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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 소식

애비는 이렇게 살았다 - 조정래 (14회 동문)

작성자서당골|작성시간23.08.02|조회수3,016 목록 댓글 0

애비는 이렇게 살았다

 

글쓴이: 어주자 (본명: 조정래)

                                                                 

저서: <박꽃 같은 여자가 좋다>(2004)

                                                                 <쌀 한 됫박>(2006)

                                                                 <어매는 나더러 쑥맥처럼 살라 하네>(2008)

 

박통의 산업 경제 폭팔로 고급 외제 차에 주말 동남아 골프 및 관광 여행객이 수천 명씩 떠나는 어마무시하게 풍족한 나라가 되었지만... 불과 반세기 전에는 참으로 가난했던 나라입니다.

 

수출 경제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제 글 팬을 위하여, 사라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

학교 가는 길 중간중간 흙길이 조금이라도 좋은 구역은 신발 닳을세라 벗어 들고 맨발로 뛰던 검정 고무신 세대.

 

2.

책은 보자기에 싸서 어깨 가로 묶음으로 하여 달리면 필통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던 몽당연필 세대.

 

3.

영양 부실로 두상에 마른버짐 꽃을 달고 다리에도 여기저기 헐미 자국을 갖고 살아온 흉터 자국 세대.

 

4.

춘궁기는 거반 점심을 굶어 하교 길에는 빼기, 잔대, 개구리 뒷다리, 천방뚝 뽀삐,찔레 순, 우렁이, 메뚜기, 새박우, 뱀딸기, 송구, 고염, 개멀구, 개복숭아, 머루, 다래, 참꽃... 하늘 아래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샅샅이 뒤져서 다 먹고 다닌 허기진 세대.

 

5.

학질, 초점, 배앓이, 껄깨이, 지랄병, 천연두, 문둥병, 천식... 궁핍으로 이런저런 병을 겪었지만 바르는 약은 된장이나 개멀구 잎사귀, 먹는 약은 금계랍, 회충약, 그리고 바르는 약은 아까징끼로, 몹쓸 고질병을 겪은 세대.

 

6.

춘궁기에 허기져서 미처 익지 않은 보리를 낫으로 조금씩 먼저 베어서 먹었던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

 

7.

반찬이 없어 찬물에 식은 보리밥 말아먹은 마지막 백비탕 세대.

 

8.

형제가 많고 밥은 적어 가마솥 누릉지도 서로 먹으려고 했던 개걸 세대.

 

9.

1년 학교 다니면서 눈깔사탕 한 개도 못 빨아 먹고... 소풍날 사탕 하나 돌아가면서 빨았던 사탕 공동 빨 세대.

 

10.

미군이 준 껌 하나... 춘자가 며칠 씹고, 그 다음 말자도 며칠 씹고... 잠잘 때 벽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날은 남동생들이 돌아가면서 씹었던... 츄잉껌 돌림빵 세대.

 

11.

국수 한 그릇 준다면 잔치 일 돕고 모심기 일도 도와 주려던 세대.

 

12.

친척 집에 가서도 밥 량이 모자라지만 밥 한 그릇 다 비우지 못하고 꼭 체면치레로 몇 숟가락 남긴 세대.

 

13.

읍내 장 가서도 국밥 한 그릇 사 먹지 못하고 쫄쫄 굶고 집으로 별 헤면서 힘없이 돌아오던 세대.

 

14.

미군 밀가루 포대로 만든 옷 검정물 들여서 바지만 입었던 노팬티 마지막 세대.

 

15.

참외 수박 살 돈 없어 보리쌀 혹은 감자 들고 가서 사 먹었던 마지막 낱알 물물 교환 세대.

 

16.

석유 살 돈 없어서 소나무 관솔불로 숙제 했던... 콧구멍 시커먼 관솔불 세대.

 

17.

성냥을 다항이라고도 부르고 한 통 살 돈 없어서 성냥 낱알로 사서 쓰거나… 그도 돈 없으면 군불 아궁이에 밑불 무덤 만들어 사용했던 마지막 불씨 세대.

 

18.

아침 세수는 앞개울까지 걸어 나가서 비누 없이 얼굴 씻고 이빨은 개울 고운 모래 중지에 묻혀서 딱던 마지막 모래치약 세대.

 

19.

<섬마을 선생님> 라디오 연속극 들으려고 동네 부잣집 머슴방에 먼저 자리잡으러 가던 라디오 공동 청취 세대.

 

20.

추운 겨울 단백질 보충 위해서 햇불 들고 초가지붕에 잠든 참새잡이 하던 참새 단백질 세대.

 

21.

추운 겨울 논 웅덩이가 꽁꽁 얼면 진흙 속에 잠자는 미꾸라지 잡으러 다닌 세대.

 

22.

등하교 길은 보통 10리 20리 산길로 뛰어다니고, 마을이 멀고 해가 일찍 저물면 부모들이 호롱불 들고 산 고개길까지 마중 나와서 집으로 돌아간 세대.

 

23.

초등 중등 9년을 같은 동네 여학생들과 10리 넘는 등하교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다녀도 단 한번도 여학생들과 대화 나누지 아니한 순수한 조면 세대.

 

24.

등하교 길에 만나는 문둥병 걸인은 아이 간을 빼먹는다, 애총 무덤은 여우가 파먹는다, 상여 곳집에 피 묻은 귀신 나온다. 돌고개 마루에 늑대가 있다, 등교길 여기저기 귀신 이야기가 숨어 있어... 비록 어리지만 간 큰 아이들이 많았던 세대.

 

25.

정월 대보름은 하루 전에 산에 올라서 달맞이 불 피울 소나무 쌓아 놓고 보름달 솟는 날은 불 피우면서, "달 봐라!" 고함치며 소원 빌고 매곡, 괴정, 현애, 작녁골, 미질, 신양, 잘패 (예: 경북 안동 풍산읍 지역)... 어느 동네 불이 가장 크고 잘 타는지 무언의 시합을 했던 마을공동 달맞이 불꽃놀이 한 세대.

 

26.

흑세미, 붉은 당가루로 개떡 만들어도 별미로 치던 개떡 세대.

 

27.

선보러 갈 때는 동네 아는 삼촌 양복 빌려 입고 갔던 마지막 양복 빌림 세대.

 

28.

마을 형님 장가드는 날 새색시 보고 싶어 꼬맹이들이 색시 가마 넘어오는 돌고개까지 마중 나갔던 꽃가마 구경 세대.

 

29.

첫날밤 새신랑이 새각시 옷 벗기는 것 구경한다고 올망졸망 문고리 잡고 들여다 보다가 신랑이 뿌리는 간장물 덮어쓰면 불 꺼진 색시 방에 청양초 불 때워 매운 연기로 신랑각시 괴롭히던 장난끼 세대.

 

30.

브레지어 없이 젖가리개로 시집 온 세대.

 

31. 신혼살림은 변변한 옷장 하나 없이 미군 보루박스 혹은 비닐형 비키니 옷장과 사글셋방에서 시작한 마지막 사글세 단칸 신혼방 세대.

 

32.

새신랑 매달아 놓고 발바닥 패던 초야 놀이 한 세대.

 

33.

아버지가 장 가시거나 이웃 마실 나가시고 해 떨어져도 안 돌아오시면 호롱불 들고 밤길 마중 갔던 마지막 호롱불 마중 세대.

 

34.

부모님에게 말 대꾸 할 줄 모르고 어려서도 논밭에 나가 새끼머슴처럼 일하면서 늘 부모님 말씀 듣고 모시는 마지막 세대.

 

35.

추석 성묘는 일가친척 다 함께 이 산골 저 산골 선대 산소 벌초 다니는 마지막 세대

 

36.

부모상은 3일 밤낮을 곡을 하고, 빈소와 제사를 정성껏 모셨던 마지막 세대

 

37.

가족을 위하여 일요일 특근도 서로 하려고 했고, 간식으로 나오는 빵을 동생들 주려고 먹지 않고 집으로 갖고 오던 공돌이 공순이 세대.

 

38.

열악한 단칸방, 연탄 난방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마지막 연탄 가스 절명 세대.

 

39.

달랑 열차표만 들고 객지에 나와 첫날부터 잠잘 곳 못 찾아 헤매던, 출세를 위하여  무작정 대책 없이 고향 떠난 세대.

 

40.

공부 잘하고 머리 명석해도 부모님에게 대학 보내달라고 조르지 못하고 수출 단지 뒷골목 쪽방촌에서 방값 아끼려고 여러 명 한방에 같이 자취했던 마지막 쪽방 세대.

 

41.

총알 쏟아지는 월남전쟁터를, 쌀밥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하고, 살아 돌아오면 논밭 서너 마지기 살 수 있다 하여, 겂없이 전쟁터로 간 세대.

 

42.

그렇게 벌어서 아들 딸은 전부 대학 졸업시키고... 이제 쉬는가 했지만 수시로 손자 손녀 돌보미로 살아가는 마지막 국졸 세대.

 

43.

일평생 일해서 도시에 마련한 아파트 한 채마저 자식들 위해 팔고 다시 그 궁핍했던 고향마을로 낙향해서 다시 농사짓다가 쓰러지면... 아들 며느리 고급 외제 차에 실려서 더 머언 요양원으로 가서... 매일 요양원 진입로 멍하니 보다가... 언젠가는 눈물로 세상 떠날... 쓸쓸한 외톨이 노인 임종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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