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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용의 족구칼럼

그럼에도 족구

작성자(신화)송한용|작성시간18.12.03|조회수73 목록 댓글 0

군 시절, 대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며 족구를 접하게 되었고, 전역 후 동네 아저씨들과 족구를 즐기며 족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더 재미있는 족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동호회에 가입해 '열족'을 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나름 교류전 및 대회에 참가하며 하루하루 실력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남은 건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좌절감 뿐이었다. 그리하여 족구 선수로서의 꿈(?)을 접고, 평소 축구나 야구 칼럼을 썼던 취미를 족구로 돌려 '족구칼럼을 써보면 어떨까'하고 시작한 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족구칼럼의 시작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안티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댓글로 응원해 주었다. 또한 최강부 선수 및 족구계의 유명인사들과 소통하며 족구계의 깊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전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족구계의 깊은 이야기들을 알아갈 수록 우리 족구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암담했다. 좋은 이야기들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협회에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네티즌들은 대한축구협회를 '적폐의 온상', 대한빙상연맹을 '빙신연맹'이라 하면서 폄하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한족구협회'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차라리 축구는 세계 최고의 인기스포츠라도 되고, 빙상 종목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도 되지만 족구는 기껏해야 대한민국의 60만도 안 되는 동호인만을 보유한 생활스포츠에 불과한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협회 수뇌부들의 졸속 행정에 서로의 이권 다툼으로 얼룩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족구를 엘리트 종목으로 만들어야 한다.', '올림픽에서 족구가 정식종목이 되는 그 날까지'등등의 슬로건을 내건지가 거의 20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족구는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계속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지금의 현 시점에서 족구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종목이다.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칼럼을 썼다.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족구가 발전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엘리트 종목으로 갈 수 있는 초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족구 발전이라는 사명감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족구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족구를 즐기며 틈틈히 시간 내서 그 안에 있는 스토리들을 발굴해 칼럼 한 편 씩 쓰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사진은 칼럼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예전에 조이킥스포츠의 이광재 대표와 인터뷰를 했을 때, 난 이런 질문을 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족구의 발전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이런게 족구의 발전 아닐까요? 족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영상으로 남기는 것들 말이죠. 족구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실행해 옮기는 것이 족구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나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우리 족구에는 사공들이 넘쳐난다. '족구는 이래야 발전한다.', '족구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훈수를 두는 이들이 난무하다. 사실 우리 족구는 스토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스토리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칭 족구 파파라치라고 일컫는 '하이트맨'의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블로그를 보면 자신의 사비를 들여 고가의 장비를 구입해 찍은 사진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잘 몰랐던 최강부 선수들의 이야기들이 수북하다. 그 중에는 우리가 몰랐던 많은 스토리들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행동들이 앞서 언급한 훈수꾼들이 하는 훈수보다 족구의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자칭 족구인이라고 자부하고 있고, 족구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족구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족구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이 족구를 좋아할 리 없다. 자기가 믿는 종교로 주위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할 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저 내가 그 종교를 믿으며 얼마나 은혜받고, 행복한지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교회로 성당으로 절로 찾아온다. 나의 이 믿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족구가 처한 현실을 걱정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스토리들을 발굴하는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우리 족구는 주류가 아니다. 예전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친구들은 족구를 하고 있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다. '내 주위에 족구하는 놈 너 밖에 없어.', '그거 아저씨들이나 하는 운동인데 창피하지도 않냐?' 이런 비웃음 섞인 이야기들을 안 들어본 족구인들이 얼마나 될까. 족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고 여겨질만큼 우리의 족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여전히 특이한 취미이다.


오죽하면 얼마 전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기 위해 방문했던 카센터 사장님이 족구 동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족구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던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애환이 있고, 주변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와 공감대가 있다. 우리들만 아는 묘한 감정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족구가 좋고, 그 안에서 고통 받다가 한 번씩 찾아오는 묘한 즐거움 말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저 이 요상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다 같이 힘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 아무리 족구가 처한 현실이 암담하다고 해도 다 같이 힘을 냈으면 한다. 우리가 언제 주류인 적이 있나. 요즘들어 족구가 비전이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생각해보면 '족구1세대'라고 하는 1990년대에도 족구는 크게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적어도 현 시점에서 봤을 때 향후 10년 뒤에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다. 족구를 끊고 더 많은 이들이 즐기는 취미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비주류인 이 스포츠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협회의 졸속 행정처리, 이권다툼등으로 족구는 족구인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족구가 흥행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나 지금이나 족구는 크게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족구에 등을 돌릴 생각은 없다. 우리에게 족구를 하라고 강요한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고 우리는 이 안에서 재미를 찾으면 그 뿐이다. 누가 손가락질을 한다고 안 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항상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들에 대한 감정을 누르고 나는 다시 족구하러 나갈 것이고, 칼럼을 끄적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그리했으면 좋겠고, 그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각자 운동하는 곳이 다르고, 팀은 다르지만 우리에겐 뭔가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하는 전우애 같은게 있지 않은가.


다시 족구장에 나가 소리를 지르고, 대회 나가서 심판들과 실랑이 하자. 실망했다고 떠나지 말고 원래 자리에서 하던 걸 했으면 좋겠다. 원래 족구는 이런 고통 속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게 매력 아닌가. 족구인들 모두 힘냈으면 한다. 족구가 발전해서 엘리트 종목이 되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고... 이런 건 지금 잘 모르겠다. 거창한 목표 없이 원래 좋아하던 거니까 그냥 좋은 것 뿐이다. 우리 족구가 언제는 뭐 대단한 비전이 있었던 스포츠였나. 누군가는 우리를 비웃어도, 그럼에도 족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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