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사람일수록 번아웃이 자주 온다
섬세하다는 건 남들보다 서너 배쯤 큰 감정 안테나를 갖고 사는 것과 같다.
겨울 냄새, 봄 냄새와 같은 계절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삶을 말하며 간만에 본 부모님의 약해짐도 눈치 좋게 알아채는 기특함을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공감의 선봉대장 역할을 한다.
친구들의 무너짐에 울고 위로하는 건 이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가족들의 안 좋은 감정 역시 모두 이들의 차지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문제 자체에 대한 민감성이 아주 높기에 친구와 가족과 회사와 학교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앞서 반응한다. 물론 해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편해서 살 수가 없어서. 그러나 슬프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만큼은 어디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절대.
타인의 걱정 어린 물음에 이들은 언제나 솜씨 좋게 답한다. “난 괜찮아.” 타인의 감정을 대신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내 감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쉽게 넘겨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만은 언제나 뒷전이다. 마치 밀린 설거지 중 맨 아래 위치한 그릇처럼 내 마음만은 씻어내지 못한 채 매번 그대로다. 이들이 자주 번아웃되는 이유다.
독일어에는 ‘치타델레 (Zitadelle)’라는 말이 있다.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나는 섬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치타델레라고 생각한다. 챙겨야 할 것, 챙겨야 할 사람, 챙겨야 할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만이 남겨진 시간과 공간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만 남들에게 수도 없이 제공했던 말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너 괜찮아?”
그간 친구 같은 자식, 무엇이든 털어놓고 싶은 친구, 알아서 잘하는 직장인이 되느라 정작 나에게는 아무것도 되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만 생각해!’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잘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금처럼 살아라. 그렇게 살되 어떤 감정조차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힘든 날, 마음속이 온통 타인의 감정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날. 부러 나밖에 없는 공간으로 도망가자. 그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할 기회를 주자.
“나 안 괜찮아.” 가끔은 남에게 줬던 섬세함을 나에게도 허락하자.
포기가 습관이 되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포기하게 된다. 자신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중에서
태수 저자
출판사 페이지2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