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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작성자이 대훈|작성시간11.07.08|조회수65 목록 댓글 0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얼마전 뉴스를 듣는데 90살 노부부가 치매에 걸려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30여년을 더 사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펐겠는가 싶더군요. 저는 얼마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만큼이 부모로써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 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해 줄 형편이 안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 안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성한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한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란 말하기가 왜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관절이 안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거 같은 생각마져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지더라구요, 그래도 아따금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꼬깃주는 그 만원짜리 서너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한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만 먹는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쓰고 또 빈털털이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한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야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 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끼 꼭 좀 사야 안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들놈 하는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 할께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 했어요. 그렇게 아들놈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 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끼 살라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구요. 4만원가지고는 15명이나 되는 모임친구들 5000원짜리 국밥 한그릇도 못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좀 다오 했더니 2만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사긴 틀렸다 싶어서 괜한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깐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지길래 며느리한테 세번에 거쳐 받은 10만원 안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구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14일 왠수 40,000원 9월15일 왠수 20,000원 9월17일 또 왠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집에서 살 수가 없을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지더라구요 그렇게 한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10년은 더 늙은 듯 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깐 그 노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며느리랑 아들한테 평생의 짐이 된 단 생각이 들때면 가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 할텐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이제 곧 손자녀석도 태어 날텐데 자꾸 그때 그 며느리의 가계부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멍들어서 더 늙어가면 안되지 싶은생각에 오늘도 수십번도 더 마음을 달래며 고치며 그 가계부의 왠수란 두글자를 잊어보려 합니다. 차라리 우리 며느리가 이 방송을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자식 뒷바라지에 다 늙고 몸 어디 성한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과 인지 모르시죠? 이 세상 부모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식한테 받는 소외감은 사는 의미 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 왔던 의미까지도 무의미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가슴 아팠던 심정을 털어 놓았느니 며느리 눈치 안보고 곧 태어날 손주녀석만 생각하렵니다. 요즘은 내가 혹시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책도 읽고 인터넷 고스톱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출처: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
      
     


 

 

♡ 날마다 보고싶은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
 
어느 농촌에 노 부부가 살고 있었답니다. 공기 좋고, 인심 좋고… 노 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서울 사는 아들 내외 자랑, 공주같이 예쁜 손녀 자랑 하면서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일찍 서울로 유학보내고, 두 부부는 고생 고생하며 학비를 조달하여 대학 졸업시키고………. 지금은 재벌회사 과장까지 승진하여 강남 아파트에서 명문대학 나온 우아한 아내와 잘 살고 있는 아들은, 정말이지 이 부부에겐 크나큰 자랑이었답니다. 아들은 여간 효자가 아니어서 추석이나 설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제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와서 명절을 보내고 올라가곤 했었 답니다. 우아한 며느리와 공주같은 손녀 딸을 볼 때마다 노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늘 으쓱대는 기분을 느끼곤 하였지요. 아들 내외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아버님 어머님 시골에서 이렇게 고생하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서울로 가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아니다. 우리같은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서울이 다 무에야. 그냥 이렇게 살다가 고향땅에 묻힐란다" 하고 사양했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부부는 언젠가는 서울의 강남에 있는 아파 트에서 아들 덕택에 호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 했더랍니다. 그러다가 노 부부중 할멈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상을 치르는 내내 아들 내외가 어찌나 애통하게 엉엉우는지 동네 사람들도 모두 가슴이 찡하였답니다. 초상을 치르고 나자 아들 내외는 또다시 간곡하게 청하였답니다. "아버님, 이제 어머님도 가시었으니 어쩌시렵니까? 고향집 정리하시고 서울로 올라가시어 저희와 함께 사시도록 하 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할멈도 떠나간 이제, 그도 그럴것이다 싶어 노인은 몇날을 생각 타가 결심을 하였답니다. 논밭과 야산등… 모든 가산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답니다. 가산을 정리한 돈은 아들 내외에게 주어 32평아파트에서 42평 아파트로 옮기고…, 노인의 서울생활은 처음엔 그런대로 평안하 였답니다. 그즈음 아들은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할 때도 되었고, 회사일이 워낙 바쁘기도 하였으므로 매일을 새벽에 출근하였다가 밤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일과가 몇 달이고 계속되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이 썰렁하니 비어 있더래요. 다들 어디 갔나? 하던 차에 식탁 위에 있는 아내의 메모를 보았더래요. 메모에.. - 여보 우린 모처럼 외식하러 나가요. 식사 안하고 퇴근하였다면 전기밥솥에 밥있고 냉장고 뒤져 반찬 찾아 드세요. 좀 늦을지도 몰라요 가족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속을 뒤져 맥주를 찾아서 마시고 있 자니 현관쪽이 시끌해지며 나갔던 식구들이 돌아오는 기척을 느꼈 습니다. 아, 그런데 들어오는 걸 보니 아내와 딸, 둘만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 왜 둘만이지? - 둘만이라니? 요기 밍키도 있잖아? 아내는 강아지를 남편의 눈앞에 들어보이며 활짝 웃었습니다. - 아니, 아버지는? - 오잉? 아버님 집에 안계셔? 어디 노인정이라도 가셔서 놀고 계신가? - 아버지께서는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나? 남편이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 웅, 으응… 아내는 더듬거렸습니다. 사실 아내는 평소에 노인이 몇시에 나가서 몇시에 들어오는지 도통 생각이 안납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노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노인이 들어오실 때까지 자지않고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아내는 벌써 잠들었나 봅니다. 그때 아들은 책상 한켠에 정성들여 접혀진 쪽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볼펜으로 꾸~욱 꾹 눌러쓴 글씨… 무슨 한이라도 맺힌듯이 종이가 찢어지도록 꾹꾹 눌러쓴 글씨… 아버지의 필적이 틀림없었습니다.
…….. - 잘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자정도 넘어 밤은 깊어만 갑니다. 노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은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에 잠깁니다. "잘 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이 시간까지 아버지가 귀가 안 하신걸 보면 가출하신 것이 틀림 없는 것 같은데... 한데…왜,왜,왜…??? 아들은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평소에 햇볕이 잘 드는 방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정 넘은 오밤중 이긴 하지만 왠지 우중충하다는 느낌이 드는 방이었습니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빨랫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빨랫줄에는 양말 세컬레, 팬티 두장과 런닝셔츠 두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 것이겠지요. 방 한켠에는 어린 딸의 옷장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어린 딸이 이제 그만 지겨워한다고 옷장을 더 예쁜 것으로 바꿔주고 나서 아마 이 헌 옷장을 아버지 몫으로 돌린 모양입니다. 옷장 위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참으로 착하디 착한 얼굴입니다. 상 치를 때 영정으로 사용하던 사진입니다. 방구석에 소반이 있었습니다. 소반 위에는 멸치 볶음, 쇠고기 장조림, 신 김치등 뚜껑있는 보시기가 몇개 있었고 마시다가 반병 정도 남아있는 소주병이 있었습니다. 아아~~, 아버지…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손녀딸도 있는데 아버지는 그 동안 이 골방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계셨던가요? 아아~~, 아버지…며느리도 있고 세탁기도 있는데… 아버지는 팬티와 런닝을 손수빨고 이 방에서 손수 말리고 계셨던가요…? 아들은 무언가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고 싶은 자괴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날이 뿌옇게 밝아오자 아들은 아파트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혹시 나 노인이 어디선가 밤을 지새운 흔적이 있는가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파출소에 가서는 노인의 가출을 신고하였습니다. 고향의 이장 어른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3번아 잘있거라 6번은 간다…. 이 암호를 우선 풀어야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아들은 조바심을 쳤습니다. 직장동료, 상사…대학동창 등…. 현명하다는 사람은 다 찾아 이 암호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도 그 암호를 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날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들은 이제 부장진급이고 뭐고 아무 생각없고… 오로지 아버지 생각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술한잔에 애잔한 마음을 달래고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 자네 김아무개 영감 자제가 아니던가? 아파트 입구에서 어떤 영감님이 아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 아, 예…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 웅, 난 김영감 친굴세…군데 요즘 왜 김영감이 안뵈네? 그리구 자넨 왜 그리 안색이 안좋은가? 그래서 아들은 약간 창피하긴 했지만 아버지께서 가출한 얘기를 간단히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감님에게 이제는 유서가 되다시피한 그 암호문을 내밀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영감님은 그 쪽지를 한동안 보더니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 흐으, 자네 이것이 무슨뜻인지 몰겠다구? 이사람아, 김영감이 늘 얘기하곤 했지…. 우리집에서는 며느리가 젤 위고 두번째는 손녀딸이고 3번이 아들이라고 했지 4번은 강아지 밍키고… 5번은 가정부라 했네. 그리고 김영감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6번이라 하고는 한숨짓곤 하였지….. 글케 쉬운것도 자네는 풀지 못하나? 에잉… 아흐흐흐흑… 아들은 그만 눈물을 주루루룩 흘리고 말았습니다. 아,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찌 아버지가 6번입니까…. 1번, 아니 0번 이지요… 돌아서는 아들의 등 뒤로 영감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 고향엔 면목없고 창피해서 아니 가셨을 거여…. 집 근처에도 없을 거고… 내일부터 서울역 지하철부터 찾아보자구… 내 함께 가줌세.....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몇번입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아버지 여러분 ... 당신은 몇번이며 당신의 아버지는 몇번입니까? = 모셔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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