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를 바로 앞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호리호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작은 체구였다. 하지만 경기 중 그의 뒷 모습에 적혀 있는 이름 석자는 정말 크게 보였다. 권 혁 진.
그와 함께 오랜 시간 선수생활을 함께 했던 조이킥 스포츠의 이광재 대표는 그를 이렇게 회상한다.
'혁진이는 일단 승부근성이 좋은 선수입니다. 한세대 동기, 후배들을 보면 노력형과 천재형으로 분류되는데 혁진이는 천재형 선수였습니다. 운동신경이 좋아 습득력이 빠르고 다른 운동도 수준급으로 했죠.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고 끼가 좀 많은 친구예요. 주장으로서는 온화하기 보다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선수였습니다. 승부욕에 싫은 말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족구의 명문 한세대학교 초대 주장이며, 졸업 후 새롭게 둥지를 튼 광주삼성전자의 주장, 지금은 삼성 하우젠의 주장. 가는 팀마다 단 한 번도 주장 완장을 내려 놓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선수단의 장악력도 뛰어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평소에는 장난도 잘치고 농담도 잘 했지만 경기장에서 만큼은 무게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한 후배의 증언도 있었다.
▲시합에 들어가면 그의 눈매는 항상 매섭게 빛났다.(사진출처: 전성배의 족구매거진)
매서운 눈빛으로 공을 응시하고, 공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대회가 끝나면 그의 유니폼은 온통 흙투성이다. 때로는 맨 바닥에 떨어져 등을 부둥켜 잡고 엎드려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2006 SBS족구최강전 결승전, 포스코와 한세대학교의 경기에서 포스코의 공격수 곽대성의 발코 내려찍기가 큰 바운드와 함께 관중석 앞에 있었던 광고판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권혁진이 광고판을 넘어가며 몸을 날려 공을 받아내었다. 점프한 그의 몸은 관중석 두번째 계단까지 올라가 있었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심지어 부심까지 그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갔지만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광고판을 다시 넘어 코트로 뛰어 들어왔다. 이 장면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관련영상보기
이 대회를 시작으로 한세대학교는 각종 대회에서 무수히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족구연합회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군입대 후 '국방부 족구단' 선수로 2008년에 벌어진 'SBS족구최강전' 결승전에서 당시 최강 '이천하이닉스ENG'를 꺾으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MVP는 팀 동료 이광재였지만 보이지 않는 수훈선수는 권혁진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뛰어난 공격수는 관중을 만들지만 뛰어난 수비수는 챔피언을 만든다.'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그의 모습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를 최고의 수비수로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70센티를 조금 넘는 작은 키에 일반인으로서도 작은 체구이지만 코트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큰 거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지금은 삼성하우젠에서 일반부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팀의 내부사정이나 본인의 생업 문제로 앞으로 그의 모습을 최강부에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가 최강부에서 뛰면서 만들어낸 수 많은 업적들은 후배들과 우리 족구인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무쪼록 다시금 최강부에서 뛰는 모습을 보길 원하는 바램이 나 혼자만의 바램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