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사마가온 - 비렌드라 호수
어제까지 이어진 긴 산행으로 인해 한 번도 깨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2시간 늦게 일어나도 되는 날임에도 금방 눈이 떠지더군요.
덕분에 동이 터오를 무렵의 사마가온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롯지 위로 새하얀 마나슬루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직은 어두운 주변과 파란색의 롯지를 비추는 조명이 마나슬루와 잘 어울립니다.
해발 3500m, 설산 아래 위치해 있음에도 꽤나 현대적인 사마가온은 상당해 매력적인 마을입니다.
오히려 1000~2000m 높이의 마을들보다 시설과 전기 상황이 좋았고 심지어 따뜻한 물(유료)도 아주 잘 나왔습니다.
길에 자동차까지 다니고 있었다면, 네팔의 여느 도시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해발이 낮은 네팔의 도시에서는 거대한 설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는 없죠.
두 장점을 모두 품은 덕분에 이 마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마나슬루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걸어오면서 멀리 마주했던 나이케피크가 눈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사이에 새벽 기상이 적응되었는지, 아침 7시가 채 되지도 않은 시간인데도 눈과 정신이 아주 말똥말똥 했습니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느끼며 어제 저녁과 달리 아주 조용해진 마을을 느긋하게 걸어봅니다.
30분 정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롯지 뒤로 마나슬루가 황금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면 정상으로 향하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괜히 한 번 눈을 찡그려 정상을 째려(?)봅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부터 마니석 앞에 앉아 돌을 깎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들은 철근을 직접 두드려 모양을 잡고, 여자들은 큰 돌 위에 작은 돌을 올려 망치로 두드리며 편평한 돌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마가온의 주민들입니다.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푸른이님께서 가져오신 드립커피와 함께 느긋한 고산 마을에서의 티타임을 즐겨봅니다.
오전에는 짧은 고소적응 트레킹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이 날도 날씨는 저희 편이었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엔 몰랐는데 다들 비장한 표정으로 서 계셨군요. 이 컨셉의 사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ㅎㅎ)
마을에서 편도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렌드라 호수(3691m)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비렌드라 호수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네팔의 10대 국왕 '비렌드라'의 이름을 그대로 딴 곳입니다.
호수는 마나슬루 보호구역 내에서도 역사적인 곰파가 있는 공간에 있어, 또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이렇게나 꽁꽁 숨겨두었는지 궁금해서라도 꼭 가봐야 할 마음이 들더군요.
마나슬루와 나이케피크가 마주보고 선 모습입니다.
두 봉우리 사이 살짝 아래로 내려앉은 곳이 마나슬루 베이스캠프이고, 그 아래로 저희가 향하는 비렌드라 호수가 있습니다.
산책로나 다름 없는 편안한 길이 이어지니 나들이를 나온 것 같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고도가 상당히 높은 곳이니 빠른 걸음과 심한 감정표현을 자제해야 합니다.
이보다 선명할 수는 없을 정도로 잘 보이는 마나슬루를 바라보며, 나름대로의 오르막도 올라 봅니다.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땀도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걸어서 도착한 비렌드라 호수입니다!
시간은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네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웅장한 설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뜨끈한 생강차를 마시며~
어제까지 바쁘게 걸어온 스스로에게 힐링타임을 선사합니다!
가까이 당겨본 마나슬루의 봉우리입니다.
오른쪽의 바위가 드러난 봉우리가 서봉이고, 왼쪽에 눈이 쌓인 부분이 동봉이자 8613m의 주봉입니다.
실제로 마주하면 사진에는 잘 안 담기는 웅장함과 압도감이 아주 큽니다.
룽따 앞에서 우리의 포터 대장, 싸가와 함께 추억을 한 장 남겨봅니다.
본 베이스캠프는 여기서 안 보이는 안부 뒤쪽에 위치해 있는데, 안부 살짝 아래 이곳에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곳을 '코리안 베이스캠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뒤로 빙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바로 등반 루트로 접근할 수 있는 길 위에 있다고 합니다.
호수 아래까지 내려가 이 아름다운 담수호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기로 합니다.
호수에 손도 잠시 담가보고 호숫가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해도 봅니다.
(뜨거운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호수 수온은 생각보다 낮지 않더군요.)
베테랑 산악인 세 명은 마나슬루 봉우리를 바라보며 열띤 토론 중에 있습니다.
뒤로는 팡포체(6620m)가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멀리서 나지막히 들리는 폭포 소리와 간간히 일어나는 눈사태 소리를 ASMR 삼아 잠시 멍을 때려봅니다.
다시 롯지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곰파에도 잠시 들러봅니다.
마나슬루를 배경으로 두고 늠름하게 서 있는 450년 역사의 풍겐 곰파에 방문합니다.
사실 450년의 역사를 가진 곰파는 위 건물이며, 몇 번의 지진과 수리를 반복한 끝에 이제는 새로운 사원을 지어 믿음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본 건물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고는 합니다.
풍겐 곰파의 건물은 신식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승려들의 종교 수행과 안식을 도와준 곳입니다.
내부에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삼바(구루 린포체)의 그림을 비롯한 여러 불교 그림과 법구들이 있습니다.
마나슬루 산맥을 배경으로 서 있는 멋진 외경만으로도 들러볼 가치가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다녀온 산책(고소적응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롯지로 돌아갑니다.
오후가 되니 맑았던 하늘에도 구름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롯지로 돌아오니 금세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가벼운 가랑비와 함께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맑은 날씨 때문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데, 저는 지금 해발 3500m에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되더군요.
사마가온에서의 일정은 <고소적응 트레킹>과 <휴식>입니다.
먹는 것까지가 제대로 된 휴식이죠?
떨어진 입맛을 확~ 끌어올려줄 닭볶음탕 특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해봅니다.
[7일차] 사마가온 - 삼도
밤 동안 약간 내렸던 비의 영향으로 인해 동이 틀 무렵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 껴 있네요.
역시 변화무쌍한 고산의 날씨!
출발할 때가 되니 언제 구름이 있었냐는 듯 청명한 하늘이 저희 앞길을 밝혀줍니다.
오늘은 3840m에 위치한 마을 삼도로 이동합니다!
3~4시간 정도 짧은 코스이고 길도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날입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가 이어지는 마을이기도 한 삼도에서는 마나슬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같이 마나슬루와의 작별 사진을 찍습니다.
(사실 이틀 뒤 라르케 패스를 넘고 빔탕에서 다시 만나기는 한답니다 ㅎㅎ)
흰 눈 사이로~ 깊게 파인 골짜기를 따라 계속해서 삼도로 걸음을 옮깁니다.
마을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가파른 고개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이런 길이 나타납니다.
해발 4000m에 가까워지면서 무리한 산행은 힘에 부칠 수 있는데, 삼도로 향하는 트레킹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담이 없습니다.
추측컨데, 티베트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삼도부터 사마가온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가장 많이 왕래하여, 지금의 잘 다듬어진 길이 만들어졌지 않을까 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쌓아 만든 마니석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여전히 트레커들의 옆으로 흐르는 부디 간다키 강가에서 잠시 휴식합니다.
저는 가이드들과 무슨 얘기를 저렇게 심각하게 하고 있었을까요?
삼도 근처에는 야크 방목장이 많이 있습니다.
덕분에 새끼 야크가 어미 야크의 젖을 먹는 진귀한 장면을 눈 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사나운 성격인데 새끼까지 있는 야크라니... 심기를 절대 건드리지 않도록 멀리서만 바라보기로 합니다.
네팔, 특히 히말라야의 수제 다리 건축 기술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앞에 길이 나있는 언덕만 오르면 오늘의 목적지인 삼도에 도착합니다.
위 사진에서는 야트막하게 보이지만, 지그재그로 저 언덕을 오르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답니다.
마지막 언덕을 올라 마침내 3830m에 위치한 마을 삼도에 도착합니다.
삼도는 매순간 차갑고 거센 골바람이 불기 때문에, 해가 뜨거운 낮에도 체감온도는 금방 떨어집니다.
체감온도를 높이기 위해 주방팀이 준비해준 따뜻한 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하며 몸을 따뜻하게 덥혀봅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는 오후 시간에는 마을 뒤로 이어지는 삼도 언덕 전망대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겠지만, 1~2시간 정도만 올라갔다 내려와도 이어지는 산행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오르다보면 주변으로 티베트와 네팔의 국경을 나누는 라융라 피크와 주변 능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저 협곡 끝자락에 사마가온의 모습이 개미만한 크기로 보입니다.
3시간 정도 밖에 걸어오지 않았는데 사마가온에 비해 급격히 척박해진 모습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희가 오르고 있는 삼도 언덕은 마을에서부터 1300m 이상 고도차가 납니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과 거세진 바람으로 저희는 해발 4000m 지점까지만 오른 후 다시 하산하기로 합니다.
올라온 길은 내려가기에는 꽤 가팔라서 완만한 옆길로 돌아내려갑니다.
이제는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는 찾아볼 수 없는 고도에 이르렀습니다.
오후 산행을 마치고 따뜻하게 불을 피워 놓은 다이닝에 둘러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눕니다.
따뜻한 차도 마시고, 부산팀께서 먼 바다로부터 공수해주신 멸치도 구워먹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되니 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하게 모습을 바꿨습니다.
.
.
.
다음날은 라르케 패스로 향하기 전 마지막 관문인, 해발 4460m의 다람살라로 향하는 날입니다.
이제는 만년설을 머리 위가 아닌, 저희의 눈높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도에 이르게 됩니다.
마나슬루 서킷은 매일매일 다른 광경으로 감동을 주는 트레킹입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풍경과 생생한 트레킹의 순간들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실장 작성시간 26.06.17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나슬루를 배경 삼아 마시는 모닝커피 한잔의 낭만이 있고...
멋진 설산의 장관이 배경으로 펼쳐지는 트레킹...
저녁엔 뜨끈한 흰 쌀밥과 닭곰탕이 기다리는...
고생스럽지만 멋과 낭만이 있는 여정이네요 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이재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멋과 낭만.. 그 말이 딱 들어맞는 트레킹이었습니다. 최고의 커피맛~!
길도 거칠지 않을 뿐더러 매일매일 풍경이 바뀌어서 걷는 것도 마냥 고생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