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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체의 지배자 / 앙리 마티스 Matisse Hemi(1869~1954)

작성자리치|작성시간06.08.24|조회수337 목록 댓글 0

화실의 裸婦

1898년에서 99년에 걸쳐 파리에는 새로운 미래적 조형에 열을 띤 젊은 화가들이 아카데미즘에서 근대 회화에로의 최초의 돌파구로서, 인상파적인 화풍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거기에서 각자 자기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리더격으로, 런던으로 신혼 여행차 건너가서 터너를 연구하고, 시냑의 논문 '들라크로아에서 신인상파주의까지'를 읽는 등, 색채의 실험을 거듭했다. 이 작품도 당시의 프레 포비즘에 속하는 것으로서, 나부의 거의 빨간 색채와 그 배경의 강렬한 초록의 대조에 의하여, 점묘풍의 화면을 이루고 있다. 전체의 화면은 격렬한 터치로 되고, 순수한 색채에 의존한 화면 구성을 하려는 마티스의 시도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豪奢

마티스에 있어서 포비즘의 시기는 1905년 부터 8년까지의 짧은 기간동안이었고, 그 이후 차츰 '균형과 순수함과 그리고 조용 함'의 예술로 전환되어 간다. 그 무렵의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의 진정제가 될 수 있는 그러한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의 '화가 노트'에 적고 있다. 이 작품은 수채화의 담채(淡彩)처럼 미완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엷게 처리되어 있다. 색채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억제되어 있고, 그 대신 마티스는 자연계의 속에서 나부가 나타내는 움직임을, 한순간 사이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곡선 속에 포착하려 하고 있다. 이 작품에 있어 그는 색채보다 극히 단순하게 데포르메된 데상에 의하여 한순 간의 자연과 인간과의 상관 관계를 생명있는 영원성에 부각하려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 상태가 빚는 약동감이 화면을 흐르고 있다.

푸른 나부

自畵像

1899년에 스승 모로가 죽고, 그 다음 해에 미술 학교를 그만 두고 카리에르의 화숙 (畵塾)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드랑과 비에트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화상 보라르로부터 세잔의 작품 <세 浴女>를 사서 간직한 것도 이때이다. 이 작품은 그 다음 해 그가 31살이 되던 해의 작품으로, 정기(精氣)가 넘치는 자화상이다. 명쾌한 필치와 색채의 미묘한 뉘앙스, 명암의 적절한 배분 등 종래의 고전에서 배운 화법에서 차츰 탈피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색면에 의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등 마티스의 조형적 의지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납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얼굴의 처리는 코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 명암의 표현 의도에서가 아니라, 색채 그 자체의 가치를 발현한 듯 하다. 상체의 하얀 셔츠 위에 여러 가지색 터치를 한 것은 색채 그 자체의 언어를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트르담 寺院

1899년 마티스가 국립 미술 학교를 퇴학한 것은 그가 예술에 있어 혁명적인 하나의 투사가 될 것을 예견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분명히 포비즘에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하게 될 것이다.'라고 미술 학교 때의 스승 구스타브 모로로부터 지적받은 마티스가 '단순화'에의 충동을 어떻게 작품에 나타내고 있는가를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정면 양쪽에 두 개의 종루(鐘樓)가 서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그 앞을 세느 강이 흐르고 있다. 이것은 당시 세느 강가의 보르테르 거리에 있는 아틀리에의 창에서 내다본 조망(眺望)이다. 거기에 보이는 사원도 다리도 배도 물도 모두 활기 넘치는 필치로, 구체적인 사물의 고유형이나 고유색을 떠나 화면상에 생겨나는 회화적 감동의 요소로서 순화된 형과 색채로 변하여 있다.

1905년 여름, 드랑과 함께 스페인의 국경 근처에 있는 지중해안의 마을 코리우르에 체재하면서 마티스는 그의 작품상에 큰 비약을 가져온다. 이 작품도 그 무렵의 점묘적 분할주의의 수법으로 그린 <호사 정숙쾌락>에 이어 제작한 그의 포비즘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 신인상파적인 영향에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순수한 원색을 대담한 터치에 의하여 시원스럽게 화면을 처리하고 있다. 색채는 자연 속의 대상 고유의 색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화면 안에서 완벽한 조화의 실현을 위하여 재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포비즘을 실현한 색채 해방, 색채 독립인 것이다. 여러 색채에 의한 화면 구성은 필연적으로 사물을 평면화하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 있어 화면 아래쪽 중앙에 있는 화분과 꽃은 무늬처럼 평면화하고, 창밖의 경치도 모두 그런 효과로 그려지게 되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마티스는 1905년 <모자를 쓴 여인>과 <창> 을 살롱 도똔느에 출품하고, 이어서 이 작품은 그 전시 기간 중에 그렸다. 출품했던 작품들은 색채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발적이고 다채로운 초기의 포비즘적 경향인데, 이로써 당시 포비스트들이 살롱에 첫인정을 받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당히 억제된 수법으로 화면을 구축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교묘한 밸런스에 의하여 구사한 이 작품에 있어서, 마티스는그가 단지 감각적인 색채가 아니라, 색채에 의하여 건실한 화면을 구성하는 화가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색채의 단순하고 평탄한 색면에 얼굴은 중앙의 녹색 가르마를 중심으로 양쪽을 구분하고, 경쾌한 터치에 의하여 단숨에 완성한 듯한 생생함을 지니고 있다.

마닐라 쇼올을 걸친 마티스 부인

마티스는 1906년경부터 몇 번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에서 아라베스크 무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차츰 그의 내면 속에 근동취미(近東趣味)의 엑조티시즘을 크게 자극하였고, 그것이 곧 색채의 단순화를 통하여 장식성(裝飾性)을 달성하게 된다. 이 작품도 그러한 장식적인 무늬의 호화로운 쇼올을 화면 중앙에 클로즈업시키고, 단순한 배경 처리를 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색채가 마티스의 손에서는 놀랄 만큼 맑은 해조(諧調)를 가진 울림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그는 색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색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표현에 쓸모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고 색을 캔버스에 놓아 간다.' 마티스 부인의 그림자가 벽 위에 얼마나 맑은 청색으로 놓이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온 화면을 얼마나 투명하게, 화려하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마티스가 얼마나 대상이 가진 고유의 형이나 색에서 해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어느 쪽에서 밝은 빛이 비치고, 또 어는 쪽이 그늘져 있는지, 사물의 묘사를 위한 명암에는 관심이 없고, 화면 자체의 구성상 필요로 하는 명암만 있을 뿐이다. 둑 위에 있는 나무들이 물에 비쳤지만, 비친 나무나 하늘이 더 짙은 색으로 그려져 있다. 색면 하나하나는 그 자체가 평면으로 장식되어, 풍경의 현실이 전연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밝고 축축하게 젖은 듯한 색들이 서로 어울려 그 자체적인 뉘앙스가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현실과는 다른 훨씬 처량하고 맑은 공기와 화려한 정경을 느끼게 하고, 그리하여 그것은 화면 독자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이르고 있다. 대상에 충실한 색이 아니라 화가가 필요로 하는 언어로서의 색을 대담하게 구사하고 있다.

빨간 조화

1907년에서 8년에 걸쳐 마티스는 여러 가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이 <빨간 조화>란 작품에서 포브의 스타일에 최종적인 고별을 했다. 그것은 3 차원의 실내 공간을 표현한 것임에도, 화면의 거리감은 부정되고 벽고 탁자도 실내의 바닥도, 모두 동일의 평면 위에 놓여 있다. 탁자 위에만 있어야 할 식탁보의 무늬가 그대로 벽지의 무늬로 연속되고, 색채도 음영이나 명암은 거부한 채 색종이를발라 놓은 듯 단순한 평면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은 19세기적인 미학으로 보면 하나의 혼란으로 보이겠지만, 평면적인 이론에서 말한다면 훌륭하게 통일된 명쾌한 화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처음에 <초록의 조화>였으나, 곧 <파라의 조화>로 변경되고, 다음 해에 다시 <빨간 조화>로 되었다.

이본느 란베르 양

마티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입체파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색감에 있어서도 그의 화려하고 유려하던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금붕어 어항>에서 설명했듯이 당시의 입체파의 영향을 그 나름대로 받아 들인 결과일 것이다. 1908년 전후의 피카소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피카소가 인물의 얼굴을 무수히 강한 선으로 분해하여 재구성한데 대하여, 마티스의 경우 이 작품에서 선을 흐르는 빛의 율동으로 쓰고 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긁어낸 둥근선은 원을 그리며 운동하고, 볼륨의 표현과는 관계 없이 그것은 모델의 젊고 우아함을 강조하는 선으로서, 그녀의 둘레를 흐르고 있는 음향적인 빛과 공기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다. 마티에르 효과에 있어서도 날카롭게 긁어 낸 자국이 금관악기의 화음을 느끼듯 시원스럽다.

室內, 금붕어 어항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부터 마티스의 화면에는, 검정이나 짙은 회색의 무채색이 도입되고 있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적적한 배색에서 화면을 보다 품위있게, 때로는 고전적으로 이끌어감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이 작품에 있어서는 당시의 화단으로부터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진 입체파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 즉, 실내의 구도를 보면 원근법적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벽이나 창문, 테이블 등의 시점을 약간 어긋나게 함으로써 화면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부유성(浮遊性)을 강조한 듯하다. 1914년 가을, 마티스는 코리우르에 체재하면서 종합적 큐비즘 시대의 팡 그리스와 친교를 맺었는데, 그와 열렬한 회화론을 주고받았던 영향으로 느껴진다. 마티스는 금붕어 어항을 자주 그렸는데, 이 작품도 그 중하나로, 창밖의 풍경과 연결시켜 화면 깊숙이 시선을 끌어가고 있다.

댄스

그의 <음악>이라는 작품과 함께 러시아의 무역상인 시츄키의 의뢰에 의하여 그려졌다.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려진 것으로서, 활기 있는 리듬과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푸른 하늘과 언덕의 초록으로 색면 대비를 이룬 배경 속에 다섯 명의 춤추는 댄서들이 손을 마주 잡은 형태는, 생명적인 무한을 갈망하는 암시적 무의로서 화면에는 유동하는 활기로 차 있다. 그것들은 마치 아라베스크 무늬로 화면 전체를 꿰뚫는 어떤 생명적 통일의 리듬을 시각화하고 있다. 색채는 단지 세 가지로, 격렬함과 풍부함을 가지고 있어, 마티스 자신이 '나의 파랑과 빨강과 녹색의 조화는 충분히 스펙트르와 등가(等價)의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모르풍의 가리개와 젊은 여인들

이 작품은 호화스러운 장식의 극치이다. 작품 <호사>에서 언급했지만, 그의 화가노트에서 말한 '균형과 순수함과 조용함의 예술'을 마티스는 이 작품에서 달성한 듯한 느낌이다. 부자집 실내를 야하지도 않고 또 부담감도 주지 않는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화려한 실내의 분위기에 맞추어 부드러운 흰색 드레스를 입은 두 여인의 느슨한 화제는 서로의 행복한 로맨스라도 이야기하는 듯하다. 배경에 서 있는 모르풍의 가리개는 마티스가 1912년에서 13년에 걸쳐 체재한 모로코의 항구 도시 탄지르에서 사온 것이 아닌지. 마티스는 탄지르의 화려한 색채와 이국 정서에 꼭 1세기 전의 들라크로아처럼 매혹 되었다. 그의 오달리스크를 주제로 한 작품과 함께 이 작품에서도 모로코 체험의 여운을 나타내고 있다.

찬장

마티스는 이 작품을 그리기 20년 전에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물도 풍경도 아니고 인물이다. 인물만이 내가 생에 대하여 간직하고 있는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다 더 가능케 해준다.'라고 그의 화가 노트에 썼다. 그러나 그는 많은 정물화를 그렸다. 찬장 위에 커다란 넥타이 모양으로 접힌 테이블 클로드가 바둑판무늬로 장식되고, 그 위에는 역시 무늬 모양의 배가 하나 놓이고, 그 옆에는 네 개의 배를 담은 비딱하게 놓여 불안한 모양의 접시가 화면 전체를 흔들고 있다. 칼의 손잡이는 찬장에서 바깥으로 나와 조금만 건드리면 떨어질 것 같다. 칼이 놓인 방향 때문에 찬장의 바닥은 역투시법에 의한 화면으로 착각되기도 한다. 배치된 정물을 이렇게 마음대로 변모시켜 자기 감흥을 표현하는 마티스의 정물화에 대한 생각을 잘 알게하여 주고 있다.

벽무늬 속의 장식적인 인물

이 작품은 니이스에서 지중해적인 밝은 광선과 색에 도취하여 그린, '평안과 우아의 예술'을 위한 그의 작풍(作風)을 이루는 그림이다. 여인의 몸매는 직각이 서로 교차하는 직선을 중심으로, 견고하고 힘찬 형태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화면은, 그가 좋아하는 장식적 요소를 가득 채워 호화스럽고 사치한 조용함이 있는 기념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 놓았다. 이 작품에 있어 그는 확실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힘과 장대(壯大)함의 세계에 새로운 창이 활짝 열린 것처럼 눈부신 광경을 이룬다. 바닥에 놓인 카페트의 비스듬히 그어진 직선의 연속은, 벽에 장식된 꽃무늬와 아라베스크의 선과 충돌되는 듯하지만, 그 대조가 한층 마티스가 노리는 장식적 효과를 더해 주고, 더욱 힘있는 화면 효과를 이루게 하고 있다.

1930년대의 마티스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것은 벽화 <댄스>였다. 이 그림은 1931 년부터 33년 사이에 제작한 <댄스> 가운데의 춤추는 나부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단순한 구도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색조로 나타낸 이 작품은, 대담하고 커다란 화면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팔과 머리로 형성된 역삼각형은 그 형태를 따라 순환하는 운동감과 조용히 잠자고 있는 여인의 정적인 모습이 서로 모순된 양상으로 느껴지게 한다. 지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피부처럼, 상기된 분홍의 살빛에 가늘고 부드럽게 그어진 윤곽선, 바닥에는 바둑판 무늬를 이룬 짙고 옅은 푸른색이 맑게 얼룩져, 깊은 잠에 빠진 젊은 육체를 받들고 있다.

王의 슬픔

마티스의 만년의 작업 중에 그의 색채적 천재성을 자유 분방한 감각과 함께 발휘하게 하여준 것이 <색종이 그림> 시리즈다. 그는 이전부터 유화 제작의 준비 단계에서 포름이나 색을 연구하기 위하여 색종이를 잘라 붙여 보는 일을 해왔으나, 1941년에 큰 병을 앓으면서 침대 위에서 붓 대신 가위를 들고 많은 걸작을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재즈> 시리즈의 서커스의 정경을 나타낸 20점의 잘라 붙인 색종이 그림을 만들었는데작품은 그 작업의 절정을 이루는 기념비적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어떤 의미로는 유화보다 순수하게 울려퍼지는 색과 형태의 교환(交歡)을 느끼게 하는 이런 방식이 마티스의 이념에 더욱 밀접하게 잘 맞았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농후한 설화를 아라베스크적 색과 형의 드라마로 꾸민 실로 감탄할 걸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

1908년경부터 마티스의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국적인 무늬가, 1920년대에 와서 화면에 가득 찰 정도로 마티스는 장식무늬에 찰 정도로 마티스는 장식무늬에 열중하고 있다. 그 장식성이 조형적인 질서를 잃었을 때엔 단지 하나의 싸구려 장식에 끝 나지만, 마티스의 경우는 그가 의도하는 화면 효과를 위한 철저한 질서에 의하여 독특한 경지의 격조를 지니는 장식으로 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바닥과 벽면의 무늬는 등뒤에 있는 흰 줄무늬와 대조를 이루면서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또 그것은 몇 군데의 무늬가 그려지지 않은 색면에 의해서 종지부와 같은 역할을 하게 하고, 어떤 흐름의 질서를 찾는다. 그러한 화면 속에 부드럽고 경쾌한 필치로 여인을 그림으로써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연보라색의 드레스

온 화면이 강한 생명력에 넘치는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마티스가 만년에 집념적으로 다루던 조형 요소와 제재가 모두 총합되어 있다. 그것은 꽃과 화려한 미녀, 그리고 오달리스크 등 즐겨 택해 온 제재들을, 직선과 곡선, 점들을 익히 써온 아름다운 색들에 의하여 한 화면 속에 총합적으로 다루어, 한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마티스가 간직하고 있던 생명에의 외경심을 경건한 자세로 찬탄한 것이 그의 만년의 작품에 간결하게, 또는 힘차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감동적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여인의 육체를 흐르는 생명적인 율동감 그리고 지금 막 피면서 꽂힌 듯한 싱싱한 꽃들, 그것을 받치고 있는 리드미컬한 형의 꽃병 등이 화면에서 생기 발랄하게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듯, 싱그럽고 향기롭다.

검은 배경의 독서하는 여인

1914년경부터 마티스가 종종 써오던 검정색이, 이 작품에 와서 가장 풍부하게 검정색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화면 전체를 검정색으로, 꽉 채우고 여기 저기에 필요로 하는 형태와 색을 알맞게 배분하여 정말 격조 있는 회화적 효과를 이루는데 성공하고 있다. 중앙에 초록, 보라, 노랑색들이 검정과 흰색이라는 무채색과 절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왼편 아래쪽에 독서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주홍색을 중심으로 한 금빛 노랑과 분홍색은, 대담하게 평면화된 담백한 형체와 함께 호화로우면서도 우아한 맛을 준다. 완전히 평면화된 화면이면서도 거울에 비친 여인의 뒷 모습이 그려져,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한 마티스의 회화적인 기량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작품이다. 추상적인 공간 구성과 설득력 있는 구상적 주제와 멋진 화합이다.

생굴이 있는 정물

1940년 마티스는 71세의 고령이었고, 봄에 잠깐 파리에 머물렀다가 나치스의 프랑스 침공으로 니이스로 내려가 정착하게 된다. 이 무렵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제작 시간을 줄여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의 작품은 대작을 피하고, 화면은 점점 더 음악적 하모니를 기조로 한 상태가 된다. 전작<음악>에서도 그랬지만, 개개의 사물을 취급하는 방법이나, 색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하모니는 음악적인 울림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접시에 담겨진 생굴과 신선한 레몬, 칼과 물주전자가 주제이나, 그것들은 중앙에 거칠게 칠해진 파랑 색 테이블 클로드와 연분홍의 테이블, 그리고 진홍색의 평탄하게 칠해진 배경과 대비적인 조화를 이루며, 매우 신선한 배열에 의한 안정된 구도를 이루고 있다. 냅킨의 초록과 빨강은 화면의 인상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정물

아마 실제의 과일이, 또는 실제의 꽃이 아무리 신선하다 하더라도 이 그림이 주 는 신선감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은 그런 신선감이 모여 이룬 가장 멋진 음악적 하모니이다. 마티스는 그런 신선미를 효과적으로 더하기 위하여 테이블 위의 정물들 사이사이를 자유 분방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붓자국으로, 마치 붓에 묻은 색들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듯 그어 놓았다. 정물이란 소재를 통해서 작가의 '기분', '상태' 그런 것들을 충분히 그려내고 있다. '내가 화면에 놓는 모든 색조로부터, 마치 음악의 화음과도 같은, 색의 살아 있는 화음이 연주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한 마티스의 말이 이 작품에서 말 그대로 실현된 듯한 느낌이다. 작품 속에는 주된 정물이 없다. 즉 구심적이 아니라 원심적으로 온갖 요소가 산적하여 전체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붉은 室內

최만년에 와서 마티스는 화면 전체의 색을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하여 칠하고, 거기에 데상을 하듯 사물의 형태를 그려 넣어 필요한 색 변화를 주는 수법을 쓰는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 작품도 바로 앞에 소개한 작품 <이집트풍의 커튼이 있는 실내>와 같은 해의 작품으로, 검정색의 효과를 빨강으로 바꾸었다. 빨강이 주조가 된 실내 풍경으로, 테이블이나 의자, 벽이 모두 타는 듯한 빨강 속에 삼켜져 버리고, 마티스의 관능과 정서의 순수한 표현으로 화하고 있다. 뒤쪽 왼편에는 그림 같은 창이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자신의 작품 <파인애플>이 창보다 약간 크게 걸려 있다. 그는 종종 자기의 작품을 화면에 등장시켜 새로운 작품 속에서 색다른 어울림을 나타내고 있다. 최만년의 그의 작품은 모두 이처럼 커다란 자유 속에서 해방된 조형을 즐긴 흔적을 남기고 있다.

달팽이

마티스는 '가위는 연필보다 한층 감각적' 이라고 말하면서 색종이 그림 작업을 계속 했다. 그는 생에 대한 종교적 감정을 나타 내기 위해 이와 같은 대작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그랜드 오르간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울림을 자아낸다. 1940년대부터 계속해 온 그의 색종이 그림은 기존의 오브제를 화면에 도입한 꼴라쥬와는 다른 단색 괏슈를 칠한 종이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오려내어 그것을 풀로 붙여 구성하는 형식이다. 당초 이 <달팽이>는 '현실에 뿌리박은 추상적 패널'이라고 이름 붙여 있었다. 색종이의 배열이 휘도는 모양으로 움직여 나가게하여 달팽이의 껍질을 연상케 하고, 그 운동은 연속적이 아니라 쉬었다가 움직이고 움직이다가 쉬는 영원한 반복을 상징하는 듯하다.

로제르 예배당의 내부

니이스의 서북쪽 20km 지점의 반스에 있는 도미니쿠스파의 수도원인 로제르 예배당의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하게 되는 것은 1948년이다. 이 작품들은 그동안 마티스가 해온 유화와 조각, 그리고 색종이 그림 일을 총합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라 할 것이다. 왼편의 초록, 노랑, 파랑의 신비로운 색유리를 경계로, 그 저쪽에는 하얀 타일을 붙인 벽에 검고 진한 선묘(線描)로 입과 코와 눈이 없는 성 도미니쿠스라고 불리는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와 떨어진 한쪽 벽에는 여러 가지 무늬와 기호가 집성한 '기호의 패널'을 이루고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그 하얀 유약한 타일에 투영되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로제르 예배당은 마을과 떨어져 있어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

얼핏 보면 왼편으로 쏠려 불안한 느낌을 주는 포즈를 그린 것 같으나, 그러한 포즈가 화면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아마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를 그리면서, 의자의 등받이를 생략함으로써 느껴지는 불안감일 것이다. 오히려 풍선 같은 블라우스의 부풀음과 함께, 그 불안감은 유머러스한 맛을 주기도 한다. 블라우스에 그려진 무늬의 인상은, 마치 여인의 청순한 심성과도 같이 여리고 깨끗하다. 이 작품은 마티스의 부인상 중 하나의 정점을 이루는 것으로, 작가는 이 그림에 압도적인 단순.명쾌를 주입하고, 통일감있는 장식적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색조에 있어서도 꽤 많은 여러 가지의 색을 쓰면서도 단순하게 느껴지도록 배려했고, 블라우스의 부풀은 어깨나 소매를 처리하는 선은 아주 경쾌한 맛을 준다. 이 작품을 이 경지에 가져오기 위하여 마티스는 15점의 습작을 거쳤다.

이집트풍의 커튼이 있는 실내

한 편의 섬세하고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여러 악기들이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 작품이다. 투명하여 속에서 빛이 비쳐 나오는 것 같은 검정색의 바탕에서 꽃불과도 같은 무늬들이 소용돌이치고, 창문에는 가득히 정원을 메운 남불(南佛)의 소철나무가 힘껏 그 생명을 다하여 약동하고 있다. 그러한 평면적인 화면 아래에 원근법이 알맞게 표현된 탁자가 그려져, 공간의 깊이를 느끼도록 함으로써, 입체와 평면이 서로 도와 단조로움을 면하게 하고 있다. 마티스가 즐겨 써오던 검정색이 이 작품에서도 아주 효과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테이블 위의 석류 접시 아래의 검정, 오른쪽 커튼의 바탕색으로서의 검정, 창문 아래위의 벽색으로서의 검정은 모두 동일 색이지만, 거기에 놓여진 주변의 유채색에 따라 각각 다른 검정

'색채의 지배자' 앙리 마티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화상>
1900 캔버스 유채 64×45cm.8cm 보스턴 미술관

<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 캔버스 유채 41×32cm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비평가는 물론이고 부인까지도 불쾌함을 느꼈던 작품이며, 마티스는 심리적인 주관으로 색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마티스에게 ‘부인을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그림을 본 사람들이 마티스에게 ‘부인을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나는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렸을'뿐이라고 말했다.

<붉은 실내> 1948 캔버스 유채 146×97cm

색채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주관적으로 칠해졌을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도 벗어나 있다. 또한 공간의 구분이 없고 입체감도 결여되어 있어 평면적인 느낌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작품에 나타난 무늬는 마티스가 모로코 여행을 갔을 떼감도 결여되어 있어 평면적인 느낌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작품에 나타난 무늬는 마티스가 모로코 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이국적인 정취를 반영하고 있다.

<피아노 레슨> 1916 캔버스 유채 245×212cm

조용한 평면 위에 직선과 장식적인 무늬 모양의 곡선으로 구성된 온화한 그림이다. 전체를 지배하는 기하학적인 구도, 실내로 비쳐 들어오는 정원의 반사광인 듯한 초록색의 은은한 분위기가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댄스> 1910 캔버스 유채 258×390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마티스의 작품 속에서 색채는 춤을 춘다. 마치 무한한 생명을 갈구하는 듯 힘찬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이 그림은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활기 있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왕의 슬픔> 1952 절지(切紙) 과슈 292×386cm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마티스의 마년의 작업 중에 그의 색채적 천재성을 자유 분방한 감각과 함께 발휘하게 해 준 것이 <색종이 그림>이다. 1941년 큰 병을 앓으면서도 침대 위에서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색종이를 오려 나간 것을 계기로 그는 많은 걸작을 남겼다.

<마닐라 쇼올을 걸친 마티스 부인> 1911 캔버스 유채 112×69cm 바젤 개인 소장

<하얀 깃털> 1919 캔버스 유채 73×61cm 미니에폴리스 예술연구소

<음악> 1939 캔버스 유채 115×115cm 버팔로 앨브라이트 녹스 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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