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를 빛낸 10인의 인물', 아홉번째 순서는 이천시청의 수비수 왕갑철이다. 제목에서 보면 알듯이 왕갑철의 별명을 '코트위의 탱크'라고 붙였다. 사실 수비수에게 탱크라는 별명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별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본래 이 글을 쓰기 전, '투혼의 수비수'정도의 별명을 붙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별명을 바꾸게 된 이유는 같은 포지션의 라이벌이었던 삼성하우젠의 권혁진 선수의 말을 듣고난 이후다. 그는 왕갑철 선수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
"갑철이형은 '코트위의 탱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2차세계대전때 독일의 타이거탱크와 같은 압도적인 존재? 적수가 없죠. 그리고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표정에서 보여주듯이 말이죠. 또한 집중력도 어떤 선수가 따라올 수 없을만큼 높고 코트 주변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게의치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입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굉장히 좋아했고 본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대 공격수에게 존재감만으로도 위협이 되었던 수비수, 어쩌면 그에게 가장 적절한 수식어일 것이라고 생각해 '코트위의 탱크'라는 별명을 붙인다.
내가 왕갑철 선수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경기는 2009년 벌어진 '제2회 소양강배 슈퍼리그 족구대회' 4강전이었다. 당시 최대 라이벌이었던 '현대파워텍'과 '이천시청'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이 당시 족구계의 최강자가 이천시청에서 현대파워텍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고, 상대전적에서도 현대파워텍이 서서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소양강배 초대 대회 우승팀이었던 현대파워텍은 예선은 물론 16강, 8강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뽐내며 상대팀들을 누르고 올라왔기에 선수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게다가 경기 장소였던 춘천 송암동의 족구전용경기장은 실외경기장이었지만 경기장 사방이 관중석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운동장과는 달리 공간이 한정된 장소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격 비거리가 더 길었던 강만규가 있었던 현대파워텍이 유리해 보였다.
반면 이천시청은 왕좌자리를 서서히 내주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연합회, 협회등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관계 속에 초대 대회 불참 이후, 처음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현대파워텍의 근소한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경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강만규의 뛰어차기 공격이 이어지자 왕갑철의 수비가 빛났다. 휀스에 부딪히거나 말거나, 맨 바닥에 떨어지거나 말거나, 부상을 입거나 말거나 '그는 실점이다'라고 생각했던 공들을 모두 살려내었다. 경기는 2:1 이천시청의 승리. 내게 이 경기의 최우수 선수인 'Man of the Match'를 선정하라고 했다면 주저없이 왕갑철을 선정했을 것이다.
이천시청은 유일하게 참가했던 '제2회 소양강배'에서 이 경기에 이어 결승전에서도 GM대우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3회, 4회 소양강배를 모두 현대파워텍이 우승을 차지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경기는 현대파워텍의 전무후무한 단일 대회 4연패를 저지한 경기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2004년, '2000(이천)'족구단으로 최강부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족구의 명가 이천시청 족구단. 긴 역사만큼이나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팀명이 '2000'에서 '파이런텍', '아스텍', '하이닉스ENG'를 거쳐 지금의 '이천시청', 초대 정해성 감독을 시작으로 최병식, 박종빈, 장태현 지금의 김종일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었고, 많은 선수들이 떠나고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이천시청'에서 변하지 않은 딱 한가지, 그것은 바로 우수비 왕갑철의 존재다. 그만큼 자기 관리를 착실히 하고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선수다.
지금도 10여년 전과 전혀 다를것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수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기량으로 이천시청의 우측라인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어느 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만큼 최강부 은퇴시기는 다른 선수들보다 빠를지 모르나 지금의 기세로는 10년 뒤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휀스에 치이고, 코트에 뒹구는 모습으로 많은 족구인들에게 각인되어 수비수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 그런 그가 없었다면 과거 이천시청의 화려한 전성시대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왕갑철을 말하는 사람들
박종빈(이천시청) - 갑철이는 무엇보다도 투지가 정말 좋은 선수입니다. 족구 경기 중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다가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멈칫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 몸이 다치거나 말거나 죽어가는 공을 살리려는 마음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자기 몫은 자기가 해내는 선수입니다. 이런 면이 10년 넘는 시간동안 아직도 최강부에서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네요. 여담으로 족구뿐만이 아니라 축구도 정말 잘합니다. 특히 몸이 통뼈라서 누구와의 몸싸움도 자신있게 합니다. 팀 내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농담도 잘하고 경상도 사나이 기질도 있는 선수죠.
김종일(이천시청) - 갑철이는 일단 승부욕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제가 왼발잡이 공격수였으니 항상 제 뒤에 서 있었는데, 그 뒤는 조금도 신경쓸 필요가 없어 제가 받아야하는 공만 신경썼습니다. 그리고 상대 공격수의 공격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런 선수가 몸도 사리지 않으니 얼마나 대단한 선수이겠습니까? 지금도 비록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든든한 선수입니다.
이광재(한세대학교) - 갑철이 형이요? 힘으로 승부하고 싶었던 수비수였습니다. 연타나 꺾어차기로 동작을 속이기 보다는 어디까지 받아 올릴 수 있나, 어디까지 쫒아갈 수 있나 오기가 생기는 수비수였습니다.
박수훈(이천시청) - 평소개인관리가 철저하며 공군 상사로 군복무중인데 마라톤, 축구등을 즐기면서 체력관리를 충실히 하는 선수입니다. 경기전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풀기에 열중하는 성실한 선수입니다. 여담으로 현재 딸바보가 되어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시죠. 뒤에 서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말없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선수입니다.
장한빈(하이트진로음료) - 왕갑철 선수는 누가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와 특유의 파이팅등 개성있는 수비수입니다. 특히 (휀스가 있는)비슬산 시합에서 보여진 그 모습들은 수비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족구인에게 왕갑철이라는 이름이 각인되고 많은 팬들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관리도 충실히 하여 올 2015시즌 '벌크업'하신게 눈에 보일 정도로 운동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이 대단해 보입니다. 타이밍상 득점이 날 공도 어떻게든 발에 터치하는 모습에 나머지 팀원들도 한 발 더 뛰게 만드는 수비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