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식물
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생물은 식물이었다. 그리하여 지구는 온통 식물세포들로 뒤덮이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신은 동물을 창조하고 가장 존귀한 동물인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여느 우주생성론과 마찬가지로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인간을 창조의 마지막 열매, 즉 선택받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만물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그는 맨 나중에 지구상에 나타났다. 이는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고 지배되도록 예비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천지창조가 7일 만에 완료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3일째 되는 날에는 식물이, 6일째 되는 날에는 '가장 교만한 피조물'이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 순서는 오늘날 발견된 과학적 증거와 얼추 들어맞는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35억 년 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포들이 지구상에 등장했으며,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2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참고로 35억년을 1년이라고 치면 20만 년은 겨우 30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광합성 생물이 1월 1일 0시에 탄생했다면, 현생인류는 12월 31일 밤 11시 30분에 막차를 타고 지구에 도착한 셈이다.
일부 진화론 지식이 인간을 '우주의 주인'으로 치켜세우고 있지만, 가장 나중에 도착했다고 해서 특권의식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저 지구의 신입생일 뿐이다. 특권은 커녕 토박이들의 텃세에 시달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문화조건화를 통해 뇌리에 박혀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은 애당초 다른 종들을 지배할 수 있는 기득권을 보장받고 태어나지 않았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식물이 뇌나 영혼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무리 하등식물이라도 외부 스트레스를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왔다. 이루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데모크리토스에서 플라톤까지, 페히너에서 다윈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최고의 지성들이 식물의 지능을 옹호해왔다. 어떤 이들은 식물에게 감정을 부여하고, 어떤 이들은 식물을 '거꾸로 선 인간'으로 묘사했다. 즉, 고착생활을 한다는 점만 빼면 식물도 감정과 지능을 보유한 존재로서 인간에게 꿀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 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식물의 지능을 이론화하여 문서로 남겼다. 하지만 '식물은 무척추동물보다 열등하고 덜 진화했으며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무생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전 문화권에 퍼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우리의 일상행동에도 부지불식중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실험과 과학적 발견에 근거하여 식물의 지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높아도, 엄청난 반대세력의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서구의 종교, 문학, 철학, 심지어 현대과학은 암묵적 합의 하에, 식물은 지능은 고사하고 다른 종들보다 낮은 수준의 생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듯하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중에서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음
양병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