離騷(이소)의 亂(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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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의 창작 장편시 이소...
고양임금의 후손으로..
내 선친은 백용이라하네.
이렇게 가문의 자랑으로 시작...다음과 같이 끝을 맺습니다.
난사에 이르기를,두어라! (亂曰已矣哉.난왈이야재)
나라 안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는데,(國無人莫我知兮.국무인막아지혜)
또 어찌 고국을 그리워하리! (又何懷乎故都.우하회호고도)
더불어 아름다운 정치를 논할 사람 없으니, (旣莫足與爲美政兮.기막족여위미정혜)
나 이제 평함이 계신 곳으로 쫓아가리라. (吾將從彭咸之所居.오장종팽함지소거)
★팽함(彭咸):은(상)나라 충신.투신 자살함.(굴원도 단오날 멱라강에서 투신 자살함.)
★악장의 마즈막 대합주를 난(亂)이라 하는데 굴원은 이소의 끝맺음도 난이라 했습니다.
★참고문헌:장강을 떠도는 영혼.(굴원평전.선정규교수.고려대중문과.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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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송장출16 작성시간 26.06.15 그때나 지금이나 몸사리는 부류,
살살이가 판치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울적했으면
초니라 굴원님이 멱라수에 몸을 던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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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충실 2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5 나라를 사랑한다고 목숨까지 던진 사람은 드뭅니다.
굴원은 가문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됨됨이로 보나,초나라 권부(權部)에 적당히 아부 했다면..
아마 모르긴해도 재상 한자라는 맡아놓았을 것...하지만 그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죠.
애국을 탐하고, 충성을 탐하고,정의를 탐했죠. 그 물증들이 사(辭: 楚辭)로 표출 된거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홍은아 29가족 작성시간 26.06.15 이 시대에 굴원같은 분은 아무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