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가소성(plasticity)
가소성이라는 것은 힘을 가하여 만들었을 때 형태가 저절로 바뀐다거나 무너지지 않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도예가들 중에는 대부분 가소성과 점력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도자기 소지의 상태를 이야기할 때 본통 점력이 좋다 나쁘다로만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ㅁ점력(viscosity)
점력, 점성, 점도는 같은 의미로 질기고 차진 힘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엿이나 껌 등은 차질고 붙는 성질은 강하나 어떤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약하다. 따라서 이와같은 것들은 점력은 좋으나 가소성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청토는 점력과 가소성 모두 양호하나, 중국 백점토는 점력은 좋으나 가소성이 적어서 물레 성형을 하다보면 끈적거리기만 하고 자꾸 주저않으려고 한다. 우리 고유 용어 중에서 ‘차질’은 점력이 좋은 찻진 흙을 말하며 ‘메질’은 점력이 좋지 않은 메진 흙을 말한다. 그 외에 ‘설심(설힘)’은 서있을 수 있는 힘으로 가소성을 말하며 ‘불심’은 불에 견디는 힘 (불힘)으로 내화도에 해당되는 말이다.
ㅁ화장토
화장토라는 것은 청동기시대의 홍도나 흑도 등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의 상감기법이나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등에 사용되었다. 현대도예에서는 화장토에 금속산화물이나 조제된 색안료 등을 섞어 여러 가지 색깔을 내기도 하고 상감용으로도 여러 가지 색상감토를 만들어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화장토를 기물에 칠하여 놓고 ‘백상감을 칠했다’느니 ‘색상감을 발랐다’고 설명하곤 한다. 이러한 일은 전승청자 공방에서도 마친가지여서 ‘백상감을 가져와라’‘흙상감을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상감이라는 것은 기법을 말하는 것이지 흙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에는 백화장토, 색화장토라 부르고 후자의 경우에는 백상감토, 흑상감토라고 하여 반드시 ‘도’자를 붙여야만 한다.
ㅁ귀얄
귀얄 원래 말총으로 만든 붓으로 갓공예, 목공예, 지공예 등의 공방에서 주로 옻칠이나 풀칠을 하는 도구로 쓰였으며, 풀비는 서민들이 볏짚 이삭을 손쉽게 묶어 도배 할 때 풀을 바르는 용도로 썼다. 이러한 것들이 도자공방에서는 백토를 기물에 바르는데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골동 분청사기에서 보이는 고운 백토 자국은 귀얄 자국이고, 거칠고 활달한 백토 자국은 풀비 자국인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그러한 자국을 ‘하게메’라고 명명하였고, 그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 최순우 관장이 귀얄분청이라고 명명한 이후로 무조건 귀얄로만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풀비를 이용한 분청을 풀비분청이라고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고 단지 바로 알고 사용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총으로 만든 진짜 귀얄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은 귀얄이 아닌 줄 알고 멋쩍어 하는 경우와 실은 풀비로 칠하면서도 자신은 진짜 귀얄로 칠한다고 우쭐대는 촌극을 발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ㅁ물메질
일본말로 ‘시아게’란 말은 ‘일을 끝내다’ ‘마무리짓다’라느 뜻이다. 도자공방에서는 굽을 깍아놓고 흠을 없앤다거나 스폰지질을 하여 기물 표면을 곱게 마무리하는 것에 시아게란 말을 주로 하는데, 이와같은 뜻을 가진 ‘물메질’이란 도자공방의 고유 용어가 있다. 옹기공방에서는 ‘물씨름 탄다’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ㅁ물그릇
물레에서 방금 빚어놓아 표면에 물기가 돌고 있는 상태의 기물. 이것은 옹기공방에서 쓰이는 말로써 옹기공방에서는 물그릇에서 날그릇이 되기 이전에 시유를 한다.
ㅁ날그릇
성형된 기물이 건조된 상태로써 초벌 가마에 들어가기 이전의 상태. 날 것이라는 말은 익히 지 않았다는 뜻으로서 날음식, 날고기란 말과 같은 뜻이며, 날기와(옛로는 날디새)라는 것도 굽기 이전의 마른 기와를 말한다. 도자공방과 기와공방에서 공히 사용되는 말이다.
ㅁ질그릇
초벌구이된 그릇.
ㅁ꼬박
흙을 반죽하여 흙 속의 기포를 없애고 덩어리가 없이 고르게 반죽한 흙덩어리를 꼬박이라고 한다. 꼬박을 만드는 행위를 ‘꼬박 말기’라고 한다. (‘고막’은 틀린말이다}
ㅁ꼬박널
꼬박을 말기 위한 나무판을 말하는 것으로 반죽대, 꼬박틀, 꼬박판이라고도 하지만 꼬박널이란 도자공방의 용어가 좋겠다. 널은 널빤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널따란 것을 뜻하기 때문에 만든 재료가 목재나 시멘트 등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꼬박널이란 말은 무리가 없겠다. 꼬박대를 꼬박다이, 전시대를 전시다이라고 하여 일본식 발음과 혼합해서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
ㅁ조선백자
이조시대라는 것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시대를 일본 사학자들이 한국을 얕잡아 보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왕의 성 뒤에 일반인들의 호칭에 쓰는 ‘씨’자를 붙여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운 조선, 즉 이씨조선시대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서, 우리는 이러한 상스런 말을 사용치 말고 반드시 조선시대, 조선 백자 등으로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ㅁ분청사기
일제시대 초기에만 해도 분청사기는 어리숙하고 거칠게 만들어진 까닭에 신라 토기와 고려청자의 중간 시기에 발생된 것으로 여겨지던 그릇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도자기가 발달했던 구주지방에는 백토가 산출되지 않아서 그러한 유의 도자기가 없었던 일본인들은 우리의 그릇들을 깊이 연구하여 갖가지 이름들을 지었다.
미시마, 하게메, 가키오도시, 호리미시마, 고히키 등 수없이 많은 이름으로 구분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총칭하는 일본말은 없다. 이것을 고유섭 선생은 백토로 분을 발라 장식한 회색ㅇ르 띤 사기라는 뜻을 가진 ‘분장회청사기’라는 말로 총칭했다. 그후에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선생이 분장회청사기를 분청사기라고 줄여 부르게 되었으며 일본말로된 각 명칭도 일부 한국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상감분청만을 지칭하는 마시마가 영어와 일어에서 분청사기(粉靑砂器원래 고유섭 선생은 砂를 썼으나 옛 문헌에는 沙로도 쓰였다. 지금은 모두 沙器로 잘못 쓰고 있다.)를 총칭하는 것인양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분청(bunchung)이란 단어가 고유명사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ㅁ항아리
지금은 항아리의 의미가 상당히 많이 변해 버렸다. 농가월령가 시월조에 보면 ‘독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고 장독대에 놓여진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다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이라 장독이나 김칫독처럼 가장 큰 것이고, 그 다음이 독에 비하여 중간 정도 들어간다는 의미의 중들이가 중두리가 되었다. 바탕이는 배가 특히 많이 나왔다는 긔미의 배탱이가 변한 말이다. 그 다음으로 작은 것이 항아리로서, 옛 노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한자 반, 즉 약 45cm를 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둥그런 형태면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다 항아리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ㅁ옹기
옹기란 유약을 발라 구운 그릇으로 질그릇과 구별되며 오지그릇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옹기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져버린 느낌이다. 현재 그토록 혼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당 시대가 요구하는 그릇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다양성 때문인 것이다. 질그릇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연기르 먹여 구운 그릇으로 900?C미만의 검정색 혹은 잘 구워진 회색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기물 전체가 상당히 무르다. 또하나의 질그릇으로는 약 1100?C 이상의 삼국시대 토기와 비슷한 회청색을 띠는 ‘질독’이라는 비교적 강한 질그릇이 있다. 질그릇 중에 적색이 나는 질그릇은 전통의 것은 아니고 일제에 의해 들어온 산화 소성에 의한 기물이다.
이렇듯 유약이 없이 안팎으로 검은 색을 내는 기물들을 질그릇이라 불렀다. 검은 색 종류의 질그릇들이 모든 장독대를 차지하였던 시대 이후로 일본인들에 의하여 유럽의 소금구이 기법이 들어와 질그릇 가마에 소금을 치기 시작하여 소금 유약을 형성시킴으로써 자연히 소성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을 옹기점에서는 푸레독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푸르스름하다’는 말이다. 소성 온도에 따라 소금유가 형성되는 두께와 광택의 정도가 다른데, 초창기의 푸레독은 유약이 두껍게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이것까지도 질독으로 보는데, 유약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오지 그릇으로 구분해야 한다.
푸레독이 유행되면서부터는 태토의 방수성이 높아져 궅이 연기를 먹여 구울 필요가 없어져서 일본인들에게 배운 산화 서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붉은 색의 소금구이 그릇이었고 이러한 것이 본격적으로 오지라고 불리우는 것이었다. 소금구이한 그릇들은 기물의 안쪽이나 외부의 겹쳐진 부분은 유약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구분이 쉽다. 이 때에 서양식의 소금구이 벽돌이 생산되면서 오지벽돌이라는 것도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경우에도 전통소성 방법인 연기를 먹이는 방식이 아닌 산화소성이었다.
그 당시에 또 한편으로는 고려시대 이후로 내려오는 잿물인 약토와 나뭇재를 반반씩 섞은 유약을 바른 그릇도 함께 생산되었는데, 이것도 붉은 색을 띤 것으로서 모두 오지그릇이라고 불리웠으며 이것이 곧 옹기다. 이옹기는 광명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색깔이 진해지고 광택도 증가되었다. 오지라는 용어에서 우리가 혼동하는 것은 순 우리말인 오지를 한자음 빌러어 오지[烏只] 또는 오지[烏地]를 써서 표기한 것이다.
가소성이라는 것은 힘을 가하여 만들었을 때 형태가 저절로 바뀐다거나 무너지지 않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도예가들 중에는 대부분 가소성과 점력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도자기 소지의 상태를 이야기할 때 본통 점력이 좋다 나쁘다로만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ㅁ점력(viscosity)
점력, 점성, 점도는 같은 의미로 질기고 차진 힘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엿이나 껌 등은 차질고 붙는 성질은 강하나 어떤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약하다. 따라서 이와같은 것들은 점력은 좋으나 가소성은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청토는 점력과 가소성 모두 양호하나, 중국 백점토는 점력은 좋으나 가소성이 적어서 물레 성형을 하다보면 끈적거리기만 하고 자꾸 주저않으려고 한다. 우리 고유 용어 중에서 ‘차질’은 점력이 좋은 찻진 흙을 말하며 ‘메질’은 점력이 좋지 않은 메진 흙을 말한다. 그 외에 ‘설심(설힘)’은 서있을 수 있는 힘으로 가소성을 말하며 ‘불심’은 불에 견디는 힘 (불힘)으로 내화도에 해당되는 말이다.
ㅁ화장토
화장토라는 것은 청동기시대의 홍도나 흑도 등에서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의 상감기법이나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등에 사용되었다. 현대도예에서는 화장토에 금속산화물이나 조제된 색안료 등을 섞어 여러 가지 색깔을 내기도 하고 상감용으로도 여러 가지 색상감토를 만들어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화장토를 기물에 칠하여 놓고 ‘백상감을 칠했다’느니 ‘색상감을 발랐다’고 설명하곤 한다. 이러한 일은 전승청자 공방에서도 마친가지여서 ‘백상감을 가져와라’‘흙상감을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상감이라는 것은 기법을 말하는 것이지 흙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에는 백화장토, 색화장토라 부르고 후자의 경우에는 백상감토, 흑상감토라고 하여 반드시 ‘도’자를 붙여야만 한다.
ㅁ귀얄
귀얄 원래 말총으로 만든 붓으로 갓공예, 목공예, 지공예 등의 공방에서 주로 옻칠이나 풀칠을 하는 도구로 쓰였으며, 풀비는 서민들이 볏짚 이삭을 손쉽게 묶어 도배 할 때 풀을 바르는 용도로 썼다. 이러한 것들이 도자공방에서는 백토를 기물에 바르는데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골동 분청사기에서 보이는 고운 백토 자국은 귀얄 자국이고, 거칠고 활달한 백토 자국은 풀비 자국인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그러한 자국을 ‘하게메’라고 명명하였고, 그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 최순우 관장이 귀얄분청이라고 명명한 이후로 무조건 귀얄로만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는 풀비를 이용한 분청을 풀비분청이라고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고 단지 바로 알고 사용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총으로 만든 진짜 귀얄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은 귀얄이 아닌 줄 알고 멋쩍어 하는 경우와 실은 풀비로 칠하면서도 자신은 진짜 귀얄로 칠한다고 우쭐대는 촌극을 발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ㅁ물메질
일본말로 ‘시아게’란 말은 ‘일을 끝내다’ ‘마무리짓다’라느 뜻이다. 도자공방에서는 굽을 깍아놓고 흠을 없앤다거나 스폰지질을 하여 기물 표면을 곱게 마무리하는 것에 시아게란 말을 주로 하는데, 이와같은 뜻을 가진 ‘물메질’이란 도자공방의 고유 용어가 있다. 옹기공방에서는 ‘물씨름 탄다’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ㅁ물그릇
물레에서 방금 빚어놓아 표면에 물기가 돌고 있는 상태의 기물. 이것은 옹기공방에서 쓰이는 말로써 옹기공방에서는 물그릇에서 날그릇이 되기 이전에 시유를 한다.
ㅁ날그릇
성형된 기물이 건조된 상태로써 초벌 가마에 들어가기 이전의 상태. 날 것이라는 말은 익히 지 않았다는 뜻으로서 날음식, 날고기란 말과 같은 뜻이며, 날기와(옛로는 날디새)라는 것도 굽기 이전의 마른 기와를 말한다. 도자공방과 기와공방에서 공히 사용되는 말이다.
ㅁ질그릇
초벌구이된 그릇.
ㅁ꼬박
흙을 반죽하여 흙 속의 기포를 없애고 덩어리가 없이 고르게 반죽한 흙덩어리를 꼬박이라고 한다. 꼬박을 만드는 행위를 ‘꼬박 말기’라고 한다. (‘고막’은 틀린말이다}
ㅁ꼬박널
꼬박을 말기 위한 나무판을 말하는 것으로 반죽대, 꼬박틀, 꼬박판이라고도 하지만 꼬박널이란 도자공방의 용어가 좋겠다. 널은 널빤지를 뜻하기도 하지만 널따란 것을 뜻하기 때문에 만든 재료가 목재나 시멘트 등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꼬박널이란 말은 무리가 없겠다. 꼬박대를 꼬박다이, 전시대를 전시다이라고 하여 일본식 발음과 혼합해서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
ㅁ조선백자
이조시대라는 것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시대를 일본 사학자들이 한국을 얕잡아 보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 이것은 왕의 성 뒤에 일반인들의 호칭에 쓰는 ‘씨’자를 붙여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운 조선, 즉 이씨조선시대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서, 우리는 이러한 상스런 말을 사용치 말고 반드시 조선시대, 조선 백자 등으로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ㅁ분청사기
일제시대 초기에만 해도 분청사기는 어리숙하고 거칠게 만들어진 까닭에 신라 토기와 고려청자의 중간 시기에 발생된 것으로 여겨지던 그릇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도자기가 발달했던 구주지방에는 백토가 산출되지 않아서 그러한 유의 도자기가 없었던 일본인들은 우리의 그릇들을 깊이 연구하여 갖가지 이름들을 지었다.
미시마, 하게메, 가키오도시, 호리미시마, 고히키 등 수없이 많은 이름으로 구분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총칭하는 일본말은 없다. 이것을 고유섭 선생은 백토로 분을 발라 장식한 회색ㅇ르 띤 사기라는 뜻을 가진 ‘분장회청사기’라는 말로 총칭했다. 그후에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선생이 분장회청사기를 분청사기라고 줄여 부르게 되었으며 일본말로된 각 명칭도 일부 한국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상감분청만을 지칭하는 마시마가 영어와 일어에서 분청사기(粉靑砂器원래 고유섭 선생은 砂를 썼으나 옛 문헌에는 沙로도 쓰였다. 지금은 모두 沙器로 잘못 쓰고 있다.)를 총칭하는 것인양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분청(bunchung)이란 단어가 고유명사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ㅁ항아리
지금은 항아리의 의미가 상당히 많이 변해 버렸다. 농가월령가 시월조에 보면 ‘독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고 장독대에 놓여진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다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이라 장독이나 김칫독처럼 가장 큰 것이고, 그 다음이 독에 비하여 중간 정도 들어간다는 의미의 중들이가 중두리가 되었다. 바탕이는 배가 특히 많이 나왔다는 긔미의 배탱이가 변한 말이다. 그 다음으로 작은 것이 항아리로서, 옛 노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한자 반, 즉 약 45cm를 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둥그런 형태면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다 항아리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ㅁ옹기
옹기란 유약을 발라 구운 그릇으로 질그릇과 구별되며 오지그릇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옹기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져버린 느낌이다. 현재 그토록 혼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당 시대가 요구하는 그릇과 기술적 발전에 의한 다양성 때문인 것이다. 질그릇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연기르 먹여 구운 그릇으로 900?C미만의 검정색 혹은 잘 구워진 회색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기물 전체가 상당히 무르다. 또하나의 질그릇으로는 약 1100?C 이상의 삼국시대 토기와 비슷한 회청색을 띠는 ‘질독’이라는 비교적 강한 질그릇이 있다. 질그릇 중에 적색이 나는 질그릇은 전통의 것은 아니고 일제에 의해 들어온 산화 소성에 의한 기물이다.
이렇듯 유약이 없이 안팎으로 검은 색을 내는 기물들을 질그릇이라 불렀다. 검은 색 종류의 질그릇들이 모든 장독대를 차지하였던 시대 이후로 일본인들에 의하여 유럽의 소금구이 기법이 들어와 질그릇 가마에 소금을 치기 시작하여 소금 유약을 형성시킴으로써 자연히 소성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을 옹기점에서는 푸레독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푸르스름하다’는 말이다. 소성 온도에 따라 소금유가 형성되는 두께와 광택의 정도가 다른데, 초창기의 푸레독은 유약이 두껍게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이것까지도 질독으로 보는데, 유약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오지 그릇으로 구분해야 한다.
푸레독이 유행되면서부터는 태토의 방수성이 높아져 궅이 연기를 먹여 구울 필요가 없어져서 일본인들에게 배운 산화 서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붉은 색의 소금구이 그릇이었고 이러한 것이 본격적으로 오지라고 불리우는 것이었다. 소금구이한 그릇들은 기물의 안쪽이나 외부의 겹쳐진 부분은 유약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특징이 있기 때문에 구분이 쉽다. 이 때에 서양식의 소금구이 벽돌이 생산되면서 오지벽돌이라는 것도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경우에도 전통소성 방법인 연기를 먹이는 방식이 아닌 산화소성이었다.
그 당시에 또 한편으로는 고려시대 이후로 내려오는 잿물인 약토와 나뭇재를 반반씩 섞은 유약을 바른 그릇도 함께 생산되었는데, 이것도 붉은 색을 띤 것으로서 모두 오지그릇이라고 불리웠으며 이것이 곧 옹기다. 이옹기는 광명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색깔이 진해지고 광택도 증가되었다. 오지라는 용어에서 우리가 혼동하는 것은 순 우리말인 오지를 한자음 빌러어 오지[烏只] 또는 오지[烏地]를 써서 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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