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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모음 '분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등

작성시간22.11.20|조회수118 목록 댓글 0

분서焚書

 

 

베르톨트 브레히트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추방된 어떤 시인이 분서목록을 들여다 보다가

 

자기의 책들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

 

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렇게 해 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 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는 물론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에

 

난 그렇게 많은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 남았다.

 

하지만 오늘밤 꿈 속에서

 

나는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후손들에게

 

 

베르톨트 브레히트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되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짧은 한평생

두려움 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약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II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드러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랬?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III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 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고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연기

 

 

 

베르톨트 브레히트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1953)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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