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계 소설
개관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 사설이 기록물로 정착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판소리 사설을 기록한 것으로는 창본이 먼저 주목된다. 창본은 판소리 연행 현장에서 불리어진 사설을 그대로 채록하거나, 창으로 사용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대본을 가리킨다. 창본에는 ‘창’, ‘아니리’, ‘진양조’와 같은 용어들이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판소리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표현이나 어법도 많이 등장한다.
판소리 사설을 기록한 것으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전승되고 있는 것은 필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창본도 대부분 필사본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필사본은 곡조나 장단 표기가 되어 있지 않고 일반적인 독서물의 형태를 띠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필사본들은 연행 현장에서 채록된 것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이미 기록물로 전환된 서책이 유통되면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소리 사설은 판각본으로도 형성·유통되었다. 판각은 작품을 목판이나 석판에 새겨서 인쇄하는 방식이므로, 한 번 새겨두면 여러 번 인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판각본이 출현했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판소리 작품도 마찬가지다. 판소리 사설을 바탕으로 판각본이 만들어져 유통되었다는 것은 판소리 작품이 이미 독서물로 향유되었음을 뜻한다.
20세기 초기에 이르면 활자본 서책이 본격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한다. 판소리 작품도 이 시기에 들어 활자본으로 제작되어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활자본들은 페이지 수, 책값, 발행인, 발행처 등이 표기되어 있어 온전한 서책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것은 작품들이 매매를 통해 본격적인 독서물로 유통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판소리 사설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록물에는 창본·일반 필사본·판각본·활자본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창본을 제외한 일반 필사본·판각본·활자본에 속하는 개별 이본들을 판소리계 소설로 일컫는다. 그 외에 판소리 사설에서 비롯된 소설은 아니지만 판소리와 관련이 있는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이나, 판소리로 불리어진 것은 아니지만 판소리적 성격이 강한 『이춘풍전(李春風傳)』 등도 넓은 의미에서 판소리계 소설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용
송만재(宋晩載)가 1843년에 지은 「관우희(觀優戲)」를 보면 당시에 불리어진 판소리 작품을 알 수 있다. 「관우희」에는 <춘향가(春香歌)>, <심청가(沈淸歌)>, <수궁가(水宮歌)>, <흥보가(興甫歌)>, <적벽가(赤壁歌)>,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壅固執打令)>,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총 12작품의 판소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중에서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 등은 현재도 창과 소설본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으나, 변강쇠타령·옹고집타령·배비장타령·강릉매화타령·장끼타령·무숙이타령 등은 창은 전하지 않고 소설본만 전한다. 그리고 가짜신선타령은 창과 소설본 모두 현전하지 않는다. 한편 1940년에 간행된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는 위의 <가짜신선타령> 대신 <숙영낭자타령>이 소개되어 있다. <숙영낭자타령>은 문장체 소설인 『숙영낭자전』을 판소리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판소리 사설이 선행하는 춘향가 등과는 형성 과정이 다르다. 그러나 어쨌든 『숙영낭자전』의 내용이 판소리로 불렸으므로 『숙영낭자전』도 넓은 의미에서 판소리계 소설로 평가하고 있다. 『이춘풍전』은 판소리로 연행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인물 형상, 표현과 묘사, 미의식 등에서 <무숙이타령> 계통의 판소리적 성격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되어, 현재는 『이춘풍전』 도 판소리계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판소리계 소설을 언급할 때에는 ‘――가’나 ‘――타령’이라는 용어보다는 ‘――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들을 사용하여 현재 전하는 판소리계 소설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판소리 | 판소리계 소설 | 판소리 | 판소리계 소설3 |
|---|---|---|---|
| 춘향가 | 춘향전 | 배비장타령 | 배비장전 |
| 심청가 | 심청전 | 강릉매화타령 | 매화가, 골생원전 |
| 수궁가 | 토끼전, 별주부전 | 장끼타령 | 장끼전 |
| 흥보가 | 흥부전 | 무숙이타령 | 게우사 |
| 적벽가 | 화용도 | 가짜신선타령 | × |
| 변강쇠타령 | 변강쇠가 | 숙영낭자타령 | 숙영낭자전 |
| 옹고집타령 | 옹고집전 | × | 이춘풍전 |
이상과 같이 현재 전하는 판소리계 소설은 총 13종이다. 그러나 판소리계 소설은 다른 고전 소설 유형에 비해 각 이본별로 개별적 성격이 강하여 이본 하나하나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평가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판소리계 소설의 전반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작품 내부의 이본들을 다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소리계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은 『춘향전(春香傳)』이다. 춘향전은 경판본, 완판본, 안성판본 등의 판각본과 다수의 필사본, 활자본이 유통되었다. 경판본 춘향전은 35장본이 맨 먼저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30장본, 20장본, 17장본, 16장본으로 축소되어 여러 차례 간행된 바 있다. 장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여 내용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 행 배열을 촘촘하게 하여 전체 분량을 줄인 것이다. 완판본 춘향전은 30장본, 33장본, 84장본의 체재로 간행되었는데, 30장본에서 33장본을 거쳐 84장본으로 확장되었다고 보고 있다. 안성판 춘향전으로는 20장본이 있는데, 판형과 내용은 경판과 거의 같다고 알려져 있다.
경판본과 완판본 간에는 글자체나 내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판본은 글자가 흘림체로 판각되어 있는 반면 완판본은 정자체로 판각되어 있고, 내용상으로도 경판본은 독서물로서의 성격이 강한 반면 완판본은 판소리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경판본과 완판본이 활발히 유통되면서 각 판본을 그대로 필사하거나 약간 변개한 필사본, 경판과 완판을 혼융한 필사본 등 다종다기한 필사본들이 대량으로 생성되어 유통되었다. 필사본 중에는 『남원고사(南原古詞)』, 일본 동경대학 소장 『춘향전』, 일본 동양문고 소장 『춘향전』 등 세책본으로 유통된 작품도 있다. 또한 『광한루기』, 『춘향신설』, 『익부전』 등 한문으로 쓰인 춘향전도 필사본으로 기록되어 양반 식자층들 사이에 유통된 바 있다.
활자본으로 된 춘향전은 이해조가 1912년에 신문에 연재하고 곧이어 단행본으로 발행한 『옥중화(獄中花)』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옥중화』가 발행된 이후 표지나 일부 내용이 약간 변개된 유사 『옥중화』가 『옥중가인』, 『별춘향가』, 『특별무쌍춘향전』, 『도상옥중화』 등 다양한 제명으로 우후죽순처럼 발행되어 유통되었다. 또한 한문에 국문 토를 붙인 한문현토본 활자본, 극의 형태로 변용한 활자본 등도 발행된 바 있다. 이처럼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 중 가장 다양하게 기록되고 제책되어 유통되었다.
『심청전』도 경판본, 완판본, 안성판본 등의 판각본과 다수의 필사본 및 활자본이 유통되었다. 경판본으로는 24장본, 26장본, 20장본 등이 있고, 안성판본으로는 21장본이, 완판본으로는 71장본이 각각 유통되었다. 그리고 필사본은 100여 종이 현전하고 있고, 활자본으로도 30여회 이상 발행된 바 있다. 특히 활자본 중에는 이해조가 1912년에 개작한 『강상련』 계통이 가장 많고, 경판본을 바탕으로 개작한 신문관본 『심청전』도 활발히 유통되었다.
『토끼전』은 『별주부전』, 『토선생전』, 『토생전』, 『토처사전』, 『토공전』, 『토별전』, 『옥토전』, 『중산망월전』 등 다양한 제명으로 전해지고 있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경판본과 완판본이 각각 1종씩 전해지고 있고, 필사본과 활자본으로도 폭넓게 유통되었던 작품이다. 이 중 필사본은 결말 부분에서 다양한 변이가 일어나 각 이본의 독자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필사본 토끼전은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 가장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본들의 집합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토끼전은 춘향전과 같이 『토끼전』, 『토공사』, 『토공전』 등의 한문필사본으로도 유통되었다. 활자본 토끼전은 『별주부전』 계통, 신소설적 요소가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는 『불노초』 계통, 이해조가 개작한 『토의간』 계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부전은 판각본으로는 경판본 25장본이 유통되었고, 완판본은 발행되지 않았다. 필사본도 다른 주요 판소리계 소설의 그것보다 유통된 작품이 적다. 활자본으로는 이해조가 개작한 『연의각』 계통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 신문관에서 발행한 『흥부전』, 세창서관에서 발행한 『흥부전』 등이 있다.
『화용도』는 완판본만 전하고, 경판본이나 안성판본은 전하지 않는다. 필사본은 판소리 창본 계통과 완판본 계통으로 분류되는데, 어느 것이든 작품명은 대부분 『화용도』로 되어 있다. 활자본은 『적벽가』, 『적벽대전(赤壁大戰)』, 『화용도실기』 등의 제명으로 발행되어 유통되었다. 판소리 <적벽가>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 부분을 제재로 삼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적벽가의 형성 경로는 그동안 판소리에서 판소리계 소설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원조(怨鳥) 사설>, <군사설움 사설> 등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사설이 새롭게 추가되어 판소리 적벽가가 이루어졌고, 이 판소리 적벽가 사설을 바탕으로 판소리계 소설 『화용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 사설에서 형성되었다는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변강쇠가는 신재효본 <변강쇠가>와 『가루지기타령 횡부가』, 『변강쇠전』 등의 필사본이 전하고 있다. 신재효본은 신재효 창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판소리 <변강쇠타령>과 분명한 관련성이 있다. 그러나 변강쇠타령이 창으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판소리 <변강쇠타령>과 <변강쇠가> 간의 구체적인 관련성은 알기 어렵다. 『가루지기타령 횡부가』와 『변강쇠전』은 내용상 신재효본 <변강쇠가>와 동일하다. 따라서 <변강쇠가>는 신재효본 <변강쇠가>로 대표되는데, 판소리 <변강쇠타령>의 사설 정착본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판소리계 소설로 판단해도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옹고집전』은 10여 종의 국문필사본이 전하고 있다. 이 중에는 「관우희(觀優戱)」의 내용과 유사한 이본도 있고, 다른 내용이 추가 삽입된 이본도 있다. 「관우희」의 내용과 유사한 이본은 박순호 소장의 『옹생원전』인데, 이 작품이 판소리 옹고집타령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필사본들은 대부분 기록되면서 독서물로 전환된 것으로 판단된다.
『장끼전』은 『자치가』, 『꿩전』, 『까토리전』, 『장끼전』, 『화충전』 등 다양한 제명의 필사본과 활자본이 100여 종 이상 전하고 있다. 또한 장르적으로도 창본에 가까운 작품, 가사 작품, 소설 등으로 혼재되어 있다. 내용상으로 장끼의 죽음까지는 판소리로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 후 까투리의 개가와 관련된 내용은 소설본으로 정착되면서 삽입·부연·확장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무숙이타령>은 <왈자타령>이고도 하는데, 이 <무숙이타령>의 사설 정착본이 『게우사』이다. 『게우사』의 내용을 보면 인물로 등장하는 김무숙의 왈자 행태가 「관우희」의 그것과 일치하고, 문체와 어휘 면에서도 판소리사설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작품의 줄거리를 고려하면 「게우사」는 ‘계우사(誡友辭)’의 의미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숙영낭자타령(淑英娘子打令)>은 문장체 소설인 『숙영낭자전』의 내용을 판소리 사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본래의 대본인 『숙영낭자전』은 판소리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숙영낭자전』이 판소리로 불렸다는 근거로 『숙영낭자전』도 판소리계 소설로 평가하고 있다.
『이춘풍전(李春風傳)』은 판소리로 불리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태가 <무숙이타령>의 그것과 유사하고, 사설 구성이나 표현 및 묘사에서도 판소리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무숙이타령> 계통의 판소리계 소설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국문 필사본의 형태로 여러 이본이 전해지고 있다.
<배비장타령>의 사설 정착본은 현재 활자본 『배비장전』만이 전하고 있고, <강릉매화타령>의 사설 정착본으로는 국문필사본 『매화가』, 『골생원전』이 있다.
특징 및 의의
판소리는 창과 아니리, 그리고 너름새로 연행되는 예술이다. 창은 노래로 하는 것이고, 아니리는 말로 구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름새는 창과 아니리를 할 때 부수적으로 행해지는 동작을 말한다. 판소리는 이 세 요소로 구성되지만 무엇보다도 비중이 높은 것은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리도 비록 말로 하는 것이지만 음악적인 율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판소리의 대본인 판소리 사설도 음악적인 율격을 갖추고 있고, 이것이 판소리계 소설에도 큰 변화 없이 나타난다. 또한 판소리 사설에는 서사적인 내용에 시조·한시·가사 등 서정 장르가 삽입되어 있고, 한 장면이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장면 극대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들도 판소리계 소설에 이어지고 있다. 이상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의 면모는 형식적인 특징인데,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과 의의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판소리는 호남의 무가권에서 생성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예술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서민들 속에서 서민들의 호응과 관심 속에 연행되어 왔다. 따라서 판소리사설에도 서민적 지향 의식이 두드러지고, 이러한 성격이 판소리계 소설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춘향전은 춘향과 이몽룡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의 사랑은 하층민인 춘향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되는데, 이 점은 춘향과 같은 하층민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춘향전에는 춘향과 농민들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역시 당시의 서민 의식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토끼전은 여러 삽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토끼가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핵심으로 한다. 토끼가 직면한 위기는 토끼의 헛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토끼의 모습은 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항상 겪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화용도』는 영웅들의 광대한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과 흥미는 영웅들의 삶에 있지 않고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참혹한 고난을 겪는 민중들의 탄식과 원망에 놓여 있다. 이 속에서 독자들은 지배층들에 대한 민중들의 비판 의식을 생생히 목도할 수 있다. 그 외에 비록 호색한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유랑 천민들의 이야기인 <변강쇠가>, 가부장적 권위를 공격하고 새로운 시대 질서를 모색하면서도 조선 후기 유랑민의 고단한 삶을 형상화한 『장끼전』 등도 기본적으로 서민적 지향 의식을 반영한 작품이다. 또한 『게우사』에서 김무숙의 방탕한 생활을 벗어나게 한 기생 의양, 『이춘풍전』에서 구렁텅이에 빠진 남편을 구해낸 춘풍의 처 김씨 등은 그동안 타자로 소외되었던 하층 여성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삶의 전환을 이끄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당시의 서민 의식이 결코 만만치 않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소리는 지배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도 적실하게 수행한다. 이러한 점은 이미 『춘향전』이나 『화용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배비장전』, 『매화가』, 『골생원전』, 『게우사』 등도 부당하고 위선적인 중인이나 양반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는 작품이다. 『옹고집전』도 왜곡된 권세와 품성을 지닌 인물을 징계하고 풍자하는 작품이다. 가짜신선타령은 창본과 소설본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관우희」의 내용을 보건대 이 작품 역시 위선적인 양반에 대한 풍자가 핵심인 작품이다. 한편, 『심청전』과 『흥부전』은 효와 우애라는 유교적 이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효와 우애는 유교사회에서 상하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중시했던 인간적인 윤리이다. 그러나 삶의 형편이 최소한의 윤리마저 돌아볼 겨를이 없는 심청이나 흥부 같은 인물이 효와 우애의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과 의식을 그리면서 조선 후기에 대두한 서민 정신과 그들의 역동성을 전면적으로 표출한 작품,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부당하고 위선적인 계층을 풍자·비판하는 작품, 삶의 형편상 윤리를 생각하기 힘든 인물들이 도리어 극한의 모습으로 윤리를 실현하는 작품 등은 판소리계 소설 외에는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판소리계 소설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대표하는 소설로서 막대한 의의를 지닌다. 또한 판소리계 소설은 미학적으로도 주목되는 소설이다. 판소리는 골계미, 비장미, 해학미 등 다양한 미적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고, 이들은 판소리계 소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판소리계 소설이 지닌 이러한 미적 특징은 다른 유형의 고전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판소리가 광범위한 유통을 보임에 따라 판소리 사설이 빈번하게 기록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이본이 생성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전승오가(傳承五歌)에 해당하는 이본들은 이본마다 독자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한 소설본 자료들을 살펴보면 내용상으로도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춘향전의 경우,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란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춘향의 ‘열절(烈節)’을 보다 더 강조한 소설이 많다. 이러한 소설에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에서 양반집 서녀로 바뀌는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은 양반 향유층을 고려하여 춘향과 이몽룡의 신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야기된 것이다. 토끼전에서는 별주부의 ‘충(忠)’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토끼에 반영된 서민 의식이 약화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화용도에서는 전쟁에 동원된 민중들의 이야기는 유지한 채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전쟁 이야기를 삽입·확장하는 경우를 다수 발견하게 된다. 『토끼전』과 『화용도』 소설본에 보이는 이러한 현상도 양반 향유층의 영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비해 『심청전』과 『흥부전』 소설본에서는 기존의 이념적 성격에 현실적 요소가 좀 더 가미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로 인해 기존의 양반적 취향에 서민적 골계미가 더 강화되었다. 이처럼 판소리계 소설은 광범위한 유통을 보이면서 다양한 내용적 특징을 보이는 이본들이 산출되었는데, 이것은 판소리계 소설이 그만큼 개방적인 소설 유형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