 몇 년 동안 이 땅의 사회는 놀랍게 변해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정상적 이성과 사고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라는 것이었다.

  “난 내 인생을 포기했답니다. 이런 사회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며, 자신을 내던질 벼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겁니다. 사실 죽음은 늘 내 곁에 따라다니는 짜릿한 유혹이지요. 정말입니다.”

  절제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신상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은 그는 내 감성이 그것을 미처 소화하기도 전에 안경 속의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젠 제가 선생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군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기울어져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차례라니, 미친 자식! 내가 언제 그따위 신세타령 주고받자고 했나. 나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예의 ‘훈련된 통상예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봉제품 하청공장을 운영하다가 직공까지 두 명 죽는 화재로 쫄딱 망하고, 그 여파로 아내하고도 갈라선 사연을 털어놓았다. 강물에 돌멩이 하나씩 툭툭 던지는 듯한 화법으로, 듣는 쪽에서는 종합적으로 해석해야 아귀가 들어맞도록 끊어서 풀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의 칼날이 많이 무뎌졌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이 괘씸하고 얄밉기 짝이 없는 작자를 붙들고 뭘 어쩌자는 건가. 이렇게 자신을 꾸짖으며 칼날을 다시 숫돌에다 갈려고 했지만, 이성과는 달리 감정은 그가 펴놓은 ‘대화의 방석’에 이미 엉덩이를 척 내려놓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와 나는 처지가 비슷한 인간이었다. 요인과 시작은 다를망정 삶에서 좌절하고, 자학적인 절망의 질퍽한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그의 표현대로 ‘곁에 따라다니는 짜릿한 유혹’인 죽음의 손짓을 힐끔힐끔 돌아보는 염세가들이었다.

  그 유사성이랄까 공통점은 나를 상당히 놀라고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내 앞에 불쑥 다가온 이 인간이 나한테 도대체 어떤 관계의 존재란 말인가. 그의 출현이 과연 하나의 우연에 불과한가. 장난으로 주사침을 찌른 것 이상의 어떤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있다면 그 이유의 진실은 무엇일까.

  마침내 나는 골치가 아프며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 반작용으로 휴화산의 활동처럼 새삼스런 화가 치밀었고, 그와 마주앉아 찻잔을 기울이는 나 자신이 구제불능의 머저리처럼 정나미가 떨어졌다.

  “당신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나는 다시금 감정의 칼날을 애써 세우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유를 물으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소재를 확인하고 있어야 되겠다고 쏘아붙일 작정이었다. 내 몸에 주입된 균으로 죽을병에 걸리면 가해자인 당신한테 책임을 물으려고 그래, 왜.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같이 죽는 거야.

  그러나, 나의 칼날은 겨누기도 전에 빗나갔을 뿐 아니라 준비한 대답도 필요 없어지고 말았다. 당연한 요구라는 듯 그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까만 가죽지갑을 꺼내어 주민등록증을 뽑아 얌전히 내 앞에 놓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한술을 더 떴다.

  “지금 사는 덴 주민증 주소하고는 달라요. 최근에 이사했는데, 귀찮아서 아직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말한 그는 티셔츠 호주머니에서 볼펜과 함께 작은 수첩을 꺼내어 펼쳐 두 개의 주소를 적고 그 낱장을 찢어 나한테 주었다. 각각 영등포구 당산동과 관악구 봉천동으로 구분된 주소인데, 당산동 주소는 주민등록증의 기록과 일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였다. 그는 나를 아주 바보로 만들겠다고 작정을 단단히 한 것 같았다. 내가 쪽지를 받고 주민등록증을 돌려주자, 수첩에다 볼펜 끝을 대고 끄적거릴 자세를 취하면서 천만뜻밖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선생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나는 이마를 툭 쥐어박힌 사람처럼 상대방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묻소?”

  “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래야 서로 공평하지 않을까요? 선생의 뒷소식이 궁금할 것이기도 하구요. 내 전화번호는 팔팔삼에 공팔칠팔입니다.”

  순간, 그가 주사기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깨달음이 내 머리를 쳤다. 이 자식이 역시! 그러나, 이제 새삼스럽게 다시 화를 내는 것은 구차하고 졸렬하다는 생각이 나를 만류했다. 이 작자는 자기가 한 짓의 결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체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기왕지사 기묘한 끈을 연결해 두고 있어야 할 판이라면 전화번호쯤 가르쳐 주어서 손해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찻잔이 비자마자 나는 먼저 일어났다. 그와 마주앉아 있을수록 점점 더 바보가 되어 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얼른 따라 일어났고, 허둥지둥 카운터로 가더니 자기가 찻값을 계산했다.

  우리는 다방을 나와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저마다 방향은 다를망정 어차피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가 탈 버스가 금방 도착했다.

  “그럼.”

  나는 고개를 까딱하고는 버스에 오르기 위해 돌아섰고, 그는 또 악수를 청할 듯하다가 마는 어색한 동작을 보이며 인사했다.

  “살펴 가십시오.”


  시민공원에서 당한 그 어처구니없는 봉변은 그날 이후 내 정신생활을 온통 바꾸어 놓았다. 나는 한시도 그 생각의 구속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 외의 다른 것, 이를테면 망해버린 사업, 송곳으로 내 가슴을 후비고 떠나간 아내, 막막한 현실의 질곡 따위는 ‘지금 내 혈관 속에 피와 함께 떠다니는 무엇’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뒷소식이 궁금할 것이라며 태연히 전화번호를 묻던 그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주사기 안에 어떤 액체가 들어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주사액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몸 속에서 맹렬하게 증식되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당시 나는 그의 표현처럼 ‘짜릿한 유혹’인 자살을 은근히 꿈꾸었고, 따라서 죽음은 발목의 쇠사슬처럼 이미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내 목숨을 주인으로서 당당히 끊는 것과, 타인의 손을 빌려―그것도 그야말로 장난처럼 어이없이―죽임을 당하는 것은 엄연히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고민 끝에 어느 큰 종합병원에 찾아간 것은 사흘만이었다.

  사건 다음날로 곧장 병원을 찾지 않고 시간을 뭉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살을 줄곧 생각해 왔으면서 정작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해서는 허겁지겁하는 꼴을 스스로 보이기 싫었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병원에 가면서도 그 이율배반과 나약성에 가슴이라도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과진료를 신청하고 한 시간쯤 기다려서야 겨우 차례가 와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안경을 낀 중후한 인상의 사십대 남자였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십니까?”

  질문하는 의사의 말씨에서는 의외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내 기분이 한결 안정되는 것 같았다.

  “저, 사실은 어디 특별히 아파서 온 게 아닙니다.”

  “아프지 않은데 그럼 병원엔 왜 오셨지요?”

  “검사를 좀 받아 볼까 하고요. 혈액검사를요.”

  “혈액검사?”

  나는 얼른 시민공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고, 그래서 혹시 에이즈 같은 나쁜 병에 걸리지 않았나 염려되어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의 표정이 이삼 일 전에 만난 파출소 경찰관의 표정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접촉이 언제였다고요?”

  “사흘 전입니다.”

  “그러니까 에이즈가 염려된다, 그 말씀이죠?”

  “혹시나 해서요. 그리고, 에이즈 아닌 다른 병인지도요.”

  “조심하셔야지. 한 번의 괜한 실수가 일생을 망치는 겁니다.”

  “예?”

  “일단 수납에서 계산하고 채혈실로 가세요. 그리고 두 주 뒤에 다시 오십시오.”

  의사는 내가 불결한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에이즈를 겁내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판단했지만, 굳이 변명하거나 사실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았다.

  “죄송하지만,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선생의 경우, 기간이 짧기 때문에 오늘 채혈에서 아직 감염 여부가 밝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주쯤 뒤에 재검사가 필요한 겁니다.”

  “그럼 두 번째 혈액검사에서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장담할 수 없지요. 개인편차가 있으니까. 그래서 베이스라인 바이얼 로드테스트라고, 두 주 정도씩 간격을 두고 분리검사를 계속하면서 혈액 속의 에이치 아이 브이, 다시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와 면역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하여튼 두 주일 뒤에 체크 결과를 보면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아셨죠?”

  나는 의문사항 한두 가지를 더 물어보고 나서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의 지시대로 수납창구를 거쳐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았다. 그런 다음, 알코올이 묻은 약솜으로 바늘자국을 누르고 밖으로 나오면서 등신 머저리 같은 자신에게 부걱부걱 치미는 화를 삭이느라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나마 인간적인 좋은 의사를 만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렇지만 두 주일 뒤에 다시 오게 될지 어떨지는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자다가 악몽을 꾸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해골처럼 뼈만 앙상한 인간들 속에 있다. 온몸이 열꽃 같은 반점 투성이고, 헤벌린 입 속 혀에는 허연 더께가 낀 불결하기 짝이 없는 군상들. 나를 향해 일제히 뭐라고 하소연하는데, 혓바닥의 불결한 백태가 거품처럼 점점 부풀어 꾸역꾸역 흘러나온다. 그렇게 징그럽고 싫을 수가 없다. 피해서 도망치려고 하자, 그들이 손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만들어 나한테 달려든다. 어떻게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두려워 몸부림치다가 보니 내 몸이 어느새 그들과 똑같은 꼬락서니가 아닌가. 영락없는 에이즈 말기환자다. 아악! 싫어! 나 살려줘!

  소스라쳐 놀라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꿈일망정 어찌나 놀랐는지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일어나 불을 켜고 거울 앞으로 가서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보았다. 의사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몹시 피로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고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일단 에이즈로 의심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설령 감염된 것이 사실일지라도 아직 그 단계는 아니었다.

  잠이 아주 달아난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서늘한 밤기운과 푸른 달빛이 반기며 한 아름 안겨 왔다. 밤의 고즈넉함과 달빛의 아름다움이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다. 내 영혼이 실로 모처럼 느껴보는 신선하고 아늑한 행복이었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살아봐도 괜찮은 곳이 아닐까.

  나한테 주어진 어떤 몫이 어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젊은 두 목숨을 앗으며 불타버린 공장은, 그 재산은 나의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는 어떤가. 나의 추락에 동반할 수 없다며 떠나갔지만, 이미 그 전에 그녀에게는 남자가 있었다. 나는 어렴풋이 짚고 있었지만, 단지 자신이 천박스럽고 결과가 두려워서 확인을 미루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아내 또한 본질적으로 완전한 내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별로 잃은 것이 없는 셈이다. 절망하고 자학하며 자신의 몸뚱이를 패대기칠 명분이 구차스럽지 않은가.

  나는 그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가 새벽녘에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겨우 눈을 뜬 것은 오전 열 시가 지나서였다. 밝은 햇빛이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다 놓았다. 나를 둘러싼 침체된 풍경과 일상은 변한 것이 없었고, 지난밤의 아늑한 기운과 푸른 달빛, 그리고 거기 순수하게 빠져들던 나의 모습은 또 다른 하나의 몽롱한 꿈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럴 무렵이었다.

  상대가 그임을 확인하자, 내 기분은 뭐라고 꼬집어 표현할 수 없이 착잡했다. 화를 내야 할지 어떨지조차 모른 채 어정쩡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는 스스럼없이 가볍게 안부를 물었는데, 내 귀에는 ‘에이즈가 어떻게 되었나’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제야 불현듯 화가 치밀어 쏘아붙였다.

  “벌써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소. 어때, 속시원해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그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한두 마디 볼멘소리로 대꾸해 주다가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망할 자식 같으니! 도대체 그와 그런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다.

  다시 병원에 가기까지의 두 주일은 무척 긴 시간이었다. 병원 갈 날짜가 다가올수록 살이 조금씩 빠지지 않았나, 몸 어딘가 나도 모르는 반점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 알몸을 거울에 비쳐보곤 했다. 항상 나른하고 무기력한 상태이긴 하지만, 오늘이 어제나 그제보다 그 심도가 더하지나 않은지 컨디션을 체크하기도 했다. 그 문제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모든 생각의 끝에 가서는 어김없이 그쪽으로 쏠리고 마는 나약한 자신이 염오스러울 지경이었다.

  검사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래서 다시 피를 뽑고 돌아왔다. 두 주일 후에는 감염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만일 감염 사실이 분명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없었다.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로 미루어버렸다.

  지난번보다도 감염의 개연성은 더 높아졌으나,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병 걸려 죽는다면 그것도 내 운명이다. 가슴 치고 발 구른다고 달라질 일인가. 거울을 쳐다보거나 체중을 체크하는 구차스러운 짓도 차츰 시들해졌다. 자신이 판단해도 신기할 정도의 심리변화였다.

  의사는 말하기를,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인체 속의 면역기능 때문에 100퍼센트 병을 일으키지는 못하며, 에이즈 바이러스 양성인 사람도 10년 이상 아무런 증세 없이 표면적으로는 멀쩡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의사의 말이 나의 심리상태에 퍽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럴 무렵, 나는 두 통의 중요한―중요하다기보다는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는 표현이 정확한―전화를 받았다.

  첫 번째는 뜻밖에도 아내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마치 멀리 여행을 떠난 여자가 집안일을 챙기듯 내 근황과 건강을 물었는데, 버럭 소리지르며 수화기를 박살내지 않는 나 자신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전선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의 텅 빈 가슴속에 얼룩져 있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그녀의 흔적 때문이 아니었을까.

  퉁명스럽기는 해도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나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모양이었다. 이야기 끝에 아내는 자기를 받아줄 수 있는지를 우회적 화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결국 화를 내며 일방적으로 통화를 끝냈지만, 그날 밤은 한잠도 못 자고 에이즈와 아내 두 혐오의 대상과 싸워야 했다.

  두 번째 전화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당시 나는 보험회사와 화재보험금 때문에 지루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나의 수임변호사는 보험회사에서 타협을 원한다고 알려주었다. 계약금액 100분의 60으로 조정하자고 제의해 왔다는 것이다. 끝까지 간다고 해서 이쪽에 꼭 유리한 것도 아닌데, 사장님 뜻은 어떻습니까. 어느 편에 서 있는지 헷갈리게 하는 말투였다. 엄청난 거액도 아닌 사건이라 얼른 종결하고 약정된 자기 몫―물론 일반기준보다 훨씬 높게 결정된 수임요율에 의한―을 챙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사건에서 얼른 손을 털고 싶은 심정이야 변호사보다 내가 더했다. 그러면서도 거의 일 년 가까이 재판에서 버틴 나였다. 보험회사의 억지와 잔꾀와 뻔뻔함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100분의 80으로 역제의했다. 그 80에 해당하는 보험금에서 변호사 수임료를 떼고 나면 얼마 남지 않지만, 화재를 당하기 전까지 쌓은 거래신용과 사업 노하우가 있으므로 조금 무리하면 걸음마 같은 새 출발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새 출발을 하고 않고는 다음의, 다른 결정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내 몸의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두 번째 채혈한 피에서도 우려했던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안도감이나 기쁨보다는 어쩐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단순한 장난이었을까. 정말 나 혼자 겁을 집어먹고 바보처럼 굴었나. 그렇다면 왜 그는 생면부지의 나하고 굳이 구차스러운 끈을 연결하고 싶어하는가.

  다시 병원에 간 것은 4주만이었다. 일부러 간격을 곱절로 늘인 것이다. 의사의 의견이 아닌 나 자신의 뜻이었다. 결과는 역시 또 음성이었다. 그리하여 네 번째 검사 결과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의사로부터 들은 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장롱 서랍 어딘가에 처박혀 있은, 언젠가는 입에 털어넣게 되리라고 예상하던 약을 찾아내어 병째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 다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서너 번 일방적인 전화를 받고 볼멘소리 몇 마디 끝에 수화기가 깨지도록 놓곤 했으나, 그날은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건 것이다.

  그가 금방 내 목소리를 아는 것을 보고, 나는 대뜸 시비조로 말했다.

  “내 전화 기다렸을 거요. 이번 네 번째 검사결과도 음성반응으로 나왔으니 퍽도 실망되겠군요?”

  그는 감기기운이라도 있는지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새삼스럽게 말하지만, 나에 대한 선생의 인식은 분명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요? 당신 때문에 그동안 겪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얼마나 큰데. 아니, 마지막으로 좀 물어봅시다. 그때 왜 그런 장난을 쳤소?”

  “방금 선생의 표현대로 장난이라고 해둡시다. 하지만, 단순한 장난은 아니었지요. 그건 그 이후의 경과가 증명해 주지 않습니까?”

  “단순한 장난이 아니면? 경과니 증명이니 모호한 말 쓰지 말고 직접화법으로 말해 봐요. 난 머리가 나쁜 사람이니깐.”

  “선생은 모를지 모르겠으나, 그날 우리의 만남은 초면이 아니었습니다. 그 공원에서 난 선생을 두세 번 봤던 거죠.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아, 또 한 사람의 내가 저기 있구나’하는 것이었어요. 초라한 아웃사이더, 자살을 꿈꾸는 인생 실패자, 현대사회가 가장 기피하는 무능력 무기력한 인간의 표본 말이지요. 병들고 지친 개는 성한 개보다 자신처럼 병들고 지친 개를 보면 더 이빨을 세워 으르렁댄다지요? 내가 선생한테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와 유사한 겁니다. 그래서 선생을 변화시켜 보자고 작정한 겁니다. 나 자신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변화를, 강력한 충격요법으로 실현해 보자는 거죠. 어쩌면 자기치료의 가능성을 선생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선생 자신을 돌아보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선생은 그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그건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를 유심히 감지해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는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거든요.”

  침착하고 천천히 풀어내는 그 말은 잔잔한 미풍에서 갑자기 강풍으로 변하여 나를, 황야의 한 그루 나무인 나를 마구 흔들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조용히 듣다 말고 물었다.

  “그래, 당신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로 합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요? 내 변화를 보면서, 나를 거울삼아 스스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섰소?”

  “아니오. 난 글렀어요.”

  “왜요?”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요. 어쨌든 우리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도 제자리를 찾았다면 성공 아니겠어요? 하여튼 기쁘군요. 축하합니다. 그럼…….”

  처음으로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이게 마지막 대화야. 마지막이어야 해. 어느 쪽의 뜻이든 간에. 나 속의 내가 그렇게 충고했다.


  그런 내가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그 무렵, 나는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보험회사와의 줄다리기가 승리 일보직전이라는 통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하고도 실밥 터진 이불깃을 꿰매듯 궁색하게 화해하여, 그녀가 내일이라도 가방 들고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단계였다. 그에게 전화할 생각이 내킨 것도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기인한 심리적 여유의 알량한 과시욕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남자의 목소리가 달랐다. 자살인지 자연사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의외의 소식이었다.

  자꾸 관계를 캐묻는 바람에 얼른 수화기를 놓은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상념의 소용돌이에 추락하고 말았다. 도대체 그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저번 통화에서 나한테 털어놓은 마지막 말이 액면 그대로 진담이고 진실이었을까. 그는 어쩌면 불가사의한 어떤 힘이 배려해 보낸 나의 분신이나 복제가 아니었을까. 아니, 과연 ‘그’라고 하는 존재가 내 주변에 실존하기는 했던 것일까.

  머리가 터질 듯한 상념에서 벗어나려고 번쩍 고개를 쳐들자, 벽걸이 그림달력 속의 달마가 못나떨어진 내 꼴에 파안대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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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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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종명 | 작성시간 10.10.07 감사합니다.
  • 작성자천부 김미화 | 작성시간 12.12.24 메이퀸 너무 의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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