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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작성자재미(8기 백경미)|작성시간26.06.08|조회수42 목록 댓글 0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데리러 갈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체력이 괜찮은 날이었다.

전날 달디단 잠을 잤거나 별다른 문제도 없이 하루가 흘러가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체력이 넘치는 날. 그런 날이면 약속을 끝낸 아내를 데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쩐 일이야?” 아내는 반색하며 물었다. “어… 보고 싶어서.” 그냥 그렇게 답했다.

“집에만 있으니 좀이 쑤셔서”라고 말할 만큼 나도 바보는 아니다.

삶이 고단하지 않은 날, 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김치찌개를 끓이는 남편이었고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나는 솔로>도 같이 보며 잘도 조잘거렸다. 그러나 삶이 약간만 삐끗해도 내 다정함은 길을 잃었다. 대답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 무슨 질문이든 건조하게 답하는 날이 많았다.

“나도 몰라.” “그냥 알아서 하면 안 될까?” 나는 이미 모든 체력을 밖에서 소진하고 돌아와 더 이상 내 사람들에게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은 남이다.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뭐해?” 지친 마음이 슬쩍 회복되는 순간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람을 찾았다. 실망한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고 오래된 친구들에게도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물었다. 혼자가 좋다는 말은 사실 ‘잠시 숨 돌릴 시간 좀 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내 사람들에게 보내야 할 다정함이란 의무에서 잠시 피신하고 싶었을 뿐이다. 비겁했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다정함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플랭크를 하고 집 앞을 뛰어다니기로 했다. 멋진 몸은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단단해진 마음만은 원한다. 피곤에 찌든 날 집에 돌아가도 서로를 환영하고, 환영받을 수 있는 당연한 수준의 다정함은 갖고 싶다.

근육의 크기만큼 다정함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 단단해진 복근과 허벅지는 말랑해진 내 마음도 다시 견고하게 고쳐놓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플랭크를 하며 아내에게 물을 것이다.

“오늘 데리러 갈까?”

내 다정함의 크기는 오늘 내가 버텨낸 1초의 시간만큼 더 커졌을 것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중에서
태수 저자
출판사 페이지2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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