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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11가지 거짓말
(필수 정독)
_자유일보
1. 문재인이 4.3사건을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한 까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입장대로 반란군이 의로운 세력으로, 진압한 군과 경찰이 학살자라는 프레임이 확정된다면, 역사적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공산 통일을 지항했던 남로당 등 공산 세력은 정의로운 세력이 되고, 이를 진압했던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북한은 정통성을 가지는 정권이 되고, 통일은 북한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반역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제주 4.3 사건은 단순히 그 사건의 희생자 보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함께 "어느 체제로 통일할 것이냐?"는 문제에 귀착된다.
2. 미군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다?
미국은 6.25전쟁이 끝난 후 미군을 모두 철수하려 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 방위 조약 체결을 합박하기 위해 미국과 상의 없이 반공 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해 정전 협상을 파기할 각오로 모험을 감행했다. 미국은 분노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국민들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정전 협정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한.미는 정전 협정이 체결(1953. 7. 27)된 직후인 10.1 변영태 한국 외무부 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부 장관 주도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해 미국 2개 사단이 한국에 주둔했다. 이렇듯 한미 상호 방위 조약과 주한 미군 주둔은 결코 미국의 의사가 아니고 대한민국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 따른 주한 미군 주둔으로 우리나라는 북한의 남침을 방어할 수 있었다.
3. 이승만은 미국이 보낸 간첩인가?
미국은 6.25전쟁 휴전 과정에서도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하다 그를 제거하려는 공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휴전 협정을 반대하고 북진 통일을 주장했고, 1958년 6월 18일 반공 포로 2만 7천여 명을 미국 몰래 석방시켜 휴전 협정 자체를 무산될 위기에 처하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다 안되면 정권에서 축출하는 작전까지 세웠다. 이렇듯, 이승만은 미국이 제거하고 싶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는 필요에 따라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결코 미국의 앞잡이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을 활용해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운 담대한 용미론자였다.
4. 대한민국 건국일이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날, 국내에서는 좌익 주도의 건국 준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건국 준비' 용어가 있었다는 것은 건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리고 1945년 8월 해방된 후 3년간의 준비 끝에 건국이 이루어졌다. 1948년 5.10선거를 통해 국회가 만들어지고, 국회가 헌법을 만들었으며, 헌법에 따라 대통령 등 행정부와 사법부 등 정부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1948년 8월 15일 오전 10시 대한민국정부 수립식이 개최됨으로써 대한민국을 통치할 정부 형태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렇게 형태가 갖추어진 대한민국 정부에 밤 자정(0시)을 기해 미 군정이 갖고 있던 통지권이 이양되었다. 이로씨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독립 국가로 건국된 것이다. 그러므로, 1948년 8월 15일은 명실 공히 독립 국가를 수립한 날, 즉 독립 기념일, 건국일인 것이다.
5. 6.25는 남한이 일으켰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키면서 남 조선이 서해안 옹진 반도를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북한군이 반격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포장 논리였다. 그러나 남침(南侵)은 역사적 사실이다. 6.25전쟁시 노획한 북한과 미국 자료 등을 통해서도 부정할 수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6.25전쟁 등 상당수 기밀 문서들을 기증받았다. 이로써 6-25전쟁이 김일성 주도아래 철저히 준비된 남침 전쟁 이었다는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후 6.25 관련 온갓 이상한 주장들이 사라졌다. 북한만 억지 북침설을 주장할 뿐 과거 북침설을 주장했던 좌파 세력도 대부분 북한의 남침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이다.
6. 효순이, 미선이는 미군이 고의로 죽였다?
2002년 11월 의정부의 미군 법정에서 효순, 미선을 치어 죽게 한 장갑차 운전병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데, 두 운전병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재판부가 운전병에게 고의는 물론 과실도 없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장갑차란 전투용으로 철제로 덮여있고 승용차처럼 유리창을 통해 전방을 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투시경을 통해 전방을 관찰하기 때문에 좌우 시각이 매우 제한적이다. 거대한 엔진소리와 헬멧을 쓴 상태에서 운전하는 등 운전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실제로 사고 당시 현장 검증을 해본 결과, 당시 운전병 자리에서는 갓길의 두 여중생이 보이지 않았고, 전차장은 순식간에 일어난 데다 통신 장애로 사고 가능성을 운전병에게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7. 미국이 광우병으로 한국 국민들을 죽이려 했다?
미국은 연간 3,000만 마리 이상의 소를 도축하는 육식의 나라인데, 2008년 당시 광우병 걸린 소가 한 마리도 없었다. 2000년 초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3마리 발견되었는데, 1마리는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였고, 두 마리도 1997년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기 전에 태어난 소였다. 1997년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 이후에는 광우병 걸린 소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모든 미국소가 광우병 걸린 것처럼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비록 광우병에 걸린 소라도 뇌, 뼈 등이 아닌 살코기에서는 광우병 원인 물질인 프리온이 0.55%밖에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살코기만 먹어도 100% 광우병 걸리는 것처럼 과장했다.
이렇듯 광우병 사태는 MBC-PD수첩의 과장 보도가 나라 전체를 광우병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다.
8. 세월호는 박근혜가 고의로 만든 사건이다?
검경(檢警) 합동 수사 본부가 수사한 결과나 재판을 통해 사실 관계가 밝혀졌는데,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선박 회사인 청해진 해운 업주의 잘못이 가장 컸다. 청해진 해운은 일본에서 20년된 중고배를 수입하여 많은 물건을 싣기 위해 설계 변경을 했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청해진 해운은 많은 화물을 실으려고 평형수를 빼고 갑판에 적재량 이상의 화물을 실은 데다 컨테이너, 차량 등 화물들을 철저히 고정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맹골 수도의 거센 파도로 인해 선체가 심하게 기울어지자, 과도하게 실은 화물들이 일시에 한쪽으로 대거 쏠리면서 꽝 소리와 함께 배가 더욱 기울어졌고, 복원력을 잃은 상태에서 전복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고의로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9. 박근혜는 탄핵될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법원에서 무죄 됨)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거짓 보도를 했고, 광회문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헌법 재판소 재판관들도 위협감을 느꼈고, 법원 판결도 없는 상태에서 전원 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간 수많은 재판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범죄 사실은 하나도 증명되지 않았다. 탄핵의 시발점이 된 태블릿 PC도 최순실의 것이 아니라 어떤 청와대 행정관의 소유로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직접 뇌물울 받은 것은 한 푼도 없었다. 그래서 법원이 뇌물죄의 명학한 근거가 없자 '포괄적 뇌물죄'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 덮어씌워 처벌한 것이다.
이렇듯,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적 가치인 법치주의가 탄핵 당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10. 남북한 분단 책임은 미군에 있다?
1947년 말 북한의 단독 정권 수립이 분명해지자, 유엔은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 인구 비려에 의한 총 선거로 단일 정부를 구성할 것을 결의했고(1947.11.14.) 총 선거를 감시하기 위한 한국 임시 위원단을 파견했다(1948.1.8.).
입국한 임시 위원단은 38도선 이북으로 들어가 선거 문제를 협의하려 했다. 그러나 38선 이북의 소련군과 김일성은 임시 위원단이 38도선 이북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1948.1.23.).
이에 유엔은 하는 수 없이 유엔 소총회 결의에 따라 유엔의 감시 아래 선거가 가능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정했고(1948.2.26.),
남한에서 5.10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다.
통일 정부를 무산시킨 것은 유엔 한위의 입북을 거부한 소련군과 김일성이다. 이들이 분단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11. 종전 선언 평화 협정은 미군 철수를 말한다!
종전 선언은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와는 무관한 단순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결코 아니다. 평화 협정과 주한 미군 철수로 가는 대문을 여는 일이다(갓끈 전술: 한미일 자유 민주주의 동맹 해체, 북한은 미군 없는 한국군과의 전쟁은 승리 할 수 있다고 판단).
북한과 좌익 세력의 주장 뒤에는 반드시 거짓말과 속임수, 그리고 음모가 있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 민주주의 세력은 절대로 공산, 사회주의 세력과 협상을 할 때 경계심을 늦추면 안되고, 가면 뒤에 숨긴 의도와 전략 전술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공산, 사회주의 세력은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또 내놓으라고 하는 협상의 명수이다. 처음에는 처마 밑에 작은 공간을 빌려달라고 요구해 얻으면, 이를 근거로 사랑방을 내 놓으라 하고 사랑방을 얻으면 결국 안방까지 내 놓으라고 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좌익 세력의 협상 전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