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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성지순례방

성지순례를 통해 배운 것 2. 빌립보의 퓌톤 귀신

작성자조해강 목사|작성시간25.05.22|조회수51 목록 댓글 0

성지순례에서 깨달은 것
- 튀르키예, 그리스, 로마



2025년 3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아래와 같이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1. 몰론 라베!
2. 빌립보의 퓌톤 귀신
3. 천국의 열쇠
4.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
5. 회당에서 쫓겨난 이유
6. 성지순례 후 주일설교
7. 폼페이, 순간에 맞이한 종말
8. 아테나 여신의 탄생 이야기
***

두번째 이야기: 빌립보의 퓌톤 귀신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 지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사역을 한 곳이 빌립보다. 그 빌립보에는 우물이 많았는지 옛날부터 크리니데스(Κρηνίδες, fountain)라는 지명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빌립보를 지나는 도로표지판에는 그렇게 씌어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다. 빌립보 유적지에는 루디아 기념교회가 있어서 사도 바울의 빌립보 사역을 아래와 같이 화려한 천장 벽화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념 교회 마당을 지나면 물소리가 시원한 개울이 흐르는데 그곳은 세례터다.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은 문밖 강가에서 기도하던 루디아를 만났고, 나중에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의 모든 식구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런 사연들을 생각나게 하는 장소가 빌립보다. 

그런데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그가 감옥에 갇힌 이유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점치는 귀신’은 어떤 존재일까? 신약성경 사도행전 16장 16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Berean Literal Bible): ‘a spirit of Python, πνεῦμα Πύθωνα.’ NIV성경은 이 부분을 풀어서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a spirit by which she predicted the future. 그 귀신을 힘입어서 그 여종은 미래를 예언했다. 즉, 점을 쳤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퓌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에게 죽임을 당한 왕뱀이다. 

성지순례 보고서에서 나는 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여종을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고라로 오는 길에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앉아 있었다. 우리 성경에는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아주 어린 소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 델피 신전에서 신탁을 받는 무녀를 피티아(Pythia, Πυθία)라고 하는데 그 나이가 보통 12세에서 14세의 어린 소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점치는 그 소녀는 노예였다. 성경을 보면 그 노예는 주인들을 이롭게 하는 자라고 그랬다. 이 소녀는 여종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주인이 여럿이어서 그 주인들을 크게 이롭게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행 16:16). 그 소녀는 귀신이 들렸는데 그 귀신은 퓌톤(Python, Πύθων)이라는 왕뱀의 귀신이다. 

퓌톤이라는 왕뱀은 땅의 신 가이아의 아들인데, 델피의 파르나소스 산의 계곡에 있었던 뱀이다.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독사는 퓌톤이라는 왕뱀이 아니다. 마태복음 3장 7절에 나오는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표현은 ‘게네마타 에키드논’(Γεννήματα ἐχιδνῶν)이라고 되어 있다. 헬라어로 뱀을 말할 때는 독사(viper)를 가리키는 에키드나(ἔχιδνα, 행 28:3)가 있고 몸집이 큰 왕뱀을 의미하는 퓌톤(Πύθων)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폴론이 퓌톤을 죽이고 델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여러 버전으로 나온다. 그 중에 위키 사전이 소개하는 간단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호메로스의 아폴로 찬가에는 아폴로와 뱀의 싸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신당을 세울 장소를 찾던 신은 델피에 도착하여 사람들에게 재앙이었던 퓌톤을 보았다. 그는 뱀을 죽이고 자신이 신탁 신전의 소유자라고 선언했다. 그 뱀 퓌톤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아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퓌톤이라는 왕뱀은 고대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세력을 가진 귀신이다. 그 왕뱀의 귀신 들린 소녀는 사도의 일행이 지나갈 때마다 개거품을 물면서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 여종은 ‘저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행 16:17)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도 바울은 그 여종을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었다. 그리고 아고라에 가서 매를 맞았는데 심이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한밤 중에 지진이 난 것이다. 아래 사진은 사도 바울이 갇힌 빌립보의 감옥 유적이다.

그 지진으로 실라와 바울이 갇힌 감옥 문만 열린 것이 아니라 감옥의 모든 문들이 다 열렸다. 발에 차고 있는 쇠고랑도 다 풀렸다. 간수가 그걸 보고 사람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어차피 도망가면 죽음으로 물어야 되므로 남의 손에 죽기보다는 자결하려고 했다. 그랬는데 죄수들이 다 있다는 말을 듣고 땅 속의 감방들에 불을 켜고 비추어 보았을 것이다. 죄수들이 열린 감옥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은 것을 보면 바울 사도가 ‘가지 말아라!’ 라고 말했을 것이고, 죄수들은 사도 바울의 권위 있는 말에 복종했을 것이다.  


아마 죄수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양반은 퓌톤이라는 왕뱀의 귀신을 물리친 분이야. 이분의 말을 안 들으면 우리가 결딴날 거야!’ 우리가 성지순례를 할 때 빌립보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에 50년, 52년 빌립보 일대의 모든 기록을 통틀어서 이 지역의 기록을 살펴볼 때 소요 사태가 한 건이 없었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귀신은 당시로 말하면 어마어마한 것이다. 퓌톤(Python)이라는 그 세력은 아주 큰 세력이었다. 땅의 신 가이아의 아들이니까. 땅의 신 가이아와 저승의 세계를 상징하는 타르타루스(Tartarus)의 자녀들은 퓌톤 외에도 에키드나(Echidna)와 뛰폰(Typhon)도 있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로 신이 퓌톤을 죽인 곳은 델피다. 그리고 그곳 델피는 신탁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열네살 정도의 소녀들이 점치는 일에 선발되었다. 그러므로 빌립보의 점치는 귀신 들린 소녀는 어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나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퓌톤이라는 왕뱀 귀신 들린 소녀를 고쳐준 사건이 빌립보의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가이드의 설명처럼 복음이 그리스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에 세 가지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길과 언어와 신화다. 

여기서 길이라 함은 에그나띠우스라(Via Egnatia)는 로마의 가도요, 언어라 함은 알렉산더의 정복활동으로 헬라어가 당시에 세계공용어로 자리잡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신화라 함은 이미 천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그리스 시민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전도팀은 열린 문으로 들어가서 열린 길로 나아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화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신화는 공통의 관심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가이드의 설명대로 그들에게 이미 신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내면화되어 있었으므로 사도 바울의 복음이 소개하는 신의 이야기를 그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화의 역할은 바울이 행한 일에 대한 해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도 바울은 퓌톤 귀신에 사로잡힌 여종을 치유해 주었다. 사실 퓌톤 귀신은 점치는 능력을 가진 귀신이다. 퓌톤이 점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신탁의 장소 델피에 살았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신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신화가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앞에서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처럼 아폴론이 퓌톤을 죽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델피에는 아폴론의 신전이 세워졌고, 아폴론이 퓌톤을 죽인 것을 기념하여 그리스 전역에서 장정들이 4년마다 델피에 모여 축하의 제전을 벌이는 피티아 제전이 열렸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에 델피에는 뱀 세 마리가 서로 꼬여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뱀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 전쟁 중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크게 승리한 플라타이아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페르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청동 무기들을 녹여서 만들어 델포이에 바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성지순례에서 그 뱀기둥이 이스탄불 광장에 머리 없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사도 바울 때는 델피에 온전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처럼 퓌톤이라는 왕뱀의 이야기는 신화와 축제의 제전, 그리고 상징물로 그리스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퓌톤 귀신에 사로잡힌 소녀에게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 소녀 또는 그 여종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델피의 신전에서 일하는 무녀를 피티아라고 하는데, 그의 예언은 ‘가스로 인한 환각’ 상태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위쪽 그림에서 보듯이 피티아 여사제의 발 밑으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유황(또는 에틸렌) 가스로서 피티아가 맡고 환각에 취해 예언했다는 것이다. 피티아가 일종의 최면상태(trance)에서 하는 말을 보좌 남신관들이 듣고 글로 적어주는 방식으로 신탁이 주어졌다. 

빌립보의 점치는 여종에게 퓌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그 여종이 델피의 피티아 여사제 출신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렇게 가스를 통한 환각에 빠지는 경험을 오래 하게 되면 사람이 온전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종의 상태는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그 여종을 퓌톤 귀신에 사로잡힌 신령한 점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그 여종을 고친 것이다. 그 사건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어쩌면 그들은 신화 속의 이야기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아폴론이 퓌톤을 죽인 그 이야기다. 빌립보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아폴론의 환생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사실 사도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을 할 때 루스드라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겪었다. 거기서 사도 바울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걷게 하였다. 그때의 사건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한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사도행전 14:11~13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은 신의 현현이라고 이해했다. 이것이 신화의 힘이며 영향이다. 이것은 오늘의 시대와는 다른 과거 그리스-로마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강력한 세계관이었다. 그런 과거를 생각해 볼 때 퓌톤 귀신을 몰아낸 사도 바울의 일은 아폴론의 현현이라고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지진이 났다면 퓌톤의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화난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을까? 지진이 났을 때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신들의 전쟁을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아폴론의 현현인 바울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진은 수그러들고 잠잠해진다. 이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비록 그들이 루스드라의 사람들처럼 제사장을 대동하고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영접하기 위하여 소동을 일으키지는 않았을지라도 아폴론의 현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도 바울 앞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일은 능력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당시의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는 신의 현현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에서 준비된 세번째 요소 신화다. 사도 바울은 에그나띠아길(way)을 따라서 헬라어(language)로 복음을 전했다. 그때 바울의 복음 이야기와 행적은 신화(mythology)의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런 요소들 때문에 사도 바울의 전도는 대아시아가 아니라 소아시아로, 그리고 마케도니아로 아가야로 그리고 로마로 전파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바울 사도는 로마 시민권자였다. 로마 시민권자이므로 그에게 태형을 가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면 안 된다. 또한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빌립보의 관원들은 로마 시민권자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때렸다. 사도 바울은 맞을 때 자기의 권한을 쓰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왜 자기 권한을 쓰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 모두가 권리가 있고 모든 것이 있지만 이것을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참아야 한다. 신자들이 가장 손해볼 때는 참을 때다. 그러나 참아야만 간수를 구원할 수 있다. 안 참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간수와 그 가족을 어떻게 구원했겠는가? 바울은 모든 그 소명을 이룬 다음에 물어보지도 않고 채찍질한 것에 대하여 따졌다. 간수까지 다 구원하고 나서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밝혔다. 

신화로 가득 찬 세상에 들어간 사도 바울은 모든 신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사실 나중에 바울이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강조했다(빌 2:9~10).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셨으므로 하나님이 그처럼 높이신 것이므로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사도 바울 자신이 빌립보에서 그런 자세로 사역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퓌톤 귀신과 가이아보다 더 높이신 것 아닐까?

 

***

 

ChatGPT의 말:

[한 장 요약: 두 번째 이야기 – 빌립보의 퓌톤 귀신]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역의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루디아를 만나 세례를 베풀고 감옥에 갇히는 등 중요한 사역을 했다. 특히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퓌톤(Python)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었기 때문이었다. 퓌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에게 죽임을 당한 대지신 가이아의 아들이자, 신탁을 담당하는 델피의 왕뱀이며, 점을 치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이 귀신 들린 여종은 델피의 무녀처럼 점을 쳐 주인들에게 이익을 주었으며,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이 이 여종을 고치자 빌립보 시민들에게는 신화 속에서 아폴론이 퓌톤을 죽인 장면이 떠올랐을 것이고, 바울을 신의 현현처럼 여겼을 수도 있다.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었을 때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자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고 간수까지 구원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바울이 아폴론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비쳐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사건은 복음이 헬라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배경에 ‘길(로마 가도)’, ‘언어(헬라어)’, ‘신화(공감적 해석틀)’라는 세 가지 준비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신화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했고, 자신에게 있는 로마 시민권의 권리를 참고 인내함으로써 더 큰 구원의 사명을 이루었다. 이는 훗날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 앞에 꿇게 되리라”고 전한 복음의 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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