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장>
[제1장]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샤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시니
▷ 우리 나라의 여섯 임금이 뜻을 펴고 하시는 일(개국창업)마다 하늘의 복이시다.
▷ (이는) 마치 중국의 옛 개국 성군들의 사적과 똑같이 일치하시다./조선건국의 정당성
성격 : 서사시, 송축가
구성 : 명칭 일명 해동장(海東章)
1행 3구의 파격장
1행 : 왕업 창조의 천명성 - 천복이시니
2행 : 중국 성군의 사적과 일치 - 동부 하시니
요지 : 육조가 하는 일 마다 천복이 내리며, 그 사적이 중국 성군의 그것과 일치한다
표현 : 비교법, 대우법(두 개의 사물을 대응하게 하여 대립의 미(美)를 나타내는 수사법.), 역사적 사실을 직서적으로 서술, 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역과 중국 고사 등을 인용
제재 : 세 왕조의 창업
핵심어 : 천복(天福)
[제2장]
불휘 기픈 남 매 아니뮐 곶됴코 여름 하니
미 기픈 므른 래 아니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
▷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좋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린다.
▷ 원천이 깊은 샘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이루어져 바다까지 간다./새 왕조의 운명
명칭 근심장(根深章)
2절 4구<네 토막 한 줄이 앞 뒤로 이어진 대칭구조, 8구 형식
1행 : 기초가 튼튼한 나라 - 문화의 번성
2행 : 연원이 깊은 나라 - 왕조의 무궁함
요지 : 조선 왕조는 국기(國基)가 튼튼하고 유서가 깊어 문화의 번성과 왕조의 발전이 무궁할 것이다
표현 : 대구법,은유법
핵심어구 : 곶 됴코 여름 내히 이러
주제 : 조선의 무궁한 발전 송축 및 기원
의의 : 용비어천가 125장 중 백미(白眉) - 순수 국어 사용, 상징적 표현 수법
<제 4 장>
[제4장]
狄人(적인)ㅅ 서리예 가샤 狄人(적인)이 외어늘 岐山(기산) 올샴도 하디시니
野人(야인)ㅅ 서리예 가샤 野人(야인)이 외어늘 德源(덕원) 올샴도 하디시니
▷ 주국(周國)태왕 고공 단보가 북쪽 오랑캐 사이(빈곡)에 가시어 살 때, 북쪽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 밑으로 옮기심도 하늘 의 뜻입니다.
▷ 익조가 여진족 사이(오동)에 가시어 살 때, 여진족들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입니다./조상 때부터 천명이 내림
구성 : 2절 4구
1행 : 고공단보에게 내린 천명 - 기산으로 옮김
2행 : 익조에게 내린 천명 - 덕원으로 옮김
요지 : 고공단보(주나라)가 적인의 침범으로 기산으로 옮긴 것이나 익조가 여진족의 침범으로 덕원으로 옮긴 것은 모두 천명에 의한 것이다.
표현 : 대구법, 비교법, 생략법
핵심어 : 하늘의 뜻
주제 : 익조의 사적찬(事蹟讚), 천명에 의한 조선 왕조 창업
[제48장]
굴 디내샤 도기 다 도라가니 半(반)길 노 년기 다니리가
石壁(석벽)에 올이샤 도 다 자시니 현번 운 미 오리가
▷ 구렁에 말을 지나게 하시어 도둑이 다돌아가니, 반 길 높인들 다른 사람이 지나겠습니까? 석벽(石壁)에 말을 올리시어 도둑을 다 잡으시니, 몇 번 뛰어오르게 한들 남이 오르겠습니까?/초인적인 지략(智略)과 용맹
금 나라 태조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이 태조도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여 왜적을 무찔렀다는 내용으로 개국을 할 수밖에 없는 이태조의 신이함과 비범성을 말하고 있다.
심화 자료
배경고사
전절 : 금 나라 태조가 한 번은 군영을 나와 적을 죽이고 돌아올 때 많은 적이 뒤 쫓아왔다. 태조는 혼자 좁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쫓아오는 적은 매우 다급히 다가오는데 앞에는 한 길이나 되는 언덕이었다. 이 때 태조가 말을 채찍질하여 언덕을 무사히 뛰어 넘으니 적은 다시 쫓아오지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
후절 : 고려 우왕 때 왜적이 남쪽 해안선을 침범하므로 이 태조가 화살을 쏘아 넘어뜨렸다. 기세가 꺾인 왜적은 산으로 올라가 절벽 위에서 칼을 뽑고 창을 세우니 그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태조는 비장과 태종을 보내어 보았으나 도무지 올라갈 수 없다하므로 자신이 칼 등으로 말을 쳐서 한 달음에 올랐다.
<제 67 장>
[제67장]
가 자거늘 밀므리 사리로 나거 니다
셤 안해 자제 한비 사리로 뷔어 자니다
▷ (원나라 승상 백안의 군사가) 전당강 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밀물이 사흘이나 들어왔지만 잠기지 않다가, 군사가 철수한 뒤에야 잠겼습니다. (이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켰을 때 큰 비가 사흘이나 내렸건만 잠기지 않다가 군사가 나온 뒤에야 잠겼습니다./천우신조(天佑神助)
요점 정리
표현 : 대구법, 비교법
요지 : 원 나라 백안이 송나라를 칠 때 하늘이 도왔듯이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주둔했을 때에도 하늘이 도왔다.
주제 : 이 태조에게 내린 하늘의 도움(천우신조,天佑神助)(사적찬)
내용 연구
자거늘 : 주체는 원나라 군사, 백안의 군사가'진을 치고 있는데'의 뜻임
밀므리 : 밀물이
이해와 감상
용비어천가 제 1장 중심 내용인 '천복'에 대한 직접적 예에 해당되는 장이다. 사흘 머무는 동안에는 안전하다가 이성계가 섬에서 벗어나니 그제서야 섬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천복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장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천명의 차원에서 합리화하고 있으며, 위화도 회군을 칭송한 정도전의'정동방곡'과도 내용이 있다.
심화 자료
배경고사
전절 : 원 세조의 승상 백안이 송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전단강 가에 주둔하게 하니 항주 사람들이 이를 보고 곧 조수에 잠길 것이라 생각하여 기뻐하였는데 밀믈이 사흘 동안이나 이르지 않다가 군사가 떠난 뒤에야 그 곳이 물에 담기었다.
후절 : 고려말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로 하여금 요동을 치게 하였다. 이성계(태조)는 4대 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정벌을 반대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 시켰는데 여러날 동안 장마가 졌으나 위화도에 물이 붇지 않다가 회군한 뒤에야 비로소 온 섬이 물에 잠기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제125장]
千世(천세) 우희 미리 定(정)샨 漢水北(한수북)에 累仁開國(누인개국)샤 卜年(복년)이 업스시니
聖神(성신)이 니샤도 敬天勤民(경천근민)샤 더욱 구드시리다
님금하 아쇼셔 洛水(낙수)예 山行(산행) 가이셔 하나빌 미드니가
▷ 천년 전에 미리 (도읍지로) 정하신 한강 북쪽 땅 (한양(漢陽))에 인덕(仁德)을 쌓아 개국하시어 점지에 받은 왕조의 운수가 끝이 없으시니,
▷ (그러나) 성자 신손(성군의 자손)이 대를 이으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부지런히 힘쓰셔야, (국권이) 더욱 견고하실 것입니다.
▷ 후대 임금이시여, (다음의 역사적 사실을) 아소서, [하(夏)나라 태강왕(太康王)이] 낙수에 사냥하러 가 있어 (백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드디어 폐위를 당하였으니, 태강왕 당신은) 할아버지 [우왕(禹王)의 덕망]만을 믿었습니까?/경천근민의 당부
요점 정리
형식 : 3절 (형식상의 파격)
구성 : 1. 중국고사가 인용되었다.
2. 형식상의 파격을 이루었다.
요지 : 후왕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부지런히 힘쓸 것을 권면
주제 : 경천근민(敬天勤民)의 경계(警戒)
내용 연구
千世(천세) : 먼 옛날에, 천 대로 많은 대(代)라는 뜻으로, 영원을 이르는 말.
우희 : 위에 여기서는 '전(前)에'의 뜻, 즉, 시간적 개념
신라 때 도선이 도읍지로 미리 정하신 신라 말의 승려인 도 선(道詵)의 비결서(秘訣書)에 삼각산의 남쪽인 한양에 도성을 세우면 나라가 흥한다는 설이 있었다고 전한다.
漢水(한수) 北(북) : 한강의 북쪽 땅에. 한양에.
: (육조께서)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여시어
: 왕조의 운수가 끝이 없으시니, 점쳐서 정한 햇수. 여기서는 '점쳐 얻은 왕조의 운명'
聖神(성신) : 성자신손(聖子神孫), 훌륭한 후왕(後王), 위대한 후대 왕. 훌륭한 왕손
敬天勤民(경천근민) :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 다스림에 부지런하라.
: (왕조의 기틀이) 굳어질 것입니다.굳으실 것입니다.
님금하 : 임금이여, 후대의 임금이시여
: 알으소서, 아십시오, 아소서 기본형은 알다
낙수예 : (황하의 지류) 낙수에
산행 : 사냥, '山行'은 고유어 을 한자로 빌려 쓴 차자(借字)
가 이셔 : 가 있어. 가서
하나빌 : 할아버지를, 조상을, 여기서는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을 말함 (여기서 하나라의 우왕을 예로 들어 말한 것은 타산지석의 예를 든 것임)
먼 옛날에 미리 (도읍지로) 정하신 한강 북쪽(한양)에,
'천세 우희'란 '천 년 전'이란 수치로서의 뜻보다 '먼 옛날'을 뜻하는 관용어로 봄이 좋고 '한수 북'은 도선의 풍수 지리설에 의하면 '수지북일 : 강의 불쪽을 양이라 한다'라 하였으니,'한수 북'은 곧 '한양'이 된다.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여시어 왕조의 역사가 끝이 없으니 여기서 ' 인'은 '어진 일을 거듭 쌓는다.'는 뜻이니 주체는 육조,'개국'의 주체는 이성계로 볼 수도 있으나, 태종도 태조의 개국을 도왔으므로 ' 누인개국'의 주체를 모두 육조로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 그리고 '卜年'은 점을 쳐서 정한 햇수, 즉 하늘이 점지해 준 운수라는 뜻이다.
아무리 위대한 후대 왕이 대를 이으셔도 경천근민하여야만 더욱 굳으실 것입니다.
낙수에 사냥 가 있어(백 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드디어 폐위를 당하였으니, 태강왕 당신은 할아버지인 우왕의 덕망만 믿었습니까? 하나라 우왕의 손자 태강왕의 고사를 예로 들어, 후대의 왕은 개국 성왕의 성덕만으로 왕권이 이어질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경천근민하라는 경계의 뜻이다.
이해와 감상
이 장은 용비어천가의 마지막 장으로 내용면에서 110-124장의 무망장을 대표하며, 용비어천가 전체의 총결사에 해당한다. 형식면에서 파격장(2줄이 아니라 3줄로 이루어진 점)이다. 국도를 정하게 된 연유를 밝혀 은근히 국도를 찬양하고, 국은을 송축하는 내용에 이어, 후왕에게 경천근민하라는 권계를 하였다. 그리고 맨 끝에 옛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어 후대 왕으로 하여금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도록 배려하였다.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등의 악조로 연주되기도 했다.
심화 자료
배경고사
하나라 우왕의 손자인 태강왕이 사냥을 즐기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그 덕을 잃었다. 한번은 낙수의 남쪽까지 가서 사냥을 즐기느라 백일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유궁후(有窮后) 예가 백성을 위해 참을 수 없어 태강왕을 폐위시키고 말았다. 타산지석의 교훈을 후대왕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전절 : <도선(道詵)의 비결서(秘訣書)> 신라 때의 중 도선의 비결서에 의하면, 삼각산의 남쪽, 곧 한수(漢水)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흥하리라고 하였다. '한수북(漢水北)'은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水之北曰陽(강의 북쪽을 陽이라 한다.)'이라 하였으니, '한수북(漢水北)'은 '한양'을 가리킨다.
후절 : <하(夏)나라 태강왕> 하나라 태강(太康)이 임금으로 있으면서 놀음에 빠져 그 덕을 잃으니 백성이 모두 다른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인 우왕(禹王)의 덕만 믿고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더니, 마침내는 사냥을 절도(節度) 없이 해서 뤄수이(洛水) 밖으로 사냥간 지 백 날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궁(窮)나라 후(后) 예( )가 백성을 위하여 참을 수 없다 하여 태강을 허베이(河北)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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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 27년(1445)에 왕명(王命)을 받은 정인지, 권제, 안지 등이 편찬한 악장으로, 찬술의 목적과 동기는 목조로부터 태종까지의 여러 사적을 낱낱이 들어 국조 창업(國祖創業)의 어려움과 그 천명성(天命性)을 강조하여, 후왕에 대하여는 계감을, 신하들에 대하여는 충성을, 백성들에 대하여는 교화(敎化)를 촉구, 도모하려 한 것이다. 총 125장으로 된 장편 서사시로서, 대체로 2절4구의 대구 형식을 취하고 있다.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국문 서사시이며, 악장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또한 당시의 국어 표기 형태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국어학 연구에도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1) 내적 동기
조선 건국의 합리화(合理化): 역성 혁명(易姓革命)이 하늘의 뜻임을 알려 민심(民心)을 조정에 귀의(歸依)시키고자 함.
이씨 왕가(李氏王家) 조종의 원대한 포부를 널리 알리고자함.
후대 왕에 대한 권계 : 왕통(王統)의 확립, 경천 근민의 정신 자세 권계
(2) 외적 동기
훈민정음의 시험 : 훈민정음의 실용성 여부.
국자(國字)의 권위 부여 : 국가의 존엄한 문헌을 한글로 기록함으로써 그 존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
(3) 내용 구성
조선 왕조의 역대 조종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등의 창업 사적을 찬양하고, 후대의 왕(王)에게 왕업의 수호를 권계한 내용.
서 - 제1장. 제2장=>개국송(開國頌)
제1장 - 조선조 창업의 천명성과 당위성 강조.
제2장 - 조선조 창업의 근원(根源)의 심원성과 국기의 튼튼함과 번영(繁榮)의 영원성, 송축(頌祝).
본 - 제3장 ~ 제109장 사적찬(事籍讚)
제3장~제8장 - 태조의 선조인 사조의 행적 등
제9장~제89장 - 익조의 사적과 태조의 인품과 영웅적 행적
제90장~제 109장 - 태종의 위업 찬양
결 - 제110장~제125장 계왕훈(戒王訓)
후왕에 대한 권계
(4) 가치
1) 문학적인 면
훈민정음으로 된 최초의 문헌이다.
국문으로 된 최초의 악장 문헌이다.
한글로 된 우리 나라 최초의 장편 서사시(敍事詩)이다.
연속성 없는, 배열식 영웅 서사시이다.
2) 어학적인 면
한글의 가장 오래 된 모습을 보여 주는 문헌이다.
사용된 어휘가 풍부하여 고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기사법이 엄정하여 고어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3)역사적인 면
여말 선초(麗末선초)의 여진족과의 관계를 밝혀 주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당시의 지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5) 용도
용비어천가는 궁중 연악이나, 제악에 쓰이는 아악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 임금의 거둥 때나 궁중의 잔치 때에 연주하던 아악곡(雅樂曲). 세종 때 용비어천가 1~4장과 125장을 아악 곡조에 얹어 부를 수 있도록 작곡한 가락으로, 모두 10장이었는데 7장만 관현악기로 연주하며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음률이 화평하고 웅대하다.
조선 세종 때에 봉래의에서 전주곡과 여민락 다음에 <용비어천가> 125장 전편의 국한문 가사를 연주?노래하던 곡. 악보만 전한다.
조선 세종 때 용비어천가에 맞추어 연주하기 위하여 작곡한 아악의 곡명. 상하 두 곡에 용비어천가 전장(全章)을 갈라 얹은 443각(刻)의 곡조로 된 악보로, 공사(公私)의 궁중 연락(宴樂)에 연주하였다.
(6) 표기상의 특징
종성부용초성의 원칙에 따라 받침이 처리되어 8종성과 ㅈ,ㅊ,ㅍ의 종성이 쓰이었다.
모음조화가 철저히 지켜졌다.
관형격 촉음표기가 훈민정음언해본보다 더 엄정하게 지켜졌다.
어두에 자음군이 보인다.
연철 표기를 했으며, 한자 표기 이외에는 방점이 사용되었다.
〈용비어천가〉는 장르적 성격 규정에서부터 논란이 많다.
이는 대부분 앞 절에서 중국의 사적을, 뒷 절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선왕조의 사적을 담아내면서 그러한 의미 내용을 정사대(正事對)의 대구적(對句的) 표현장치로 담아내기에 적절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즉, 중국 제왕들의 영웅적 행적과 육조(六祖)의 영웅적 행적을 앞 뒤 행으로 짝 지우면서(事對) 다른 내용의 행적을 가지고 동일한 서술 의미를 갖도록 대응시켜 나가는(正對) 대구형식의 기법을 써서 두 행의 서술 의미를 일치시킨다.
또 통사론적으로도 두 행의 구조는 완전히 일치하여 서로 짝을 이루는 통사단위나 기능이 동일한 것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는 중국사적을 전범(典範)으로 앞에다 놓고 철저한 대구 형식으로 짜 맞추어 나감으로써 결과적으로 육조의 위대성에 객관적 설득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적 서술방법으로 이해된다.
또한 〈용비어천가〉에 배열된 삽화들의 배열원리를 보면 인접 삽화와의 서사적 인과관계를 맺지 못하는 단순한 열거 현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제시된 것은 오직 삽화를 구성하는 여러 모티프들로부터 선택된 한 두 개의 특정한 모티프뿐이다.
모티프의 선택기준을 사건의 서사적 인과성 즉 서사내용에 두지 않고 그것의 서술의미에 두기 때문에 모티프 배열도 인접 모티프와의 사이에 서사적 인과관계나 시간적 맥락이 발견되지 않는 방식을 보인다.
연대 : 세종 27년(1445)
작자 :
정인지[鄭麟趾 1396-1478 문신, 학자, 호는 학역재(學易齋),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큼]
권제[權 1387-1445 문신, 학자, 호는 문경(文慶), '고려사' 편찬에 참여]
안지[安止 1377-1464 문신, 호는 고은(皐隱), 시호는 문정(文靖), 시와 서예에 능함]
형식 : 악장(樂章). 2절 4구(전절은 중국 제왕(帝王)의 사적을, 후절은 조선 왕조의 사적을 찬양)
성격 : 서사시, 송축가(頌祝歌)
구성 : 10권 5책 125장
주제 : 조선 창업의 정당성
국문학상 의의 :
①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
②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장편 영웅 서사시
③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악장 문학의 대표작
④ 세종 당시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
⑤ 역사 연구의 보조 자료가 됨
창작 동기 :
① 조선 건국의 정당성 도모
② 후대왕(後代王)에 대한 권계
③ 훈민정음의 시험과 국자(國字)의 권위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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